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였어?" 그녀가 물었다.

환한 뉴욕의 대낮.

"천만이나 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날 선택한 거지?"

"난 당신처럼 마음이 텅 비고 외로웠어. 다른 가능성이 없었던 거야."

그건 내 솔직한 대답이었고 그녀는 안심한 듯 어느새 잠이 들었다.


미하엘 크뤼거의 달빛을 쫓는 사람들 중에서


토요일 4시 32분!  미지의 여인에게서 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0 00 님 댁 맞으시죠?”

“그런데요? 누구신데요?”

“본인이신가요?”

“예! 그런데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고객님! 하나로 통신인데요. 댁 전화기를 KT 쓰시던데...”


마침 포크너의 따분하고도 지루한 “미시시피”얘기에 질려있던 터라, 난 갑자기 장난끼가 동했다.


“아! 하나로 통신이시군요. 일면식 하나 없는 고객에게 이런 친절한 전화를 다 주시고 감사합니다.”

“네? 아... 예, 근데 0 00 댁 맞으신가요?”

“예. 맞습니다. 전화 정말 잘 하신거에요.”

“네? 네.”

 

잠시 침묵..

 

“하나로 통신 인터넷 서비스 잘 쓰시고 계시죠? 그런데 전화도 저희 하나로 통신으로 바꾸시면 여러 혜택이 있습니다...”

“잠시 만요, 전 말이 길면 잘 못 알아듣습니다. 육하원칙 아시죠? 왜 하나로여야만 하는지, 육하원칙에 딱 맞게, 짧게 해주세요. 30초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육하원칙에 맞추어 해주세요. 지금 카운트 들어갑니다.”

“어? 네?”

 

무척이나 당황한 미지의 여인은 잠시 후 수화기를 내려버렸다.

미지의 여인으로부터의 전화는 항상 내가 먼저 끊어오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낯선 타자와의 대화는 언제나 불편하다. 침묵은 나에게 그리 불편한 것이 아니지만, 낯선 타자와 함께 마주친 침묵은 정말로 힘겹다. 이 기묘한 침묵은 손가락과 발등을 바삐 만들고, 괜스레 침이 마르는 것이다. 그러다 이 무거움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사람이 먼저 입을 떼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언제나 five W's and one H중 하나이다.

21세기! 지금 현생인류간의 모든 소통은 five W's and one H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있어서는... 어떨까?


WHEN

        1)언제부터 날 사랑했어?

        2)우리가 언제부터 손을 잡게 되었지?

        3)우리가 처음 키스한 날이 언제야?

WHERE

       1)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 어디인지 기억나?

       2)우리 어디서 만날까?

       3)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말해봐. 거기로 가자.

    

WHAT

      1)지난 월요일 우리 뭐했냐. 기억나?

      2)네가 지난번 갖고 싶다고 했던 거. 뭐였냐?

      3)내일 너 뭐할 거야?

WHY

      1)넌 왜 날 사랑하니?

      2)왜 그렇게 화가 난거야? 이유가 뭐야?

      3)날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넌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아. 그렇지?

WHO

      1)누구야? 지금 방금 네 옆에 있던 사람...

      2)내가 누구랑 있던 넌 상관 하지마! 넌 나한테 딱 그 정도 일 뿐이야.

      3)지금 그 사람은 누구랑 있을까? 과연 우리가 사랑을 했을까...

HOW

      1)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렇게 잔인한 짓을 어떻게 나에게

      2)어떻게 우리 사랑이 끝나버린걸까?

      3)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잊을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우린 항상 무언가를 설명하려 애써왔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도...

이젠 그만두어도 되지 않을까. 뭔가를 설명하려 애쓰는 짓 따윈!

언제나 의미가 말이 되면 변질되어버리기 마련이지만, 때론 구차히 뭔가 말하려 애쓰지 않아도 나의 침묵을 그저 묵묵히 받아주는 그런 사람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난 자네를 정말 많이 좋아했어. 테리. 미소 한번과, 가벼운 인사 한번, 그리고 손짓 한번과 여기 저기 조용한 Bar에서 술 몇 잔 마신 것만으로도 그렇게 됐지, 그러는 동안 즐거웠네. “잘 가게. Amigo. 안녕히!”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그 말은 이미 진짜 의미가 있었을 때 했지, 그 말이 정말 슬프고 외롭고 마지막이었을 때 했던 거야.

 

Raymond Chandler의 “The Long good bye" 중에서

 

 

ps> 전 Alone together라는 곡을 참 좋아합니다. 인간은 항상 혼자일 수도, 항상 함께 있을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 모순성이야말로 인간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본성임에 틀림없다고 믿고 있죠. 그래서 이 곡을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Alone together는 1932년 뮤지컬 "flying collars"에 처음 삽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뮤지컬은 어느새 잊혀져 버리고, 이 곡만이 다행히도 살아남았죠. Popular한 곡인만큼 여러 version이 있습니다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케니 도햄의 것입니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쳇 베이커, 음울하고 철학적인 에릭 돌피, 감성과 테크닉 모두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마일즈 데이비스, 정감이 넘치고 절묘한 인터플레이가 매력적인 짐 홀&론 카터, 광폭하면서도 처절한 음색의 아치 세프 등등 수많은 버전이 존재하지만, 쓸쓸하지만 왠지 따스한, 서글픈 꿈같은 느낌을 주는 건 오직 케니 도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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