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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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위화의 인생의 원제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위화는 그 살아가는 힘이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8p)라고 했다. 이 작품은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위화의 말은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의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살아간다는 것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2

언젠가 지인의 부탁으로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인의 친구 두 분과 나, 이렇게 3명이서 장례식을 치뤘다. 세상에나 그렇게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언젠가 내가 페이퍼에서 영화 <밴드 어브 브라더스>에서 한 전우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객으로 참여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교훈을 읊조린 적이 있다. 물론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의 장면이 을씨년스럽지 않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내가 위화의 인생을 읽고 나서 느낀 것, 위화의 작가의 말을 보고서 느낀 것은 삶이란, 인생이란, 대단한 업적과 공적과 이름과 명성과 인기와 부귀영화를 누리고 떠나는 유명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장례식장에서 가족친지 하나 없이 죽어간, 내가 참석했던 그 장례식의 영정에 걸린 사진의 주인공의 삶도 삶이고, 인생인 것이다. 그 삶도, 그 인생도 그 나름대로 유의미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모든 가족들의 장례식을 다 치른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장인으로서의 푸구이, 그들보다 오히려 더 오래 세월을 살게 된 주인공 푸구이는 자신의 베개 밑에 자신의 장례비용인 10위안을 넣어둔다. 자신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달라는 의미였다.

 

 

 

 

3

푸구이는 잘 나가는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도박과 노름으로 집안 가산을 탕진하며 하루아침에 가난을 등에 걸머지게 된다.

 

옛날에 우리 쉬씨 집안 조상들은 병아리 한 마리를 키웠을 뿐인데 그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었고, 닭이 자라서 거위가 되었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 되었고, 양이 다시 소가 되었단다. 우리 쉬씨 집안은 그렇게 발전해왔지.”

 

내 손에서 쉬씨 집안의 소는 양으로 변했고, 양은 또 거위로 변했다. 네 대에 이르러서는 거위가 달이 되었다가, 이제 닭도 없어졌구나.”(52-53p)

 

 

하루 아침에 몰락의 길을 걸어가는 푸구이의 집안, 그러나 푸구이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날린다.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 따위는 두렵지 않은 법이란다.”(57p)

 

도박판에서 속임수로 푸구이의 재산을 몽땅 손에 넣은 룽얼이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토지개혁이 시작되었고, 공산당 정부가 정권을 잡았다.

 

옛말에 큰 재난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거라 했네. 그래서 난 내 나머지 반평생은 점점 더 나아질 거라 믿기로 했지. 자전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로 실을 끊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111p)

 

...자전의 말이 맞아. 가족끼리 매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복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112p).’

 

 

인생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가? 행복의 중심에서 가족이 있는 셈이다.

 

우리 모두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펑샤를 돌려보내지 않겠소.”

 

그 말에 자전은 배시시 웃어 보이더군. 웃는 얼굴 위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지(127p).

 

가족이란 것은 함께하는 데서 큰 기쁨이 있는 것이고,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인해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사무치는 것이다. 농아인 펑샤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그러했다.

 

유칭이 이제 이 길을 달려올 수 없겠군요”(199p)

 

 

 

4

위화의 스토리는 대화체로 흘러가는데, 푸구이 가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과 슬픔과 아픔과 고난을 기술함에 있어 아주 속도감 있게 전개해 나간다. 그 고통과 비극과 그 아픔이 얼마나 깊숙한 그늘을 지워지게 했을지라도, 우리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흘려 보내는 수많은 차창 너머에 보이는 풍경들처럼 그렇게 부여잡지 않고 놓아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흘러가야 하는 것이고, 슬픔도, 고통도, 눈물도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도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서는 안 되며, 문간은 잘못 밟으면 안 되고, 주머니는 잘못 만지면 안 되는 거야.”(200p)

 

 

 

 

5 작가의 말이다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한다. 작가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느껴온 것 말이다. 문학의 신비로운 힘은 여기서 나온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 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머리말 중에서 5-6p).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278p)

 

 

6 위화의 글쓰기는

진정한 작가는 언제까지나 마음을 향해 글을 쓴다. 마음의 소리만이 그의 이기심과 고상함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를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다. 마음의 소리는 작가가 진실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을 이해하면, 곧 세계를 이해한 것이다...따라서 글을 써야만, 쉬지 않고 글을 써야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떠오르는 태양빛이 어둠을 비추듯, 영감은 이런 순간에야 불현 듯 떠오르는 법이다....나는 언제나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글을 쓴다. 냉철한 이성은 나의 글쓰기를 대체할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아주 오랜 세월 분노에 가득 찬, 또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작가였다...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의 분노가 사그라지자, 나는 진정한 작가가 찾으려는 것은 진리, 즉 도덕적인 판단을 배격하는 진리라는 걸 깨달았다.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10-13p)

 

푸구이 노인의 아내 자전의 말이다. 이 말은 작가 위안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담고 있다.

 

내 한평생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니, 나도 마음이 흡족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두 아이를 낳았어요. 당신에 대한 보답인 셈이죠.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펑샤와 유칭 둘 다 나보다 앞서 떠났으니 내 마음도 편안하네요. 더 이상 그 애들 때문에 마음 졸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쨌든 나도 어미였고, 두 아이 모두 살아 있을 때 나한테 지극정성이었으니 사람이 그 정도 살았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죠.”

 

당신은 앞으로 계속 잘 살아야 해요. 쿠건과 얼시가 있잖아요. 사실 얼시도 당신 아들이나 다름없고, 쿠건도 크면 유칭처럼 당신한테 잘할 거고 효도할 거예요.”(256p)

 

 

 

 

7

사람들은 보통 남이야기를 하기를 즐겨한다. 그것이 뒷담화이다. 푸구이의 인생과 가족 내력을 본다면, 많은 이들이 그 집안에는, 그 가문에는 마가 끼였다’, ‘저주가 가득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위화의 삶을 바라보는 관용적 태도, 고난을 대하는 작가의 긍정적인 자세는 오히려 작가가 보여준 푸구이의 아버지가 빚을 탕감해주는 부분이나 푸구이를 용납하는 자전의 태도를 통해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간다. 푸구이의 치열한 현실관계에서의 자신이 받았던 화해의 힘이 그를 앞으로 살아가게끔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아내 자전이 유언처럼 남긴 말, ‘당신은 앞으로 계속 잘 살아야 해요라는 말이 독자들에게 작가가 주는 메시지로 들려지기도 한다. 인생이니깐.

 

     

-당신도 앞으로 계속 잘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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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05-30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물건들은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본질이 결정된 후에 존재하게 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목적의식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라고 한 사르트르 행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인간은 외롭고, 힘들고, 비참하기 때문에 스스로 창조적으로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고난을 떠안았다 봅니다.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 현실에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의미 없는 삶을 자유의지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곧 실존이라고 한 점. 아무런 존재 이유 없이 실존하고 있는 과정에서 구토를 느낀다고 역설한 점이 위화의 인생에서 언급한 점과 공통점이 있네요^^; 이 책 크로싱으로 받아서 못 읽은지 어언 몇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ㅎㅎ

카알벨루치 2019-05-30 15:34   좋아요 1 | URL
북키님 이 책 읽으신줄 알았는데 북키님 땜에 이책 중고로 사서 넘 잼나게 읽었네요 감솨^^🎶

레삭매냐 2019-05-30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모르는 분의 장례식을
치르셨다니요 -

위화의 작가의 책들이 요즘에는 좀
약빨이 떨어진 느낌이랄까요... 예전
작품들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 2019-05-30 15:33   좋아요 0 | URL
전 이 작품이 입문격이라 ~좋네요! 레삭매냐님 안 읽은 책 찾아서 읽어야겠군요 ㅎㅎㅎ

munsun09 2019-05-30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카알벨루치 2019-05-30 17:44   좋아요 1 | URL
늦깍이로 읽었습니다 ㅎ^^

설해목 2019-05-30 1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읽은지 백만년은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리뷰로 보니 다시 읽고싶어졌어요. ^^

저도 고독사할 것 같은데 그때 카알벨루치님 같은 분이 계셔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에 눈시울이 ㅜㅜ

카알벨루치 2019-05-30 18:13   좋아요 2 | URL
젊은 사람이 고독사는 무씬~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시고 저녁 맛나게 드세욧!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존버정신으로~홧팅!!!

조그만 메모수첩 2019-05-30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허삼관매혈기 말고는 위화는 읽은 것이 없는데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5-30 19: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이 첨이라 위화 작가 책 좀더 읽어보려고 합니다~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두 감사해요^^

syo 2019-05-30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카알님 다정한 사람. 나는 진작에 알아봤지.

카알벨루치 2019-05-30 23:25   좋아요 0 | URL
다정하진 않고요. 그냥 부탁을 거절치 못해 갔어요. 확대해석하지 마시고요. ㅎㅎ설 가면 대구가 휑할텐데...어쨌든 화이팅🙆‍♀️

syo 2019-05-30 23:29   좋아요 1 | URL
이것 봐 내 화이팅도 해주고 대구 걱정도 해주시잖아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다정한 카알님🐥

희선 2019-05-31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 살다 죽는다고 그 사람이 그렇게 쓸쓸할까 싶어요 장례식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것도, 없으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쓸쓸하게 여기는 건 산 사람이군요 장례식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아도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살다 간 거죠 저도 그럴 텐데... 좋은 일 같은 거 없어도 사는 거죠

예전에 위화를 우연히 알고 이것저것 읽었는데, 생각나는 건 별로 없군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빨리 알아서 부러울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나중에 알아서 부러울 때도 있다니...


희선

카알벨루치 2019-05-31 08:12   좋아요 0 | URL
무감무색무취무향의 삶도 삶이니깐~ 솔직한 댓글 감사드려요 늘 글 쓰시니깐 자기 느낌이 육화가 잘 되시는 듯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