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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딸 ㅣ 데이바 소벨 컬렉션
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갈릴레오에게 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갈릴레오가 마음의 안식처이자 유일한 위안을 자신의 딸에게서 찾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의 딸 '마리아 첼레스테'야말로 갈릴레오가 이룩한 과학적 업적의 진정한 원동력이었을지 모른다.
후세인들이 갈릴레오의 업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소지품 중 발신자가 '마리아 첼레스테'로 된 124통의 편지를 발견하였다. 그 순간이야말로 오랜 역사속에서 망각되었던 갈릴레오의 딸이 부활하는 장면이었다. 반평생을 수녀원에서 지낸 마리아 첼레스테와 세기의 위대한 과학자가 10여년 동안 나눈 이 대화들엔 너무도 애틋한 감정이 배어 있다.
이미 <경도>라는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과학분야의 논픽션 작가 '데이바 소벨'이 이 엄청난 사냥감을 놓칠리 없었다. 데이바 소벨은 기존의 과학사가 간과해 온 과학자들의 인간적 체취을 묘사하는데 충실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녀는 갈릴레오의 일생과 과학적 업적 등 전체적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연결하는 고리로서 마리아 첼레스테의 편지를 이용하였다.
이 편지들은 부녀간의 따뜻한 애정을 감동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문학적 완성도도 높아 읽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아닌 '갈릴레오의 딸'로 설정된 것을 보면, 저자가 갈릴레오의 과학적 업적보다 오히려 그의 인간적 면모를 더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데이바 소벨이 <갈릴레오의 딸>로 제목을 정한 또 다른 이유는 갈릴레오의 전기뿐만 아니라, 마리아 첼레스테의 전기까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듯 하다. 10대 초반에 수녀원에 들어가 34세에 절명하기까지 근 20년을 수녀원에서 보낸 마리아 첼레스테는 세속과 차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며 자신을 희생하는데 만족해 했다. 124통의 편지는 그녀가 수도생활을 통해 신앙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더없이 잘 묘사해 준다. 소녀시절의 그녀는 분명 아버지에 모든 것을 의존했지만, 성숙의 과정에서 갈릴레오를 깊은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아마 마리아 첼레스테는 자신이 후세에 이토록 빛을 보리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고난과 궁핍에 둘러싸인 수녀원생활 속에서도 세속의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는 등, 현실감각을 절대 잃지 않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세속세계와 신앙생활의 조화를 통해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만족감을 주었던 것이다.
비록 마리아 첼레스테 자신의 손으로 씌어 졌지만, 진솔한 감정을 여과없이 표현한 이 편지들은 서양 중세인들의 생활상이 어떠했는가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들도 가족간의 따뜻한 유대를 바탕으로 우리네와 별반 다를바 없는 감정으로 삶을 영위했다는 사실은 일종의 문화적 보편성을 설교하는듯 하다. 정말 우리 동양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책이었지만, 그들 부녀의 삶이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는 점에서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첼레스테는 요절했고 갈릴레오는 파문되다시피 연금된채 죽음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회가 갈릴레오를 재평가하고 지동설을 인정하기까지, 그는 무덤속에서 자그마치 350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염려와는 반대로 정작 당사자들인 그들 부녀는 진정한 기쁨을 누렸을지 모른다.
갈릴레오의 사후 100년이 지나 그의 묘를 이관하기 위해 파헤쳤을 때, 사람들은 누군가의 관이 갈릴레오의 것과 합장되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마리아 첼레스테의 관이었다. 어떤 경로로 그들이 함께 묻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 부녀는 한 묘에 묻힘으로써 영원한 안식처를 찾고, 과거의 숱한 고난을 너그러운 미소로 되돌아 보았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