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비정전 + 열혈남아 합본 패키지 [개별 슬림 디지팩 2disc]
왕가위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80년대와 90년대 홍콩 갱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열혈팬들을 몰고 다닌 적이 있었다. 홍콩반환과 맞물려 시대적으로 암울한 상황에서 피로 얼룩지고 우정과 의리를 부르짖는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가져다 주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삼합회의 검은 돈이 영화 자본으로 유입되면서 갱영화들이 많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당시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등의 내노라하는 배우들이 갱영화의 붐을 타고 홍콩 영화의 선두에 나서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러한 당시의 시대적 조류와 달리 총격씬은 거의 없고 나른하게 번져오는 허무주의적인 영상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온 감독이 있었다. 다름아닌 왕가위였다.
그의 장편 데뷔영화인 열혈남아가 극장에서 상영되었을때 관객들로부터 "이게 무슨 갱영화냐"라며 심한 항의를 받았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그렇다. 그의 영화는 기존의 홍콩 갱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갱영와이면서도 도무지 갱영화같지 않은 영화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왕가위의 스타일은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왕가위의 '열혈남아'를 보고는 한마디로 '뻑'가버렸다. 당시는 지금처럼 디비디나 비디오테이프를 따로 판매하지 않았던 때라 소장하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때였다.
어쩔 수 없이 비디오테이프 가게를 돌아다니며 주인 아저씨에게 웃돈을 얹어주고 구입하여, 밤새도록 보았던 영화들이었다. 그만큼 추억이 남다른 영화였는데 이렇게 디비디로 접하게 되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영화 '열혈남아'의 푸른 형광톤을 배경으로 한 포장마차씬이나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의 유덕화와 장만옥의 키스씬, 'Z고 마지막 장면의 총격전 씬에서 보여준 슬로우 모션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차용되고 이는 이후 왕가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스텝프린팅 기법의 원조가 되었다.
영화 "아비정전"에서는 '열혈남아"에서와 같은 형식적인 면보다는 영화의 대사자체가 한편의 시와도 같았다.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그는 1분을 가리키면서 영원히 날 기억할 거라고 했어요. 그 말에 맘이 끌렸어요.", "세상에는 발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속에서 귄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 낮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라는 대사는 많은 이들의 입에서 회자 되었고, 또한, 장국영이 혼자 춤을 출때 흘러 나오던 Los Indios Tabajaras의 Maria Elena는 당시 많은 광고음악의 배경으로 쓰일 정도였다.
그는 이후로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 춘광사설 등에서도 감각적인 영상과 탁월한 음악의 선곡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며 많은 열혈팬들을 몰고 다녔으며,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예전에 중소업체에서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의 타이틀이 출시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알토에서 제대로 된 타이틀이 나왔다. 화질과 사운드가 대폭 개선되어 감상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서플로 왕가위나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 등의 코멘터리가 들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혈남아의 엔딩이 홍콩판이어서 우리가 비디오테이프로 본 대만판의 엔딩과는 다르다는 점이 나를 아주 아쉽게 했다.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보았던 마지막 장면이 내가 보았던 것과 다르다니. 왕가위는 자신이 의도한 것은 홍콩판이라고 한다. 다만 유덕화와 장만옥의 키스씬에서 흘러나오던 왕걸의 노래를 들어서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추억이 어린 영화이니만큼 많은 기대를 한 타이틀이었는데, 생각과 달리 서플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아 조금은 실망이다. 헐리웃 영화와 달리 홍콩 영화에는 제대로 된 서플을 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아마도 제작여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정도로 선명한 화질과 사운드로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왕가위의 영화 전편이 수록된 패키지가 출시될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