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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제국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 궁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기생충은 온갖 악한 이미지를 뒤집어쓴 존재로 와 닿는다. 사전적 의미로 기생충은 “다른 생명체에 기생해 양분을 섭취하여 살아가는 생물의 총칭”이다. 그런 존재는 인간사회의 특정한 부류를 절묘하게 비유할 수 있는 상징으로서 적격이다. 이를테면 나찌의 시각에서 유대인이 그러했고, 현실 사회주의국가의 시각에서 지주와 자본가 기업주들이 그러한 존재였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채업자들과 유흥업소에서 돈을 뜯는 불량배들을 즐겨 기생충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한 사회 저변의 인식은 기생충에 대한 생물학자들의 시각에서 비롯되었다. 기생충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완벽히 퇴화해 진화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존재”로 바라보았다. 인간의 눈에 그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비열하게 남의 성과를 가로채는 생명체쯤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생태계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고, 생태계의 분업체계로부터 이탈해 그 자양분에 의존하는 “절대 악”으로 인식돼 왔다.
과연 그러한 기존의 시각이 옳았을까? 아니면 기생충으로부터 좀 더 들어볼 어떤 변명거리라도 남았을까? 이 책 ‘칼 짐머’의『기생충 제국』은 바로 후자 편에 서서, 기생충에 대한 인간의 온갖 왜곡된 편견을 바로잡고자, 그들의 모든 비밀을 들춰내고 있다. 칼 짐머는 놀라운 기생충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며,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왜곡되게 기생충을 바라보았는지를 생생히 고발한다.
사실 이 놀라운 기생충의 본질이 드러날 무렵, 할리우드에서는 외계생명체를 다룬 영화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에일리언”과 “히든”이 대표적 작품인데, 여기에서 인간을 무참히 유린하는 외계생명체들은 놀랍도록 완벽한 존재들이다. “에일리언”의 등장인물 ‘애쉬’는 ‘리플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지금껏 무엇과 상대하고 있는지 몰라. 그렇지? 완벽한 생명체야! 그 구조적인 완벽함은 오직 그것이 지닌 적개심만이 견줄 만하지. 나는 그 순수함을 찬양해!” 그 완벽한 외계 생명체는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성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간을 조종하기까지 한다.
사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비관론은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을 통해『코스모스』에서 통렬히 비판되었다. 칼 세이건은 그러한 외계인 상은 인간의 편견이 빚어낸 산물일 뿐이라고 강조하며, 그것을 조장한 매체로 공상과학 소설과 특히 영화를 지목하였다. 한편 20세기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생물학자들은 “에일리언”과 “히든”의 외계 생명체가 일정정도 기생충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음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물가로 유도하는 메디나선충, 게의 번식을 자신의 번식행위로 전환하는 소낭충, 새에게 잡아먹히도록 숙주인 달팽이를 유도하는 흡충, 숙주를 새에게로 옮기고자 물고기를 물 위쪽으로 유도하는 기생충 등은 기생충이 숙주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생충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오류투성이였음을 입증하나, 기생충이 사악한 존재라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칼 짐머는 기생충에 대한 인간의 기존 인식이 왜곡되었다는 점을 넘어, 기생충의 긍정적인 면까지 탐색하기에 이른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항체를 구성하는 “백혈구 보체 대식세포 B세포 T세포” 등은 기생충과의 군비경쟁을 통해, 병원균을 박멸하는 가공할만한 무기로 진화할 수 있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소 같이 생명에 필수적인 요소가 기생 박테리아로부터 기원했으며, 인간과 동물의 성(性) 역시 기생충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진화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더 나아가 최신연구는 인간과 동물이 지닌 두뇌의 발달을 기생충과 연관 짓기에 이르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기생충이 격렬한 진화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숨은 주역의 역할을 맡아 왔음을 간파할 수 있다. 또한 기생충은 절대적으로 악한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실타래를 잣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근래 들어 기생충의 유용성에 대한 다양한 근거들이 보고되고 있다. 기생충이 외부에서 유입된 해충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 약재로 쓰일 수 있다는 점, 생태계의 건강성을 파악하는 지표로서 이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기생충은 숙주와 소모적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온건한 관계를 지향함으로써 양자 간의 건강한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사실 기생충이 소멸해가고 있는 오늘 날, 인간의 면역계는 전혀 해롭지 않은 꽃가루에도 과민하게 반응한다. 재채기와 장염 및 아토피 같은 알레르기 현상이 바로 면역계의 자해행위 즉 기생충의 소멸이 초래한 현상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러한 기생충의 혜안을 배워야 한다. 인간 역시 지구에 기생하는 생명체인 이상, 지구의 생태계와 건강한 공존을 모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칼 짐머는 “기생충 제국”이란 흥미진진한 여정을 통해, 기생충에 대한 인간의 편견을 바로잡아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상을 진화역사의 숨은 주역으로 위치 지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현명한 생활방식을 본받는 길만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는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