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 로마 최초의 황제
앤서니 에버렛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로마’라는 나라는 강렬한 인상을 가져다준다. 본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을 시절부터 내게 로마라는 나라에 대한 감정은 동경의 감정 이상이었다. 운명처럼 여겨질 정도로 매료되고는 했었지만 왜 그렇게 연연하였는지는 모르겠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책 제목을 본 뒤부터 그런 느낌이 다시 한 번 나를 찾아왔고,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이 아니던가, 책 소개에서는 카이사르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비한다면 그림자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했지만 내게는 누구보다 유명한 로마인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대로라면 아우구스투스의 생애를 어느 책보다 확연히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볼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가 출생한 가족의 배경에서부터 그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시대 순으로 그의 행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부족한 기록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실을 담고자 노력한 저자의 수고가 녹아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존엄한 자”라는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칭은 그가 36세가 된 기원전 27년에 원로원을 통해 부여받는다. 그 해에 삼두정을 함께 이끌던 안토니우스가 제거되면서 일약 로마의 제1인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전의 시기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를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우선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칭을 부여받기 이전의 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대 지배계층의 가계를 보게 되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의 가계 구성은 상당히 복잡하다. 게다가 양자라는 제도가 지금보다 훨씬 발달하여 더욱 그렇다. 책 앞부분에 가계도가 있긴 하지만, 워낙 중복되는 이름이 많아서 이해하려는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자꾸 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누이의 외손자로 태어난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는 어린 시절 대부분 시골에서 자란다. 어린 시절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치와는 무관하게 자라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 시절 대부분의 기술은 당대 로마의 상황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독재정권을 펼치자 이를 반대하는 공화파와 갈등하게 되는 내용은, 그 이후 시기를 이해하는데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공화파가 승리하게 된다. 문제는 당시 공화파들이 원하는 대로 공화정을 유지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속주들로부터 들어오는 값싼 곡물들, 오랜 전쟁으로 인한 자영농의 몰락 등은 그 시기를 앞당기고 있었다. 공화파는 승리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로마의 통치 제도가 영토를 관리하기에 너무나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었다.”라고 기술되어있듯이, 곧 공화파는 심각한 도전을 받아야 했다. 옥타비아누스가 이 무대에 오른다. 이 때 카이사르의 신임을 받았던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또 다른 삼두정이 구축되었다. 이들은 브루투스, 카시우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공화파와 오랜 내전의 시기를 로마에 가져온다. 이후의 시기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지속된다.

공화파를 물리치는 데에는 함께 전력을 쏟았지만, 그 이후가 문제가 되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라고 했던가, 로마의 미래를 이끌어 나아갈 지도자가 이때에는 많을 수록 불리해졌다. 당시 법이 있다고 해도 넓어져 가는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로마의 길은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효율적이고 질서 잡힌 군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태평하고 소란스러운 군주정이었다. 전자는 옥타비아누스였고, 후자는 안토니우스였다. 결국 전자의 승리로 로마는 질서를 잡았다. 안토니우스의 세기적인 스캔들의 주인공,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로마인의 불만이 옥타비아누스에게는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옥타비아누스 개인의 노력에 대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안토니우스를 제거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최후를 닮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 둘은 너무 달랐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독재정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고 모든 권한을 원로원에게 위임하였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예로운 코그노멘을 선사받았다. 물론 이는 정치적인 계산이 있는 행동이었다. 로마는 독재를 원하지 않았고, 공화정이라는 정치형태를 고집하고 있었다. 위험을 부르는 행동을 할 만큼 아우구스투스는 어리석지 않았던 것이다. 겉으로는 군주정이 아니었지만, 1인자가 된 그는 이전부터 시작된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당시 로마는 속주를 늘리기 보다는 국내의 여러 가지 일들에 더욱 많은 힘을 쏟는 데에 힘들 기울인다. 유럽 문화의 모체인 팍스 로마나의 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경찰청과 소방청을 만들고 상비군을 조직하고 도로망을 정리하고 법령을 만든다. 그 이후 로마 제국을 이끌만한 중심을 잡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업적과는 달리, 그 이후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후계자로 지목한 이들은 일찍 죽거나 그를 실망시켰고 원치 않던 이가 자신을 계승하게 된다. 그답게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렸지만, 운명은 그를 떠난 듯 보였다. “피로 이어진 관계들이 결국 피를 부르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는 저자의 설명이 적절해 보인다. 자신의 피로 제국을 이어가기를 원하는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제국은 오랫동안 그의 염원대로 유지된다. 그의 오랜 노력의 결과였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전쟁의 시기인 로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 시기에는 병져 누워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스로마나를 연 사람이 될 수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책에도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요소들을 담고 있다. 추려보면 인내심과 유연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회피하지 않았고, 자기가 맡은 임무를 하나씩하나씩 끈기 있게 해 나갔다. 적을 제거할 경우조차도 기다리지 못하는 때는 없었다. 안토니우스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손잡을 줄 알았고, 기다릴 줄 알았기 때문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거기에 갖춘 유연성이라니. 절대 권력을 좋아했지만, 권력이양에 있어 개방적이었다. 권력을 쥐고 있으면 썩을 수밖에 없는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신임할 수 있는 친구도 부하도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도 많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이러한 정치적 유연성은 죽는 날까지 그를 로마의 제1인자로 서게 한다. 적에게는 무자비했다고는 하나 대체적으로 객관적이었다는 생각이다. 글을 통해 만나 본 그는 생각과는 다른 면모를 가진 듯 보였으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난 2,000여 년 간 만난 인물 중 단연 최고라고 말하는 저자의 추천에 공감하고픈 이라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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