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초파리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마고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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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곤충이며, 신의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 곤충이 아닐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인간의 이기적 관점에서 비롯된 편견일 뿐이다. 사실 파리는 부패물의 해결사이자, 양서류의 먹이로서 당당히 생태계 먹이사슬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M. 리 고프'의 명저 <파리가 잡은 범인>에 의하면, 파리의 정직성이야말로 미해결의 범죄를 풀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이다!

진화생물학자들과 유전학자들은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파리만큼 인간에게 기여하는 곤충도 없다는 것이다. 그 기여란 바로 진화의 열쇠를 푸는 일이다. 진리에 목마른 인간들에게 이는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자연의 비밀을 벗기기 위해 잔인한 실험을 묵묵히 견뎌내는 파리들을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동정심을 가질게 뻔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파리는 흔히 볼 수 있는 쉬파리보다 훨씬 작은 초파리이다. 초파리를 보고싶거든, 잘 익은 포도 한 송이면 된다. 연락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여든다! 만일 그들이 붉은 눈을 가지고 있고 포도씨보다 작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초파리이다. 자, 그렇다면 이 작은 곤충을 매개로 펼쳐지는 진화생물학과 유전학의 신비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 보자. '마틴 브룩스'의 '초파리'의 세계로 말이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되는 진화의 과정은 너무도 점진적이어서, 화석을 통한 관찰밖에 방법이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2주에 한 번 꼴로 번식해 1년여에 걸쳐 약 30-40세대의 자손을 보는 초파리라면 어떨까? 초파리에서라면 세대에 걸쳐 누적되는 진화의 과정이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학자들은 초파리에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수집과 관찰 등의 박물학적 전통에 매몰돼 있던 당시의 진화론자들이 실험생물학으로 전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진리를 위한 학문적 변절이라면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던가? 이 책의 주인공 모건이 바로 그런 인물이며, 과감한 용기의 대가로 유전학의 선구적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모건이 선택했던 실험대상은 초파리였고, 초파리들은 진화가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생생히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다윈의 진화론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었던 멘델의 유전학이 초파리를 통해서야 연결고리를 찾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모건과 그의 제자들의 기발한 실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행한 다양한 초파리실험들은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놀라운 아이디어의 경연장처럼 보인다.

X선을 쬐어 다리가 머리에 붙거나 유전자가 조작돼 바보가 되거나 거세되거나 등등, 초파리가 선택할 수 있는 돌연변이는 다양한 편이지만, 정상적인 몸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잔인한 실험의 대가때문인지, 인간이 얻는 지식은 정말 엄청난 것들이다! 시간감각을 관장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 심리적인 메카니즘이 유전자로부터 기원한다는 것, 모체(암컷)에 침입한 정자의 놀라운 배반행위 등등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당신이 암컷 초파리로 내세에 환생한다면, 성행위를 자제하라! 그래야 당신의 수명이 연장될 테니!

초파리가 선택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진리의 세계에 좀더 가까이 다가간듯 하다. 초파리의 진화원리와 유전자의 세계가 우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자만심과 편견에 찬물을 끼얹는듯 하다. 자신의 유전자를 재생산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는 자연의 격전장은 인간의 생각만큼 고요한 곳이 아니다. 저자 마틴 브룩스는 자신의 정자를 더 많은 암컷에 이식하기 위해 투쟁하는 수컷곤충들의 놀라운 진화과정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 뿐이 아니다. 양질의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쉽게 씌어졌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유전학자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적절히 가미하여, 자칫하면 지루할 뻔했던 이 책의 여정에 흥미있는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진화생물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정말 유익한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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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마인드
실비아 네이사 지음, 신현용 외 옮김 / 승산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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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을 가봐도 밤낮없이 주변를 배회하는 소위 '명물'이 있다. 학생들은 그들에 대해 전설을 만들길 좋아한다. 가령 그들이 일류대 철학과를 나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은 후, 그렇게 되었다는 식이다. 수학과 출신이라면 미해결의 문제에 도전했다 실패한 후, 그렇게 되었다고들 한다. 이러한 풍문은 대개 거품일 뿐이며, 이 사회의 낙오자들을 위한 악의없는 미화일 뿐이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프린스턴대학을 배회했던 유령 '존 내쉬'의 전설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그는 근 20년 동안 프린스턴의 명물로 아니 '유령'으로 학교를 맴돌았고, 자연히 수많은 훈장(전설)도 따라 붙게 되었다. 몇몇 학생들은 광인이라 그를 피했지만, 사정을 아는 이들은 되레 그 비난자를 훈계했다. '너는 저 분의 발 뒷꿈치에도 못 미치는 인간이야!'라고.

그랬다. 그는 세기의 위대한 천재중 한 명이었다. 이 천재의 젊은 날의 업적과 수 많은 일화들이 프린스턴과 MIT에서 줄곧 회자되었을 지라도, 두 학교의 울타리를 새나간 적은 없었다. 만약 프린스턴의 유령이 노벨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프린스턴의 유령은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었다. 거기에 그의 노벨상수상도 한 몫했지만, '실비아 네이사'의 감동적인 저작 '뷰티풀 마인드'와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책 '실비아 네이사'의 '뷰티풀 마인드'는 천재에서 프린스턴의 유령으로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왔던 '존 내쉬'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린 아름다운 서사시이다.

젊은 날의 '존 내쉬'는 잘 생긴 거만한 천재였다. 지독한 구두쇠에다 자신의 천재성을 떠벌리길 좋아하며, 준재들을 면박주기 일쑤인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인간말종'이다! 그의 오만과 도를 넘는 처신은 독자들의 혐오감을 유발할 정도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내쉬가 수학을 대하는 방식은 전투나 게임과 유사하다. 그는 미해결의 문제에 도전하길 즐긴다. 그 유명한 '비협력 게임이론'과 '매장정리'의 해결은 내쉬의 천재성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다. 내쉬가 수학을 논하며 다루는 일은 일종의 신선놀음과 유사하다. 하루하루의 삶에 지쳐 허우적거리는 우리네와 달리, 그는 청춘의 모든 것을 수학에 건다. 따라서 내쉬의 현실감각과 인간관계는 몹시 취약하다. 현실감각의 결핍이 어쩌면 그의 정신분열증을 앞당겼을지 모른다.

정신분열증 이후 내쉬는 말 없고 자신감을 상실한 사회의 낙오자로 추락한다. 이제 그의 직업은 '프린스턴의 유령'이다! 그렇지만 미모의 아내 '앨리샤'는 내쉬를 버리지 않고 '하숙시킨다'. 내쉬의 미모와 천재성에 반해 결혼했던 그녀의 앞날도 이젠 빤해 보인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20여 년 동안 유령을 하숙시키지 않았더라면, '실비아 네이사'가 이책 '뷰티풀 마인드'를 헌정한 영예는 다른 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세월이 인간을 성숙의 길로 인도한다'는 말은 내쉬의 경우 확실히 그러하다. 20대 후반 MIT 정교수로 승진했던 시절의 오만방자함은 이제 그에게서 사라졌다. 젊은 시절 무수히 아내를 구박했던 그가 이제는 이렇게 불평한다. '앨리샤가 노벨상 수상자의 견해를 통 무시하지 뭡니까?'

그렇다! 이제 프린스턴의 유령은 아주 평범한 인간이 되었다. 그는 불쌍한 아들 - 내쉬는 아들 조니에게도 정신분열증을 물려 주었다! - 과 구부정한 모습으로 프린스턴을 산책하거나, 잃어버린 세월을 되뇌이며 일과를 보낸다. 그렇다고 그의 냉담한 성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적어도 내쉬는 인간관계를 통해 타인과 어떻게 타협하고 화해해야 하는지 등, 삶의 공식을 터득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수를 다루는데 신이 부럽지 않았던 그였지만, 인간관계의 공식은 그에게 벅찬듯 하다. 비록 평범한 인간이 되었지만, 타인을 배려할 줄 알게 된 그의 '아름다운 정신'은 너무도 숭고하고 고귀한 그 무엇이다.

10여 년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내 남성다움의 신화가 이 번에 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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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딸 데이바 소벨 컬렉션
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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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갈릴레오에게 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갈릴레오가 마음의 안식처이자 유일한 위안을 자신의 딸에게서 찾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의 딸 '마리아 첼레스테'야말로 갈릴레오가 이룩한 과학적 업적의 진정한 원동력이었을지 모른다.

후세인들이 갈릴레오의 업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소지품 중 발신자가 '마리아 첼레스테'로 된 124통의 편지를 발견하였다. 그 순간이야말로 오랜 역사속에서 망각되었던 갈릴레오의 딸이 부활하는 장면이었다. 반평생을 수녀원에서 지낸 마리아 첼레스테와 세기의 위대한 과학자가 10여년 동안 나눈 이 대화들엔 너무도 애틋한 감정이 배어 있다.

이미 <경도>라는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과학분야의 논픽션 작가 '데이바 소벨'이 이 엄청난 사냥감을 놓칠리 없었다. 데이바 소벨은 기존의 과학사가 간과해 온 과학자들의 인간적 체취을 묘사하는데 충실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녀는 갈릴레오의 일생과 과학적 업적 등 전체적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연결하는 고리로서 마리아 첼레스테의 편지를 이용하였다.

이 편지들은 부녀간의 따뜻한 애정을 감동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문학적 완성도도 높아 읽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아닌 '갈릴레오의 딸'로 설정된 것을 보면, 저자가 갈릴레오의 과학적 업적보다 오히려 그의 인간적 면모를 더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데이바 소벨이 <갈릴레오의 딸>로 제목을 정한 또 다른 이유는 갈릴레오의 전기뿐만 아니라, 마리아 첼레스테의 전기까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듯 하다. 10대 초반에 수녀원에 들어가 34세에 절명하기까지 근 20년을 수녀원에서 보낸 마리아 첼레스테는 세속과 차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며 자신을 희생하는데 만족해 했다. 124통의 편지는 그녀가 수도생활을 통해 신앙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더없이 잘 묘사해 준다. 소녀시절의 그녀는 분명 아버지에 모든 것을 의존했지만, 성숙의 과정에서 갈릴레오를 깊은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아마 마리아 첼레스테는 자신이 후세에 이토록 빛을 보리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고난과 궁핍에 둘러싸인 수녀원생활 속에서도 세속의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는 등, 현실감각을 절대 잃지 않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세속세계와 신앙생활의 조화를 통해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만족감을 주었던 것이다.

비록 마리아 첼레스테 자신의 손으로 씌어 졌지만, 진솔한 감정을 여과없이 표현한 이 편지들은 서양 중세인들의 생활상이 어떠했는가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들도 가족간의 따뜻한 유대를 바탕으로 우리네와 별반 다를바 없는 감정으로 삶을 영위했다는 사실은 일종의 문화적 보편성을 설교하는듯 하다. 정말 우리 동양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책이었지만, 그들 부녀의 삶이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는 점에서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첼레스테는 요절했고 갈릴레오는 파문되다시피 연금된채 죽음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회가 갈릴레오를 재평가하고 지동설을 인정하기까지, 그는 무덤속에서 자그마치 350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염려와는 반대로 정작 당사자들인 그들 부녀는 진정한 기쁨을 누렸을지 모른다.

갈릴레오의 사후 100년이 지나 그의 묘를 이관하기 위해 파헤쳤을 때, 사람들은 누군가의 관이 갈릴레오의 것과 합장되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마리아 첼레스테의 관이었다. 어떤 경로로 그들이 함께 묻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 부녀는 한 묘에 묻힘으로써 영원한 안식처를 찾고, 과거의 숱한 고난을 너그러운 미소로 되돌아 보았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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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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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기어와 죠디 포스터가 열연한 영화 '서머스비'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닮은 사람이라지만, 어떻게 이웃과 가족 심지어는 아내까지 속아넘어갈 수 있었을까? 외모가 비슷할 지라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개성차이가 꽤 큰 법인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내 생각에 좀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이래 몇 년이 지난 후 누군가가 '서머스비'의 원작격인 책이 나왔으며, 놀랍게도 그것은 역사서라는 것이었다. 역사서라면 실제 있었던 이야기! 나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16세기의 프랑스 농촌 사람들은 자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무디었을까? 나는 의혹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문제의 책'을 잡았다.

그 책이 바로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었다. 마르탱 게르는 결혼한지 9년이 지난 후 24세의 나이로 가출했다가, 8년 만에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은 그가 살아 돌아왔다며 기뻐했지만, 사실 그는 진짜의 재산을 노린 사기꾼이었다.

저자 데이비스는 사료를 토대로 가족들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근거를 제시한다. 사기꾼이 외모상 진짜와 닮았다는 점, 진짜의 과거사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점, 8년 만에 귀향했기 때문에 그의 성장과정에서 외모상 변화가 있었으리라 추측된 점,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림과 재회의 감정이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켜 그가 진짜임이 확실하다고 그들 스스로를 세뇌시켰던 점 등등이었다.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그럴듯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내 의혹을 풀어준 후에도, 이 책의 놀라운 여정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사기꾼 가짜가 개과천선해 열심히 일하고 좋은 남편이 되어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등, 마치 동화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동화같은 스토리이다! 어떻게 이런 극적인 일들이 현실세계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었을까?

더 극적인 장면은 진짜가 돌아오는 장면이지만, 더이상의 공개는 곤란할듯 하다. 이 이야기가 논픽션으로 출판된 이래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재판에 재판을 거듭했다는 점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사실에 대한 사람들의 경이로움을 짐작케해 준다.

하지만 놀라운 역사적 사실들은 대개 세대를 거치면서 과장되고 윤색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 데이비스는 허구로 오염된 기록물 속에서 과거의 진실을 가려내고자 도전한다. 그녀는 16세기의 프랑스 농촌사회에 다가갈 수 있는 사료를 토대로,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시대상을 완벽히 재현해 낸다. 또한 허구로 오염된 이 놀라운 이야기의 자료들 속에서, 허구를 제거함으로써 점차 진실에 접근한다.

저자 데이비스의 가장 뛰어난 공헌은 사기꾼의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의 기록 - 이 놀라운 이야기의 첫번째 출판물 - 에서, 사실을 곡해한 판사의 의도를 정확히 포착하고, 그가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던 부분을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에 의해 메꾸고 있다는 점이다. 재판과정에서 아내가 사기꾼과 공모한 점, 그들이 처한 위기를 시대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극복하려 한 점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지적 만족과 의혹의 해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큰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그것은 사기꾼의 죄가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지는 부분에서 극에 달한다. 결론만 본다면 희극같지만,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비극이란 점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사기꾼은 이미 마음을 고쳐 잡고, 선량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저자 데이비스는 오히려 그 점을 부각시킬 뿐 아니라, 사기꾼을 위한 변명에 힘쓰고 있다. 500여 년 전의 한 인물이 과거의 오명을 씻고, 역사의 무대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말이다. 독자들은 우리시대의 영웅으로 부활한 500년 전의 한 사기꾼이야기 - 엄청 놀라운 이야기 - 를 엿보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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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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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상 학교에서 공식을 배우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의 단순한 공식에 놀랍고도 드라마틱한 사연이 담겨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마 이 책 'E=mc²'을 읽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가 문제를 풀기 위해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공식도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탄생기 성장기를 거치고, 위대한 천재들의 숨결과 열정을 함축하고 있으며, 역사적 격변과 시련을 견뎌왔다는 것을!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공식은 역사의 시련 속에서 검증을 통과해온 것들이다. 심지어 어떤 공식이 등장할 무렵, 소수의 천재들은 그 공식에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공식이 일종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우리는 그 공식으로 쉽게 문제를 풀 수 있기에, 한편으론 행운아인 셈이다. 그야말로 거인의 무등을 탄 격이다! 우리는 외친다. '어떤 문제든 내게 덤벼 보라'고!

이 책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²'은 수 많은 공식 가운데 20세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E=mc²의 전기이다. 이 공식은 아인쉬타인의 천재적 영감에 의해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에너지(E), 등호(=), 질량(m), 광속(c) 등에 매달려 그 개념을 정립하기에 이른, 수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정열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인쉬타인은 이 분리된 기호(개념)들의 연관성 즉 E=mc²을 밝혀냄으로써, 공식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그는 공식의 창조주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만큼은 조연에 불과하다.

E=mc²이 아인쉬타인에 의해 탄생된 이래, 수 많은 과학자들이 이 공식에 함축된 의미를 밝혀내고자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드디어 E=mc²이 성장기에 들어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 비극인 2차 세계대전이 이 공식에 자양분을 공급하게 된다. 광속도(c)가 엄청나게 큰 수이기에 적은 질량(m)만으로도 막대한 에너지(E)를 얻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원자탄 개발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원자탄 개발을 둘러싸고 벌이는 미국과 독일의 숨막히는 경쟁은 이 책의 압권 중 하나이다.

그러나 보더니스는 원자탄 개발에 앞장선 나찌 수하의 과학자들에 대해 엄정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세기의 천재로 '불확정성 원리'를 밝혀내 노벨상을 수상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그 대표적 인물이고, 핵분열을 발견한 '오토 한'도 마찬가지다. 오토 한이 부각된 이유는 그에게 결정적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리제 마이트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마이트너는 E=mc²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여성과학자임에도,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책의 저자 보더니스에 의해 부활돼 역사의 법정에 섰고, 과거의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게 되었다.

보더니스는 그녀 외에도 역사의 빛을 보지 못했던 위대한 여성 과학자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에밀리 뒤 샤틀레' '리제 마이트너' '세실리아 페인' 등은 그 누구보다 E=mc²의 정립에 기여했지만, 성차별의 역사에 의해 역사속에 매몰돼 있던 인물들이다. 페미니즘적 과학사를 지향하는 보더니스는 그녀들의 구세주인 셈이다!

우리가 이 책의 놀라운 여정을 통해 깨달은 것처럼, E=mc²의 역사는 '지식 확장의 역사'이자 '우주의 시작과 종말의 역사'이다. E=mc²의 탄생과 의미추출 그리고 응용의 역사는 우리의 지적 세계가 확장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 E=mc²이 빅뱅에 의한 우주탄생과 블랙홀의 형성 및 태양의 종말 등 우주의 진화를 예언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세계는 앞으로도 E=mc²의 영역을 벗어나기란 힘들 것이다. 과학과 과학사를 즐기는 사람들, 정말 참신한 시간여행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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