여름휴가의 시작은 친구와의 점심. 가격은 좀 비싼 감이 있지만 직접 텃밭에서 기른 허브를 활용한 브런치가 신선하다. 커피도 끝맛까지 좋아 만족스럽다.
약속장소가 과학관 코앞이라 겸사겸사 오랜만에 나들이. 1층만 둘러보는데 오후를 다 써버려 2층도, 곤충관도 구경 못했다. 전기 관련 실험이 제일 흥미로웠는데 방방 뛰는 아들에 비해 중3 딸은 시큰둥하다. 그래도 테슬러 코일 실험을 겁먹지 않고 해내 기특했다. 아들을 데리고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와봐야겠다.
이토록 한적한 영화관이라니. 여름 블록버스터 속에 참 애써 잡은 개봉관인데 좌석이 반도 못 찼다. 감독 특유의 잔잔한 영화인데 최고조인 태풍온 날 밤조차 너무 밋밋해 좀 실망스럽다.
딸아이는 홍대앞에서 음식점을 하는 사촌 가게에서 직업체험을 하도록 맡기고, 아들과 난 서대문 탐방.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대학시절 자주 갔던 영천시장 떡볶이에 왔다. 그러나 너무 늙으신 할머니 손맛이 아쉽다. 장맛은 그대로인데 떡볶이도 튀김도 한 박자 이상 아쉽다.
원 이름인 영은문은 은혜를 맞는다는 뜻이다. 중국 밑에 사는 나라의 옹색함이다. 독립문이라는 새 이름이 붙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독립운동에 인생을 바친 선열들 덕분에 우리는 식민지 노예가 아니라 역사기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 선열들과 해방후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들의 발자취가 남은 곳이다. 고문시설과 사형시설이 섬찟하다. 한센옥사가 별도로 있었던 건 생체실험 때문은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미리 예약해둔 암석 교육 때문에 서둘러 이동했다. 규모는 작지만 복제 화석만은 리얼하다.
차슈와 계란후라이 올라간 모듬짬뽕 강추. 짜장면은 내 취향엔 좀 달다. 탕수육은 9900원 착한 가격인데 양과 맛은 soso.
군산역에 도착하니 땡볕이다. 한숨 돌릴 겸 역내에 있는 전시관에 들렸는데 불도 꺼져 있고 냉방도 안 해 휘리릭 훑어보고 바로 나왔다.
나중에 알아보니 지금의 군산역은 이전한 것으로 이전공사 도중 발견된 유적을 모아놓은 것이란다. 군산이 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것인데 군산여행의 초입이 되도록 좀 더 잘 운영되면 좋겠다.
날이 너무 더워 숙소부터 들렸다. 굿스테이에서 고른 보람이 느껴진다. 아들은 저 혼자 계획으로 겨울에 철새보러 다시 오자며 그 때도 여기에 묵잔다.
그나저나 전국 중고생 농구대회가 있다더니 로비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의 키가 장난이 아니다.
헐. 아기자기힌 사진 후기에 속았다. 그냥 철길만 있다.
허탈하게 철길 끝까지 걸어나오는데 갑자기 갈매기떼가 날아 뭐지 싶었더니 바다로 이어지는 하구언이다. 밀물때 해일 피해를 방지하는 갑문이 이채롭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을 달랠 겸 해양공원 대신 에어컨 빵빵한 조선은행을 택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속 고태수라는 악인이 다니던 곳이다. 그 냉랭한 표현 덕분에 탁류는 일제시대에 판금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근대건축관으로 개조되어 공개중인데 1층의 우리 역사인물 12명 찾기에 열올리다 보니 어느새 곧 닫는 시간이라고 안내하신다. 이제 입장 시간 있는 곳은 죄다 포기해야 하는걸까. ㅠㅠ
역시나 근대미술관은 입장불가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미즈커피. 그런데 양은냄비의 빙수라니 너무 잘 어울리잖아.
이성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침수흔적. 아들래미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는 표시에 깜짝 놀랐다. 강물 범람이 해수의 영향까지 받은 듯하다.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빵집을 찾는데 이 분 역시 이성당 가는 길이었더라. 군산 최대 빵집이라더니 저마다 쟁반에 수북하게 계산한다. 평일이다보니 그 먹기 힘들다는 앙꼬빵과 야채빵 모두 득템 성공
여행후기에 두번째로 속은 장소. 좀 더 테마를 가지고 꾸몄으면 좋았을텐데 표지판만 덜렁 있는 썰렁함이 영 아쉽다. 일제시대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총알자국을 모티브로 삼아도 좋았을텐데.
물메기탕을 먹으려 했는데 군산아구까지 가기엔 피곤하고 코앞의 선미집은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가게에 들어왔다. 그나마도 낙지집에 와서 아들 고집에 부대찌개를 먹는다. 허허허
한여름이라 철새 군무는 구경할 수 없었다. 하지만 11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강 전경이 시원하다. 가창오리 모양으로 조성한 논도 귀엽다.아기자기 생태전시관도 많아 애들 데리고 올 만하다.
딱히 산이 없는데 왜 군산일까 했는데 지금은 선유도라 불리는 군산도라는 섬 이름에서 도시명이 나왔단다. 지금은 군산의 세 줄기중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를 막은 새만금방조제 때문에 지도가 변했다는데 고래의 지도를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고려시대부터 조세창이 있던 역사 때문에 일제의 미곡수탈기지가 된 운명이 실감난다.
3층에는 일제시대 군산 본정동을 재현해 각종 체험이 가능하다.
철새조망대에서 지연된 일정 때문에 호수공원은 드라이빙으로 끝났다. 강줄기가 셋이나 있고 바닷가에 위치한지라 백제시대부터 이미 미제방둑을 쌓아 물난리를 대비했고 이는 벼농사지대로 발전할 기반이 되었다. 지금은 은파호수공원 주변이 아파트단지라 예전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냥 공장지대를 지나는 느낌인데 이 일대가 다 바닷물을 막아 만든 땅이라니 신기하다. 한때는 갯벌이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건 나이어린 해송과 해풍쑥뿐인 듯. 간간히 공장들을 위해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이색을 더 한다.
돌아다니기 귀찮아 시티투어 버스기사님이 추천한 식당에 그냥 들어오면서 맛없을 것을 각오했다. 바지락칼국수와 바지락죽, 바지락회무침을 하나씩 시켰는데 제일 먼저 나온 회무침에서 불신에 대한 반성 시작. 새콤한 맛에 이끌려 공기밥을 추가해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과 회무침과 쓱쓱 비비니 천상의 맛이다.
칼국수는 국물이 깔끔하고 조개가 푸짐했고 죽은 간간하니 입맛을 돋군다. 양도 푸짐해 먹다보니 숨쉬기도 힘들다.
식사후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폭염경보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사진 한 장 찍고 건홍합만 얼른 산 뒤 시장구경은 포기. 아이스커피를 사러 들른 마트에서 본 불개-늑대와 진돗개를 교배한 종- 구경은 의미있었다. 하여간 에어컨이 있는 곳이 천국인 날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정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위를 달리는 건 상상 이상의 낭만이었다. 동진강 하구 앞바다에 위치해 있던 가력도는 군산이나 부안 여행자 어느 쪽에도 강추한다.왼쪽이 내호. 오른쪽이 바다.
91년부터 2006년까지 15년에 걸쳐 방조제공사는 완료되었으나 아직도 부지조성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갯벌을 퍼올려 강물을 이용해 날라 바다를 메우고 있다니 신기하다. 태양력과 풍력발전소를 기반으로 신에너지 첨단산업단지를 발전시키려는 이 도시의 꿈이 이뤄지면 좋겠다.
새만금의 가장 큰 장점은 군산국제항이다. 인천보다 남중국과 동남아시아 무역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륙교통이 열악하다는 건 큰 숙제이다.
이토록 허허벌판에 덜렁 위치한 문학관이라니. 콩나물고개에 위치했으면 규모는 적어도 맞춤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라면 금강변 드라이브 도중 들릴 수 있겠지만 아름다운 강변공원에도 불구하고 영 아쉽다.
필사체험실도 일부러 마련한 잉크와 펜에도 불구하고 망가진 펜촉으로 인해 낙서로 변질된 원고지가 태반이라 속상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군산여행은 끝났다. 콩나물고개와 부잔교, 월명공원을 다시 못 간 게 영 아쉽다. 7년 전 여행 사진을 다시 재연해 찍고 싶었는데.
에필로그
사소하게 잡힌 여러 약속 때문에 여름휴가동안 긴 계획을 짜지 못 하고 이리저리 일정이 잡혔다. 아들은 과천과학관을 제일 좋아했고 딸은 새만금방조제 드라이브를 가장 행복해했다. 어쨌든 모두 만족스러웠다니 이번 주말은 집에서 뒹굴거리기로 했다. 역시 모든 여행의 마지막은 집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