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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인간
심포 유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들녘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심심하다, 무언가 재미난 책, 고개가 뻐근하다 싶을 정도로 푹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 없을까 싶을 땐 추리소설도 좋을 듯 하다. 심포 유이치의 '기적의 인간'을 덮으며 나는 내가 앞으로 추리소설에도 가끔 배고픈 눈길을 둘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릴 때 읽은 호움즈 시리즈와 루팡 시리즈, 에드가 앨런 포우의 소설들도 참 좋았는데, 이 책은 추리 소설의 모습을 띠면서도 공포나 섬뜩함의 정서를 몰고 오기 보다는 애틋함, 안타까움, 동정심 비슷한 심정을 더 느끼게 하였다.
소마 가쓰미는 교통사고로 뇌사 직전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의식이 회복되고, 입원한 지 8년만에 거의 정상인으로 돌아와서 병원에서는 다들 그를 '기적의 인간'이라 불렀다. 거기에는 본인의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도 있었겠지만 어머니의 무한한 희생과 봉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죽고, 이제 나이는 서른 살이고 사고 수준은 열두세 살 정도 밖에 안되는 그가 퇴원하게 된다.
혼자서 밥을 지어 먹고, 전철을 타고, 공과금을 내고 청소를 하는 등의 남들 다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그에게는 참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조금씩 도전한다. 그런데 가쓰미는 자꾸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자신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데, 과거찾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가쓰미가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어갈 즈음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거의 자아가 분열될 정도가 된다. 자신은 과거의 자아를 공격하고 단죄하는 것인데 현상적으로는 주변의 무뢰배들을 무참하게 때리는 그 슬픈 장면은 작가의 역량으로 참으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안개처럼 몽롱한 기억도 없는 그에게 겹겹의 비밀을 벗기는 과거찾기는 쉽지 않다. 8년이란 세월은 문서파기 기간인 5년을 훨씬 넘는 것이고, 과거에 대해 힌트라도 주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돈도 없고 직장일로 시간도 쫓기고, 만나는 사람마다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위장되고 숨겨진 누군가의 의도와 부딪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소마 가쓰미는 과거의 소마 가쓰미를 어떻게 만났을까? 그리고 과거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것은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