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은 너무도 평범하며 일상적인 우리의 삶 속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주인공들의 삶이 우리와 유사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우리의 일상 삶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점에서이다. 특히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을 소유한 독자라면, 쥐스킨트의 소설에서 너무도 많은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쥐스킨트와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독자를 연결해주는 매체는 아마도 일상의 소재이지만, 지극히 밝히기를 꺼려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너무도 불결하기도 하며 은밀하기도 한 것이어서, 알면서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금기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도 내성적이어서 은둔벽이 있기까지 한 쥐스킨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감히 자신과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놓는다. 물론 그대로 노출한다면 그리 유쾌하게 느낄 독자는 없겠지만, 그러한 불결하고 금기시되는 그 무엇에 유머와 위트를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점에서 쥐스킨트는 누구보다도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독자를 사로잡는 그만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피아노 교습장면에서 늙은 여선생이 흘린 코딱지 - 정확히 말하면 끈적하고 점성있는 코 덩어리 - 때문에 결국 선생의 지시를 거역하여 무참히 맞는 장면이다. 그의 또다른 역작인 '비둘기'에도 그러한 장면이 - 설사하는 것을 리얼하게 묘사한 - 나온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가 너무도 자주 경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만한 사회생활의 유지를 위해 흔히들 숨기는 것들이다. 하지만 쥐스킨트는 그만의 위트를 이에 연결함으로써,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했던 어느 범부의 고민을 후련하게 해소시키라도 하듯, 우리의 은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너무도 아름답고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소설이었다. 잔잔한 삶의 웃음을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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