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99인 1 친일파 99인 1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 돌베개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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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들어서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 역사의 정통성 회복과 통일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일세력의 척결일 것이다.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가 나찌즘을 척결하고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한 후, 당당히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들(?)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채, 국가적 역사의식의 실종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단지 추상적 의미에서의 역사관 실종이란 언어도단 정도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친일청산의 실패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가시적 측면에서 수량화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부작용들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재벌구조의 성장과 정치적 부패 및 노동운동 탄압, 반공이데올로기의 양산에 의한 민주화세력 탄압 등 친일세력의 잔재는 무늬만 바꾸어 입었을 뿐, 국가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물론 당시의 친일파 중 생존해있을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사회단체나 정당 혹은 언론기관 등의 기득권 유지 활동을 통해 아직도 사회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다.

해방 후 친일세력은 애국적 민족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들의 공세에 직면해, 반공이데올로기와 친미이데올로기로 외투를 포장하였다. 물론 그 이유는 해방공간의 격앙된 분위기에 직면해 위축되었던 자신들의 입지를 추스르고 기득권을 유지함으로써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다시금 재등장하기 위한 술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차 대전 후 미소의 대결로 인한 냉전구도가 강화되면서,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대결구도 역시 강화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친일세력은 그 기회를 적절히 활용하기 시작했다. 즉 애국세력을 보증하는 증표로서 반공이데올로기를 강조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매국노로 몰아 붙였다. 물론 일제시대 하 항일독립운동에 기여했던 사회주의 세력은 기존 친일세력의 공세 - 미군정과 긴밀히 연계된 - 에 밀려 지하로 잠적하거나 월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기회주의적 수법은 냉전구도아래에서 효과적인 방패막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노선변경과 남북간 화해무드가 일기 시작하면서 진보세력이 많은 공감을 얻게 되자 그들의 입지는 축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친일세력의 명맥을 암암리에 이어온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것은 실종된 한국의 역사관이 제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는 청신호라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여전히 정당이나 언론단체를 통해 그들의 세력유지와 강화를 위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시민의식이 많이 성숙된 이상 그들의 도약은 쉽지 않겠지만, 여전히 정부적 차원의 대응과 성숙한 역사의식의 함양이 절실하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해 친일파의 청산문제가 정말 시급한 문제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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