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토요일 - 2단계 문지아이들 33
파울 마르 지음,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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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하기로 했다는 건 진짜 용기있는 행동이다.(혹은 무모한 행동인지도)  후기에서 역자도 이렇게 말한다. '번역하면서, 나는 몇 번이나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어째 사람이 이렇게 생각없이 이 어려운 일에 달려들었을까 하면서 말이에요' 

일요일엔 일광욕을 하고, 월요일엔 월간지 기자 친구가 찾아오고, 화요일엔 화분을 깨뜨리고, 수요일엔 수도꼭지가 고장나고, 목요일엔 목감기에 걸리고, 금요일엔 회사 정문에 '금일휴무'라고 써있더니 토요일에 '토요'라는 괴상한 녀석을 만났다.

'가자 가자 감나무, 오자오자 옻나무, 방귀 뽕뽕 뽕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하는 우리나라의 전래 동요가 생각나지 않는가? 이 전래동요를 독일어로 번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번역해 놓은 그 노래는 이 노래와 비슷한 느낌이 날까?

마찬가지로 책 전체가 위와 같은 언어유희와 운율을 맞춘 유머러스한 시로 되어있는 독일동화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는 게 과연 번역인지, 아니면 새로 동화를 한 권 쓴 것인지, 과연 원작의 맛이 나기는 할지, 이런 의문을 가지면서 읽었다. 아마 상당히 다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역자가 원작의 맛을 살리려고 애쓴 흔적은 역력했다.

어쨌든 그 괴상한 녀석 '토요'를 만난 얌전한 타센비어씨는 그날부터 고생 시작이다. 안 그래도 무서운 하숙집 아줌마에게 매일 구박받고 있는데....이 눈치볼 줄 모르는 녀석은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고, 플리즈~라고 말하지 않으면 절대 말도 안듣고, 쇠나 나무나 옷이나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고.......어찌 살란 말이냐....그런데 이녀석, 지내다 보니 쓸모있을 때도 있고 시계추처럼 성실하기만 한 타셴비어씨에게 삶의 재미를 선사해주기도 하네? 그리고 알고보니 이 녀석이 타셴비어씨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었어!

귀엽고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였는데 말이야, 책을 덮고 나니 이 녀석이 누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누구일까....? 아, 지붕위의 '카알손'! 카알손이 토요보다 더 악동이긴 하지만  방자하고,못생겼고, 똥똥하고, 어린애도 어른도 아니고 온통 사고만 치고 돌아다닌다는데서 너무 닮았다. 음....무엇이 먼저 나온 걸까? 린드그렌 할머니가 더 나이가 많으시니 카알손이 먼저겠지? 아....새로운 걸 창조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겠어....앞사람들이 다 창조해 버렸으니 말이야.... 

 

****참고로 이 책에 준 별 네개는 도대체 원작이 어떨지 몰라서 그냥 적당히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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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렌즈 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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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를 재미있게 봤고, 로드무비님의 추천도 받은 책이니 이 책 <걸프렌즈>는 일단 내 맘에 들거라는 보증수표를 받은 셈이다. 일본만화는 워낙 다종다양해서 잘못 고르면 입맛만 버리게 되고 얼마간 계속 그런 날들의 반복이어서, 또 다른 볼 책도 많아서 만화에서 좀 멀어져 있었는데 얘 덕에 다시 만화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겼다.(일은 언제 하고 살림은 언제 하란 말이냐.....)

<하얀꽃 빨간꽃> : '우리반엔 잔챙이들 뿐이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 둘 있었어. 하나는 너였고.......' 잔챙이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에 대한 확신, 혼자를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그래서 특별했던 세사람. 그러나 사람들의 대부분은 잔챙이가 아니던가? 나는 그 잔챙이들이 좀 안되어 보여서 이 단편을 마음놓고 즐길 수가 없었다.

<스미레> : 로드무비님이 특별히 이 작품을 언급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서재에서 내가 마주쳤던 많은 분들은 아마도 이 작품을 다들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을까 싶은데......인생의 성공이란 것, 남들의 눈에 그럴 듯하게 사는 것, 이런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스미레 이모처럼 사는 것이라고 작가는 얘기한다. 그래, 난 용감하지 않아서 실천은 못했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실크빛 달> : 주인공 남자애가 끝까지 카호리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이 <걸 프렌즈>에서는 주인공들이 다들 '성장'을 한다. '너 말야....그저 착한 아이....만은 아니었군....전보다 더 좋아졌어....' 자기를 따라다니며 사실은 카호리와의 만남을 방해했던 소녀의 고백을 듣고 주인공이 한 말이다. 확실히 성장하지 않았는가?^^

<천사 같았다> : 이 작가는 일상생활의 사소함에서 중대한 의미를 뽑아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빛을 발한다. 이 책의 다른 단편에서 다 그렇다.  SF적인 요소는 웬지 안 어울리는 듯. 그래서 이 작품은 좀 어색한 데가 있다. 아니면 SF적 요소를 너무도 일상적으로 표현한 것에 내가 적응 못하는지도? 

<마블 프렌즈> : 소녀들 사이의 우정. 그 뭐라 말하기 어려운 것. 사랑하고, 그만큼 속으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내게 없는 그 무엇을 가진 그애를 너무도 부러워하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난 내가 그러고 있는 줄 알았는데, 걔도 그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작품의 아이들은 그걸 극복하고 한차원 높은 인간관계를 만들었는데 그 때 우린 그러지 못했다. 사실은 내가 그러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귀찮고도 역겨워서, 난 그애를 차버렸다. 그러고 지금에사 후회를 하며 가끔 생각을 하는데, 아마 그앤 나를 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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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09-3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런...이렇게 다 써버리시면 다음에 보는 사람들은 할 말 없어진다구요. ^^

깍두기 2004-09-3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요, 느낌은 각각 제각각일 터인데요^^
 
나른한 오후 샘터만화세상 4
마정원 지음 / 샘터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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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님의 리뷰를 통해 약간의 스포일러를 당한 터라 충격이 크진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출근길에 하듯이 태연히 용돈을 쥐어주고 창문으로 투신을 해버린 그 장면은 확실히 가슴이 철렁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고, 정신지체 누나와 남겨진 소년의 삶은 더욱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그것을 그리는 작가의 시선은 지극히 무표정하다. 마치 끔찍한 장면을 소리없이 슬로우 비디오로 촬영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나른한 오후라.....이 역설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표현 앞에서 나는 백주대낮에 인간이 벌이고 있는 모든 죄들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더 섬뜩했다.

첫 작품이 너무 절망적인 내용이어서 <과꽃>과 <첫눈 내리던 날>은 지극히 슬픈 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쨌든 서로를 안아주지 않는가. <나른한 오후>에서 자기들 둘 말고는 아무도 그들을 위로해 줄 자 없는 세상에서, 그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참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작가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 <희망>을 조심스레 행간에 끼워놓고 있다는 느낌, 자기가 그린 것들을 사랑한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마지막에 부록처럼 수록된 <우리 이웃들>이란 갤러리에서 작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들을 그 대상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그림체로 그려 내놓아, 우리가 그들을 실물로 보는 것보다 더 그들을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건강하고 재미난 어린아이, 열심히 일하며 때로는 행복해하고 때로는 힘들어하는 노점상, 노숙자(그 중엔 이외수를 똑 닮은 인물도 있었다. 어찌나 우습던지^^) 등이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 놓고 있는 그림들을 보면서, 작가가 그들 속에 있지 않다면 이런 그림은 나오지 않을 거야.... 어린 사람이 참 훌륭하구나....하고 나이든 철딱서니 없는 아줌마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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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3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백주대낮에 인간이 벌이고 있는 모든 죄, 캬, 표현 끝내주네요.^^

깍두기 2004-09-3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렇다니 기분 좋습니다.(그리고 추천 감사히 받겠습니다. 덥석!)

마냐 2004-10-01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깍두기님이야말로...확실한 스포일러...(뭐, 이건 도입이니까...약하긴 합니다만..흐흐)로 시작하셨네요. ^^

깍두기 2004-10-0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로드무비님이 다 밝히셨으니까 전 뭐 확인사살 수준에서....^^
 

 

 

 

 

 

얼마 전 이 작가의 <천사가 된 비키> 리뷰를 쓰면서 그다지 좋은 평을 하지 않았는데, <잠옷 파티>는 마음에 든다. 캐릭터가 아주 생생하고, 사춘기가 될락말락하는 여자애들의 심리와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소하면서도 자기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사건들을 세심하게 잡아내고 있는 점이 좋다.

특히 <클로에>라는, 이야기에서 나름대로 악역을 맡은 등장인물의 묘사가 그럴 듯 하다.  여자애들 몇명이 모이면, 그런 애들이 꼭 있다. 잘 삐지고, 자기중심적이고, 모든 일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만족하며, 트러블를 조성하는 아이.

초등학교 5,6학년 여자아이들이 읽으면 꼭 내가 겪은 얘기하는 것 같다며 크게 공감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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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조커를 사용한 사람과 그것들을 쓰지 않고 가방 안에 간직해 둔 사람 중 누구를 더 높이 산다고 생각하느냐?"

짭짤한 비밀 거래 덕분에 조커를 잔뜩 지니게 된 것이 자랑스러웠던 베랑제르가 손을 들었다.

"조커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오, 선생님."

"절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그 조커들을 준 것은 쓰라고 준 것이야! 이젠 너무 늦었구나!"

교실은 침묵으로 뒤덮였다. 아마도 후회에 찬 침묵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조커들을 갖게 된단다. 어떠어떠한 조커들일까?"

조커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전문가인 샤를르가 외쳤다.

"살기 위한 조커요."

"그래 또 어떤 것들이 있지?"

선생님이 물었다.

"걷기 위한 조커요."

로랑이 대답했다.

"말하기 위한 조커요."

베랑제르가 로랑을 본떠 말했다.

"책읽는 법을 배우기 위한 조커요."

"여러가지 언어를 배우기 위한 조커요."

베네딕트네 분단은 역사를 배우기 위한 조커로 시작해서, 지리, 생물, 그 밖의 모든 과목의 이름들을 계속 댔다.

"운동하기 위한 조커요."

로랑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사랑하기 위한 조커요."

꿈꾸듯 베네딕트가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한 조커."

"울기 위한 조커."

"결정을 내리기 위한 조커."

샤를르도 여기 끼여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한 조커요."

"그래, 너희가 이제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우리들은 탄생과 더불어 이 모든 조커들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낫겠지! 내일은 인생과 인생의 조커들을 기리는 단체 생일 파티를 열자꾸나. 케이크는 내가 가지고 오겠다."

선생님께 선물을 드릴 생각을 한 아이는 또다시 샤를르였다. 그것을 대담한 발상이었다.

위베르 노엘 선생님은 마지막 선물로 아이들에게 하얀 공책을 한 권씩 주었다. 그 위에 선생님은 이렇게 써 놓았다.

'내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한 조커.'

그 때 샤를르가 선생님에게 커다란 봉투를 내밀었다. 선생님은 봉투를 열고 금빛 잉크로 씌어진 글귀를 읽었다.

'행복하고 명예로운 은퇴생활을 위한 조커.'

선생님은 기꺼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다."

 

나에게도 조커가 많이 있다. 그걸 적당한 때에 써먹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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