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오늘 방학식을 했다.

방학안내장이라고 받은 것에 숙제가 제법 많아 기겁했는데,

아이가 아무 거나 동그라미 친 걸 알고 한시름 놓았다.

그래도 필수과제는 있는 법인데 어째 죄다 영어다.

아이러브화성, 영어단어인증제, 사이버영어동화...

 

더 식겁한 숙제는 2학기 독서골든벨 예습인데, 해당도서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것.

에엥? 정말 애들이 이 소설을 소화할 수 있다고 보는 거야???

놀라운 마음에 혹시나 하고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초등학생용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있었다. 그것도 여러 권이나. @.@




 











내 어렸을 적에 아동판 문고로 읽은 '걸리버 여행기'나 '일리아드' '천일야화' 등을

성인이 되어 완역판을 찾아 읽은 뒤 어린 시절 동화와의 간극에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단지 19금이냐 아니냐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책에 담긴 세계관이나 철학을 따지면 이걸 왜 굳이 아동용으로 재편집했는가 의아한 것이다.

 

언젠가는 청소년을 위한 토지를 보고 기함한 일이 있었는데,

이젠 한 술 더 떠 초등학생용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도서 소개를 보고 있자니 그저 한숨이다.

'요즘처럼 왕따가 심한 때에 당하는 아이의 심리와 가하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잘 나타나 있다'니

과연 이 책이 이문열의 문제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맞긴 맞나 의아할 지경이다.

 

혹시나 싶어 좀 더 뒤져보니 초등학생용 '메밀꽃 필 무렵'이라든지 '압록강은 흐른다'는 물론

'안네의 일기'나 '제인 에어' 심지어 '동물농장' '주홍글씨'까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게 대체 뭔 일이야 싶어 아는 이에게 투덜댔더니

중고등학교 가면 책 읽을 시간은 없고 논술은 대비해야 하다 보니

웬만한 책은 다 초등학생용으로 재편집되어 나오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헐, 이게 과연 똑바로 가는 세상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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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12-07-2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런....

2012-07-26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2-07-2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을 과제로 낸 교사는 원본을 읽기나 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조선인 2012-07-2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토랑님, 정말 놀라운 세상이죠?
속닥님, 저 역시 주홍글씨, 테스, 채털리 부인의 사랑, 데카메론 모두 초등학교 때 뗐습니다. 단, 아동편집본 아닌 걸로요. 캬캬캬
briny님, 왕따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면, 양파의 왕따일기라든지, 까마귀 소년이라든지, 얼마든지 대안이 있을 거 같은데 말이죠. -.-;;

책읽는나무 2012-07-2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맞아!
초등생용으로 편집한 책들이 완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저도 좀 많이 놀랐어요.
박완서님의 소설도 제법 보았구요.
그리고 왠만한 책들을 아이들이 읽기 어려우니 만화로 엮어낸 것도 많더라구요.
결코 만화로 가볍게 다가갈 책들이 아닌 것같은데...ㅠ
명작소설류는 모두 '논술'이란 머릿말이 꼭 붙어서 제목이 달려 있구요.
그래서 읽혀야 되는 건지? 어떤 것인지? 저도 참 많이 헷갈리더라구요.ㅠ

saint236 2012-07-2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 세익스피어의 소설 중에서 로미오는 읽었지만 쥴리엣은 아직 못 읽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2012-07-26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2-07-3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나무님, 우리 아이들의 독서조차도 대입에 얽매여야 한다니 정말 속상합니다.
세인트236님, 푸하핫, 그거 정말 비참한 농담이에요. >.<
속닥님, 아, 예전에는 교과서 수록도서였군요! 헐, 그것도 참 놀라운 일입니다.

순오기 2012-07-3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점점 아래 학년으로 내려옵니다.ㅠㅠ
정말 어린이용으로 재편집하는 건 아니다 싶어요.
그렇게 읽은 책을 정작 읽어야 할 나이에 다시 읽지 않으니까요.

조선인 2012-07-3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전 이문열씨와 이청준씨의 소설을 중학교 때 만났더랬어요. 그 소설 속에서 대신 사춘기를 치뤄내 막상 저 자신은 무난히 질풍노도의 시절을 넘어선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중3 여름 때... 사람의 아들과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옥상에서 장맛비를 맞으며 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우리 아이들은 과연 사춘기 때 무슨 책을 만날까 그저 한숨입니다.

차트랑 2012-07-3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용 토지가 출간된 것을 보고
기함히신 조선인님...
저 역시 졸도할 뻔 했다아닙니까요

'토지'를 설마...했다는 거지요 ㅠ.ㅠ

에디슨의 전기의 문제점이나
콜럼버스의 잔혹사등이 완전하게 누락된 과거 어린이용 전기문은
또한 지금도 개탄을 금치 못하는 사례입니다.

저는 사적으로
전기문의 경우, 머리가 더 컸을 때
읽어야 한다고 고집피우는 사람입니다 ㅠ.ㅠ

코묻은 돈을 벌어보려는 상술이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속이 쓰립니다.

문제점의 지적, 정말 시원스럽습니다 역시~ 조선인님!!

조선인 2012-07-3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저 상술도 미친 교육열이 만든 부산물뿐이라는 게 가장 안타까운 일이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