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에 단지 파프리카를 넣었을 뿐인데 내가 원하는 볶음밥이 되었다. 

양파, 당근, (씨 뺀) 청양고추, 파프리카. 소금, 간장, 후추. 달걀.

파프리카의 아삭하고 주시함이 볶음밥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볶음밥은 기본적으로 밥과 채소의 수분을 날려줘야 하는데, 수분이 모두 날아가버린 볶음밥은 필연적으로 먹으면서 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파프리카가 제 안에 가지고 있던 수분을 입 안에서 터뜨려줌으로써 볶음밥의 딜레마랄까 한계가 단박에 해소되었다.

음... 과연 인사가 만사로군.



"누나~ 누나~ 누나~ ㅇ로ㅓㅎ푸아사푸ㅠㅇ라ㅣㅜㅍ아ㅓㅟㅜ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삼월이가 나를 미친듯이 불러댄다. 옆집에 미안할 정도로. 

"삼월아,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용히 해!"

설거지를 마치고 베란다에 나가보니 세탁기가 다리 한 쪽이 밑으로 빠진 채 쿵쿵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다. 수평이 맞지 않아 덜덜거리더니 앞으로 전진해오다 결국 다리 하나가 빠진 것이다.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던 삼월이는 세탁기가 덜덜덜 굉음을 내며 자신을 향해 전진해오니 깜짝 놀랐겠다. 그래서 나를 불렀나 보다.

"언니, 언니, 큰일 났어! 세탁기가 앞으로 와! 얼른 와 봐! 세탁기가 움직인다고! 나한테 막 온다니까!"

사물함을 뒤져 세탁기 수평조절용 다리 받침대를 찾아 내 안의 작지만 힘센 요정 서넛을 불러 함께 힘을 내어 세탁기의 수평을 맞추고 뒤로 밀었다.

수평이 맞춰진 세탁기는 다시 평온을 찾았고 삼월이는 염려하며 세탁기를 살핀다.  



삼월이의 귀여운 얼굴 사용법.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