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기분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점 나빠져서 내일 점심에는 롯데리아에 가서 새우버거라도 먹어야 할 것 같댜. 요즘 봄을 타는 삼월이는 지금까지 나를 들들 볶다가 저도 지쳤는지 벌써 잠이 들었다. 하도 투정을 잔소리를 퍼부어대길래 나도 지지 않고 소리를 빽 질렀다. 


"거실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굴지 말고 방으로 들어와서 말해! 방에 들어와서 눈을 보고 말하라고!"


집에 가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를 보러 집에 간 지 3년? 5년?도 더 된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게 말하지 말걸. 내일 취소하면 너무 속 보이니까 금요일쯤 문자로 비상근무가 잡혀서 못 가겠다고 말해야겠다. 사람에게 잘해주지 말아야 한다. 관계는 얼른 보기에만 별거 아니고 쉬워 보이(고 심지어 좋아 보이기까지 하)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부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려워지기만 한다. 너무 어려워서 엄마도 안 보고 싶을 정도로.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맞아! 올해는 재미있는 것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했지 참. 책도 재미있는 책만. 말도 하고 싶은 말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러지는 말자고, 싫은 건 그냥 하지 말아보자고, 노력 같은 것도 하지 말아보자고, 올해는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고 마음먹었었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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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작가의 신작. <청담동 살아요>,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그리고 이제 <나의 해방일지>

경기도 외곽에 사는 세 남매의 이야기. 1횐가 2횐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달걀 프라이를 보며 서울은 노른자고 경기도는 흰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민기가 자신은 경기도민이라 흰자 먹을 테니 사장님은 노른자 드시라고. 비유가 너무 찰떡 같아서 서울 떠올릴 때마다 생각날 듯.


동네 카페 앞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다 염창희(이민기)는 그런 말도 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런 인구밀집도 떨어지는 시골에 살았으니까 친구 한 거지 쌔고쌘 게 또래들인 도시에 살았으면 나 너랑 친구 안 했어. 반경 10km 이내에 또래를 쓸어모아도 열댓명이 안 되는 이런 시골에 살았으니까 내가 어쩔 수 없이 같이 논 거지. 시골은 이게 문제야. 하여튼 나이만 같으면 다 친구야. 나 어려서 여자애 하나 껴서 넷이 놀았다고 그러잖아. 그러면 되게 죽이 맞았나 보다 그래. 그냥 네 명이 전분 거야 동네에. (염미정(김지원)을 가리키며) 쟤! 쟨 또래 하나도 없어갖고 동네 바보랑 놀았잖아. 개똥이랑. 

이런 시골에선 친구도 식구랑 같은 거야. 식구를 가려 만나? 그냥 태어나니까 식구래. 그냥 태어나니까 친구래. 옆집에 애 하나 있대. 학교에서도 옆에 앉는 짝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딴 애랑 놀면 돼. 근데 동네친구? 이건 답이 없어."


*


대체로 나는 이민기가 연기하는 역할에 대해 되게 동류의식을 느끼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가장 나 같은 인물을 찾으라고 하면 이민기. 이민기의 지난 번 작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도 이민기에게 감정이입되었었는데. 전생에는 고양이였지만, 다음생에 인간 남자로 태어나면 이민기(가 맡는 역할들) 같은 남자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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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4-12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눈여겨 보고 있는 중인데 최근 영화 <야차> 보고나서 이엘이라는 여배우에 관심이 가서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어요.
너무 어둡다, 칙칙하다는 여론도 있던데 무시하고 한번 시작해봐야겠어요. 더구나 <청담동 살아요>, <나의 아저씨> 작가라니 뭐...

Joule 2022-04-12 09:54   좋아요 0 | URL
이엘, 드라마 <도개비>에서 삼신할매로 나왔던 분이잖아요. 연기를 잘하는구나, 느꼈어요 이번에.
캐스팅이 정말 역대급. 모든 연기자들이 다 생활인 같아요. 연기자 안 같아요. 그래서 와 캐스팅 진짜 대박이다 해요, 다들 연기인데 왜 다들 연기 안 같고 진짜 저런 사람인 것 같은 건지.
TVN ‘우리들의 블루스‘ 끝나고 바로 JTBC 돌리면 ‘나의 해방일지‘ 하잖아요.
이거야말로 빅매치. 노희경과 박해영이라니.

저는 설경구를 별로 안 좋아라 해서 <야차>는 못 보고 있어요 ㅠㅠ
 


유튜브를 좋아하는 삼월이. 보통은 낭만고양이를 틀어주는데, 오늘은 으으냥. 호감 가는 고양이가 있으면 좀더 집중해서 보고, 영상을 보다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면 고개를 돌려 나를 가만 쳐다본다. 기본적으로 유튜브 볼 때 삼월이 마음은 좀 말랑말랑해지는 듯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차하는 표정. 내 주먹보다 작은 뇌를 가진 삼월이가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못견디게 귀엽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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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4-10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와 고양이를 두려워하는데(전생에 쥐였나-_-a) 저 고고하고 우아한 모습은 제가 느끼는 Joule님과도 겹쳐보입니다^^

Joule 2022-04-10 10:58   좋아요 0 | URL
아마 여러 전생 동안 달밤 님은 인간이었나 봐요. 그래서 짐승의 느낌을 잊어버렸을지도. 저는 전생에 고양이였어요. 그래서 성격이나 하는 짓도 고양이와 거의 완전 똑같아요. 전생의 흔적이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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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4-10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참 예쁘네요@_@;;; 그림 같아요. 파란 하늘에 구름 한 덩이^^ 그러고보니 하늘도 쳐다보지 않고 살았나봐요@_@;;;

Joule 2022-04-10 10:54   좋아요 0 | URL
ㅋㅋㅋ 고마워요. 저 사진 찍어놓고 구름이 너무 뭐랄까 단독직입적이라고나 할까 나 구름! 그래서 웃기기도 하고 뿌듯했거든요. 구름 한 덩이 ㅋㅋㅋ
 


중성화 수술을 마친 패기. 이제 패기에게도 친구가 생길 것이다. 

"우리 패기 중성화수술 했으니까 이제 친구도 생기고 인기냥이 될 거야. 이쁜이도 도망 안 가고 같이 놀자고 할지도 몰라. 삼월이 언니도, 동구 형아도, 진식이 형아도 다 중성화 수술 했어. 멋있는 고양이들은 다 하는 거야."

나는 택도 없는 소리를 해가며 패기를 어르고 달래고 구슬렀다. 수술을 하고 나면 어쨌든 마음에도 상처를 입은 고양이들은 한동안--때로는 쭉--모습을 비추지 않는데 패기는 집에 돌아와서도 바로 도망가지 않고 내가 주는 밥을 다 먹고, 다음날에도 이웃집 계단 난간에서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야옹~" 하고 알은척을 해주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맛있는 통조림을 따주고 개나리 나뭇가지로 잠깐 놀아도 줬다.


올해는 봄비가 미리 내려서 벚꽃이 마음놓고 흐드러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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