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하얀 눈 덮인 자주색 만년필이 내 것이 되었을 때의 설레임을 떠올리며
오늘 나는 블루/블랙 잉크를 샀다.
사무실 설합을 정리할 때마다 필통속에 고이 넣어둔 만년필을 꺼내어
내 손안에 오롯하게 쥐어지는 그 느낌에 충만해 하면서
언젠가는 향기나는 잉크로 꽉꽉 채우고
매일 그 잉크를 채우는 삶을 살리라 결심하였는데
오늘 나는 잉크를 사며
설레임과 함께 막연한 불안을 느꼈다
이제 두달째...
이 곳의 극명한 태양빛 아래에서
나는 어쩌면 어지러움을 느끼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턱없는 기대 때문에 한 줄도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4개월전 충동적으로 구입한 두꺼운 노트의
빈 여백에 매일 후회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 잉크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