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하얀  눈 덮인 자주색 만년필이 내 것이 되었을 때의 설레임을 떠올리며 
오늘 나는 블루/블랙 잉크를 샀다.

사무실 설합을 정리할 때마다 필통속에 고이 넣어둔 만년필을 꺼내어
내 손안에 오롯하게 쥐어지는 그 느낌에 충만해 하면서
언젠가는 향기나는 잉크로 꽉꽉 채우고
매일 그 잉크를 채우는 삶을 살리라  결심하였는데

오늘 나는 잉크를 사며
설레임과 함께 막연한 불안을 느꼈다

이제 두달째...
이 곳의 극명한 태양빛 아래에서
나는 어쩌면 어지러움을 느끼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턱없는 기대 때문에 한 줄도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4개월전 충동적으로 구입한 두꺼운 노트의
빈 여백에 매일  후회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 잉크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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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언덕님 글 참 오랜만입니다. 저도 색색깔 잉크 사서 쓰던 생각이 나네요. 초록색 잉크를 제일 좋아했었답니다. 그래도 사서 한 줄이라도 쓴다면 안 사고 망설인 것보다는 낫지 싶어요^^

2006-03-19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돈 주고 사기는 처음이다.
왜 샀을까?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표지에서 느껴서일까?
그런데 일본인의 그림이란다.

남미에서 연상된 것이 불륜이어서 이런 제목을 붙인건가? 
궁금증으로 책을 읽는다.

가볍다.
그녀에게 오면 장엄한 이과수 폭포도
흰 머리수건을 두른 '사라진 아이들'의 어머니들의 눈물도
남미의 불붙는 듯한 붉은 탱고도
졸린 듯 나른한 듯
애써 지어낸 것이 아닌 무관심과
그래 책표지에도 있듯이 무늬 고운 태피스트리가 된다.

그녀만의 매력이지 싶지만
난 이 아르헨티나 여행기가  
에바페론처럼 더 연극적이고 관능적이면서도 폐허의 냄새가 나기를 기대했었나보다.

선물해야 겠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아직도 궁금함이 많은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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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를 안 쓸 수 없겠지
그 포도주 때문에

내 생일에 맞추어 도착한 도서출판 ‘강’의 이벤트 당첨 선물인
근사한  칠레산 포도주 한 병을 받고
봐 책 자꾸 사서 남는 게 더 있지 멋진 포도주병 말이야 이러면서
우리 부부는 저녁식사와 함께 그 한 병을 다 마시게 되었는데

문제는
내가 이 포도주를 왜 선물 받게 되었느냐를 이야기하기 위해
잠시 ‘맛’이란 책의 내용을 남편에게 이야기해야만 되었다는 것
아 내 짧은 어휘력으로 어찌 그 맛깔스러운 묘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재미있고 아슬아슬하고 어이없고 황당하다가
아연함과 잠시의 침묵과 때늦은 이해를 말이다.
포도주에 취한 부드러운 혀지만 말라버린 식빵 같이 건조하게, 거칠게, 더듬거리다가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직접 꼭 읽어봐야만 해‘ 이거였다는 것.
편편이 꼭꼭 씹어 음미하는 그 ‘맛’을 처음부터 내 어설픈 언변으로 어찌 가당키나 하였으리요?

그런데
워낙 동화 ‘마틸다’나 ‘멍청씨 부부이야기’에 열광했던 나의 눈에는
2% 부족한 그 무엇이 있다고 느껴졌다는데...
그 날의 포도주처럼 내가 좋아하는 달콤함이 조금 부족한 걸까?
결론을 위하여 내 딛는 그의 발걸음이 너무 조밀하여 노회하다는 느낌 때문일까?
아님 같은 패턴의 글들이 한 권에 모여 있어서일까?
나의 별 하나를 뺀 이 어설픈 평가를 악동 로알드 달은 이해하겠지?
포도주에 취한 내가 심술 좀 부리는 것이리라고.
맞아. 분명 심술일거야.

나이 들수록
예리하고 의뭉스러우며 능청스럽다가 시침 뚝 떼고
우리의 가여운 주인공들에게 붓을 들어 가차 없이 ‘반전'의 단죄를 내리는 로알드 달
그가 영원한 악동으로 남기를 기원하며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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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1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언덕님 오랜만에 리뷰 올리셨네요^^

모래언덕 2005-08-1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가 아니라 꽃만두가 되신듯...
그 포도주 한 병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서요...
자주 뵙지는 못하겠지만 종종 들르겠습니다.

 

그럴때 제일 곤란한 건 아이들 저녁
전화를 거니 내일부터 시험인 딸아이는 학원에서 수학 보충 중이고..
혼자 있는 아들은 배가 고프지 않단다.
'도너츠 한개하고 귤을 다섯개나 먹었어'
이런 배 아프지 않으려나?
'저녁은 어떡하니 엄마 많이 늦을텐데?'
'괜찮아. ㅇㅇ이네 가서 달라고 그럴까?'
'그래... 부탁드려봐'

아, 그래도 이사온 지 2년이 되니 아이가 편하게 저녁 좀 달라고 할 수 있는 고마운  이웃이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고
예전에는 근처 이모네 집에 가기도 싫어하던 아이가 이제는 제 스스로 저녁좀 달라 그럴까 하는 변죽이 생기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홀가분히 보고서 메일로 날리고
이제 일어서서
배는 좀 고프지만
엄마는 달려 간다.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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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2-1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언덕님은 그래도 참 강인한 분이시네요. 전 그걸 도저히 못 해내겠더라구요. 마음이 물러터져서 늘 고민고민... 달려가는 모래언덕님 마음이 느껴져요.

모래언덕 2004-12-1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이 안님 아기 같이 어리면 저도 못했을 거예요. 어머님이 그나마 초등학교 2학년까지 봐주셨으니 제가 계속 할 수 있었죠. 그래서 요즘은 어머님의 감사함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니까 이제는 다른 면에서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더 고민됩니다. 어제도 잠든 둘째의 손톱을 보니 어느새 길게 자라 있어서... 그 걸 깎으며 내가 도대체 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였답니다.

2004-12-1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은 클수록 이모네 가서 밥 먹는 것도 싫어하네요^^ 그리고 귤은 앉은 자리에서 10개도 거뜬하니 5개로 배탈 나진 않을 거에요...집에 잘 도착하셨어요?
 


관광지인데 이름을 듣고는 잊어버렸어요....

장승 비슷한 것 같아요.


좀 잘리긴 했지만 구도가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진 주인공인 친구를 지우려고 했는데 제 솜씨로는...


사이좋은 오리 두마리


왜 이 구도로 사진을 찍고 싶었는지 궁금하구요.


잘 보면 꽃이 보이죠? 렌즈 안으로 꽃이 보였는지 호수(?)가 보였는지...


맷돼지랍니다. 난 누워있는 걸로 착각했는데 서있대네요.


공작의 꼬리가 멋있어서 한장. 그러고보니 아이들과 동물원 간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스님이 신기해서 찍었는데 찍은 후에야 묘한 대비를 알아차렸대요.



오리 가족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역시 경치가 좋아서 산뜻한 사진이 나오는군요.


아까의 오리 가족을 가까이서..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맘에 들어한 사진입니다. 아빠가 서명도 달아주었네요.


제 서재 이미지로 허락도 받지 않고 살짝 빌려서 사용한 사진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올렸다면 뭐라 그럴까 내심 걱정도 되지만...
조그만 디카로 열심히 담아 온 열다섯살 딸아이의 좋은 추억을 잠시 빌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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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2-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서재에 들어오고 싶더라구요. 지난번 말씀하신 사진들이군요. 정말 훌륭한데요. 열다섯 아이가 찍은 거라고는 참... 제 수준도 이 정도가 될까 싶어서 한참 들여다봤네요. ^^ 예전에 어느 여행기를 보니까 아홉살 아들에게 카메라를 들려줬더군요. 비싸지 않은 카메라를 하나 건네주면 묻힐 수도 있는 하나의 미래가 발견될 수도 있겠다 싶었지요. 사진 잘 봤습니다.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많지요? ^^

숨은아이 2004-12-1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름다워요.

2004-12-1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감탄스럽군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고나 할까..물론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요..어디인가요? 사진 속에 힌트가 있었나..다시 꼼꼼 살펴 보아야 겠네요..좋은 주말 보내셔요.

모래언덕 2004-12-1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안님 : 친구들이나 동생 얼굴 나온 사진 빼고는 거의 다 인 것 같아요. 이 안님 말씀 덕분에 용기를 내어 올리긴 했는데 앞으로라도 우리 딸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런지... 이 게으른 엄마가 말이예요.

숨은 아이님 : 감사해요. 그리고 들러주셔서 고맙구요.

chamna님 : 저보다는 확실히 깊은 시선을 가진 것 같아요. 이 곳은 방학동안 다녀온 캐나다의 유원지랍니다. 공기가 맑은 것이 느껴지죠? 주말이 다 가버렸네요. 참나님 좋은 한 주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