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그가 쓴 소설들의 문학적 가치와 작품의 수준 이런 거 다 떠나서 일단 그의 소설은 너무 재미있다. 이 유명한 소설 '죄와 벌'을 미천한 내가 이제서야 제대로 완독을 하였는데, 세상에 역시 너무 재밌었다. 이렇게 긴 소설이 어떻게 한 시도 빠짐없이 재밌을 수 있는지.


  내가 제일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절친 라주미힌이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저질렀음을 예감하는 장면인데, e-book이라 찾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읽어보려고 어렵게 찾아서 적어둔다.


  라스콜니코프는 복도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뛰어나올 줄 알았어." 그가 말했다. "저들에게로 돌아가. 저들과 함께 있어 줘...... 내일도 저들 곁예 있어 주고...... 항상 그래 줘. 나는 ...... 올지도 모르겠군...... 그럴 수만 있다면. 잘 있어!"
  그러고는 손도 내밀지 않고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대체 어딜가? 왜 이래? 아니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안이 벙벙해진 라주미힌이 중얼거렸다.
  라스콜니코프는 한 번 더 걸음을 멈추었다.
  "이걸로 영영 끝이야. 나에게 절대 아무것도 묻지 마. 대답해 줄 것이 전혀 없어...... 나한테 오지도 마. 내가 이리로 올 테니까...... 나를 좀 내버려 두고, 저들은...... 내버려 두지마. 내 말 알아듣겠어?"
  복도는 어두웠다. 그들은 램프 옆에 서 있었다. 잠깐 동안 그들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라주미힌은 평생을 두고 그 순간을 기억했다. 라스콜니코프의 불타오르는 듯 집요한 시선이 순간순간 강렬해지는가 싶더니 그의 영혼을 의식을 꿰뚫어 버렸다. 라주미힌은 갑자기 몸서리를 쳤다. 뭔가 이상한 것이 그들 사이를 지나간 것 같았다...... 어떤 생각이 암시처럼 스쳐 갔다. 뭔가 끔찍하고 흉악한 것이, 갑자기 둘 다 이해할 수 있을 법한 것이...... 라주미힌의 얼굴이 망자처럼 창백해졌다.


  소냐갸 돌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걸어 나오는 나사로가 등장하는 성경 구절을 읽어주며 라스콜니코프에게 광장 바닥에 입을 맞추고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라고 말하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왜 작가는 나사로가 걸어나오는 장면을 인용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아마도 소냐는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면 주님이 그를 용서해줄 것이고, 한번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이 라스콜니코프도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하고 혼자 이해했다. 너무 단순한 해석일 수 있지만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을 발표할 당시 일개 소설가 주제에 감히 성경 구절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러시아 기독교 관계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하긴, 소설 속에서 소냐가 성경을 안 읽었다면 감동은 엄청 반감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 기독교 관계자들도 너무 웃긴 게, 도스토예프스키만큼 독실하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도 없는데 그거 조금 인용했다고 공격을 하다니. 참내. 


  소설과 전혀 상관없지만, '죄와 벌'을 읽고 내 소설 인물 중  이상형 1위가 '전망 좋은 방'의 조지에서 라주미힌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라스콜니코프를 도와주려고 의욕도 없는 사람한테 자꾸 번역하라고 일감을 주고,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노상 활달한 라주미힌이 참 피곤했는데 읽다 보니 그가 너무 착하고 귀엽고 진심으로 여자를 위하고 사랑할 줄 아는 남자라서 좋아졌다.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아브도치야를 보고 첫눈에 반한 라주미힌이 아브도치야의 목에 걸려 있는 비싼 목걸이를 보며, 저것은 그 부자 약혼자라는 사람이 준 것이겠지...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하다가, 가정 교사로 있던 귀족 집안의 부인이 준 것이라는 걸 알고는 속으로 기뻐하는 장면이나 길을 걷다가 아브도치야 생각이 나자 갑자기 골목을 막 내달리는 장면을 보며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심정을 별 거 아닌걸로 어쩜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싶었다.


  또 한 가지, 집안 사정 때문에 거리의 창녀가 된 소냐에 대해 작가가 전혀 불순한 의도를 갖지 않은 점이 참 신기했다. 가끔 남자 작가들 책 속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화가 날 때가 많은데, 적어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여자 인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너무 길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진 않아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역시... 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가. 그의 소설 중 안 읽은 게 더 많으니 내가 그의 팬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하여튼 난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즐겁다.

  '죄와 벌' 읽으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2014년 독일 왕복 이후로 내 인생 다신 장거리 비행은 없다 결심했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못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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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2-13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라주미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 참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진짜 생각해볼 만한 인물입니다. 읽을 때는 그냥 스윽 지나갔었는데요. 와우, 눈 좋으세요!
저도 장거리 비행은 로또 맞아 비즈니스 석을 탈 수 있기 전까지는 절대 안 할 겁니다. 아주 질려버렸습니다. 여태 출장 가라고 할 때마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끝까지 도망다니다 어쩔 수 없을 때만 가고 그랬습지요. ^^;;

케이 2020-02-13 11:46   좋아요 1 | URL
라주미힌이 술에 알딸딸하게 취해 아브도치야를 만나 악수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막 가슴이 뛰고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으면서 아브도치야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질 않는데요. (심지어 아브도치야가 손이 아프다고 하는데도) 다음날 그가 아침에 일어나선 내가 왜 그랬을까! 멍청이 같이 왜 그랬을까!!! 라고 생각하며 자책하는 장면은 2020년 어제 밤 술에 취했던 한국의 모대학교 3학년 남학생이 썼다고 해도 믿을만큼 생생하답니다. ㅋㅋㅋ 너무 귀여운 인물이예요.
저도 장거리 비행은 정말 질려버렸습니다. 大자로 침대에 누워 비행하는 게 아닌 이상 이젠 엄두를 못내겠어요. 글자 그대로 그때 비행하다 죽다 살았거든요. ㅋㅋ 누가 공짜로 비행기 태워준다고해도 못탈 것 같아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무척 우울했다. 엄마가 한창 아프실 땐 수술, 항암, 입원, 각종 검사 등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막상 엄마가 항암까지 다 마치고 나니 허무했다.

   나는 남들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오히려 내 곁에 있으려는 사람이 걸리적거리고 불편할 때도 많았다. 이런 기질을 타고난 나는 평생 너무 별 볼일 없어 남들 보기에 딱한 사람으로 충실히 늙어 결국 고독사하여 죽은 지 한 달 넘은 썩은 시체로 발견되리라 생각했다. 자기 연민이 너무 과해서 지금 생각하면 추할 지경이지만, 어쨌든 그 시간도 지나왔다. 
   당시 뇌가 고장 난 거 마냥 만사 다 비관적이었던 내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바로 '더블린 사람들' 이었다. 그런데 작년 2019년에도 윌리엄 트레버 단편선 속의 보잘것 없고 용기 없는 사람들을 보며 어려운 시간을 견뎠다. 내 곁에는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사랑하는 남편이 생겼고 비록 많이 아프지만 여전한 엄마도 있고 또 세명 남짓의 친한 친구들도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망을 극복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나에겐 거의 유일하게 책만이 위로가 된다. 책을 엄청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왜 날 위로할 수 있는 건 책뿐인지....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신나는 일 하나 없이 세월을 보내고 또 아무도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윌리엄 트레버 단편소설 속의 인물들.
윌리엄 트레버는 그래도 이 세상에서 딱 한 명은 이런 사람들한테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냐고 말하며 그들을 다독거려 주는 듯하다.

다음은 각 소설별 단상. (오래되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최대한 적어보련다)

 

1. 욜의 추억 - 첫 소설부터 반했다.
2. 탁자 - 가구가 나와서 그런지 로알드 달의 '목사의 기쁨' 이 좀 생각났다.
3. 펜트하우스 -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났다. 사람들은 짓밟아도 별 탈 없는 사람을 마음껏 짓밟는다. 더 슬픈 건 대부분의 경우 밟힌 사람은 정말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는 거다. 대학시절 혼자 자취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집에 남자기 있는 척하고, 친척과 같이 산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던 기억이 떠올라 읽는 내내 화가 났다. 역시 사람 사는 건 영국이건, 한국이건 비슷한 건가.
4. 탄생을 지켜보다 - 난임병원을 1년 남짓 다니며 시험관 시술을 해보니 왜 이 소설 속 부부가 미쳐버렸는지 이해할 것 같기도 하고.
5. 호텔 게으른 달 - 다시 말한다. 이 세상의 인간들은 짓밟아도 별 탈 없는 사람을 마음껏 짓밟는다. 힘도 없고 늙은 부부가 속수무책으로 재산을 빼앗기는 이야기.
6. 마흔일곱 번째 토요일 - 음... 난 이런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 속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유일한 이유가 뭔가. 그냥 젊은 여자랑 주기적으로 자고 싶어서 아닌가. 현실에 이런 남자가 엄청 많을 거라는 거 안다. 그런데 난 소설로까지 이런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다. 여자한테 너무 감정이입을 하며 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7. 학교에서의 즐거운 하루 - 엘리너가 잘못 될까 봐 조마조마하며 봤다. 엘리너야 잘했어. 다행이야.
8. 로맨스 무도장 - 책에 실린 단편 소설 중 어떤 소설이 제일 좋았을까 많이 고민했고 후보가 많았지만 난 '로맨스 무도장'을 최종 1위로 선정하였다. (아무도 안 알아줌 ㅋㅋ) 결국 브리디는 죽을 때까지 다리 없는 아빠를 돌보며 쓸쓸하게 살겠지. 정해진 결말에 맞춰 살 수밖에 없는 가엾은 브리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9. 오, 뽀얀 뚱보 여인이여 - "남편이 좀 이상한 거 같으십니까. 참고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어서 도망치세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살다가 맞이한 파국. 그리고 너무나 안일했던 뚱보 여인 때문에 희생된 불쌍한 아이... 기숙 학원에서 공부하다 과로로 끝내 죽는 아이가 불쌍한 한편으론, 영국 놈들 한국 고3들이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얘기 들으면 기절하겠단 생각했다. (실제로 예전에 영어학원 다닐 때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영어 선생님한테 나 고3 때 아침 7시까지 학교 도착해서 밤 10시반까지 공부했다고 하니 정말이냐고 몇 번을 물으며 엄청 놀라더라)   
10. 이스파한에서 - 이 소설도 1위 후보 중 하나였다.난 불쌍하고 처량한 남자 이야기가 좋더라. 당신이 끝내 여자를 거절한 마음도 난 이해한다우. 
11. 페기 미한의 죽음 - 난 어린이들의 외로움에 많이 약한 거 같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고 눈물이 났던 소설.
12. 복잡한 성격 - 정말 뻔뻔한 불륜 커플. 애트리지가 다 뒤집어쓰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13. 오후의 무도 - 1위 후보 중 하나였다. 난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끝내 용기 내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한테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대부분은 그렇잖아. 다 버리고, 즉흥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 거의 없잖아..
14.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 이 소설집에서 가장 직접적 메시지를 가진 소설. 윌리엄 트레버의 조국이 아일랜드임을 환기시킴.
15. 결손가정 - 세 번째로 말한다. 이 세상의 인간들은 짓밟아도 별 탈 없는 사람을 마음껏 짓밟는다. 조용히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사는 사람을 제발 좀 그냥 내버려 둬. 등쳐먹을 생각하지 말고. 여든일곱의 죽을 날 머잖은 할머니한테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16. 토리지 - 영국의 사립 남자 고등학교는 왜 다 그 모양이냐는. 소설과 영화 다 통틀어봐도 도대체가 긍정적으로 묘사된 적이 없다.
17. 예루살렘의 죽음 - 너무 오랫동안 시골에 처박혀 자기를 희생해가며 살면 결국 주인공인 프랜시스처럼 사고하게 되겠지. 안됐다.. 안됐어.
18. 그 시절의 연인들 - 나는 의외로(?)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불륜 이야기가 모든 소설과 영화의 영원한 주제임은 인정하지만, 나는 정말 웬만한 불륜 이야기에는 큰 흥미를 못 느낀다. 물론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를 읽으면서는 미친 여자처럼 눈물을 펑펑 흘렸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불륜, 싫어하는 불륜에 어떤 기준이 있는진 나도 모르오....
   애석하게도 난 현대문학이 표제작으로 꼽은 소설 '그 시절의 연인들'에도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난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에 거부감이 좀 심한데 결국 이 감정의 장벽을 끝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10대부터 30대인 지금까지 쭉 늙은 남자에게 단 한 번도 이성적 사랑 혹은 호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제레미 아이언스급 노인이라고 해도 젊고 잘생긴 남자에 비하겠나.)
  내 취향 얘기는 그만하고 또 이 소설에 큰 감동을 못 받은 두 번째 이유는 결말 때문이다. 늙은 남자는 20대의 젊은 여자와의 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결국 그는 후진 집에서 부대끼면서 살기 싫어서 전처랑 재결합하지 않나. 이런 이유로 난 이 소설이 아름답다는 생각보단 누군가를 사랑해도 현실적 조건이 우선 아니겠냐는 결론에 도달해버렸다. 그리고 그 젊은 여자도 늙은 여자를 그리워할까? 난 아닐 거라 생각한다.
19. 멀비힐의 기념물 - 이 책에서 재미로만 따지면 제일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던 소설.
20. 육체적 비밀 -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별 불만 없다면야... 서로 윈윈이지만. 근데 꼭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나요 부인? 난 잘 모르겠소.....
21. 또 다른 두 건달 - 제임스 조이스 얘기 나와서 반가웠다.
22. 산피에트로의 안개 나무 - 1위 후보 중 하나였다. 이 소설을 내가 엄청 좋게 읽은 걸 보면 불륜 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기준은 정말 모르겠는데 일단 늙은 남자 젊은 여자 조합이 싫은 건 확실하다. 아련하고 아름다운 소설.
23. 삼인조 - 이 소설의 '삼촌' 보며 전 회사 사장님 생각났다. 만인한테 친절하고 인자하지만 기본 전제는 '너는 내 밑이고 나를 대접해야만 한다'인 사람이었는데, 은행 같은데 가서도 직원들한테 항상 공손히 인사하고 친절하셨다. 그런데 딱 한 번 은행 직원들이 일어나서 자기를 모시러 오지 않는다고 주거래 은행을 바꿔버렸다. 여기 소설에 나오는 삼인조들도 강압적이고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삼촌의 호위 따위 다 무시하고 스스로 독립하고 거듭나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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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제발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글을 각종 자극적 가십거리가 올라오는 모 게시판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자기와 정말 친한 친구가 집안 좋고 돈 잘벌 고 심지어 인물까지 좋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너무 셈이 나서,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친구가 고등학생 때 강간당한 얘기를 했고, 결국 그 결혼이 깨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결혼까지 결심할 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면 너무 안타깝고 가여워서 앞으로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할망정, 파혼을 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그 기분 나쁜 글 때문에 크게 깨달은 바도 있다.이 세상엔 감옥에 가지는 않지만, 감옥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쁜 사람들이 많다는 것. 친구의 비밀을 폭로한 글쓴이는 감옥에 가진 않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얼마나 비열하고 나쁜 사람인가. 막말로 회사에서 1억원을 공금횡령을 해서 감옥에서 징역을 살고 있는 사람이 나쁜가, 아니면 위 글을 쓴 여자가 더 나쁜가. 나에게 묻는다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가 더 나쁘다고 말할 것이다. 


  뜬금없이 이런 기분 나쁜 글을 줄줄이 쓴 이유는 위화의 '가랑비 속의 외침'에는 비록 죗값을 받고 감옥에 갈 만큼 큰 죄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칠만한 악행을 수도 없이 저지르는 사람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중 최고봉은 극의 화자 '쑨광린'의 아버지 '쑨광차이' 인데, 문화적 유사점 때문일까? 나도 '쑨광차이'에 버금갈 만큼 나쁜 후레자식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글을 쓰는 현재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쑨광차이 같은 되먹지 못한 놈에게 고통받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겠지.


  그렇다고 이 소설 속의 고통받는 이들이 마냥 착하고 순진하고 고통받기만 하느냐. 그렇지 않다. 다들 적당히 악하고,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아니면 본인이 하는 짓이 나쁜 짓이라는 자각이 없기 때문에, 주변의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 그것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그런데 이 소설 참 이상하다. 등장하는 이들 전부가 삶의 무게에 몸부림치고 그야말로 악다구니 쓰며 살아가는데 이상하게 모든 인물들이 생명력이 넘치고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또 버텨보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 같은 게 느껴진다. 난 불행하기 그지없는 이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 삶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꼈다.


  위화의 글은 몇 년 전 한국에 나온 에세이집으로 처음 접했는데, 자기가 철없을 시절 삼촌뻘 되는 농부를 피투성이 되도록 팼다는 글을 읽으며, 참 솔직하고 용기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에게는 일말의 자기 미화 욕구가 있는 법이고, 더군다나 위화만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자기의 과오를 그리도 생생하게 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위화의 첫 소설이라는데, 문장이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없고, "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이런 묘사를?" 이라고 나도 모르게 읊조리며 또 감탄하며 읽은 문장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말년의 할아버지는 마치 버려진 낡은 의자가 아무 소리도 없이 불태워질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살았다.' 같은 문장들. 전자책이라 페이지 찾기가 힘들어 더 쓰진 않겠지만, 현재 소설가 '위화'의 명성이 절대 허투루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정말 잘 썼고, 간결하면서 딱 필요한 만큼만 썼는데 그게 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마도 올해의 책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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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2-26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위화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요! 중국 소설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아요. ㅎㅎ 이 작품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케이 2019-12-26 18:26   좋아요 1 | URL
우아한 소설은 절대 아니예요. 전 뉴스보다가 갑자기 1세계 백인들이 미워져서 억지로라도 아시아 소설을 읽으려고 읽은 소설인데요. 정말 잘썼어요. 깜짝 놀랄만큼요. 재미도 있고요.
 


  러시아 소설을 많이 읽기로 다짐하고 의무감에 읽었다.  


  막연히 '더블린 사람들' 같은 책이겠지 했는데, 첫 이야기부터 갑자기 얼굴에서 코가 없어졌대. 엇. 이런 소설이었어? 란 생각에 1차 당황, 어렵게 마련한 겨울 외투를 빼앗긴 원통함에 죽은 주인공이 유령이 되어 이승을 떠도는 '외투' 에선 2차 당황. '외투'까지 읽고 다시 니콜라이 고골의 사진을 보니 앞선 두 소설 분위기...  어쩐지 니콜라이 고골 얼굴과 느낌이 비슷해 납득이 간다.


  읽은지 꽤 돼서 나머지 소설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결국 니콜라이 고골이 말하고 싶었던 건, 가난의 참담한 모습이나, 민중을 가난하게 만든 사회에 대한 비판보다는 가난을 겪는 이들의 남루함과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단에서 고립되어 외로운 삶이었으리라.


  정말로 가난하면, 남한테 가난한 모습을 들키지 않는 것만이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면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게 된다. 내가 대학 때 잠깐 그랬다.

  나이 든 자는 몇십억으로도 못 사는 젊음이 있는데 그까짓 돈 상관없지 않냐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아예 없어봐라. 젊은 몸뚱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단 생각이 들고, 성격은 날로 나빠진다. 가난하다면서 사교적인 사람들? 내가 장담하는데 그 사람들 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다.(제  뇌내 망상이며 개똥철학입니다.ㅋㅋㅋ)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소설들을 읽다보면 비루한 인물들의 삶이 때론 우스꽝스럽지만 끝내 애잔하다. 다 읽어보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그토록 '외투'를 좋아했는지 조금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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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2-11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코‘ 읽고서는 처음에 황당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일 줄은 꿈에도 몰라서 ㅎㅎ 그래도 ‘외투‘는 참 좋아합니다. 읽고 나서 한참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휴.

케이 2019-12-11 16:40   좋아요 0 | URL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였어요. 둘다. 아카기 였나요? 하여튼 그 소설 ‘외투‘의 주인공이 외투를 지나치게 애지중지할 때부터 뭔가 잘못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궁... 그렇게 허무하게 뺏길 줄이야. 넘 불쌍했어요.
 


  올해 상반기에 드디어 '악령' 을 다 읽었는데, 이 소설 나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물론 다른 도선생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재밌긴 엄청 재밌지만, 음... 심오해도 너무 심오하고,복잡하고, 등장인물들은 왜이렇게 많은지!


  도선생님이 단편소설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셨지만, '악령' 속 2부 맨 끝 이야기인 '스따브로긴의 고백' 은 앞 뒤 아무것도 안 읽고 이 소단원만 읽어도 그 자체로 완벽한 단편소설이라 감탄해버렸다. 

  물론 스따브로긴이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젊고 잘생긴 남자 귀족이고, 찌혼은 수도승이라는 정도의 사전 지식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자기 파괴적 기행을 일삼는 스따브로긴에 별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그 짧은 고백 이야기 하나로 단번에 인물에 조금은 이해가 가고 나중엔 그가 좀 딱하기까지 했다.


  실물 책은 열린책들 버전으로 사놓고, 아무리 읽어도 번역이 맘에 들지 않아 다시 동서문화사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PDF 로 된 e-book이라 읽는데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난 일반 전자책도 폰트 110% 로 하고 본단 말이야)


  열린책들에서는 세권으로 나눠 출판한 책을 동서문화사에서는 패기있게 단 한권으로 출판한 것이 감명깊어, 이 책을 서점에 갈 때마다 검색해 보았지만, 그 어느 서점에서도 실물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솔직히 전체 소설의 절반 정도만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언젠가 내공이 쌓이면 다시 읽어보려고는 하지만, '스따브로긴의 고백' 은 시시때때로 자주 읽어볼 것 같다.


  + 페이퍼 다쓰고 갑자기 또 떠오른 게 있어서 황급히 돌아와서 추가해서 쓴다. 시종일관 어두침침한 '악령' 속 한줄기 빛과 같은 인물은 '까라마지노프' 다. 명성과 부를 가진 유력한 소설가인 '까라마지노프'는 나같이 무식한 사람이 읽어도 빼박 '투르게네프' 인데, 이 '까라마지노프'를 묘사하는 모든 부분이 진심 배꼽빠진다. ㅋㅋ

  실제 투르게네프가 어땠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악령'을 쓸 무렵, 어지간히도 꼴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P.S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안잡혀, 그럴 때마다 올해 읽은 책에 대해 시시콜콜한 거라도 적기로 다짐했는데 아마도 몇 번 쓰다 말 것 같다. 다른 알라디너처럼 엄격진지근엄하게 완성된 독후감을 쓰리라 몇 년전 다짐했지만 무리데쓰. 내 능력만큼만이라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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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2-09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거 읽으셨군요. 전 열린책들 버전으로 사놓고 아직 못 읽었어요. 내년에 도전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다른 알라디너처럼 엄격진지근엄하게 완성된 독후감 아니더라도, 자주 써주세요! ㅎㅎ 책 이야기 재밌습니다.

케이 2019-12-10 09:27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제가 쓴 거 다시 읽어보니, 인류유산급 책에 너무 비루한 글이네요 ㅋㅋㅋ
책읽고 아무것도 안쓰면 나중에 거의 안 읽은거나 다름없이 아무 기억이 없더라고요. ㅜㅜ 조금씩이라도 부족하지만 쓰려고 합니다. 단 몇줄이라도.

‘악령‘에 누군가가 죽는 장면이 있는데요. 정말 그 장면, 묘사 압도적이었어요.
잠자냥님의 수준높은 후기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