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짝사랑하던 여자랑 만났는데도 감히 그 여자랑 같은 테이블에 합석도 못하는 광식이(그러니까 7년간 짝사랑을 하겠지).

오늘, 겨울을 재촉하는 광풍이 불어 남은 낙엽을 죄다 아스팔트에 널부러뜨린 날, 광식이를 만나고 왔다.
광태도 만났다.
'여자랑 잘 때 속마음은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어둔다'는 놈. 괘씸한 놈.
그런데 이놈, 은근히 귀엽다.
바람둥이면서 내숭을 떨거나 점잖은 척 하면 정말 꼴보기 싫겠는데
아주 대놓고 작업을 거니 알면서도 넘어가 준다.
'한 여자랑 열두번 자기 전에 헤어진다'며
한번 잘때마다 커피전문점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열두칸이 그어진 보너스 쿠폰에 도장을 찍는
이 흉칙한 녀석이 밉지 않은 것이 바로 영화의 힘이겠다.

그에 비해 7년간 한 여자(애고, 속터져) 광식이.
고백을 해야할 때도, 키스를 해야 할 타이밍에도
언제나 한발짝 늦어버리는
그래서 결국은 7년 사랑 여자애의 결혼식에서 뒤늦게 내민 손을 거두어
결혼식 축가를(그것이 정녕 축가이던가)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을 수 밖에 없는 이 깝깝한 녀석을 보며
옆에 앉은 후배는
"사랑도 인생도 타이밍이야!"를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모자란 것도, 넘치는 것도 다 문제다.
모자라는 광식이, 넘치는 광태 형제가 쌍으로 버벅거릴 때
적당한 현실주의자,
배꼽 위의 마음과 아래 마음이 따로 있으며
배꼽 위의 마음을 움직이는 임자를 만났을 때 망설이지 않고 고백을 하고
아버지의 정년퇴임에 맞추어 결혼을 하는
일웅이는 사랑, 연애, 결혼에 성공을 하는 것이다.(그런데 난 왜 이리 이 녀석이 얄밉지...)

그러나 뭐, 기회는 한 번 뿐인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고 중년 연극배우가 보험광고에 나와 얘기하지만
연습이 없기는, 광식이와 광태는 저렇게 각기 다른 방식의 연습 끝에 운명의 상대를 찾아내잖아?
그리고, 그 연습하는 모습이 나름 예뻐보였다고나 할까.
특히 진심을 담은 광식이의 모습이 예뻐보였다.(내 취향이다^^)
머리는 별로 안 좋지만 매우 성실하여 남들 열번 읽고는 구구단 외울 때
백번을 외우면서도 불평않는 착한 놈을 보는 느낌.

마지막의 결혼 축가에서는 심지어는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의 사랑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서로가 원한다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
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줘요

실패했으면 어때. 연습도 이만하면 아름답지 않은가. 진심을 다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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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11-2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아직 못봤지만 왠지 영화보다 깍두기님 평이 더 찡한데요^^

그로밋 2005-11-2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참 많이도 부르고 들었던 노래네요. 그땐 그저 '아름다운 노래'정도였는데, 지금보니 가사가 가슴을 후벼파네요. ^^

깍두기 2005-11-2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간이 웃기고 재밌고, 그런 영화였는데 글쎄, 마지막에 광식이가 저 노래를 부르는데 왠지 모를 눈물이 나더라니까요ㅡ..ㅡ;

하루(春) 2005-11-2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가면, 최호석(이름은 가물가물). 중학교 3학년 때 저희 반의 노래 잘하는 애가 이 노랠 불렀는데 한 구석에서는 "가슴이 터지면 어떻게 해? ㅋㅋㅋ~"했다는... ^^

깍두기 2005-11-2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밋님, 그새 댓글 다셨네^^
영화가 옛 노래를 발굴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여기서 이 노래 참 어울려요.
좋은 노래를 발견한 것 같아 오늘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했어요^^

깍두기 2005-11-29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중3 녀석들이 뭐 인생을 알겠어요^^
그분들도 지금 저 노래 들으면 느낌이 다를 듯.

바람돌이 2005-11-2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이 영화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깍두기님 글 보니 보고 싶다는 생각이.... ^^

깍두기 2005-11-29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아주 좋지는 않구요, 제가 설명이 많은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약간 친절한 감이 있어요. 중간에 조금씩 김이 새기도 했죠.
그래도 저 두 녀석들이 참 괜찮아 보이더라구요. 실생활에서 만나면 어떨지 모르지만....^^

이매지 2005-11-2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영화는 못 봤는데, 갑자기 세월이 가면이 듣고 싶어지는군요. 원곡은 없으니 승환옹이 부른 곡이라도 들어야겠네요^-^;

깍두기 2005-11-2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최호섭 버전과 이승환 버전을 번갈아가며 들었답니다^^

산사춘 2005-11-29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러 갈 거예요. 영화에 대한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두기 2005-11-29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산사춘님을 배신하면 안될 텐데요^^
근데요, 저야 웃기고 재미도 있었지만 산사춘님의 유머내공에 저 영화가 마음에 찰지 심히 우려스러워요.

mannerist 2005-11-2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예의없는녀석 같으니... 축가로 저 청승맞은 노래를 부르다닛. ㅎㅎㅎ
(아. 아무래도 매너는 개드라이한 인간인갑죠. -_-ㅋ)

글샘 2005-11-29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노래는 정말 결혼 축가로는 젬병인 노래 같은데요...
이 노래는 이루어지지 못한 제 첫사랑 그녀가 참 많이 불러주던 노래였는데요...ㅋㅋㅋ

깍두기 2005-11-2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참 매너없는 놈이에요 그렇죠?^^ 그래도 저 순간 어찌나 찡하던지.....
글샘님, 그녀가 그런 노래를 불렀으니 이루어지지 못한 거죠^^;;;
저 노래는 정말 축가라기 보다는, 뒤늦은 사랑고백 정도?

부리 2005-12-0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세월이 가면이란 노래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영화는 느낌도 좋아요. 제가 이말을 했더니 다들 "나도 좋아해!" 이러던데, 전 진짜로 좋아해요. 제 책에도 그 노래 좋아한다고 썼구, 가사도 다 외워요. 근데 이거 보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분들은 가사도 못외울 뿐 아니라 작사, 작곡자도 모르더군요.

깍두기 2005-12-0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마디 했더니 오셨구랴?^^
(저는 이 노래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 어찌나 그럴싸하게 사용되었는지 좋아져 버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