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처드 기어와 죠디 포스터가 열연한 영화 '서머스비'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닮은 사람이라지만, 어떻게 이웃과 가족 심지어는 아내까지 속아넘어갈 수 있었을까? 외모가 비슷할 지라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개성차이가 꽤 큰 법인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내 생각에 좀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이래 몇 년이 지난 후 누군가가 '서머스비'의 원작격인 책이 나왔으며, 놀랍게도 그것은 역사서라는 것이었다. 역사서라면 실제 있었던 이야기! 나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16세기의 프랑스 농촌 사람들은 자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무디었을까? 나는 의혹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문제의 책'을 잡았다.

그 책이 바로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었다. 마르탱 게르는 결혼한지 9년이 지난 후 24세의 나이로 가출했다가, 8년 만에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은 그가 살아 돌아왔다며 기뻐했지만, 사실 그는 진짜의 재산을 노린 사기꾼이었다.

저자 데이비스는 사료를 토대로 가족들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근거를 제시한다. 사기꾼이 외모상 진짜와 닮았다는 점, 진짜의 과거사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점, 8년 만에 귀향했기 때문에 그의 성장과정에서 외모상 변화가 있었으리라 추측된 점,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림과 재회의 감정이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켜 그가 진짜임이 확실하다고 그들 스스로를 세뇌시켰던 점 등등이었다.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그럴듯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내 의혹을 풀어준 후에도, 이 책의 놀라운 여정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사기꾼 가짜가 개과천선해 열심히 일하고 좋은 남편이 되어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등, 마치 동화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동화같은 스토리이다! 어떻게 이런 극적인 일들이 현실세계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었을까?

더 극적인 장면은 진짜가 돌아오는 장면이지만, 더이상의 공개는 곤란할듯 하다. 이 이야기가 논픽션으로 출판된 이래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재판에 재판을 거듭했다는 점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사실에 대한 사람들의 경이로움을 짐작케해 준다.

하지만 놀라운 역사적 사실들은 대개 세대를 거치면서 과장되고 윤색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 데이비스는 허구로 오염된 기록물 속에서 과거의 진실을 가려내고자 도전한다. 그녀는 16세기의 프랑스 농촌사회에 다가갈 수 있는 사료를 토대로,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시대상을 완벽히 재현해 낸다. 또한 허구로 오염된 이 놀라운 이야기의 자료들 속에서, 허구를 제거함으로써 점차 진실에 접근한다.

저자 데이비스의 가장 뛰어난 공헌은 사기꾼의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의 기록 - 이 놀라운 이야기의 첫번째 출판물 - 에서, 사실을 곡해한 판사의 의도를 정확히 포착하고, 그가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던 부분을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에 의해 메꾸고 있다는 점이다. 재판과정에서 아내가 사기꾼과 공모한 점, 그들이 처한 위기를 시대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극복하려 한 점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지적 만족과 의혹의 해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큰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그것은 사기꾼의 죄가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지는 부분에서 극에 달한다. 결론만 본다면 희극같지만,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비극이란 점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사기꾼은 이미 마음을 고쳐 잡고, 선량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저자 데이비스는 오히려 그 점을 부각시킬 뿐 아니라, 사기꾼을 위한 변명에 힘쓰고 있다. 500여 년 전의 한 인물이 과거의 오명을 씻고, 역사의 무대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말이다. 독자들은 우리시대의 영웅으로 부활한 500년 전의 한 사기꾼이야기 - 엄청 놀라운 이야기 - 를 엿보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