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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가는 길
밥 그린 지음, 강주헌 옮김 / 푸른숲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힘이 들거나 기쁘거나 할 때 함께 하고 싶은 친구가 있을거다. 그 친구와 같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고 즐겁기만 한 친구가 있을거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는 곳이 달라지고, 직장이 달라지면서 예전처럼 매일 같이 할 수 없어도, 만나면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아무런 허물이나 격이 없는 친구가 있을거다. 친구는 또 다른 내 자신인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지금 암으로 얼마남지 않은 삶을 버티고 있다면 과연 그 기분은 어떨까? 이 책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ABCDJ, 엘런, 밥, 척, 댄, 잭, 이들은 둘도 없는 단짝 친구들이었다. 특히 밥과 잭은 그들 중에서도 더 친한 사이였다.
“말하지 않아도 내 뜻을 충분히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방에서든 전화로든 곁에 있기만 해도 내 마음을 알아준다. 내가 좌절과 절망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 때 내 곁을 오래 지켜주는 친구. 가혹한 세상이 내게 안긴 고난을 견딜 수 없을 때, 내게 정말로 소중한 존재는 그런 친구다. 어쩌면 그런 순간에 남는 사람들이 삶이 가진 모든 것일지도, 적어도 잭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본서 제102쪽 참조).”
얼마나 두 사람이 절친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잭이 암선고를 받은 것이다. 둘도 없는 친구를 잃어야 한다는 괴로움과 어떻게든 잭을 살려보려는 친구들. 친구들은 자신들의 직장일도 미뤄두고 잭과 함께 하기 위해 고향으로 모여든다.
다섯 친구들은 같이 모여 함께 한 옛추억을 더듬으며 좋았던 때를 떠올린다. 그렇게 해서라도 잭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잭도 친구들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기억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같이 하기 위해 잭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
“우리는 잭의 거실에 둘러 앉았다. 누구도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시답잖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우리 앞에 놓인 어두운 현실을 잊게 할 웃음이었다(본서 제44쪽 참조).”
그렇다. 친구는 그저 같이 있기만 한 것으로 좋다. 별 내용이 없는 이야기라도 그저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잭은 그런 친구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하지만 잭은 그런 친구들을 두고 영영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만다. 남겨진 친구들과 그 친구들을 남겨두고 가야만 하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 담담하다 못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극적인 반전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조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천천히 주위를 관조하며 지나온 추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친구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빛나는 미사여구나 화려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담담하게 삶을 받아들이는가 하면 때로는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친구와 그 친구를 곁에서 지켜봐주는 또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오히려 보석보다 더 빛난다. 나는 과연 친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지금도 새로운 우정이 싹트는가 하면, 우정이 점점 깊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정해졌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