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 우리시대의 지성 5-010 (구) 문지 스펙트럼 10
신용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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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일제 강점기를 경과하면서 한국의 근대화가 달성되었다는 발상이다. 과연 이러한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근대화의 개념을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산업화가 그 기본요소 중 하나라는 것만은 확실한듯 하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 대표적 외국학자로 카터 에커트를 들 수 있다. 그는 김성수 일가의 자본축적 과정을 다룬 '제국의 후예'라는 저작을 내었는데,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학교의 안병직 교수가 최초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식민지시기의 침략적 수탈에 의한 악감정 및 여러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병직 교수의 논리는 많은 저항에 직면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신용하 교수의 이 책도 그러한 논리의 비판을 위해 저술된 책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했던 다 수의 논문들은 논리적이라기보다 감정적 비판에 치우친 면이 많이 있었고, 이 책 또한 그러한 경향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발상의 폐해는 무엇보다 일제시기의 경험에 의해 자본축적과 공업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결과론적 측면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취약해 보인다. 과연 현대의 재벌구조라든지 정경유착 등 현대 경제문제의 상당 수 모순이 식민지 근대화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할 듯 하다. 물론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먼저 근대화에 대한 개념규정이 엄밀히 이루어져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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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99인 1 친일파 99인 1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 돌베개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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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들어서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 역사의 정통성 회복과 통일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일세력의 척결일 것이다.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가 나찌즘을 척결하고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한 후, 당당히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들(?)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채, 국가적 역사의식의 실종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단지 추상적 의미에서의 역사관 실종이란 언어도단 정도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친일청산의 실패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가시적 측면에서 수량화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부작용들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재벌구조의 성장과 정치적 부패 및 노동운동 탄압, 반공이데올로기의 양산에 의한 민주화세력 탄압 등 친일세력의 잔재는 무늬만 바꾸어 입었을 뿐, 국가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물론 당시의 친일파 중 생존해있을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사회단체나 정당 혹은 언론기관 등의 기득권 유지 활동을 통해 아직도 사회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다.

해방 후 친일세력은 애국적 민족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들의 공세에 직면해, 반공이데올로기와 친미이데올로기로 외투를 포장하였다. 물론 그 이유는 해방공간의 격앙된 분위기에 직면해 위축되었던 자신들의 입지를 추스르고 기득권을 유지함으로써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다시금 재등장하기 위한 술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차 대전 후 미소의 대결로 인한 냉전구도가 강화되면서,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대결구도 역시 강화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친일세력은 그 기회를 적절히 활용하기 시작했다. 즉 애국세력을 보증하는 증표로서 반공이데올로기를 강조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매국노로 몰아 붙였다. 물론 일제시대 하 항일독립운동에 기여했던 사회주의 세력은 기존 친일세력의 공세 - 미군정과 긴밀히 연계된 - 에 밀려 지하로 잠적하거나 월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기회주의적 수법은 냉전구도아래에서 효과적인 방패막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노선변경과 남북간 화해무드가 일기 시작하면서 진보세력이 많은 공감을 얻게 되자 그들의 입지는 축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친일세력의 명맥을 암암리에 이어온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것은 실종된 한국의 역사관이 제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는 청신호라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여전히 정당이나 언론단체를 통해 그들의 세력유지와 강화를 위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시민의식이 많이 성숙된 이상 그들의 도약은 쉽지 않겠지만, 여전히 정부적 차원의 대응과 성숙한 역사의식의 함양이 절실하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해 친일파의 청산문제가 정말 시급한 문제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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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별빛문고 17
송진석 엮음 / 바른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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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아인슈타인을 꼽는데 주저할 과학자가 과연 존재할까? 아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아인슈타인이라고 주장한들, 그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아인슈타인의 위대성은 기존의 세계관을 혁명적으로 뒤바꾸었다는 점에 있다. 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특수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유도해낸 공식을 살펴보면, 고등교육 과정을 거친 일반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깍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고안해낼 수 있었을까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경우가 말해주듯 역시 뛰어난 천재는 수학적으로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 혹은 암기력이 풍부하다기 보다,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사실들을 창의적으로 고안해내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은 그러한 공식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에 의해, 이해의 기반이 넓어지는 과정에서 인류가 새로운 많은 것을 덤으로 얻게까지 되었다. 원자탄의 원리라든지 우주론 등을 포함한 다양한 물리적 성질들을 그러한 이론틀에 입각하여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미시적인 영역인 양자역학 분야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뉴튼의 고전역학을 포괄하는 혁명적 이론을 고안해냈듯,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결점을 보정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는 아인슈타인의 영예를 쉽사리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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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역사 - 산업신서 2
바레.프랑소아 / 동녘 / 197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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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역사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배계급의 이익을 최대화하고자,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높여간 역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연 노동의 역사에도 진보가 있는가라는 회의가 일기도 한다. 고대의 노예노동에서 부터 중세의 농노 노동, 근대의 산업 프롤레타리아 노동에 이르기까지 고용자의 노동자에 대한 예속-착취관계가 개선된 적이 없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발생하고 산업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형성되면서 놀라운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노동자들 자신의 각성과 연대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급기야 세력화에 성공함으로써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소위 마르크스주의가 그들의 세력화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으며, 실제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하므로써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정치적 역량의 신장은 너무도 점진적인 것이어서 - 때론 너무도 큰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다 - 아직도 노동운동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 노동의 역사는 과연 노동부분에도 진보란게 들어설 틈이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물론 산업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서 있어 적지않은 성공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자와 노동자간의 착취-예속 관계 면에서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과연 노동의 역사에도 진보가 들어설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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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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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은 너무도 평범하며 일상적인 우리의 삶 속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주인공들의 삶이 우리와 유사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우리의 일상 삶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점에서이다. 특히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을 소유한 독자라면, 쥐스킨트의 소설에서 너무도 많은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쥐스킨트와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독자를 연결해주는 매체는 아마도 일상의 소재이지만, 지극히 밝히기를 꺼려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너무도 불결하기도 하며 은밀하기도 한 것이어서, 알면서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금기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도 내성적이어서 은둔벽이 있기까지 한 쥐스킨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감히 자신과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놓는다. 물론 그대로 노출한다면 그리 유쾌하게 느낄 독자는 없겠지만, 그러한 불결하고 금기시되는 그 무엇에 유머와 위트를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점에서 쥐스킨트는 누구보다도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독자를 사로잡는 그만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피아노 교습장면에서 늙은 여선생이 흘린 코딱지 - 정확히 말하면 끈적하고 점성있는 코 덩어리 - 때문에 결국 선생의 지시를 거역하여 무참히 맞는 장면이다. 그의 또다른 역작인 '비둘기'에도 그러한 장면이 - 설사하는 것을 리얼하게 묘사한 - 나온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가 너무도 자주 경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만한 사회생활의 유지를 위해 흔히들 숨기는 것들이다. 하지만 쥐스킨트는 그만의 위트를 이에 연결함으로써,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했던 어느 범부의 고민을 후련하게 해소시키라도 하듯, 우리의 은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너무도 아름답고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소설이었다. 잔잔한 삶의 웃음을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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