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근무하고 있는 부서는 업무가 비교적 할랑한 편이어서 시간이 비는 틈틈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손님들이 요구하는 업무는 단순하고 그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빈 시간이 제법 난다. 그렇게 5권짜리 <레미제라블>을 읽었고, 벽돌 규격이지만 술술 읽히는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읽었고, 읽었고 읽었다.


지금은 오랫동안 읽고 싶었으나 발번역 때문에 미루고 있다 새로 번역된 <생각에 관한 생각>과 친애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Oh, William>을 읽고 있다. <오, 윌리엄>은 카피라이트가 2021인 걸로 보아 아직 번역되지 않은 듯하여 부득이 영어 원서를 붙잡고 있다. <버지스 형제>처럼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세계관에 속한 책이다. 화자가 루시이고, 루시의 첫 번째 남편 윌리엄에 대한 이야기. 따라서 윌리엄을 읽으려면 루시 바턴을 먼저 읽는 게 순서에 맞고 자연스럽다.


아침에 조금 일찍 출근 준비가 끝나 가까이 놓여 있던 <오, 윌리엄>을 펼쳐 들었다가 아니나다를까 순식간에 빨려들어가서 회사에까지 들고와버리는 바람에 나는 지금 딜레마에 빠졌다. 비는 내리고 마침 손님은 적어서 책을 읽으려는데,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에 관한 생각>도 읽고 싶고, <오,윌리엄>도 읽고 싶고, 동시에 둘 다 읽고 싶다. 어쩌지. 


한쪽 주장만 들은 참가자는 양쪽 주장을 다 들은 참가자보다 판단에 더 확신을 가졌다. 이런 확신은 이용 가능한 정보로 자기가 직접 구성한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일관되다고 느낄 때 나온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낼 때 중요한 것은 정보의 일관성이지, 정보의 완성도가 아니다. ... 증거의 양이나 질은 주관적 확신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 믿음에 대한 확신은 대개 눈에 보이는 정보가 아주 적을지라도 그것으로 얼마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Grief is such a--oh, it is such a solitary thing; this is the terror of it, I think. It is like sliding down the outside of a really long glass building while nobody sees you. 

슬픔은 너무나 혼자만의 일이다. 그래서 두려운 것 같다. 아무도 못 보는 사이에 높은 빌딩 유리창 밖으로 나 혼자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처럼.

   

 


이럴 때 필요한 게 원칙. 생각에 관한 생각은 회사(에서 읽기로 한) 책이고 윌리엄은 집(에서 읽어야지 마음먹은) 책이니까, 지금은 일단 생각 생각을 읽는 게 맞다. 고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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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4-10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시에 둘 다 읽고 싶은데 어쩌지. 너무나 행복한 고민♡ <오, 윌리엄>은 Joule님께서 얼른 번역해주셔야 평민(저입니다;)이 은총을 누리겠는데요ㅜㅜ
 

어제는 너무 슬퍼서 너무 슬플 것 같은 영화를 보았다. 노웨어 스페셜. 그런데 예상보다 더 슬퍼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며 영화 장면을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눈물이 뚝뚝 콧물이 줄줄 흘렀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죽음을 앞둔 미혼부가 어린 아들을 맡길 가정을 찾는다. 그런데 아빠도 아들도 울고 부둥켜 안거나 뭐 그런 신파적인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더 슬프다. 막 가슴이 미어진다. 죽음에 관한 매우 훌륭한 영화 <스틸 라이프> 그 감독 작품이라던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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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4-10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그렇게 슬프셨던걸까요.Joule님ㅠㅠ 영화는, 줄거리만으로도 너무 슬프네요. 저는 못 볼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감정이입되는게 너무 힘들어서 영화를 잘 못 보게 되었어요ㅜㅜ;;;

Joule 2022-04-10 11:02   좋아요 0 | URL
사실 저 엄청 잘 울어요. 저 어렸을 때 별명이 울보(그것도 엄마가 지어준). 저희 엄마가 말하길. 저 년은 욕만 해도 운다고 ㅋㅋㅋ
특히 죽음은 저의 눈물 버튼이라서 누가 죽을 것 같으면 울어요.

너무 슬프니까 달밤 님은 보지 마요. 울면 힘들잖아요.
 

"어떡하면 좋지, 밥? 나는 이제 가족이 없어."

"형은 가족이 있어." 밥이 말했다. "형을 미워하는 아내가 있잖아. 형한테 잔뜩 화가 난 자식들도 있고. 형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동생들도 있고. 머저리같이 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머저리가 아닌 조카도 있고. 그런 게 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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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1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 대화 역시 스트라우트여사!
갑자기 버지스 형제를 빨리 읽어야겟다는 생각이 확 드는 강렬한 밑줄입니다. ^^

Joule 2022-03-14 13:38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도 스트라우트 중독자시군요.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이용한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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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고양이 책은 이것만 읽으면 된다. 다른 책은 구성이 좀... 별로. 아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하고 싶은 책. 고양이와 친해지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 맛있는 것을 많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같이 시간을 보내야(빈둥거려야) 한다. 한 마디로 백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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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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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문체. 행간을 다루는 솜씨가 가히 경이로워서 문장 반 공기 반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 그래서 일단 읽게 되면 모두의 인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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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22-02-1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진짜?!


(사실 일전에 이 페이퍼 읽고 해당 책을 의무에 가깝게 구매해 놓고는 물론 안 읽고 있었는데 이래저래 오늘따라 그냥 댓글 남겨요 ;)

Joule 2022-03-10 16:15   좋아요 0 | URL
한수철 님께는 <버지스 형제>를 추천합니다. 그쪽이 접근하기 쉽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