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가는 길
밥 그린 지음, 강주헌 옮김 / 푸른숲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힘이 들거나 기쁘거나 할 때 함께 하고 싶은 친구가 있을거다. 그 친구와 같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고 즐겁기만 한 친구가 있을거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는 곳이 달라지고, 직장이 달라지면서 예전처럼 매일 같이 할 수 없어도, 만나면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아무런 허물이나 격이 없는 친구가 있을거다. 친구는 또 다른 내 자신인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지금 암으로 얼마남지 않은 삶을 버티고 있다면 과연 그 기분은 어떨까? 이 책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ABCDJ, 엘런, 밥, 척, 댄, 잭, 이들은 둘도 없는 단짝 친구들이었다. 특히 밥과 잭은 그들 중에서도 더 친한 사이였다. 
 

“말하지 않아도 내 뜻을 충분히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방에서든 전화로든 곁에 있기만 해도 내 마음을 알아준다. 내가 좌절과 절망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 때 내 곁을 오래 지켜주는 친구. 가혹한 세상이 내게 안긴 고난을 견딜 수 없을 때, 내게 정말로 소중한 존재는 그런 친구다. 어쩌면 그런 순간에 남는 사람들이 삶이 가진 모든 것일지도, 적어도 잭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본서 제102쪽 참조).”

얼마나 두 사람이 절친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잭이 암선고를 받은 것이다. 둘도 없는 친구를 잃어야 한다는 괴로움과 어떻게든 잭을 살려보려는 친구들. 친구들은 자신들의 직장일도 미뤄두고 잭과 함께 하기 위해 고향으로 모여든다.

다섯 친구들은 같이 모여 함께 한 옛추억을 더듬으며 좋았던 때를 떠올린다. 그렇게 해서라도 잭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잭도 친구들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기억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같이 하기 위해 잭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

“우리는 잭의 거실에 둘러 앉았다. 누구도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시답잖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우리 앞에 놓인 어두운 현실을 잊게 할 웃음이었다(본서 제44쪽 참조).”

그렇다. 친구는 그저 같이 있기만 한 것으로 좋다. 별 내용이 없는 이야기라도 그저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잭은 그런 친구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하지만 잭은 그런 친구들을 두고 영영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만다. 남겨진 친구들과 그 친구들을 남겨두고 가야만 하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 담담하다 못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극적인 반전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조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천천히 주위를 관조하며 지나온 추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친구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빛나는 미사여구나 화려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담담하게 삶을 받아들이는가 하면 때로는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친구와 그 친구를 곁에서 지켜봐주는 또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오히려 보석보다 더 빛난다. 나는 과연 친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지금도 새로운 우정이 싹트는가 하면, 우정이 점점 깊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정해졌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 댓 클래식 - 교양인을 위한 클래식 음악 감상
이동활 지음 / 두리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일단 어렵다는 인상부터 먼저 받게 된다. 긴 연주시간, 알기 힘든 용어들, 방대한 라이브러리, 수많은 연주자와 지휘자 등.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감이 잘 안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고 하다가도 길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요즘처럼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느긋하게 클래식 음악을 듣기도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대중음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물론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으로 음악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음악은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 인간이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듣고 좋으면 그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이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좀 더 재미있고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그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해서 안다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재미있는 문화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클래식 음악도 우리가 길만 제대로 찾아서 들어간다면 그렇게 어려운 음악만은 아니라고 하겠다.

최근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비싼 공연관람료 인해 일반인들이 클래식에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며 공연관람료를 인하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고, 젊은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공연과 함께 음악에 대한 해설까지 곁들이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얼마전 베를린 필과 함께 내한한 사이먼 래틀은 자신들의 리허설을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며 일반인들이 클래식에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중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들은 엄청 많이 나와 있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신들의 편력을 담은 에세이가 많고, 아니면 아예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것들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클래식 음악에 다가갈 수 있도록 쓰여진 책들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서적도 아니어서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재미있게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책이 아닐까 한다.

지은이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이미 여러 권의 클래식 음악 관련 서적을 쓴 이력이 있어서인지 책은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지은이는 교향곡,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으로 구분하여,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들을 중심으로 음악이 작곡된 배경, 작곡자의 생애, 음악의 특성 등을 관련 사진들을 곁들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책 말미에는 부록으로 클래식 악기, 나타냄말, 기악곡의 주요형식, 감상법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는 음악을 이해하는데 지휘자나 연주자의 역량, 곡의 구성, 듣는 이의 감정 상태 등이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음악을 만든 작곡가의 의도를 안다면 음악이 좀 더 재미있고 깊게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그와 같은 부분에 대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에 대한 지은이의 견해가 타당한 것 같다. 보통 일반인들이 클래식 음악의 구성이나 전문적인 용어 등에 대해 좌절을 하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으로의 길을 찾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기 때문이다. 일단 작곡가의 의도를 알고 들어 보아야 하는데 말이다.

클래식 음악을 망라한 것이 아니어서 미흡한 부분이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친숙하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길이 어디라는 것인지에 대한 인도는 받은 것 같다. 책에 실린 클래식 음악을 한 곡 한 곡 들으면서 책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여다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봄에 다가오는 길목에서 재미난 문화여행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임 패러독스 -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미디어윌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누구는 성공을 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가 하면, 누구는 실패와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굴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에 의해 지배당하는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서점가에는 시간관리에 관한 책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 있다.

시간관리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남들보다 더 유용하게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책은 그와 같은 시간관리에 관한 책이 아니다.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기초로 하여 어떻게 하면 충만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지은이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 왔다며 이를 실증적으로 연구하여 시간관과 삶의 연관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지은이는 책을 두 파트로 나누어 제1부에서는 자신들이 30년간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대한 연구 결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연구를 통해ꡐ짐바르도 시간관 검사Zimbardo Time Perspective Inventory(ZTPI)ꡑ와 ꡐ초월적인 미래지향적 시간관 검사Transcendental-future Time Perspective Inventory(TFTPI)ꡑ를 발표하면서,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태도, 즉 시간관이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뉜다는 사실도 발견하여, 이를 ꡐ과거부정적Past-negative 시간관, 과거긍정적Past-positive 시간관, 현재숙명론적Present-fatalistic 시간관, 현재쾌락적Present-hedonistic 시간관, 미래지향적Future 시간관, 초월적인 미래지향적Transcendental-future 시간관ꡑ으로 나누었다.

제2부에서는 ‘가치있는 시간 만들기’라는 제목하에, 제1부에서 각자의 시간관이 어디에 치중되어 있는지를 파악하였다면, 시간관을 확장하는 훈련을 통해 누구나 부정적인 경험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법을 배우고, 현재나 미래 어느 하나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않으면서 각각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활용한다면 건강, 투자, 비즈니스, 정치 등에서 성취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지은이는 연구 과정을 통해 시간관이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데 기본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인간은 특정 시간관을 습득해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향, 즉 미래나 현재, 혹은 과거 어느 한 시간에 특히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시간의 패러독스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어느 한쪽으로 조금씩은 치우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우리가 어떤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나 자신을 알아야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자신들이 ‘시간의 황금률Golden Rule of Time’이라 부르는 법칙으로 “남에게 바라는 방식대로 자신의 시간을 쓰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적당한 미래지향적 성향과 현재쾌락적 성향, 그리고 충분한 과거긍정적 성향이 섞인 시간관이 우리가 제안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간관이라고 한다.

400페이지가 넘는 많은 분량, 각종 도표와 통계 수치, 인용문헌, 그리고 다양한 전문 용어와 난해한 내용들은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완독을 하는데 다소 시간이 들었지만 지은이들이 이 책을 위해 얼마만큼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나 하는 것이 몸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자신들의 일을 이루기 위해 오랜 동안 노력을 아끼지 않은 지은이들의 마음처럼 시간은 나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적 의식만 뚜렷하게 정립이 된다면, 각 시간관을 융통성있게 활용하는 것이 다소나마 수월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인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오래되고 편중된 시간관을 새롭고 균형 잡힌 시간관으로 바꾸는 일이다. 변화는 결코 쉽지 않지만 변화로 얻게 되는 이익은 일시적인 고통을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 균형을 이루면 과거와 현재, 미래에서 자유자재로 최선의 것을 취할 수 있다(본서 제414쪽 참조)”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여태껏 시간을 관리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는데 이 책을 통해 시간에 대한 색다른 접근과 경험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기 독자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벌써 1기 활동이 종료되었네요. 정신없이 읽고 정신없이 리뷰 올렸는데 1권이 아직 남았네요^^ '타임 패러독스'는 읽기는 다 읽었는데 아직 리뷰를 못올렸네요. 이번 주에 올리도록 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성실히 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담당자분들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배홍진 저/멘토프레스/2008.5.)
가해자는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 분 한 분씩 돌아가시고 우리 국민들도 3.1절이 아니면 그다지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저 답답하다. 


·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1994년 12월 마지막 밤 송년회 자리에서 강덕경 할머니가 불렀던 노래가 인상깊게 남아있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담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더냐
사랑도 가고 또 너도 가고 나만 홀로 외로이
그때 그 시절 못 잊어 내가 운다
못 잊어 내가 운다(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 중 제203쪽 참조)“ 


·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
2. 탐욕의 시대
3.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4.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5. 아버지의 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탐욕의 시대]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 MBC ‘뉴스후’에서 아이티 난민촌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이 진흙으로 만든 ‘진흙쿠키’라는 것을 먹고 있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 나라의 잘 사는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없다며, 진흙을 먹는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빈부격차는 한 나라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빈부격차는 해년마다 벌어지고 있다. 솔직히 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브라질 북부 판자촌에 사는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본서 제10쪽 참조)

부모가 자식을 먹이지 못할 때 느끼는 그 감정은 부모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이는 불안과 굴육감을 가져오게 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런 일이 지금도 지구 저편에서 상시적으로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지은이는 이런 현상을 마치 봉건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봉건제후들이란 다름아닌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500대 거대 민간 다국적 기업들이 2006년 현재 전 세계 총 생산량의 52퍼센트를 차지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된 부의 절반 이상을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 펜실베이니아 주를 강타한 테러행위를 통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재봉건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저지해야할 국제법은 오히려 실효성이 없고, 세계인권을 주도할 유엔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은이는 2000년부터 2008년 4월까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으며, 2008년 5월부터는 유엔인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진실을 우리에게 들려 주고 있다. 지은이는 각종 다양한 데이터와 자료들을 통해 단순히 감정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실증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지은이의 글쓰기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강한 설득력을 가지게 한다.

이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통해 기아의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 지은이는 이 책(원제는 L'empire De La Honte로 ‘수치의 제국’으로 번역된다고 한다)에서는 기아라는 현상의 역사적인 배경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1장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한 과격파들의 주장, 몇몇 거대 다국적 자본주의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의 봉건화 추세, 이들에 의해 구조화되고 있는 조직적인 폭력체제와 대항세력들을 설명하고, 2장에서는 가장 약한 자들을 대량으로 파괴시키는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인 부채와 기아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3, 4장에서는 만성적인 기아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을 재정비하고 혁명을 준비하는 에티오피아와 브라질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투쟁 방식과 저항 방식을 소개하고 있으며, 5장에서는 막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봉건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서구에서 발달한 경제이론들은 본래 선한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의식을 흐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움직일 수 없는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우리가 서로 연대하여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이론들을 혁파해야 한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자본의 흐름을 지배하는 ‘자연적인 법칙’이라는 이론을 고안해내기까지 한 것이다(본서 제15, 101쪽 참조).

지은이는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시 혁명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투쟁의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투쟁의 결과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다. 일찍이 파블로 네루다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본서 제344쪽 참조)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전적으로 맞다고 볼 수는 없다. 거대 다국적 기업도 문제지만, 기아의 다양한 원인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구조가 아닐까. 개발도상국들이 부담하는 엄청난 부채는 자국의 주민들에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패한 정부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런 부분도 거대 다국적 기업에 의해 조장되는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단순한 물자를 원조하기 보다는 사회적인 구조개혁이 따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변화가 아닐까. 언제나처럼 이런 일을 접하면 흥분하다가 지나고 나면 또 일상적인 생활로 되돌아가고 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다음에는 이 세계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은이의 이야기는 충분히 경청할 만한 내용들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칸트의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는다.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칸트는 1798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그 같은 현상은 세계 역사 가운데에서 절대 망각될 수 없다. 이제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 즉 인간의 본성 속에 이미 도덕적인 진보의 가능성이 배태되어 있음을 발견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비록 추구한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으나[……]처음으로 자유를 추구했다는 사실이 지니는 가치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다른 민족들이 다른 상황에서라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음을 망각하거나, 다시금 이와 같은 일을 시작하고 싶은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억누르기엔 너무도 엄청나고 인류의 복지와 너무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세계 모든 분야에 너무도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본서 제326,327쪽 참조)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기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2. 식량전쟁/라즈 파텔
3.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다나카 유,가시다 히데키,마에키타미야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지구상 모든 인류들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투쟁의 결과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다. 일찍이 파블로 네루다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34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