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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고 반추해 보는 일은 나와 타인,사회와 국가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들 속에서 부유(浮遊)해 가는 과정이기에 내 자신과 모든 타자와 견주어 볼 수도 있기에 때론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때론 망각해야만 비로소 삶이 건강해지고 성숙해 갈 수도 있다.인간이 제각각 보고 듣고 겪으면서 체화하고 세상에 빛이 되어 줄 만한 요소와 사건들이 망각되어 사장(死藏)되고 뇌리 밖에 방치된 것들이 물꼬가 트인것마냥 다시금 내 자신의 눈과 귀로 회귀되어 오는 것을 발견한다면 내가 갖고 있는 만큼의 생각과 감정들이 순화되어 가기도 한다.그러기에 내가 아닌 남이 살아온 길의 여정은 불시착되어 파손된 기체와 같은 온전치 못한 것들도 있지만 잘 조립하고 복원시킨다면 인문(人紋)의 힘과 사유의 힘도 배양되어 가리라.그 속에는 동세대도 있을테고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미지의 세계도 있을테니까 비록 인생이 짧다고 하지만 생각을 바꿔 눈과 귀를 귀울인다면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고 가치가 있으며 타자를 이해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원더 보이>는 세상에 대해 호기심으로 의문으로 가득했던 저자의 성장 기록과도 같은 이야기들과 내가 아닌 타자와 사회의 거칠고 이질적인 숨결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사랑하며 공감할 수 있는가를 여실(如實)히 보여 주기에 족하다.1980년대 정치적,사회적으로 어두웠던 한국 정치풍토의 단면과 매체에 비친 여러 프로그램들,직선제 민주화의 열망을 위해 들끓었던 숨막히던 시절,아직도 풀리지 않은 일들이 그래도 성장 가능한 '희망'이 있다고 풀어 놓는다.나도 이 점은 크게 동감한다.문화와 문명을 뒤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이고 흐름이기에 그 성숙되어 가는 과정은 느리면서도 지속적이다.때론 격랑을 만나기도 하고 '소용돌이'에 휘몰려 희생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본문에서 -
그렇다.14,5살 난 어린 소년의 눈에 아버지는 남파 간첩을 때려 잡은 애국지사가 되고 소년은 권대령 일당에 의해 초능력을 시험받고 죄인 아닌 죄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고문 취조실에 그를 매일 들이지만 그곳에서 빠져 나와 원더보인만의 세상을 읽어 나간다.1980년대 당시 TV나 사회에서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들이 새삼 어제의 일같다.속독,암산,축구,차력,씨름장사 이만기,초능력,퀴즈,청백전 등이 잊혀졌지만 원더보이와 함께 살았던 추억거리이다.이어 대학가,민중들의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절은 늘 최루탄과 투석전,화염병으로 대변되는 지리멸렬한 암울했던 시절이 직선제 민주화의 결실로 이어지게 되며 봄햇살을 받고 대지 위에 싹트는 어린 새싹과 가지마냥 세상은 정치적 '자유'를 맞이하게 된다.'독재타도'라는 외침은 대학 구내의 대자보와 함께 연일 일과가 되다시피하고 그 민주화의 결실은 군대(군복무 시절)에서 석식을 마치고 관물대를 정리하면서 훔쳐 본 짤막한 희보였다.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들을 품고 살아가는 군상들을 '원더 보이'는 만나게 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모두가 최소한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과 드넓은 우주 최고의 여행을 할 셈으로 가득차 있다.군의 아버지의 죽음의 뒷모습이 우주여행사가 되고 TV매체 등에서 보여준 사회 구조와 인식,민주화의 갈망 속에서 만난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원더 보이만의 기꺼이 고통과 소통을 수용하고 살아가야만 할 그만의 삶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한국 사회 구조 및 구성원들간의 위화감,신자본주의로 인한 경제 후퇴 등이 참으로 안타깝다.정치적으론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생각이 들지만 아직도 가야 하고 넘어야 할 정치적 태산준령은 높고도 험하고 칠흑보다 암울하다.나 하나쯤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역사는 도도(滔滔)하고도 유장하고 거친 숨결을 토(吐)해 내면서 쉼없이 흘러가고 있건만 우리의 삶은 질적으로 떨어져만 간다.부자가 어떻게 부를 일구었든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까마득히 잊었나 보다.나와 가족,나와 연줄과 관계가 있는 부류들끼리의 잘 먹고 잘 살기보다는 나 아닌 타인의 아픔과 신음 소리를 제대로 보고 들을 줄 아는 신명 넘치는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개인 각자의 삶이 씨줄고 날줄로 얽히고 섥혀 사회가 지탱되고 그 개인의 삶이 유한적이기에 탐욕과 사욕도 석양에 지는 햇살과 함께 식어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