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니? - 아기그림책, 까꿍놀이
유문조 기획, 최민오 그림 / 길벗어린이(천둥거인)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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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둘째가 엄마 무릎에 앉게 되면서부터 읽어준 책. '응가하자 끙끙'을 그린이가 그렸다고 해서 골랐는데 정말 의외로 재미있었다. 한두 살 아가에게 읽히고 싶은 책은 그림도 예쁘고 싫증 안나고 잘 훼손 안되는 책, 무엇보다 아가들을 웃게 만드는 책일 것이다.
이 책에는 글이 거의 없다. 동물들에게 '뭐하니?'묻고는 대답도 없고 그림만 보여주는데 엄마가 이야기를 만들어 읽어 주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다. 재미있는 건 '뭐하니?'하고 물을 때마다 힌트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뒤돌아 앉은 곰돌이 옆에 얼핏 보이는 비스킷과 사탕이 담긴 그릇. 이것을 넌지시 가리키면 큰애도 재미있어 하며 먼저 대답한다. '과자 먹어. 과자 먹고 있어. 나도 과자 먹고 싶어.'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면 비스킷, 사탕, 쵸코파이를 잔뜩 늘어놓고 비스킷을 한손에 쥔채 살짝 웃고 있는 곰돌이 얼굴이 보인다. 이제 큰애는 문제를 맞추었다는 성취감에 신나고, 작은애는 책을 덮고 과자를 먹고 싶은 욕구에 쫓긴다. 하지만 엄마는 잽싸게 다음 페이지를 걷어서 원숭이 꼬리를 신나게 가리킨다. 관심돌리기 작전이 오늘은 성공할까? 또,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책에 나온 것처럼 함께 이불 뒤집어 쓰고 까꿍놀이를 하면 애들이 신나서 어쩔줄 모른다. 아직 돌이 안된 아가에게 읽히고 싶은 책을 고르시는 분들, 이 책 한 번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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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뜸 1
파테네 허즈 / 오늘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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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터네 허즈 세이드 자버디. '눈뜸'의 작가 이름을 다시 되뇌어 보아도 약간 어감이 낯설다. 이 느낌은 어릴 때 어른들이 명작이라고 해서 읽은, 러시아 소설에 나오는 아주 길고 낯선 이름을 대할 때의 생경함과 비슷하다. 하지만 소설 내용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란 문학을 처음 대하는데도 마치 우리 나라 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는 듯이 편한 느낌을 가진 건 왜일까? 작가의 평이하면서도 수려한 문체와 훌륭한 번역이 어우러져 그런 것 같다.

처녀작이면서 혁명 이후 이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초베스트셀러라는 말에 처음에는 혹하여 책을 읽게 되었다. 그렇지만, 잠깐 소설 좀 볼까 든 책을 여섯시간 동안이나 들고 있었으니 이 책에는 나를 끄는 무엇이 있었을까? 역자는 이 책에 대해 이르기를, 이란판 여자의 일생 같은 책이라고 하였다. 열다섯의 꽃같은 나이에 자신이 속한 귀족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야성미 하나에 이끌려 천한 신분의 목공에게 불타는 사랑을 느끼고 우여곡절 끝에 부모와 생이별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여자. 그러나 몇 달 안가 야수와 같은 본성을 가진 남자와 시어머니로 인하여 겪게 되는 끔찍한 인생역정과 그 과정 속에서 자아에 눈뜨고 인생에 눈뜨는 여자.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사랑의 순간을 기억하고 싶거나 '여성'이라는 이름을 처절하게 되묻고 싶을 만큼 가부장적인 사회제도에 신물난 사람들, 혹은 그저 지금 서 있는 그곳을 잠시 잊고 페르시아로 독서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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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구멍 길벗어린이 과학그림책 5
이혜리 그림, 허은미 글 / 길벗어린이(천둥거인)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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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친구가 자기 아들 딸들이 이젠 볼 때가 지났다면서 내게 선물로 준 책이다. 내용이 참 재미있어서 주변 사람에게 선물용으로도 많이 산다고 주었는데 처음에는 책을 안 좋아하는 우리 아들들에게 너무 어렵지 않을까 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중간쯤에 허파니 식도니 장이니 과학적인 용어가 나오고 그것들이 하는 일까지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우리 둘째는 8개월때부터 그 책을 너무 좋아하여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내가 처음 읽어줄 때는 상세하게 설명된 데는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장면에 놀이터에서 긴 터널을 들어가며 노는 아이들 모습이 나오는데, 글은 '우리 몸의 구멍들은 하는 일이 다 달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지.'라고만 되어 있어서 재미가 없을까봐 나대로 그림에 나오는 장면을 이야기로 만들어 읽어 주었더니 너무 재미있어 했다. 비디오광인 큰아들도 그 페이지를 읽을 때면 슬그머니 옆에 와서 들여다보는데 나는 이렇게 꾸며 보았다. '영숙아, 밥먹어라. 이봐, 영숙아! 너네 엄마 왔어. 어, 그래? 야잇, 터널로 들어가야지. 어휴, 방귀 냄새! 모래성을 쌓자. 나, 누구게? 미숙이. 으앙,넘어졌어, 이잉. 있쟎아, 우리 보물찾기 할까? 까호, 미끄럼틀이다! 어휴 시끄러워!' 인물 하나하나에 대사를 만들어 읽어 주며 손으로 짚어 주었는데 그 페이지를 제일 좋아해서 나도 흡족하다. 한 군데 선물도 해봤는데 평판이 좋았고, 또 누군가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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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인간
심포 유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들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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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다, 무언가 재미난 책, 고개가 뻐근하다 싶을 정도로 푹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 없을까 싶을 땐 추리소설도 좋을 듯 하다. 심포 유이치의 '기적의 인간'을 덮으며 나는 내가 앞으로 추리소설에도 가끔 배고픈 눈길을 둘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릴 때 읽은 호움즈 시리즈와 루팡 시리즈, 에드가 앨런 포우의 소설들도 참 좋았는데, 이 책은 추리 소설의 모습을 띠면서도 공포나 섬뜩함의 정서를 몰고 오기 보다는 애틋함, 안타까움, 동정심 비슷한 심정을 더 느끼게 하였다.

소마 가쓰미는 교통사고로 뇌사 직전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의식이 회복되고, 입원한 지 8년만에 거의 정상인으로 돌아와서 병원에서는 다들 그를 '기적의 인간'이라 불렀다. 거기에는 본인의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도 있었겠지만 어머니의 무한한 희생과 봉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죽고, 이제 나이는 서른 살이고 사고 수준은 열두세 살 정도 밖에 안되는 그가 퇴원하게 된다.

혼자서 밥을 지어 먹고, 전철을 타고, 공과금을 내고 청소를 하는 등의 남들 다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그에게는 참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조금씩 도전한다. 그런데 가쓰미는 자꾸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자신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데, 과거찾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가쓰미가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어갈 즈음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거의 자아가 분열될 정도가 된다. 자신은 과거의 자아를 공격하고 단죄하는 것인데 현상적으로는 주변의 무뢰배들을 무참하게 때리는 그 슬픈 장면은 작가의 역량으로 참으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안개처럼 몽롱한 기억도 없는 그에게 겹겹의 비밀을 벗기는 과거찾기는 쉽지 않다. 8년이란 세월은 문서파기 기간인 5년을 훨씬 넘는 것이고, 과거에 대해 힌트라도 주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돈도 없고 직장일로 시간도 쫓기고, 만나는 사람마다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위장되고 숨겨진 누군가의 의도와 부딪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소마 가쓰미는 과거의 소마 가쓰미를 어떻게 만났을까? 그리고 과거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것은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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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2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비공개 마이리뷰인데 보이는데요?

비자림 2006-04-26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4년 전 글이네요. 그 때 아마 비공개로 설정해 놓고선 또 나중에 공개로 했는지, 기술이 부족해서 아직 서재 관리가 서툴답니다.
 
시즈코의 딸
교코 모리 지음, 김이숙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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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미숙한 자아를 교양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키워 나간다. 그런데 그 시행착오 속에 운명의 장난으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외부적 충격이나 상처를 받고 비틀거리게 되고 인생의 고통과 씁쓸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통과의례라고, 그 시절을 지나고 난 사람들은 가볍게 기억하겠지만, 지금 그 음울한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그립고 누군가의 아늑한 품에 기대고 싶은 작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을까?

가스를 마시고 자살한 어머니. 열두 살에 그 충격과 슬픔을 겪은 유키는 독특한 아이였다. 집안일을 차근차근 일상적으로 가르치기보단 꽃이름을 가르치고 자연의 풍광과 멋을 즐길 줄 알았던 어머니의 절대적인 영향으로 공상을 잘 하고 자기 주장이 또렷하고 모험심이 있으면서도 사려깊은 아이였다. 그러나 새엄마의 눈에는 긴 머리카락을 아무 데나 흘리고 다니고 고집이 세고 부엌일을 아무 것도 못하는 애물단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키의 새엄마는 동화책에 으레 나오는 전형적인 계모의 모습이라 더욱 안타까웠는데 잔인하고 표독한 새엄마와 냉정하고 무관심한 아버지 때문에 유키는 집에서 거의 말을 않고 지낼 정도록 외롭고 고통스런 사춘기를 보내게 된다.

인생과 사랑에 대해 비관적으로 인식하는 여자아이에게 무엇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유키는 당당한 모습의 사히코라는 여자아이를 동경하게 되고 친구가 되지만 사소한 말다툼 끝에 그녀를 잃게 되고 학교생활도 민감한 감수성 탓에 상처를 받게 된다. 엄마 없는 세상에서 비틀거리며 혼자 슬픔을 감내하고, 그것도 모자라 가족들의 따스한 위안도 받지 못하고 되려 구박과 무관심 속에서 자란 유키는 냉소적이고 공격적으로 점점 변하면서 합법적인 탈출만 기도할 뿐이다.

독립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던 그녀는 외할아버지의 쓰러짐과 죽음 앞에서 정신적인 각성과 성숙을 겪는다. 완전히 자신을 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외가의 사랑을 인식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12년 동안 풍부한 감수성을 키워주고 사랑을 베풀어준 엄마의 영향 때문에 유키는 홀로 잘 커간 것이다. 결말 부분에서 남자친구의 사랑을 수용하고 자신의 사랑도 인정하게 된 그녀의 모습에 나는 코끝이 찡했다. 큰다는 것은 육체만 크는 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만 크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이 세계를 이해할 줄 알아야만 진짜로 크는 것이기 때문이다.

'색깔들의 광휘로 비탄에 젖은 단조로운 애도소리를 막고 싶었다.'처럼 시적인 문장이 가끔 구사되고,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유키의 슬픔,고요하게 응어리진 슬픔이 읽는 독자에게까지 조금씩조금씩 스며들게 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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