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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O.S.T.
한석규 노래, 조성우 작곡 / 이엔이미디어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죽음을 눈앞에 둔 주인공에게 갑작스레 ?아든 사랑,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안타까움, 억지 눈물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따스한 가슴으로 울음을 삭이게 한 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들의 일상을 반추하는 듯한 영화의 스토리 전개와 한석규와 심은하의 절제된 연기,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 그리고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우리곁을 떠나간 유영길 촬영감독의 촬영이 빚어낸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한 숨은 공신을 한 사람 더 들어야 한다면 단연코 영화음악을 맡은 조성우 영화음악 작곡가일 것이다. 그의 음악은 영화의 장면 장면에 스며들어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우리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1번째 트랙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극중 정원으로 분한 한석규가 직접 불러주고 있는데, 그는 이미 1984년 강변 가요제에서 남성 중창단인 '덧마루'의 일원으로 참가해 '길 잃은 친구'라는 노래를 불려 장려상까지 받았던 재능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부담없는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의 맑고 영롱한 사운드와 바순의 고즈넉함은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고 있다. 이 곡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기 위해 사진관을 찾은 다림이 정원의 죽음은 전혀 모른 채, 사진관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고 빙그레 미소짓는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엔딩 타이틀로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 곡은 마지막 트랙에서 Sam Lee가 어쿠스틱 기타 솔로로 다시 한번 더 그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2번째 트랙의 '창문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는 버스에서 정원이 차장 밖을 바라보던 장면에 흐르던 곡인데, 산울림의 원곡을 그룹 일기예보의 멤버인 정구련이 보사노바 풍으로 매력적으로 리메이크하고 있다. 이 곡은 12번째 트랙에서는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3번째 트랙에서 드디어 이 사운드트랙의 음악감독을 맡은 조성우가 작곡한 '사진처럼'에서가 처음으로 들려지는데, 풍부한 현악파트의 사용과 피아노 그리고 이 사운드트랙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더 없이 훌륭한 공을 세웠다고 할만한 목관악기 파트의 협음은 아주 인상적인 사운드를 선사하고 있다. 피아노 건반이 툭툭 터치될때마다 주인공의 눈물이 뭍어 나올 것만 같은 묘한 매력을 가진 곡이다. 이 메인 테마는 영화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데 9번째 트랙에서는 가사를 붙여서 유정환이 불러주고 있는데 연주곡과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4번째 트랙의 다림의 테마인 '아이처럼 고운'과 7번째 트랙의 Happy Christmas<캐롤송>은 그룹 일기예보가 불러주고 있는데,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감미로움이 느껴지는 곡들로 이병훈의 신디사이저 연주는 일기예보의 보컬과 더불어 노래를 아주 산뜻하고 깔끔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아이처럼 고운' 이라는 다림의 테마는 주인공인 청순한 다림의 이미지를 잘 담아내는 곡같다.
5번째 트랙의 'LOVE Theme'은 사랑의 테마답게 현악기과 피아노, 클라리넷과 오보에를 통하여 아련한 옛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현악파트를 조금 줄였더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본다. 현악기의 음색이 가지는 애절함은 목관악기에 비해 전체적으로 따스함보다는 비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강하기 와닿았기 때문이다.
6번째 트랙의 '다림의 Waltz'는 이 음반중에서 가장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곡이다. 바순의 묵직하고 무거운 음색은 육중한 꼬끼리가 노래에 ?上?가볍게 춤을 추는 것 같은 곡이다. 오보에의 주음색은 이 부분에서도 경쾌하게 쓰인다. 전체적으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나 포레의 '파반느'를 연상시킨다. 아마 관현악곡이 가지는 유사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처럼 이 사운드트랙에서는 클래식적인 분위기가 곳곳에 뭍어나오는 데 이는 조성우 감독의 작품경향이기도 하다.
8번째 트랙의 정원의 테마인 '사진속의 기억들'은 데이빗 란즈의 Christmas's Dream'과 많이 닮아 있는 듯 한데, 나지막하니 시작되는 피아노 연주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클라리넷과 오보에 등의 목관악기 연주는 뉴 에이지 음악들이 추구하는 어쿠스틱 악기를 통한 자연적인 사운드의 지향이라는 점에서 서로 닿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번째 트랙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처음으로 한석규의 나레이션이 등장하는 데, 성우출신 답게 극 분위기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맑고 영롱한 기타소리와 어울려 정원과 다림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의 따사로운 한때를 보내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11번째 트랙의 '첫만남'은 넘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는 정원과 다림의 애뜻하면서도 설레이는 감정의 선(線)을 피아노로 아주 담담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13번째 트랙의 '아버지'는 원래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풍의 바흐'라는 곡이다. 홀로 남겨질 아버지를 바라보던 정원의 그림자 뒤로 흐르던 곡이었는데, 아버지를 두고 먼저 가야하는 정원의 내면심리를 묘사하는데 더없이 훌륭한 곡으로 음악감독인 조성우의 탁월한 선곡과 편곡이 돋보였다.
14번째 트랙의 '파출소에서'는 메인 타이틀이 다시 한번 변주되는데, 조용하게 흐르는 기타 사운드 뒤로 정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이 곡에서도 현악파트의 오케스트라가 곡을 잘 마무리하고 있는데 정치용의 지휘는 이 사운드트랙에서 곡 분위기를 잡는데 큰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15번째 트랙의 '로울러 코스터'는 보사노바 풍의 곡으로 재즈적인 냄새가 아주 강하게 베어나오는 곡으로 이 음반에서 가장 신나고 경쾌한 곡 중의 하나로 정원과 다림의 신나는 하루를 묘사하고 있다.
16번째 트랙의 '밤길<마지막 만남>은 메인 타이틀이 오보에와 첼로의 연주로 변주되는데 곡의 제목에서 주는 이미지가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쓸쓸하게 와닿는다.
17번째 트랙의 '문 닫힌 사진관'은 사진관의 주인인 정원이 떠난 문 닫힌 사진관과 이를 바라보는 다림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득 나즈막한 기타의 선율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것만 같다.
18번째 트랙의 '초원사진관'은 영화의 주무대가 된 사진관의 상호로 정원과 다림이 사랑을 키워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곡에서는 메인테마가 변주되고 있는데, 오보에가 가지는 목관악기의 따스함과 현악기의 애잔함이 잘 표현되어 있어 있다.
이처럼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곡들은 정원과 다림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따라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조성우라는 영와음악가의 재능에 감탄을 하게 한다. 기존의 영화음악가들이 보여주지 못한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는 그만의 노하우(Know-How)는 허진호 감독의 데뷔영화를 더없이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다. '뜨거운 8월의 여름 한낮에 날아든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영화'라는 문구처럼, 예상하지 못한 영화음악가의 사운드는 영화와 함께 오래도록 우리들의 귓가를 맴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