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월드컵공원에서 해프닝을 겪었던 거와 비교도 안 되는 사건이 학교다닐 때 있었다.
보도사진론을 들을 때였는데, 하루는 '움직임'이라는 주제로 촬영한 사진을 과제로 제출해야 했다.
친구랑 열심히 학교 후문 밖에서 지나가는 차를 팬 기법으로 찍어보겠다고 쇼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온 욕설, 머리를 후려치는 손아귀와 사진기를 낚아채려는 손까지.
친구와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순간 넋을 잃고 당할 뻔 했지만,
여자 둘이 무서운 게 있겠나. 사진기를 부여잡고 따다다다 싸우기 시작했다.
허락없이 자기 사진을 찍었다고 화를 내는 남자의 태도는 요란스럽기 보다 고압적이었다.
만약 혼자 있었다면 기어이 필름을 뺏기고 말았으리라.
다행히 똑똑한 친구가 옆에 있어 실갱이는 우리쪽에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우리가 직접 필름을 뽑아봐서 만약 그 남자 사진이 찍힌 게 있다면
필름과 사진을 주겠다고 약조하는 것으로 절충했다.
현상해보니 남자 얼굴이 찍히긴 찍혔으나, 팬으로 찍는 바람에 전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해당 필름과 사진을 그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학생처로부터 긴급호출이 왔고, 필름과 사진은 학생처 과장에게 제출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진한 우리들은 초상권에 지독하게 민감한 남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수 년이 지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은... 그 남자가 울 학교 전담 '기관원'이라는 것.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까봐 그 남자는 법석을 떨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학생처 역시 제 수족으로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사건은 1992년도에 벌어졌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해가 1998년.
그 기관의 이름이 바뀐 게 2003년이니, 야만의 시대를 과거지사로 치부하는 건 아직 불가능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