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바턴(Lucy Barton)을 전 남편 윌리엄은 버튼(Button)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바턴은 나에게도 버튼이다. 눈물 버튼.
루시의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한 이야기는 늘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데, 오늘도 또...
열일곱 살이 되어서 나는 시카고 바로 외곽에 있는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 중 대학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로상담교사가 나를 대학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미세스 내쉬였다. 8월말 어느 토요일 오전 10시에 그녀가 나를 태우러 왔다.
전날 밤, 나는 엄마에게 짐을 뭘 싸야 하는지 물었다. 엄마는 말했다. "네가 뭘 싸든 관심 없어." 그래서 결국 나는 부엌 씽크대 밑에서 채소 담는 종이봉투 두 개를, 그리고 아빠 트럭에서 상자 하나를 가져와 내 옷가지를 담았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9시 30분에 차를 몰고 나갔다. 나는 뛰어나가 흙먼지 이는 진입로를 달려가며 "엄마! 엄마!" 하고 불렀다. 그러나 엄마는 차를 몰고 "재봉 및 수선"이라고 손으로 쓴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도로로 빠져나갔다. 오빠와 언니는 집에 없었는데,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10시 조금 안 돼서 나가려는데 문가에서 아빠가 말했다. "필요한 건 다 챙겼니, 루시?" 아빠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내가 말했다. "예, 아빠." 그러나 대학에서 뭐가 필요한지 나는 아는 게 없었다. 아빠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난 그냥 안에 있으마."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대답했다. "그럼요. 저는 나가서 기다릴게요." 그리고 나는 내 옷가지가 든 종이봉투와 상자를 들고 미세스 내쉬의 차가 올 때까지 진입로에 서 있었다.
미세스 내쉬의 차에 올라탄 순간부터 나의 인생은 변했다. 정말,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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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파트 창가에 앉아 도시의 풍경을, 도시의 불빛들과 저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바라보고 있는데 대학 첫 날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주었던 고등학교 때 진로상담교사 미세스 내쉬 생각이 났다--나는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 차를 몰고 가다가 그녀가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쇼핑몰로 들어가더니 내 팔을 두드리며 말했다." 내려, 내려." 차에서 내려 쇼핑몰에 들어가더니 그녀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루시, 10년 후에는 네가 갚을 능력이 될 거잖아, 그렇지?" 그러고는 나에게 옷가지를 사주었다. 다양한 색깔의 긴팔 티셔츠 여러 장, 치마 두 개, 블라우스 두 개, 블라우스 중 한 벌은 예쁜 전원풍의 블라우스였다. 그리고 그녀가 사준 것들 중에서 정말 최고로 가장 좋았던 건 속옷이었다. 예전에 본 적 있던 정말 예쁜 속옷 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딱 맞는 청바지도 한 벌 사주었다. 그리고 여행가방도 사주었다! 빨간 테두리가 있는 베이지 색 가방이었다. 차로 돌아와서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하자. 이 가방에다 네 짐을 다 넣는 거야." 그러더니 그녀는 차 트렁크를 열고 여행가방을 트렁크에 싣고는 가방을 열어 내가 예전에 본 적 있는 아주 작은 가위로--나는 나중에 그게 손톱 소제용 가위라는 걸 알게 되었다--가격표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그렇게 우리는 내 짐을 그 여행가방에 모두 담았다. 그녀가, 미세스 내쉬가, 그 일을 했다. 10년 후 그녀는 죽었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는데, 그렇게 나는 그녀의 빚을 갚지 못하게 되었고, 그녀를 결코 잊지 못했다. (캐서린과 쇼핑을 갈 때마다 나는 미세스 내쉬와의 그날 일이 생각났다.) 우리가 대학에 도착했을 때, 나는 미세스 내쉬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선생님이 저희 엄마인 척해도 돼요?" 그러자 그녀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럼, 그래도 돼, 루시!" 비록 그녀를 엄마라고 부를 일은 없었지만 그녀가 나와 함께 기숙사에 들어갈 때 그녀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했고 사람들은 그녀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