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빈센트 브래닉 지음, 홍인규 옮김 / 기독교연합신문사출판국(UCN)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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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경우에 이 책은  번역보다 부록이 훨씬 더 가치가 있는 듯하다. 빈센트 브래닉의 모호한 신학을, 홍인규는 번역보다 부록에서 훨씬 더 잘 정리해 주었다. 이 부록만 잘 읽어도, 초대교회의 모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가정교회의 사회적 상황, 리더십, 모임과 활동, 변천과 종말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울서신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추구가 아닌 방법론으로 읽는다면 오히려 해가 될 것이다. 결과위주의 사고방식, 즉 교회만 커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 사고방식은 교회를 병들게 한다. 교회의 본질을 더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셀교회니 가정교회니 하는 교회부흥의 전략으로서 방법론만 추구하게 되면, 교회는 세속화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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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없다
프랭크 바이올라 지음, 이영목 옮김 / 대장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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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본서는  빗나간 현대교회의 진단서이다.  이 책을  한국 교회에 소개한  이영목의 역할에 찬사를 보낸다. 한국교회의 빗나감은 세계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가 소개한 진 에드워즈와 프랭크 바이올라는 정직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려 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모든 지체들이 기능을 발휘하는 몸이다".

  지난 450여년간 개신교회가 어떤 전통을 쌓아왔는지, 그 전통은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현대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어긋난 전통의 결과는 어떠한지 프랭크 바이올라는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아마도 이영목이 의역했을 '교회가 없다'라는 제목은 내게 절규처럼 들렸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절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회중은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성직자 계급주의(hierarchy)는 갈수록 심화되어 종교권력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내려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유린하면서도, 행하는 자나 당하는 자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독자는 오늘날의 교회 모습이 어떤 역사적 행로의 결과물인지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송아지 한 마리가 잘 못 들어 만들어놓은 길을 이천여년간 생각없이 걷고 있었다니, 통탄할 노릇이 아닌가? 이 쯤해서 각성하지 않으면 유럽과 미국이 걸어간 길을 고스란히 다시 걷게 될 것이다.

  프랭크 바이올라는 진 에드워즈와 함께 읽어야 한다. 그들의 책은 교회사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귀중한 잣대가 될 것이며, 새시대를 향한 거룩한 흥분과 자극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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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네-가을 숲으로 통하는 길
      

                     생기를 주는 그리스도인(몬1:7)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 몬1:7

I myself have gained much joy and comfort from your love, my brother, because your kindness has so often refreshed the hearts of God's people


  바울은 빌레몬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랑은 기쁨과 위로를 가져옵니다. 특히 옥에 갇혀 있던 바울처럼 어려움과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라는 사실은 엄청난 기쁨과 위로를 줍니다. 빌레몬은 사랑으로 기쁨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야 하며, 더욱이 사랑을 표현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빌레몬은 성도들의 마음에 생기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친절함(kindness)은 사람들의 마음을 소생(refresh) 시켰습니다. ‘생기를 준다’는 헬라어 아나파노αναπανω는 ανα(위, 다시)와 πανω(멈추게하다, 쉬게 하다)의 합성어인데, 정의하자면 ‘휴식, 쉼을 주다 give rest'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빌레몬을 만나면 쉴 수 있었습니다. 고된 일상을 뒤로 하고 그를 만나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활력이 생기고 삶의 의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소생(refresh)케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마11:28

Come to me and I will give you rest-all of you who work so hard beneath a heavy yoke.

 

  여러분은 무거운 삶의 짐과 고통과 눈물을 내려놓고 언제든지 만나 편히 쉴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빌레몬처럼 누군가에게 쉼을 주는 사람이 되어주고 있습니까?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마음에 생기를 넣어 주십시오. 몬1:20.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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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11-1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도 참 좋고, 말씀도 참 좋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익숙치 않은 것이지만... 모처럼 올리신 글 잘 읽고 갑니다.
 











 



 

이제 5개월된 우리 딸 혜성이를 데리고, 교회 친구들과 양평에 다녀왔습니다. 바베큐도 해먹고, 부부들끼리 게임도 하고, 밤새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신앙이 있고, 가정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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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0-1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렴요,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요.

min80k 2007-07-2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사람이 은근히 있내요
 













  지난 여름에 아들 유겸이와, 조카 연혁이, 그리고 목사님 아들 지훈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다녀왔습니다. 이 녀석들 얼마나 재미있게 놀던지, 마음이 뿌듯했었습니다. 우리 유겸이는 2학년, 지훈이는 3학년, 연혁이는 4학년인데, 친 형제들처럼 참 친하게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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