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근무를 하냐 마냐를 가름짓는 중차대한 회의가 오늘 오후에 있었다. "별 일 없는 사람들, 들어가"라는 인사부장님의 반가운 말씀에 썰물처럼 사람들이 사라진 사무실에서 우리팀과 시스템팀만 자리를 지켰다. 현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모 SI 업체와 모 시스템 업체 담당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정답게 얼굴 붉혀가며 고성방가를 나누느라 목청이 갈라지고 있었는데...

마로 담임 선생님의 전화.
나: 안녕하세요. ***입니다.
담임: 안녕하세요. 저 바다반 담임...
나: (불쑥 말을 잘라내고) 예, 알고 있습니다. 무슨 용건이신지요?
담임: (순간 당황하며) 바쁘신가봐요. 지금 통화하셔도 괜찮으세요?
나: 어떤 case인지 먼저 briefing해주시면 판단하겠습니다.
담임: 아, 네? 그게, 오늘 마로가 입고 온 한복이요, 치마와 어깨끈 연결부분이 튿어졌더라구요. 원래부터 그런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 (또 말을 잘라냄. ㅠ.ㅠ) 그 건이라면 critical issue도 아니고, solution도 있으니까 managing하시는 데 문제는 없을 듯 한데요.
담임: 예? 무슨 말씀이신지.
나: back up(여벌 옷을 의미 -.-;;)이 있지 않습니까? 단위에서 clear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회의중인지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일방 끊어버림)

1. 흑, 아무리 회의 도중이라 정신이 없었다고 하지만 선생님에게 단단히 결례를 했다. 사과를 드려야겠지?
2. 윽, 정말이지 불필요한 외래어 남발이다. 개인적으로는 조심하는 편인데, 회의를 하다보면 업계 관행대로 말하게 된다.
3. 회의 결과는 심각한 상황이지만(목표일 유보 여부는 28일 부장비 인수테스트 후 결정 ㅠ.ㅠ) 최소한 기능테스트는 무사히 마무리 지었고, 추석 연휴 동안에는 no action-aging test(음,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무동작 안정 시험?)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일일보고 후 상무님에게 지명당했다. "김과장은 만일에 대비해서 귀향일정을 조정해놨다고 했지? 미안한데, 수요일은 SI가 출근하니까 됐고, 내일은 김과장이 잠깐 나와서 점검하지." 오호, 통재라. 꺼이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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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9-2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임 선생님께서 정말 황당하셨을듯,,,,ㅎㅎㅎ
근데 한복도 back up을 보내셨어요????ㅎㅎ

마늘빵 2007-09-2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선생님께서 기분이 좀 상하셨을거 같은 느낌입니다. -_-a

미설 2007-09-2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조선인님의 스탈이 아닌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좀 당황하시긴 하셨을거 같아요. 에고.. 사는게 그렇죠. 토닥토닥..(그런데 저도 나비님과 같은 의문이 든다는 ;;;;)

마노아 2007-09-2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 잘못 건줄 알았겠어요. 나중에 해명을 해주셔야겠네요, 에궁^^;;;
조선인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셔용~~~!!!

Mephistopheles 2007-09-2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는 다른 독특한 언어체계를 쓰시는 군요..
가끔 나이드신 발주처 양반들이랑 통화할라치면...
"안됩니다 사장님..그 다시방을 이빠이 끌어당기지 않으면 모든 공정이 데나우시 되버린다니까요..거기 십장 옆에 있죠..없으면 대모도라도 바꿔주세요.." -바른말 고운말 실천해야 하는데..-

조선인 2007-09-2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유치원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아예 여벌 옷을 하나 놔둬요. 한복이 한 벌 더 있는 건 아니었구요. ^^;;
아프락사스님, 좀만 상했으면 그나마 다행이게요. ㅠ.ㅠ
미설님, 음, 아는 이들은 저를 다중인격이라고 놀립니다. 일할 때는 대개 아수라모드라. 흑흑
마노아님, 가능하면 내일이라도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고 싶은데, 출근해야하는지라, 늦기전에 전화로라도 사과를 해야겠죠?
메피스토펠레스님, 건축업계에 일본말이 판을 친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 업계의 말은 영어라고 할 수도 없는 초등단어인데, 메피님 말씀은 정말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ㅋㅋ

순오기 2007-09-2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글 심각하게 읽고는 메피님 댓글에 웃음보가 터졌다는... ㅎㅎㅎ

조선인 2007-09-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순오기님, 오늘 아침 선생님에게 사과전화륻 드렸는데, 선선히 받아주셔서 정말 고마웠더랬어요.

2007-09-2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7-09-2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맞습니다. 대응방법뿐 아니라 너무 많은 게 잘못되었죠. 가끔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보면 무서워져요. 나의 정체성 대신 왠 괴물이 우글우글. 어쩌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