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TV를 여기저기 돌리다가 박동규 교수님이 나온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땐가..박목월 시인의 아들 교수가 하는 수업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게다가 A 폭격기라는 금상첨화의 소식까지! ^^)
부랴부랴 교양 수업으로 박동규 교수님의 문학개론을 신청했습니다.

첫시간에 갔더니 3학점임에도 불구하고 2시간만 수업을 한다는 낭보(?)와
시험문제를 다 가르쳐줄테니 시험 걱정은 하지 말라는 복음같은 말씀!
오오오오 역시 탁월한 선택!을 외치며 기뻐했었지요. ^^;;;

그러나 교수님의 수업은 단순한 A 폭격기가 아닌 '뭔가'가 있는 수업이었어요.
수업시간에 들어오시면 칠판에 '가을' 한마디를 써놓고 2시간 내내 가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필기를 할 필요도 없었고 (시험 문제 가르쳐 주신다니;;;), 텍스트를 읽어올 필요도 없었고
과제같은건 더더욱 없었을 뿐더러 (중간고사를 대신하는 리포트가 하나 있었던 것도 같고.. 가물가물,..)
그냥 두시간 내내 턱 괴고 앉아서 아름다운 문학 작품들을 넘나드는 편안한 강의를 듣기만하면 되었죠.
그래도 머리에 뭔가 쏙쏙 들어오는 것 같고 왠지 나도 시를 써야할 것만 같고;;;
책 한권 들고 학교 잔디밭에 앉아서 분위기잡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_-;;;

결국 약속대로 시험문제도 다 가르쳐주시고 학점도 잘 주셨던 천사같은 교수님!
뭐 좋지 않게 얘기하는 학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유익한 수업이었어요.
실험과 퀴즈와 리포트에 찌든 이과생에게는 좋은 기분전환이 되어주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오늘 TV에서 정말 오랜만에 교수님을 뵈었더니
아니 왜 이렇게 나이가 드신 것입니까.
여전히 또랑또랑하게 말씀은 하시지만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세시고 얼굴도 많이 늙으셨네요.

그걸 보고 놀라서 '어어어어! 저 교수님 왜 저렇게 나이드셨어!!
저 교수님 수업 들었을 땐 저렇지 않았는데!!!' 하는 제 옆에서 엄마가 비수를 꽂으십니다.

'너 나이든 건 생각 안하냐?' (쿵)

그렇죠..대학 2년때면 그게 벌써 몇년전입니까...ㅠ_ㅠ
그래도 그렇지..엄마. 같이 나이들어가는 처지에 이럴 수 있어...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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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3-0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동규 교수님 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그 문학개론 수업, 부럽습니다.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 쌍꺼풀진 맑은 눈, 은발에 가까운 머리칼, 무엇보다 따스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들을 한 가슴 안고 계시는 그 분!

Kitty 2006-03-0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저도 너무 좋은 수업이었어요!
그 수업을 듣고 시인들은 저같은 범인과는 다른 인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
같은 사물을 봐도 생각하는게 어찌 그리 차이가 나는지...
두시간 내내 감탄~ 몽롱~ 하다가 나오곤 했답니다. ^^

아영엄마 2006-03-0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원래 본인 나이드는 건 잘 모르죠. 옛날에 본(직접이든 tv든..) 사람 세월지나고 다시 보면서 아니 저렇게 늙었다니!! 하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깨닿습니다. 에공~ ^^;

balmas 2006-03-07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흑 ...
(너 왜 우냐??)




'너 나이든 건 생각 안하냐?'

panda78 2006-03-07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신청했다가 교실이 멀어서 다운(수강신청취소)시켰는데.. ^^a
지금 생각하니 쪼꼼 아깝군요. 험험..

Kitty 2006-03-07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그러게요...전 철이 안들어서 더욱 그런듯 ^^;;;;
어제 TV를 보고 아주 놀랐습니다그려..^^;;;

발마스님/ 우리 같이 화이팅해요!! ^^;;

판다님/ 앗 그러셨구나. 전 꽤 좋았는데...
학점도 받기 쉬워서 더 좋았는지도...=3=3=3

마태우스 2006-03-0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동규 교수님이란 분, 전 몰랐어요. 물론 부끄럽죠. 하지만 님의 페이퍼를 계기로 알아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호홋.

Kitty 2006-03-07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마태님 무슨 말씀을~
사실 저도 교양수업 한번 들은 것 밖에 없는걸요.
학부때는 제가 참 문학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던 관계로
오아시스같은 감동적인 수업이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