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카뮈 - 우정과 투쟁
로널드 애런슨 지음, 변광배.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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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지성사에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카뮈는 그들이 갖고 있는 명성과 명예만큼 그들의 자존심과 사상,사고의 차이로 인해 라이벌을 형성하고 투쟁하며 다시 우정을 회복하는 과정을 삶의 한복판에서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은밀하게 암시하기도 하고 글이라는 작품을 통해 속내를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사르트르와 카뮈는 태생이 달랐기에 생각과 감정,사고의 유형이 판이하지만 2차 세계대전 속에서 프랑스에 대한 독일 점령기와 해방후 둘이 갈라서야만 했던 이념과 사상의 차이로 마치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또한 둘의 공통점은 문학작품으로 인해 찬사를 받고 노벨문학상이라는 명예를 안았지만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 수락을 거절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카뮈는 전락이라는 작품으로 사르트르는 말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다)

카뮈는 알제리 출생으로 그가 프랑스에서 작가 및 기자로서 활동하던 당시는 알제리는 프랑스령이었고 알제리는 독립을 위한 투쟁과 싸움의 일로를 걷고 있었고,사르트르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부모를 일찍 여의고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던 것으로 보여진다.성격이 민감하고 자존심,낭만성이 강한 카뮈와 부르조아적이고 옐리트 기질이 강했던 사르트르는 서로가 잘 맞지 않을거 같으면서도 1943년 '악마와 선한 신'의 리허설에 첫만남을 시작으로 서로의 입장과 가치를 존중하면서 우정을 쌓아가고 둘은 독일 점령하에서 레지스탕스로 함께 투쟁하게 된다.카뮈는 콩바라는 잡지사를 설립하고 사르트르는 현대지를 통해 문학의 세계를 일궈 나간다.

1945년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이 되면서 카뮈는 공산당(PCF)으로부터 탈퇴하고 사르트르는 소련 공산당에 호의를 보이며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헐뜯으면서 그들이 쌓아 올린 우정은 금이 가고 만다.카뮈는 <반항적 인간>에서 자기만의 역사,부조리를 받아들이고,그것과 정면으로 맞서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거부를 담고 있는 더 치밀하고 더 비극적인 기도를 담으며 사르트르의 교조주의적이고 변절된 이념과 사상에 공격의 수위를 높힌다.즉,사르트르에 대해 역사와 윤리를 저버린 자라고 치부한다.사르트르는 자신이 심취하고 경도된 마르크스주의 및 소련 식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적극적으로 소련과 컨넥션을 갖게 되며 그가 바라는 혁명 투쟁의 목표는 <유물론과 혁명>,<문학이란 무엇인가>에 잘 나타나 있다.그러면서 사르트르는 사회적 책임,참여,자유를 부르짖곤 한다.사르트르가 관여하고 있는 현대지는 작가의 작품활동과 서평,공산주의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소련과 헝가리 침공과 함께 소련에 있는 지인들의 무관심과 헝가리 학살을 고발하지 않고 소련의 관료주의를 이끄는 파당에 대한 우정을 더 이상 간직할 수 없다는 것이 사르트르가 공산주의로부터 손을 씻는 원인이 된거 같다.반대로 카뮈는 그가 말하는 좌파 지식인이나 실존주의자들이라는 특징을 공유하는 자들과 반대되는 입장을 바탕으로 자신의 개인적,도덕적,정치적 '자아'를 형성하게 되며 냉전시대의 첫 희생국인 알제리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카뮈는 모국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것에 침묵으로 일관한다.이 침묵이 한 민족을 돕는 길이라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둘의 관계가 악화되고 결별의 수순을 밟은 것은 사르트르와 가깝게 지내던 메를로퐁티가 쓴 <요가수행자와 프롤레타리아>를 보면서 메를로퐁티가 모스크바 정치재판을 정당화시켰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립과 배신을 같은 것으로 여긴다며 분개했으며 역으로 카뮈는 메를로퐁티로부터 반격과 사르트르가 메를로퐁티의 주의 및 견해를 지지했던 점이 커다란 절교 원인으로 보여진다.(1952년)

카뮈는 자신이 살던 지방에서 파리로 향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고 우정과 투쟁의 긴 역사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사르트르는 추도사를 읽으면서 카뮈에 대한 좋았던 회상과 우정을 되새기게 되는데 사르트르는 사회적,사교적 지위도 어느덧 노쇠함과 더불어 퇴색되게 되고 사르트르의 곁을 지키던 부인 보부아르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사르트르와 카뮈와의 관계,우정에 대한 기억과 회상을 들려주고 있다.20세기 지성계의 두 거장이었던 사르트르와 카뮈는 사상과 철학,문학작품으로 일세를 풍미하고 각자 독특한 개성과 신념에 의해 우정을 쌓기도 하고 기회에 따라선 변절의 과정을 거치며 서로를 비난하며 대립과 배신이 이어졌지만 진정 사회를 대표하는 공인(公人)으로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사회의 구조 및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책임과 참여,자유란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 주는 시간이 되었다.또한 두 거장을 통해 그들이 남긴 우정을 비롯하여 상호간의 영향과 증오,수많은 주제들의 흔적을 살필 수가 있었으며 지난 역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음미하는 계기가 되어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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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글쓰기 강의 - 30년 경력 명강사가 말하는 소통의 비밀
바버라 베이그 지음, 박병화 옮김 / 에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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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글쓰기에 대한 정규과정과 수업,연습이 거의 없었던거 같다.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어 생각과 사유의 틀을 넓혀 갔던 독서인도 아니었기에 뒤늦게 나마 편독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과 함께 하고 있는 요즘이 나름대로 인생과 우주,타인과 사회,국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갈 수가 있어 다행스럽기만 하다.가정과 일,부양을 해야 하는 가장으로서 책읽기는 때론 부담과 서평이라는 기한에 밀려 한쪽에선 지청구를 늘어 놓기도 하고 나는 나대로 책읽기라는 기대와 희열에 사로잡혀 틈을 놓치지 않고 다독을 하면서 덜익은 생각과 사유를 조금씩 채워가면서 튼실한 인격과 지성의 세계를 넓혀 가려고 한다.책읽기와 병행하여 글쓰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초,중,고교 시절엔 문예반에 가입만 하고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았던거 같다.내 생각과 감정,느낌을 진솔하게 펼치고 누군가 읽어 주는 사람이 있어 관심과 애정으로 공감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해 본다.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글을 잘 쓰고 유명한 작가가 되어 세인들의 관심과 애정,편달이 있기까지는 각고의 노력과 사념이 통합이 되고 몇 차례의 수정과 가필을 거쳐 세상에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글을 잘 쓰고 세상의 세인들과 공감과 소통을 잘 이루어가는 분들에겐 특별한 기질과 소양이 있겠지만 그들도 보이지 않은 생각의 고통과 정리된 사념들이 밀가루 반죽이 얽히고 섥혀 향기와 운치가 넘실대는 각양각색의 빵으로 탄생되듯이 한 편의 멋진 글이 탄생되기까지는 보이지 않은 작가의 혼연일체가 살아있어야 할 것이다.

평소 글쓰기에 대해서 전문지식은 없지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며 많이 써보는 연습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잘 쓰고 공감과 소통이 잘 되는 글을 어깨 너머로 훔쳐보고 흉내내보는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같은 글을 읽고서도 인간의 마음과 감정은 수천,수만갈래이듯 쓰는 사람에 따라서 개성과 문체,글의 경중도도 상이하고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잘 쓰는 글은 분명 뭔가 색다른 감각과 공명(共鳴)을 자아내게 한다.잘 쓰는 글을 보노라면 나도 흉내내고 싶어질 때가 있다.어떻게 해서 그 글이 탄생했으며 주제와 소재,상상력과 관찰,기억과 전문지식,잠재의식과 호기심,창조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글을 읽으면서 눈치챌 수도 있고 흔히 말하는 감으로 알 수도 있다.어떠한 작가는 삶의 일상에서 소재를 모으고 모아서 삶을 우려내고 공감을 자아내게 하며 타인(독자)으로 하여금 대리만족과 위무를 안겨주기도 한다.또한 어떠한 작가는 발품을 팔면서 자료를 모으로 탐사여행 속에서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역사의 뒤안길을 탐문하고 캐내어 인문(人紋)을 오롯이 인문(人文)으로 승화시킨다.아직까지는 멀고 멀게만 느껴지는 글쓰기의 여행과 체험이 즐겁고 재미있어 하는 여정으로 삼고저 한다.

30년간 하버드대에서 글쓰기 명강사로 경험과 에피소드를 묶어 글을 좋아하고 잘 쓰기를 위한 길을 안내해 주고 있는 이 도서는 글쓰기의 요체는 주제에 맞게 내용을 잘 전개하고 독자들과의 시원한 소통을 제시하고 있다.맞는 말이다.글쓰는 사람이 처음 품었던 마음 속의 주된 내용을 수미일관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의미전달이 잘 되고 모호한 해석과 오류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학술자료와 연구조사가 아닌 순수문학을 하는 글쓰기는 특히 독자의 감성과 공감을 주안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글을 아무리 잘 썼다고 자화자찬해도 읽는 사람이 아무런 관심과 흥미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도로무공(徒勞無功)이 될 것이다.또한 이 글은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아마추어적이고 글쓰기ㅣ의 초심자를 위한 지침서이기에 글을 잘쓰기 위한 요령과 목표의식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글을 쓰기 위해 다양한 독서이력과 충분한 사유능력의 함양,수많은 프리라이팅의 중요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왕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우선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새겨 볼만한 대목이어서 인용한다.

* 자신의 과제를 파악하라
* 과제의 계획을 짜라
* 내용을 발전시켜라
* 필요하다면 제로 드래프트(초안)을 써보라
* 청중과 목표를 고려하라
* 전달하라
* 분명하게 밝혀라 P315 인용

작가에 따라선 아침형 글쓰기와 저녁형,새벽형 글쓰기의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생각과 사념이 많이 요구되는 글쓰기의 지난한 작업은 때론 뇌를 쉬게 해주어야 하고 때론 골똘히 생각하여 뇌의 흐름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는 마음자세도 중요하리라 생각한다.처음부터 잘 쓰기를 바라는 것은 뱉새가 황새걸음 따라가려는 무모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모든게 단계가 있고 그 단계를 하나씩 넘고 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청중들과 소통을 하게 되고 소기의 글쓰기 목표가 달성되리라 믿어 본다.글을 쓰려다 문득 생각이 막히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공원길이나 숲이 우거진 오솔길이라도 호젓하게 걸으면서 생각의 충전을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생각과 사유가 넓혀지고 자신감이 붙으면 그땐 막힘 없이 글쓰기가 진행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잘 쓰는 글보다는 진솔한 지성과 지혜,감성이 잘 어우러지고 글쓰는 이의 유머,위트 등이 가미된다면 읽는 사람은 지친 삶 속에서 삶의 위안과 기쁨,활력소를 찾지 않을까 한다.

*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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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심리학 - 이성을 마비시키는 점술, 유령, 초능력의 진실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김영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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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가사의와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참으로 많다.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생활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보니 인간의 마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일어날 때도 있다.물론 종교와 신의 힘을 빌려 그에 의지하고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들도 있지만 '혹시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몰라,나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하면서 점성술에 의지하여 자신의 과거.현재.미래를 들려주는 점술가의 말에 현혹되기도 하고 전적으로 믿으려는 사람들도 있다.자신의 힘과 노력,능력으로 세파를 해쳐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테지만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고 나약하기 이를데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이럴때 나타나는 법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들었던 불가사의하고 인간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 있는데 주로 점보기,염력,독심술과 최면이다.불교를 믿는 어머니는 주로 사월 초파일에 불공을 드리고 가끔은 점쟁이에게 식구들의 안위를 묻기도 한다.지금은 거의 가지 않지만 일이 안풀리고 액운이 끼고 대학교,결혼을 앞두고 점집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물론 맞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이것에 전적으로 매달리면 안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또한 초2때 시골 초등학교에 최면술을 갖고 나타난 최면사가 학급동료들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간단히 최면술의 취지를 설명한 다음 한 학생을 불러 내더니 눈을 지긋이 감고 최면을 걸었다.한 학생이 의자에 앉고 몇 분이 흐르자 그는 최면에 걸린듯 최면사가 말하는 데로 운동장 한 바퀴를 돌고 원위치로 돌아왔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그는 최면사가 말하는 것처럼 온몸에서 에너지가 넘치고 환상을 느꼈다고 말했던 기억도 새롭다.

색다른 얘기인데 오촌당숙벌되는 분이(지금은 작고 했지만) 어릴 적 몸이 아파 자리에 오랫동안 드러누웠던 적이 있다.그 분은 집 앞이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는데 평소 면소재지의 주막에서 술을 자주 드시고 집까지는 거의 4키로를 걸어야 당도했는데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왼편에 저수지를 끼고 네모진 돌들로 만들어진 돌다리를 3.4백미터를 건너야 집이 나오는데 취기에 정신이 몽롱하고 심약체질이었기에 저수지 한 쪽에서 유령과도 같이 하얀 소복을 입고 희미하게 나타났다가는 다시 사라진다는 것이다.그 유령이 손짓을 하고 그 쪽으로 오라고 소리를 내는 바람에 무심코 발걸음을 옮기려다 보니 그 유령은 온데간데 없고 무성하게 자란 수초와 각진 돌틈 사이로 헛디뎌 그만 뒤로 넘어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변했다는 것이다.나 또한 나를 애지중지해 주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던 해에 혼자서 자취를 하던 시절,한 여름이었는데 모기장을 치고 방문과 부엌문을 열고 스르르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부엌문을 통해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성큼성큼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순간 등골이 오싹하고 두려운 마음에 헛기침을 하고 냉수를 마신 다음 부엌문과 방문을 닫고 불을 켠 채 오지 않은 잠을 청해야만 했던 기억도 아직도 서늘하게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다.

이 글에 나오는 갖가지 신비하고도 비현실적인 불가사의한 세계는 때로는 흥미를 갖어다 주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만 점치기,염력,폴터가이스트(유령과의 대화),독심술과 최면 등은 청중과 대중의 부주의와 부집중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고도의 심리전술이라는 생각이 든다.흔히 매직이라고 하는 마술의 경우를 보더라도 청중의 눈에 보이지 않게 뒤에서 조작하는 기술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럴듯 하면서도 간담이 서늘해지도록 연출하는 놀라운 마력을 갖고 있다.순진하고 비판성이 결여된 사람들은 그대로 믿고 놀라워하며 탄성을 짓곤 한다.이렇게 점치기,염력,독심술,유체이탈,마술,예지몽 등이 심약한 인간의 본성과 존재를 교묘히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착하고 순진하며 남의 말을 잘 듣고 따라주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신기하고도 기묘한 세계에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세계가 순간적으론 재미와 흥미,미래의 예측,마음의 위로를 안겨줄 수도 있지만 온전히 쏠려서는 안될 것이다.그러기에 이러한 세계에 마음을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문간에 발 들여놓기'를 통해 책임과 헌신을 넘어서 요구의 수위가 높아지는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물리칠줄 알아야 하고,자신을 반대 의견으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조직을 조심해야 하며,종교와 같은 조직의 지도자가 치유나 예언 등 불가사의한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지를 냉철하게 살펴야 하며,조직이 고통스럽고 힘들거나 굴욕적인 입회식을 요구하는지도 따지고 물리칠 줄 아는 차가운 지성을 갖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종교의 세계는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하기에 때론 그 조직의 지도자(일부이겠지만)의 교리와 강론이 자기기만이나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여지기에 그 조직에 휘말려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은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유약한 존재이다.또한 삶의 기간도 그리 길지 않기에 살아감에 무수한 세계를 접하면서 몸과 마음이 현혹되어 이성과 논리를 혹세와 같은 세계에 갇히게 되면서 온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 수도 있다.초현실적이고 초능력의 소유자도 겉으론 강건하고 완벽하게 보이지만 과연 강건하고 완벽한 존재인지를 꼼꼼히 살피고 분석하며 옥과 티를 가릴 줄 아는 현명한 자세와 지혜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인간은 마음이 가는데로 간다고 했듯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지각 체계를 무너뜨리는 세계는 스스로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물리치고 발을 떼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할 것이다.인간의 나약하고 능력의 한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기기만과 사기를 일삼는 일부 몰지각하고 개인주의에 치우친 자들은 밝은 사회에 어둠을 던지는 행위이므로 조심하고 경계하며 무관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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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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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시간과 공감을 수도 없이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을 끄집어 내며 자신만의 시.공간 개념을 형성해 나간다.동틀 무렵의 어스름한 새벽의 찬공기를 맡고 해가 지는 석양과 주위와의 오묘한 관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감각을 안겨 준다.또한 늘 일상의 시작과 끝이 연출되는 가정의 실내공간과 수많은 가재도구들도 나름대로의 공간을 형성하고 그 공간에서 우러나오는 향기,소리,오감은 깊게 느끼려고 노력할 수록 일체화되고 그것들과 대화를 나누고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써 하나도 버릴거 없는 소중한 것이 될 때도 있다.다만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관조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인간과 함께 숨쉬는 존재가 될것이고 사람의 손에 의해 정교하면서도 예술적 감각이 살아 있는 것이라면 한층 더 감성을 자극하고 멋진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을 살아 숨쉬고 광활한 우주에 빛을 발하는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은 시작되고 나만의 보금자리가 정해지면서 자연스레 공간의 개념을 인지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다.내가 자라나고 청소년기를 보낸 산골 모습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 싸이고 대부분이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을 간직했다.신작로라고 불린 시골길은 포장이 안되어 버스라도 지나갈라치면 먼지가 뿌옇게 일고 남향으로 자리잡은 이웃집들의 고즈넉하고 평안한 모습들은 사계 내내 태고의 자연의 모습과 순박한 마을 인심들이 함께 어우러져 삶의 속살을 자연스럽고 포용력있으며 상부상조하는 전통의 미덕을 유지했다.산은 묘의 형상마냥 위가 뾰족하고 집들은 육각형 모양을 띠며 신작로는 약간의 곡선을 이룬 모습의 공간의 이미지였다.

공간은 다양하고 다채로움을 안겨 준다.건축,미술,자연을 거닐면서 보고 느끼며 감성을 축적해 나간 세월과 시간은 약간의 여유와 느긋함만 갖춘다면 그 공간 속에 숨쉬고 살았을 선현들의 모습과 장인들의 섬세한 손놀림,각고의 노력이 눈에 선하게 펼쳐질 것이며 철학과 문인들의 거소인 공간은 사색과 사유가 주조되는 그들만의 향연의 장일 것이다.특히 서양의 공간적인 개념이 개별적인 존재와 실체였다면 동양의 공간적인 개념은 서로 간의 관계와 비움을 중시한다고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현대건축의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감성의 공간을 동양의 건축 공감은 유감없이 보여주고 관개들로 하여금 발걸음을 더디게 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추억은 많지만 자연스럽고 비인위적인 공간의 모습이 내겐 위대하고 어머니의 품과도 같게 다가온다.비탈진 오솔길,재래식 화장실에 내리쬐는 강렬하고도 찬란한 빛의 줄기를 어른이 되어서야 고맙고 위대하며 오묘한 공간에 내가 있었다는 기억을 되살려 보게 되었다.새.바람소리만 들리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비탈진 오솔길은 걷다 보면 대지와 숲,자연과 인간이 일체가 된듯하고 재래식 화장실이 안겨주는 분뇨 냄새와 한줄기 빛의 조화는 불편한 생활이었지만 그곳에는 갖가지 농기구와 부고(訃告)장이 새끼줄에 하나 하나 끼어져 있고 옆에는 음식물 쓰레기,잿더미가 하나가 되어 숙성된 거름이 될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며 그 거름은 온 가족의 생명의 원천이 되고 남았던 것이다.그 시절의 오솔길의 탁 트이고 신선한 공기를 안겨 주었다면 재래식 화장실은 다소 어둡고 불편하게 나무토막에 두 발을 벌리고 앉아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던 공간이 대조적이지만 운치있고 추억이 서린 감각적인 공간이었다.

서양 중세,근세 종교색을 띤 건축물의 위용과 동양의 불교색채가 짙은 사찰의 고요하고 청정무구함을 안겨 주는 건축 공간과 현대화와 더불어 초가집이 사라지고 양옥과 아파트가 살벌하리만큼 네모지고 회색에 가까운 획일적인 공간 속에서 인간의 심성도 획일화되고 계획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돈과 물질의 마녀로 변질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이 편리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때론 극히 이기적이고 환경 오염과 생태파괴를 초래하는 것이라면 공간의 공감은 느긋하고 여유롭게 보고 느끼며 오감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닌 인간의 심성을 사무적이고 획일화하고 물질문명의 노예로 만들지도 모른다.

인간은 어떠한 형태든 공간을 접하고 바라보며(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생각과 감정을 쌓아 나간다.시간의 흐름과 함께 공간의 장에서 남들이 못느끼는 공간의 향기,소리,오감을 집중과 주의를 기울여볼 때가 아닌가 싶다.빛과 소리,향기를 통해 인간만이 갖고 있는 오감의 촉수를 최대화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와 비움이라는 겸허의 자세를 공간 속에서 느끼고 경험해 보는 시간을 기대해 본다.멋진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살리고 체현해 간다면 우리네의 삶도 보다 풍요로워지고 행복지수도 높아져 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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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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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시절 미술에 대해 소질이 많았던거 같다.그래서인지 그림을 그리면 미술선생님으로부터 칭찬도 많이 듣고 나도 모르게 힘과 용기를 받아 그림에 집중하게 되고 더 잘 그려야겠다는 욕심도 있었던거 같다.중학교 시절엔 주로 정물화와 풍경화였고 고교시절엔 데생(소묘)을 했다.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미술부에 가입하여 선배들의 조언과 내 나름대로의 성실한 노력과 그림 그리기 자체가 즐거웠고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꿈꿨던거 같다.이제야 사회인이 되고 바쁘게 살다 보니 그림 그리기는 한낱 사치와 유한족쯤으로 비춰지기도 하는데 그만큼 삶이 메마르고 각박하다는 증거가 아닐 수가 없다.그림 그리기는 일기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조그만 사물부터 인물,건축,풍경,상상의 나래를 끼와 노력으로 정성을 기울여 간다면 화가는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그림 공간을 형성하고 특별한 일상을 가꾸어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연필,붓 등을 이용하여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과 섬세한 손놀림,음영,생동감,현장감을 묘사함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공감과 감동을 안겨줄 수도 있다.좋은 글도 수많은 쓰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멋진 작품이 탄생되듯 그림 역시 많이 그려보고 손질하며 때론 잘 그리는 사람에게 조언도 들어가며 오류와 실수를 최소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요즘 사설 미술학원이 많아서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그리기에 심취하고 내 자신이 잊고 지냈던 잠재력과 학창시절 갖었던 약간의 재능을 되살려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잘 그리는 것도 좋지만 그리려는 사물과 대상을 나와 얼마만큼 일체감을 갖고 몰두하느냐에 따라 윤곽과 완성도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드로잉을 위한 스케치북 프로젝트로 탄생된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은 흔히 생각하는유화 및 묵화가 아닌 주로 연필(그림 그리기용)로 스케치북에 그려 나간 프로젝트이다.저자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중 외국 학생들의 스케치북을 찍은 슬라이드를 보면서 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고 한다.구성은 기본편,응용편,확장편으로 되어 있으며 사물,일상,지역,심플 & 디테일한 면으로 대별되어 있다.아기자기하면서도 색상이 살아있으며 인물의 갖가지 표정을 통해 심리를 읽어낼 수가 있다.또한 홍콩 등지의 명물,거리의 모습,이색적인 사람들의 행동 등도 눈에 띄었다.연필과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고전적인 그리기의 전형을 벗어나 스크랩북과 같은 독특하고 참신한 발상은 그리기의 영역이 다양화,세분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스케치북에 대해 자세하게 소비자의 심리나,기호에 맞게 선별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묵직하지 않고 가볍게 보여지는 이 도서는 작고 소소한 일상의 사물과 인물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물과 인물의 다양한 모습과 그리는 사람의 마음과 영감,영혼이 살아 숨쉬는 터치는 마치 그림이 밖으로 튀어 나오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그만큼 저자가 그린 그림 한 점 한 점이 단련과 연마의 결실로 나타난 것이리라.비록 바쁘게 흘러가고 숨돌릴 틈이 없을지라도 내가 그리고 싶었지만 손을 놓은 잠재력을 시간이 날때마다 굳었던 손놀림을 다시금 되살려 보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그리기를 통해 마음의 영혼을 한껏 정화시키고 나만의 그림 세계를 구현해 보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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