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깨기 - <다 빈치 코드>의 절묘한 속임수를 철저히 해부한다
어윈 루처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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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언컨데 댄 브라운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글을 쓴 것은 분명 아니다. 그가 그의 작품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은 기독교 역사 만큼 이나 오래 전부터 떠돌던 이야기들이다. 그는 단지 이야기들을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게 각색하여 돈과 명예를 얻었을 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댄 브라운의 이야기들이 거의 허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 깨기'는 그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친다. 

콘스탄틴 대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날조했는가? 그가 소집한 니케아 종교회의는 어떤 책들이 신약의 정경으로 채택되어야 할지 결정했는가?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봐도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 약 250년 동안에 거의 모든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신약시대의 역사를 말해주는 신빙성있는 문서인가? 영지주의를 공부해보면 영지주의가 '혼합주의'인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로마 제국 안에는 동방의 밀교들과 페르시아의 종교, 유대교와 기독교 등 수없는 종교들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영지주의자들은 이 모든 종교를 혼합하여 자신들만의 종교를 만들어내었다. 그래서 영지주의 안에서도 수많은 교리와 주장이 난무했다. 그리고 그 주장과 교리의 대부분은 일관성이 없는  터무니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주장이나 교리가 옳았다면 왜 그 이후의 시대로이어지지 않고 사멸되어 버렸겠는가? 이미 한 시대의 유행으로 폐기처분된 이야기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그것이 숨겨진 진실인양 말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어떤 책들이 신약의 정경으로 채택되어야 하는지 결정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결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1세기에 이미 정경은 확정되어 있었다. 사도성과 교리적 통일성이 없는 책들은 이미 교회로부터 배척받고 있었고, 교회는 사도들의 정경을 통하여 예배와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댄 브라운은 니케아 회의 이전에는 정경이 없었는데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정경이 확정된 것처럼 말한다. 그럼 니케아 회의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말인가? 그 전에 확정된 정경을 가지고 설교하고 연구했던 모든 교부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이 말을 증명하려면 이 사실을 다루고 있는 문서를 제시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상상력이고 허구이다. 물론 예수는 당시의 통념을 깨트리고 여성들을 자신의 사역에 참여 시켰으며, 만나고 이야기하고 고쳐주고 사랑하셨다. 복음은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미 남녀의 차별을 무너뜨리셨던 것이다.

그 외에도 시온수도회와 오푸스데이의 존재와 활동 여부도 대부분은 허구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마치 소설이 진실인양 행세할 때 작가는 이야기생산자에서 거짓말장이로 전락한다. 댄 브라운이 정말 '소설가다운 소설가'였다면 그의 서문에서 "이 모든 이야기는 흥미를 위해 떠돌던 이야기들을 각색한 것 뿐입니다"라고 밝혔어야 했다.

독자들은 어느정도의 허구와 상상력을 인정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 독서수준을 격하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이 기독교에 관한 모든 진실인양 핏대를 높이기도 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더 깊이 공부를 해보십시오'라고 말이다.

 이 책이 지면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것은 나로서도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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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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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호흡을 멈추고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고대사에 관한 기초지식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책을 읽고 정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상당부분이 허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영화를 즐기듯이 흥미있게 읽었다. 그래서일까? 숨도 안 쉬고 책을 다 읽어버렸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뭔가 찜찜하다. 이 책이 그토록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는 사실도 화가난다. 더군다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에 감춰진 충격적인 비밀을 파헤치는 장편소설'이라던가 '2천 년간 숨죽여온 진실이 마침내 베일을 벗는다'는 겉표지의 카피도 여간 눈에 거술리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교사 출신 작가가 가설을 방증하기 위해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한 풍부한 종교사와 천문학 지식, 이집트 상형문자와 라틴어 등 시공을 넘어 종횡무진 풀어내는 언어학과 기호학 강의 암호와 고등수학 풀이가 재미나 상식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중앙일보의 호들갑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일반독자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더 심각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그냥 재미있는 소설읽기 정도로 간과할 일은 아니다.

댄 브라운은 매우 비겁한 작가이다. 그의 종교사 실력은 터무니 없는 상상력에 근거하고 있다. 상상을 상상이라고 밝히는 것이 솔직한 작가의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작품 밖에서까지 자신의 주장이 마치 진실인양 부풀리고 있다. 그는 작가정신이 결여된 수준이하의 작가이다. 분명  그는 작가일뿐 학자는 아니다. 최소한 그는 그의 이야기의 소재가 새로운 무엇인양 떠들 자격이 없다. 지금까지 전해져왔던 '수많은 떠돌던 이론'들을 그저 현재인들의 구미에 맞게 각색한 것에 지나지 않는 작품을 가지고, 자신이 뭔가 이루어낸 것처럼 우쭐댈 자격이 없다. 그는 떠돌던 이야기들을 특유의 '미국적 상업성'에 편승시켜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쟁취해낸 상업성의 노예일 뿐이다.

그는 평범한 이야기꾼에 불과하다.  즉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할 기발한 소재를 발견해 미국식 과장으로 풀어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일 뿐인 것이다. 소설은 소설에 멈추어야 하지만, 그의 작품이 끼치는 악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그것이 이 책을 읽은 후 가지게 되는 분노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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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선생은 한 평론에서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앎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아름다움이란 아는 대상 다웁다"라고 재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아는 대상이 아는 대상 다울때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이를테면 부모가 부모답고, 선생이 선생답고, 아이가 아이답고, 우리로 얘기하면 크리스챤이 크리스챤다울 때 그 대상에게 아름답다라는 말을 쓸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세상은 얼마나아름답지 못한가요?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전혀 "다웁지"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 척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좋은 부모인척, 좋은 선생인 척, 좋은 크리스챤인척....... 그리하여 베게트의 표현을 빌자면 " 사람은 줄만 잡아 당기면 쓸려나갈 수세식 변기 위의 똥덩어리 같은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슬픈 일이지요.

     나는 김현 선생의 글을 읽기 전에 일찍이 성경을 읽으면서 "다움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답게 언제나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인내와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고 성령으로 연합하여 사이 좋게 지내도록 노력하십시오. 엡4:1-3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그 분을 본받으십시오. 엡5:1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믿는 사람답게 생활하십시오. 빌1:27

   위의 말씀들을 볼 때 아름다운 삶은 그다지 멀리 있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내가 크리스챤답게 살아가려 노력할 때 나를 보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지요. 물론 쉬운 일만은 아닐 터이나, 완전성이 아니라 지향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크리스챤으로 완전하게 살 수는 없지만 크리스챤다운 삶은 늘 지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병상에 누워 깊이 깊이 다짐하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크리스챤다워져야 하겠습니다. 크리스챤이 크리스챤답지 못하면 이 세상은 희망이 끊어져 버리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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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사는 남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 중의 하나는 설겆이일 것입니다. 어찌나 귀찮고 하기 싫은지, 밥 먹기 전에 설겆이 걱정부터 할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설겆이 거리가 며칠씩 밀리기 마련인데, 시간이 지나면 그 역한 냄새 때문에 비로소 설겆이를 하게 됩니다.

  오늘도 역시 비통한 심정으로 언제부터 쌓여 있었는지 이끼(?)까지 끼어버린 밀린 설겆이 거리를 냄새에 못 이겨 닦기 시작했습니다. 세제를 수세미에 얹고 더러워진 그릇을 손에 들고 박박 문지르니 거품이 일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세제 묻힌 수세미로 박박 잘 닦은 그릇들을 한 쪽에 고이 모아 두었다가 흐르는 물로 거품을 제거하고 깨긋이 헹구어냅니다. 이쯤되면 마음에 편안함이 몰려옵니다. " 이제 며칠 동안은 별 탈 없이 먹고 살 수 있겠구나."

   그런데 설겆이를 마치고 깨끗이 씻어낸 그릇에 음식을 담다가, 문득 엊저녁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나도 거품이 다 빠지면 하나님이 사용하실거야. 네가 35년 동안 쌓아왔던 거 다 제거되니까 하나님이 새 것들로 채워주시잖아. 난 좀 더 남았나봐."

   어쩌면 밀려서 이끼마저 끼고 냄새 고약한 설겆이 거리는 내가 내 멋대로 살아온 삶의 결과물들과 그리 똑같을까요? 그 동안 내 인생의 그릇에 내가 담아왔던 온갖 더러운 것들로 인해 내 삶은 얼마나 왜곡되고 그릇된 길로 치달았던가요? 그리하여 하나님은 설겆이 작업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세제를 수세미에 얹고 내 삶을 손에 쥐고 하나님은 거품을 일으키며 나를 깨끗이 닦아 주신 것입니다. 이제 거품을 제거하고 깨끗이 헹구어내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의 깨끗함을 담을 수 있겠지요. 이제 막바지 작업인 듯 합니다. 다 무너지고 건강밖에 안 남았는데, 건강마저 무너졌으니 남은게 없습니다.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것은 이제 다 닦여 나갔습니다. 마지막 거품만 제거되면 하나님의 그릇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담을 수 있겠지요.

   꼬박 한 달을 앓았습니다. 원망과 자괴감의 시간들을 견뎌내고, 비로소 하나님을 보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사랑과 놀라운 계획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사람을 저 세상에 보내기도 하시고 다시 돌아오게도 하신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삼상2:6-7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을 다 알고 계신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처럼 깨끗할 것."  욥 23:10

   낡은 건물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멋진 새 건물을 지을 수 있듯이, 하나님은 그 동안 내가 쌓아온  삶의 모든 이력과 공적들을 완전히 무너뜨리시고, 신축공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세우는 일 없이 무너뜨리지 아니하신다"라는 신념으로 박해를 이겨내곤 했던 재세례파 교도들처럼, 믿음으로 무너지는 과정들을 잘 견디면 하나님이 훨씬 더 아름답게 내 인생을 세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고통의 시간들을 순리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겸손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그릇이 될 것이라고 희망해 봅니다
구원-강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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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병문안차 찾아온 목사 친구와 모처럼 새벽까지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가진 게 많고 재주가 많으면 예수 믿기가 힘들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유독 이 말이 지금까지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아침 내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내 친구는 참 빼어난 사람입니다. 잘 생긴 얼굴에 큰 키로 학창 시절부터 뭇 여성 들을 매료시켰을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못 하는 운동이 없고, 아이 큐가 150이나 되는 천재에다 좋은 성격에 유머감각까지 갖춰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잘 따릅니다. 이 친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나는 늘 이 친구를 부러워하고 동경했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통상적으로 못생기고, 가난하고, 재주 없는 사람들이 예수 잘 믿을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못나고 재주 없는 사람은 이미 예수 잘 믿을 환경을 갖추고 있는거야. 반대로 재주 많고 돈 많고 잘 생긴 사람은 예수 믿기 불리한 환경을 갖고 있는거겠지. 가진게 많고 할 줄 아는 게 많아서 예수 잘 믿기가 힘들어. 남들보다 갑절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친구가 한 말을 곰곰히 되씹다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 막10:25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 5:2

하나님은 지난 몇년간 내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 가셨습니다. 가정을, 목숨보다 귀한 자식을, 재산을, 공부할 기회를, 목회할 기회를, 명성을, 사람들의 인정을, 급기야는 건강마저 내게서 걷어 가셨습니다. 병상에 누워 하루에도 몇번씩 나는 아무 것도 없이 외롭게 홀로 떨구어진 내 환경을 탓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는 너무 부자였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가진것이 너무 많아서, 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 많아서 나는 늘 한 눈 팔며 살았습니 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20대의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촉망받는 젊은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나는 멋지고 훌륭한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30대가 되면서 내 인생은 철저히 유린되고 도륙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많은 것을 잃고, 형편없는 가난뱅이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고통과 피로가 몰려오는 아침, 친구의 고백이 도저한 울림으로 내 가슴을 흔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믿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나는 예수 잘 믿을 가능성이 누구보다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주만 바라보고 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은 평생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하는 황금눈물입니다. 그래서 힘겹지 만 감사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며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 있을까?를 생각해야겠습니다.


황금눈물
황금눈물-이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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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8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현근 2005-06-1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슬픔을 아는 눈을 갖게 됩니다. 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이름도 상황도 잘 모르지만, 하나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