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고 반추해 보는 일은 나와 타인,사회와 국가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들 속에서 부유(浮遊)해 가는 과정이기에 내 자신과 모든 타자와 견주어 볼 수도 있기에 때론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때론 망각해야만 비로소 삶이 건강해지고 성숙해 갈 수도 있다.인간이 제각각 보고 듣고 겪으면서 체화하고 세상에 빛이 되어 줄 만한 요소와 사건들이 망각되어 사장(死藏)되고 뇌리 밖에 방치된 것들이 물꼬가 트인것마냥 다시금 내 자신의 눈과 귀로 회귀되어 오는 것을 발견한다면 내가 갖고 있는 만큼의 생각과 감정들이 순화되어 가기도 한다.그러기에 내가 아닌 남이 살아온 길의 여정은 불시착되어 파손된 기체와 같은 온전치 못한 것들도 있지만 잘 조립하고 복원시킨다면 인문(人紋)의 힘과 사유의 힘도 배양되어 가리라.그 속에는 동세대도 있을테고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미지의 세계도 있을테니까 비록 인생이 짧다고 하지만 생각을 바꿔 눈과 귀를 귀울인다면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고 가치가 있으며 타자를 이해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원더 보이>는 세상에 대해 호기심으로 의문으로 가득했던 저자의 성장 기록과도 같은 이야기들과 내가 아닌 타자와 사회의 거칠고 이질적인 숨결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사랑하며 공감할 수 있는가를 여실(如實)히 보여 주기에 족하다.1980년대 정치적,사회적으로 어두웠던 한국 정치풍토의 단면과 매체에 비친 여러 프로그램들,직선제 민주화의 열망을 위해 들끓었던 숨막히던 시절,아직도 풀리지 않은 일들이 그래도 성장 가능한 '희망'이 있다고 풀어 놓는다.나도 이 점은 크게 동감한다.문화와 문명을 뒤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이고 흐름이기에 그 성숙되어 가는 과정은 느리면서도 지속적이다.때론 격랑을 만나기도 하고 '소용돌이'에 휘몰려 희생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본문에서 -

 

그렇다.14,5살 난 어린 소년의 눈에 아버지는 남파 간첩을 때려 잡은 애국지사가 되고 소년은 권대령 일당에 의해 초능력을 시험받고 죄인 아닌 죄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고문 취조실에 그를 매일 들이지만 그곳에서 빠져 나와 원더보인만의 세상을 읽어 나간다.1980년대 당시 TV나 사회에서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들이 새삼 어제의 일같다.속독,암산,축구,차력,씨름장사 이만기,초능력,퀴즈,청백전 등이 잊혀졌지만 원더보이와 함께 살았던 추억거리이다.이어 대학가,민중들의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절은 늘 최루탄과 투석전,화염병으로 대변되는 지리멸렬한 암울했던 시절이 직선제 민주화의 결실로 이어지게 되며 봄햇살을 받고 대지 위에 싹트는 어린 새싹과 가지마냥 세상은 정치적 '자유'를 맞이하게 된다.'독재타도'라는 외침은 대학 구내의 대자보와 함께 연일 일과가 되다시피하고 그 민주화의 결실은 군대(군복무 시절)에서 석식을 마치고 관물대를 정리하면서 훔쳐 본 짤막한 희보였다.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들을 품고 살아가는 군상들을 '원더 보이'는 만나게 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모두가 최소한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과 드넓은 우주 최고의 여행을 할 셈으로 가득차 있다.군의 아버지의 죽음의 뒷모습이 우주여행사가 되고 TV매체 등에서 보여준 사회 구조와 인식,민주화의 갈망 속에서 만난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원더 보이만의 기꺼이 고통과 소통을 수용하고 살아가야만 할 그만의 삶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한국 사회 구조 및 구성원들간의 위화감,신자본주의로 인한 경제 후퇴 등이 참으로 안타깝다.정치적으론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생각이 들지만 아직도 가야 하고 넘어야 할 정치적 태산준령은 높고도 험하고 칠흑보다 암울하다.나 하나쯤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역사는 도도(滔滔)하고도 유장하고 거친 숨결을 토(吐)해 내면서 쉼없이 흘러가고 있건만 우리의 삶은 질적으로 떨어져만 간다.부자가 어떻게 부를 일구었든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까마득히 잊었나 보다.나와 가족,나와 연줄과 관계가 있는 부류들끼리의 잘 먹고 잘 살기보다는 나 아닌 타인의 아픔과 신음 소리를 제대로 보고 들을 줄 아는 신명 넘치는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개인 각자의 삶이 씨줄고 날줄로 얽히고 섥혀 사회가 지탱되고 그 개인의 삶이 유한적이기에 탐욕과 사욕도 석양에 지는 햇살과 함께 식어갈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약속
소르주 샬랑동 지음, 김민정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부부는 죽어서도 하나로 남아 있을까? 잉꼬부부라는 말이 죽을때까지도 변치 않고 유지될까? 등을 생각해 본다.남편은 젊은 시절부터 늙어서까지 가족을 위해 경제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고 늙어 정년을 맞이하게 되면 그간 아내에게 못해 아내가 마음속으로 한숨과 앙금으로 쌓인 한이 여생만큼은 자유로운 새가 되고 싶어 황혼 이혼이 급증하는 세태가 오늘날 수치도 아닌 당당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남자가 여자를 위해 사랑과 희생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은 철지난 이야기이지만 양파 껍질보다도 알 수 없고 자신에게 못해 준 과거사에 대해 '꽁'하게 간직하고 때가 되면 들추어 내기도 한다.자신만을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 늘 의지하고 봄날과 같은 청명하고 화려한 날들을 남자보다 여자는 더 갈망한다.정말 이러한 부부가 많았으면 좋겠다.

 

관 너머 세상에서도 내 영혼은 변함없이 이곳에 머무르리니

(중략)

내가 아꼈던 것들을 정성껏 돌봐주오.

나만의 시와 꽃들을,내가 사랑했던 새를 지켜주오.

나 언제나 그대들과 함께하리니,부디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를! 서문에서

 

에티엔과 포베트 노부부는 젊은 시절 해변가에서 살았지만 에티엔의 아버지가 어업에 종사하는 도중 풍랑에 배가 뒤집어지고 아버지는 물고기의 밥이 되고 만다.포티엔은 과부의 딸과 실종된 뱃사람의 아들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어머니 마리 프라동에 의해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정착하게 된다.에티엔과 루시앵은 어촌을 떠나 '케르아엘'이라는 멋진 집에 살고 루시앵은 '갑판장 카페'를 운영하면서 그의 친구들과 형인 에티엔과 형수인 포베트와의 일상사를 담담하고도 인간미가 넘치는 이야기로 흘러 간다.루시앵은 어릴적 친구들이 놀러 오면 카페의 모든 소음을 정지시키고 음식들을 챙겨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며 갑판장 카페는 실외 배경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에티엔 부부는 지난 날을 회상하기도 하며 여생을 알콩달콩 살아가지만 '망각'이라는 단어 앞에 포베트 부인은 그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식을 하게 되면서 삶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에티엔은 "영혼이 빠져나오면 램프가 그 영혼을 잡아 가두는 걸까?"라며 죽은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 세상에 좀더 머무르게 할 수도 있고 죽은사람이 살아 있을때마냥 집안을 활기차게 해야 하고 그 영혼은 심장에 붙어 있을 수 있고 심장이 완전히 식어버리면 영혼도 추위에 떨며 스러진다는 생각을 한다.그러한 생각과 많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에 그의 부이 포베트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생을 달리하고 에티엔은 자신의 친동생 루시앵에게 같은 날 죽고 싶다며 음료수에 비산을 섞어 달라고 유언을 남기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인 에티엔과 함께 텅빈 하늘을 향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갑판장 루시앵의 제안대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요일별로 형의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며 생전과 동일하게 케르아엘 집안을 활기넘치게 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함께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난다고 한다.살아서 혼인식을 올리지 못한 사람은 앞서간 사랑하는 이와 영혼식을 거행한다고도 한다.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랑이라는 참뜻을 한 노부에게서 느끼고 공감해 보았다.그래서 사랑은 고귀하고 변치않으며 오래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보다는 마음 씀씀이를 더 세세하고 배려하며 '수호천사'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뒤늦은 자성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막
J.M.G. 르 클레지오 지음, 홍상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잃어버린 영혼을 위무하고 인간성의 상실을 은유적으로 복원해 주는 잠언성의 언어 묘사를 발휘한다면 르 클레지오는 신화적인 요소와 인간의 회귀성을 자아내게 하는 묘미가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일전에 <허기>라는 작품을 통해 그의 문체와 인간이 갖고 있는 허기를 채워줄 요소들을 간파하였는데 이번 <사막>을 통해 나는 머나 먼 사막 위를 대상들과 함께 신의 존재를 찾아 떠나고 방랑하는 가운데 발견하는 갖가지 사물들과 마주치고 만나는 낯선 이들과 스스럼 없는 따뜻한 얘기,전능하고 완벽한 신에게 갈구하는 마음 등이 인간성의 회복과 동시에 각박하고 척박한 세상에서 위무와 희망을 안겨 주기에 족하다.

 

누르와 랄라,하라타니 등이 거칠고 모래바람이 휘날리며 일교차가 심한 모래땅 위에서 만나 한 조각의 희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작가만이 갖고 있는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치밀한 언어적 묘사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문학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음을 실감케 한다.때는 20세기초 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 이집트는 영국이 점령하고 모로코는 프랑스가 다스리면서 중부 아프리카 수단지역은 기독교군이 공격해 와서 유목민과의 전쟁을 불러 일으키고 사막에서 해안까지 성채(城砦)를 구축하는 바람에 유목민들은 생명의 생명의 근원인 물을 찾아 나서야 하고 허기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야 하고 식량을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다.제국주의의 횡포와 폭압은 유목민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기아와 죽음으로 몰아가고 그래도 살기 위해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누르,랄라,하라타니는 기약도 여정의 끝도 없는 지평선 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느리고도 여유 있는 인간 냄새가 나는 사막의 대상의 행렬이 맑고도 서정적으로 다가온다.한줄기 바람 앞에 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귀머거리 하라타니에게 보여주는 이해와 배려 등도 쫓겨나는 유목민들의 동료의식을 진하게 보여준다.

 

또한 신화적인 요소도 짙게 드리운다.모래사막은 일교차가 심하기에 낮엔 한증막과 같은 불볕 더위로 굶주림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길을 잃고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면 그대로 죽게 되고 시체는 모래 속에 파묻히며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나라는 모든게 다르고 태양도 사막 위의 태양과 똑같지 않다고 한다.그 태양은 더욱 강렬하게 타올라 어떤 남자들은 얼굴을 데고 눈이 멀어 돌아오기도 한다며 밤이 되면 너무 추워 미아가 된 사람들은 괴로워 비명을 지르고 그 추위는 뼈를 바스러뜨린다고 한다.남자들도 사막을 걷는 남자와 같지 않다고 한다.

 

주인공 랄라는 누군가를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푸른 베일을 쓴 사막의 투사인데 그녀를 어루만지고 을씨년스러운 고원까지 그녀를 오게 했던 것이다.그리고 그 투사는 그녀의 곁에 다가오고 단지 시선으로 말을 건네는데 그간 황량한 모래바람과 그녀를 공포로 몰아가게 한 두 남자의 죽음을 피해 달려왔던 끔찍한 순간들이 한 순간에 그녀의 아픈 여정을 몰아내게 하고 그녀의 가슴을 느리고도 아득하게 두방망이질을 하게 할 뿐이다.그리고 랄라를 비롯한 유목민들은 붉은 산 기슭에 자리잡은 수많은 흙집들이 대도시의 천상의 모습처럼 그들을 반겨 주고 피난처를 마련해 주는듯 하며 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사막과는 대조적으로 그 흙집들은 꽃가루마냥 신비로운 구름 속에 포근하게 감싸여져 있다고 가슴 설레인다.

 

랄라는 이제 노예선을 타고 프랑스에 안착하면서 폴 에스테르라는 남자를 알게 되고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사람 및 동유럽 사람들과 뒤섞이면서 마르세유 교외의 빈민가에서 똬리를 틀고 이민자로 생활하게 된다.그리고 랄라는 자신의 조상은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를 되뇌이면서 그녀만의 뿌리를 찾게 되는데 그녀의 조상은 청색 피부를 갖고 있는 사하라 사막의 투사들이다.허름한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도 하고 잡지의 표지 모델도 되기도 하면서 이미 그녀는 임신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그녀만이 갖고 있는 종교적이고 귀소본능이 강렬하게 작용하면서 그녀가 태어나고 성장한 사하라 사막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제국주의의 피정복민이 되어 사막을 유랑하고 한때 귀머거리 하르타니를 사랑했던 순수한 심성의 랄라는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일종의 유배지인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그녀가 갖고 있는 향수와 종교적인 마음,뿌리인 조상를 찾아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이어가고 싶은 의지와 열망이 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909~1912년 사이의 랄라의 운명과도 같은 모래바람과 변덕스런 날씨,따뜻한 인간미와 노예선에 실려 이국 프랑스에서의 지저분하고 거칠며 밑바닥 생활을 접고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살아있는 인간의 존재와 자유로운 영혼을 그린 걸작임에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더듬이 자크
소르주 샬랑동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 주위엔 어떠한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말더듬이가 있다.듣는 사람은 답답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무시하며 애써 외면하려는 경향도 있다.군대 시절 입대 동기 하나가 말을 더듬고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고참들에게 많이도 얻어 터지고 그의 잘못과 말더듬으로 인해 단체가 기합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그러나 말을 더듬는 장본인은 얼마나 속이 답답하고 주위로부터 외면 당하기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참함과 비애를 안고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할지 괴롭기 짝이 없을거 같다.그러나 말더듬이도 꾸준한 교정과 주위의 따뜻한 배려와 격려를 통해 단어와 문장을 연습해 나간다면 말더듬으로 인한 상처와 따돌림에서 자신감과 진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상처를 받고 소외받는 일종의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격려를 실어 줌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인간미를 서로가 관심과 애정을 갖아야 할때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자크는 말을 더듬는 바람에 급우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무시당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점에서 자신도 답답하고 어디에 하소연할 길이 없다.그래서 그는 쓰디 쓴 약초를 먹으면 말더듬이 차츰 나아지고 정상적으로 된다는 말을 듣고 약초를 질겅질겅 씹기도 하지만 말더듬은 여전하다.이런 자크는 생각도 늘 부정적이다.나쁜 말,지저분한 말,더러운 말,바보 같은 말,가시 돋힌 말과 구역질 나는 말 대신 부드럽고 밝으며 황금과 다이아몬드 같으며 애정과 영혼이 깃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한다.

 

열두 살 소년 자크에겐 다행히도 그를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 봉지가 있다.그를 헌신짝처럼 생각하고 '소 닭보듯 하는'급우들과는 달리 그를 불쌍히 여기고 배려하는 소녀 봉지는 마치 수호천사와 같은 존재이고 든든한 지탱이 되어 준다.또한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장 약한 즉,수업 시간에 바깥을 보는 아이,노는 시가네 혼자 있는 아이,놀림을 받는 아이,신발에 구멍이 난 아이,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오는 아이,겨울인데 외투를 입지 않은 아이가 모두 약한 아이이니 관심과 배려를 해야 한다고 훈화를 하신다.

말더듬이들이 단어와 말을 배우는 단계가 교육적인 면에서 유익함을 발견하게 된다.

 

말더듬이를 위한 단어들,대체용 단어들,비상으로 쓸 수 있는 단어들,대신 쓸 수 있는 단어들 즉,그 단어들은 자크의 목구멍 속에 깊이 파묻혀 있다가 어떤 단어가 제대로 나오지 안흐면 대신 그 자리를 꿰차려고 가리는 단어들이었다.P141에서

 

말더듬는 현상은 현대 의학에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말을 더듬게 된 원원인을 찾고 환자에게 놀이 치료 등의 치료를 통해 완치는 되지 않더라도 그 증상을 줄일 수가 있으며 치료와 발음 교정을 병행하면 말더듬의 증상이 언 정도 완화될 수가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말더듬이에게 진정으로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고 용기와 격려,배려를 아끼지 않는 관계형성이 그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심어 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담임선생님은 팔을 걷어 부치고 자크의 부모님을 뵙고 디아트킨(정신분석 연구가)의 연구와 언어 장애에 대해 상담을 하려 하고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게 되는데 선생님이 칠판에 쓴 문장을 읽어보라고 하기도 하지만 끝내 더듬거리게 되지만 변화된 급우들이 자크를 보는 태도와 말에 자크는 조금씩 급우들과의 거리감이 좁혀지고 잃었던 자신감을 보이게 되고 불완전하지만 조금씩 말을 익히게 된다.

 

장애를 둔 부모는 얼마나 마음이 쓰리고 고통스러울까,자크와 같은 언어적 장애를 갖고 있는 장본인은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지저분하고 불쾌하며 덜 떨어진 인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선은 그들에게 자연스럽고 연민의 정을 베풀어야 할 때이다.내겐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들이 아직도 가려움으로 괴로워하고 있다.성격이 밝고 긍정적이어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받지는 않지만 완치가 되지 않아 오랜 세월 나와 아내는 아토피 걱정,그의 미래의 진로에 대한 걱정,교육비 걱정으로 늘 신경이 평온할 날이 없다.길을 가다가도 불편한 몸을 가진 사람을 보면 먼저 내 아들을 떠올리게 된다.혹 내게 말을 걸어와 부정확하고 어둔하게 대할지라도 나는 성심성의껏 듣고 마음으로 전해주려 한다.말더듬이 자크와 같은 아이들이 주위의 관심과 애정,격려를 듬뿍 받으며 정상적인 모습으로 태어나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하:세기말의보헤미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일정한 거처가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방랑객의 대명사 집시족인 보헤미안이었던 무하의 회화 세계를 광고,포스터,회화,판화를 통해 그의 삶과 당대 프랑스 및 조국이었던 체코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재혼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무하는 어머니의 바램대로 그림 그리는 일을 걷게 되는데 그의 어린 시절은 합스부르크 왕조가 해체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개편되는 시대적 상황이고 20대 초반 공방에서 해고되면서 그는 빈을 떠나 쿠엔 백작의 후원으로 파리로 유학을 하고 아카데미 줄리앙에 입학을 하게 되는데 이듬해(1888년) 그는 장식화를 제작하면서 그가 꿈꾸었던 그림의 창작에 몰입하게 된다.

 

 

집시는 보헤미안과 같은 가난하고 꾀죄죄하며 하루 하루를 이어가기 위한 부류가 있는가 하면 댄디와 같은 귀족냄새가 나는 부류도 있다.당시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랭보는 온갖 방탕과 방랑을 일삼은 최고의 퇴폐주의자였으며,보헤미안이자 댄디,위대한 상징주의자였는데 무하는 그의 세계를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모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또한 19세기말 프랑스는 산업화로 인한 획일성과 기계주으에 대한 반대,대중주의의 속물 취향에 대한 혐오,부르주아지의 위선에 대한 항의,엄격한 도덕주의에 대한 반발,그 이전 시대의 자연주의,낭만주의,인상주의에 대한 반감이라는 거대한 부정문을 그의 회화 속에는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의 근대회화인 우끼요에(浮世繪)가 프랑스이 아르누보(신예술)에 영향을 끼치고 상징주의와 미학적인 면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면서 세기말 파리를 장식하게 되었다.그는 관능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광고와 포스터,사진 예술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다.그것은 세기말 사회분위기가 퇴폐와 향락,염세적인 분위기였고 지식인들은 무정부주의와 데카당스로 경도되고 문학은 암시와 모호함을 던져 줄 뿐이었다.또한 당대 유명한 고갱과의 조우를 통해 회화의 세계와 우정을 돈독히 하는 시간도 갖게 된다.

 

 

그가 그린 대표적인 작품은 너무도 많지만 간단히 소개하면 보헤미아 왕 프리제미술 오타카르 2세,베들레헴 교회에서 설교하는 얀 후스의 종교적인 색채와 연인들,물랭주즈의 무도회의 포스터가 있으며 지스몽다 등의 석판화가 눈에 띄고 지스몽다를 그리고 난 뒤부터는 파리지앵들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는 일약 유명세를 달리게 된다.또한 무하가 디자인한 뱀팔찌와 반지,에나멜과 진주로 장식된 코르사즈 등도 독특하고도 섬세한 미적 디자인의 감각을 충분히 살린 귀중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상업성과 예술성이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명랑과 외설이 교묘하게 만나며,

세속적인 동시에 영혼의 한 지점을 울리는 그의 작품은

분명 벨 에포크의 파리 시민들이게 익숙하지만

왠지 낯선 아름다움이었다. P182에서

 

 

 

1850년대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그는 사진 모델에도 심취한다.반나(半裸)의 여체를 통해 관능미와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선보였으며 1900년 파리 박람회가 끝나면서 아르누보는 유행의 불길처럼 퇴색되고 무하는 '슬라브 서사시'쪽으로 착상을 하고 남은 생을 조국과 슬라브인에 대한 봉사로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되고 미국 체류기간 동안 그를 지탱해준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게 되고 서로 끌리게 된다.연어가 성장하여 자신이 태어난 강가로 회귀하듯 그도 조국인 체코로 돌아와 여전히 영감이 넘치는 포스터들을 창출하는데 화려함보다는 단순하고 민속적이 요소들이 강한 인상이 짙게 깔린다.

 

 

성직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세기말 유럽의 예술 사조를 뒤로 하고 상징적이고 관능적이며 다방면에서 멋진 작품을 남긴 보헤미안 무하는 암울한 조국을 잊지 않고 여생을 조국과 슬라브인에게 봉사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이고 예술가임을 작품 하나 하나에 열과 성,혼을 바쳐 그만의 창작 세계를 풍성하고도 다양한 회화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외로운 삶이었지만 그를 사랑하고 지탱해 주었던 여인의 정신적 지원이 그가 창작활동에 더욱 빛을 발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