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방엔 자신의 책 외에 누나에게서 물려받은 동화책 그리고 대책 없는 엄마에게서 강제로 떠맡은 그림책까지 책이 좀 있는 편이다. 침대 발치에 가득 차서 누우면 어떤 책을 볼까 고르는 즐거움도 있지만 작은 방이 더 답답할 듯도 해서 치워주랴 물으면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괜찮은 독서환경이라고 가슴 뿌듯한 것은 나의 착각인지 둘째는 편식을 하듯 읽은 책만 계속 읽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좀더 폭 넓은 독서를 위하여 예전에 들었던 방법을 실천하기로 하였다.
퇴근길에 작고 동그란 스티커와 별모양 스티커를 사가지고 갔다.
한번 읽은 책에는 동그란 스티커를 한개, 두 번 읽은 책에는 두개, 아주 많이 읽은 책에는 별표 스티커를 붙이는 놀이를 하였다. 누나까지 가세하여 누나는 빨간색과 노란색, 동생은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붙이기로 하였다.
스티커를 붙여보니 두 아이의 독서습관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들의 별표 베스트는 대현출판사의 삼국지 만화 60권 - 본인 말로는 별표 10개를 붙여야 한단다. 그림이 거칠어서 별로 사주고 싶지 않았지만 하도 졸라서 사주었는데 삼국지 주요전투가 벌어진 백제성, 청주성의 지도를 그리며 놀기도 하니 당연한 결과겠지. 그런데 언제부터 글로 된 삼국지를 읽게 하면 좋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 다음 별표 베스트들은 왜 그런지 궁금해요 시리즈를 필두로 하는 역사, 과학 쪽 시리즈 물 일색이다. 거기다가 만화가 대부분이고 창작 동화나 명작 동화는 작년까지만 해도 곧잘 읽다가 요즈음은 거의 읽지 않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정반대로 딸아이가 즐겨읽은 책은 창작동화, 명작 동화가 대부분이고 끝까지 읽은 역사물은 거의 없는 것이 아닌가? 또 친지의 강력권유로 구입하였던 학습만화 전집과 위인전을 정작 큰아이는 거의 들쳐보지 않아 애통하였었는데 둘째는 구석에 방치해 놓은 것을 찾아서 두 번 이상씩 읽은 것을 보니 두 아이의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 아들과 딸의 차이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이건 다 읽은 거라는 둥, 읽다가 만 것이라는 둥 제법 심각하게 의논해 가며 방의 책들에게 붙이기를 마치고 좀 어중간한 대상의 책들을 모아둔 마루까지 나가서 스티커를 붙이는데 해리포터 시리즈는 두 아이 모두 스티커를 붙이지 않는다. 이런 이런 왜 우리아이들은 이 책을 재미없어 할까...상상력이 부족한걸까? 책읽는 뒷심이 모자란걸까? 하고 마음속으로만 물어본다.
스티커를 붙여 놓고 보니 좋은 점이 꽤 많다.
본인이 직접 선택하지 않으면 심드렁하게 보던 책들도 일단 책을 다 읽고 스티커를 붙여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는지 끝까지 읽으려 한다. 학교 숙제로 독서 일기를 쓰기 위해 책을 고를 때 안 읽은 책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아들아이는 자신의 독서 습관이 편중되어 있는 것을 느낀 것인지 요즘은 안 보던 책들에 속하던 백구나 마녀를 잡아라를 읽는다. 유효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훼손(?) 시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건만 스티커 -붙여놓고 보니 알록달록 흐뭇한 기분이다. 모든 책을 스티커로 뒤덮는다는 엄마의 야무진 상상을 우리 아이들은 절대 눈치채지 못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