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문명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 - 상
피터 제임스 외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그레이엄 핸콕이 지은 <신의 지문>이나 <신의 거울>을 읽은 독자라면 그의 글에 깜짝 놀랄 것이다. 고고천문학, 지질학, 고대신화에 기반하여 방대한 자료조사에 하여 그는 사라진 고대 선진문명의 존재를 입증하려 했다. 그의 강렬한 문제제기에 독자들은 빠져들면서 그가 제기하는 퍼즐 맞추는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라진 고대 선진문명이 있었던 곳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면서, 스핑크스나 피라미드, 티아우아나코 등이 그들이 남긴 지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레이엄 핸콕이 방대한 자료조사를 했다 하지만, 그가 기자 출신이고, 또 그의 주장이 기존의 수많은 연구로 정형화되어온 역사를 단칼에 부정하는 획기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기에 다소 논리의 균형감각을 찾고 싶어질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옛 문명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권하고 싶다.

상, 하권 두 권으로 되어 있지만 다른 책으로 치면 족히 네 권은 될 듯한 분량의 책이다. 그러나 그 분량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8장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불가사의한 건축물, 고대신화, 고대 천문학, 탐험가의 발견에 관한 논증 등을 다루고 있어 금방 책에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피터 제임스와 닉 소프는 고대사와 고고학을 전공한 학자다. 그레이엄 핸콕이 하나의 주장을 위하여 기승전결 방식으로 일관적인 논리 전개를 하는 반면, 이들 저자는 학자답게 현존하는 해석을 늘어놓고, 때로는 물음표를 남기고, 때로는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레이엄 핸콕은 발견된 사실을 수미일관 자신의 논조에 맞춰 끌어당기고 있지만, 이들은 발견된 사실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아직 명확하게 논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레이엄 핸콕의 저작을 읽고 흥분감과 함께 의구심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이 책은 나의 사고에 균형추를 다시 한번 세워준 책이었다. 그 균형추는 단지 예전의 주류파의 해석에게로의 단순 회귀는 아니었다. 현재의 '주류 진리'는 현재라는 한계 속에서 주어지는 진리라는 점에서 다른 해석의 존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균형에 기반한 회귀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현재 콜럼부스를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으로 100%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이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처음 발견한 사람으로 추정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직 명쾌하게 다양한 논거를 전개할 수는 없지만 10,11세기에 바이킹이 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몇가지 증거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내려온 신화나 전승은 단지 허구로 무시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다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슐리만이 많은 사람이 허구로 알고 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믿고 트로이 유적을 발굴해내는 것은 모든 말이나 글에는 나름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을 뿐 우리가 이를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하는 것이라는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일반 독자를 겨냥하고 재밌게 쓴 책으로 후반부에 가서는 여러 흥미거리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영국 사람이어서 스톤헤지, 글래스턴베리의 나선 도형, 아서왕, 로빈훗 등이 다른 것에 비해 좀 더 비중있게 등장하고 있어 다소는 흥미를 삭감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요소가 훨씬 많아 지겹지는 않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 - 허세욱 교수와 함께 읽는 중국 고전산문 83편
허세욱 옮겨엮음 / 학고재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에는 '허세욱 교수와 함께 읽는 중국 고전산문 83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2천년 전의 고대문학에서부터 1백년 전의 최근 산문까지 바다같은 중국문학에서 엑기스 같은 산문만으로 83편을 건져올렸다고 하니 섭렵하고 싶은 군침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고전산문이라 하면 흔히 이런 느낌을 먼저 받는다. 중국 고대 철학의 사유가 은은하게 배어있을 듯 하고, 우화나 촌철살인 같은 비유로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줄 만한 글도 있을 듯 하고, 중국 대륙의 호방함이 느껴지는 글도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에만 전적으로 의존했다면 이 책을 읽을 때 실망할 수밖에 없다. 위의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다른 느낌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여기에 실린 산문들은 주로 열하일기나 동명일기 류의 산문으로 읽고 난 다음에 무릎을 치며 감탄하는 글이 아니라 그 표현 하나 하나를 오래 음미해가며 읽으면 맛이 깊을 수 있는 산문이다. 따라서 마음이 급한 사람에게는 잘 안읽혀질 수 있는 글들이다.

영어도 원서로 되어 있는 것 읽을 대와 번역본 읽을 때 맛이 틀리나, 한문은 더한 듯 하다. 원고지 5매도 되지 않는 짧은 글들도 많은데 번역된 글로 읽어서인지 아무 느낌없이 휙휙 지나간다는 것을 조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시로 지을 때는 엄격한 형식률의 미학이 있었을텐데 이를 모르고서 주마간산격으로 지나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여유롭게 앉아 청풍명월을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음이 급하고 얕은 지식욕에 눈먼 나에게 맞지 않았을 뿐 누군가에는 좋은 책이리라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 아이를 해치는 음식 39가지
다음을 지키는 엄마모임 지음 / 시공사 / 200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는 '아이를 해치는 음식 39가지'라는 부제가 가지고 있다. 제목과 부제만 보아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소속의 '다음을 지키는 모임'에서 쓴 책이라고 하면 더더욱 어떤 책인지 알만해진다. 왜 저자들은, 그리고 출판사는 이렇게 도발적인 언어를 사용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일반인들이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그 위험성이나 좋지 않은 점을 알면서도 그저 관성에 의해 이를 시정하지 않는 경우가 이미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위험성이나 좋지 않은 점이 실상은 표피적인 느낌일 뿐 실상은 훨씬 심각하기에 그런 제목을 썼을 것이다.

농약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는 그러면서도 주변 음식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먹는다. 도시에 살아가면서 공해는 감수해야한다는 식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어느 정도의 농약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는 그 실상에 대해서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의 유해성은 겉핥기식 정보에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딸기만 예로 들어보자. 설마 보들보들한 딸기이고, 곧바로 아이들 입에 들어갈 것인데 수확 직전에는 농약을 치지 않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수확 후 농약(Post Harvest)까지 치고 있었다. 딸기가 짓무르지 않도록 수확 후에도 수분증발억제제를 뿌린다. 그런데 이를 뿌리면 과일 자체가 숨을 쉬지 못하여 부패되므로 썩지 말라고 방부제를 또 뿌린다. 딸기의 싱싱함은 바로 이 수분증발억제제와 방부제의 힘에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39가지의 음식에 대한 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다. 단지 그 위해성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먹거리에 대한 방법도 얘기하고 있다. 환경단체의 회원이라고는 하지만 7명의 주부가 쓴 글이기에 실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대안까지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아이들을 둔 부모라면 한번쯤 일독할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닥불 - 어른을 위한 동화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현대문학북스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그동안 '어른들이 읽는 동화'라는 부제가 달린 책에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 간혹 가벼운 읽을 거리를 찾을 때 손에 잡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는 작위적인 설정이나 비유에 실망한 적이 많았다. 차라리 잘 쓰여진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오히려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만약 나처럼 이렇게 '어른들이 읽는 동화'에 실망해온 사람이라면 정호승 시인이 쓴 <모닥불>을 한번 읽어볼 것을 정말 추천하고 싶다.

내가 아는 정호승 시인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라고 얘기하거나,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 지금 당장 내 목을 베어 가십시오'라고 너무나도 도발적이고, 너무나도 직설적인 사랑법을 얘기하는 시인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닥불>을 읽고서야 그가 얘기하는 '사랑'의 참뜻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책을 '사물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그는 혼을 불어넣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사물에 그는 허리를 굽혀 가까이 다가가서 애정어린 시선을 던졌다. 그런 시선이 던져지자 그 사물은 우리 가슴을 울리는 얘기를 풀어냈다. 종과 그 종을 치는 종메 사이의 관계, 자물쇠와 열쇠 사이의 관계, 물과 나룻배 사이의 관계, 나무와 그 아래서 쉬는 여인 사이의 관계... 이런 관계는 그저 우리가 흔히 보는 관계일 뿐이나, 정호승 시인의 관심이 던져지면, 관심이 사랑으로 바뀌고, 사랑이 사물에 혼을 불어넣어 그 사물은 다른 언어로 얘기하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하는 종과 종메 사이를 그려내는 것은 시인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정호승 시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린 서로 함께 아픔으로써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거야. 어떻게 고통 없이 아름다워질 수 있겠니'라고 말한다. 서로가 잘낫다고 우기던 자물쇠와 열쇠가 다른 하나가 없이는 자신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자물쇠가 망치에 부서지는 간결한 문장 하나를 통해 얘기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그리는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한 곳을 바라보는 사랑'이다. 하나가 하나를 딛고 일어서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운데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상생의 사랑이다. 서로 애절하게 갈구하는 사랑이 아니라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만 완성되는 사랑이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주변에 보이는 사물을 다시 한번 보게한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고난 다음 길가에 쌓여있는 눈더미의 잔해나,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담고있는 광주리나, 사무실에 걸려있는 시계나 이 모든 것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그게 다른 모습으로 외화되어 많은 얘기를 들려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무척 예뻐서 굳이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도 어릴적 순수에 대한 향수 때문에라도 집어들게 되는 책이다. <창가의 토토>는 저자 구로야나기 테츠코씨의 어릴적 얘기에 기반하여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토토라는 아이일 수도 있고,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일 수도 있고, 그 교장선생님이 만든 도모에학원일 수도 있다.

토토라는 아이에게로 시선이 돌아가면 맑은 순수에 이끌리게 되고, 교장선생님에게로 시선이 가면 더할 나위 없는 교육자에게 보내는 경외심과 그런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싶은 소망에 이끌리게 되고, 도모에학원으로 시선이 가면 그런 꿈의 터전이 이 땅 어느 곳에서 쉼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책은 1940년대 초반, 일반 학교에서는 주의력이 산만하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해야만 했던 토토가 도모에학원에 가면서 자신의 감성과 자신만의 세계를 마음껏 펼치는 얘기를 담고 있다. 짧은 사건들의 이어짐을 통해서 엮어진 이 책은 기억을 토대로 하여 쓰여진 책이라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책을 덮고서도 잔잔한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책 초반에는 토토라는 아이에게 던져지던 시선이 점차 고바야시 교장과 도모에학원에게도 옮겨진다. 그리고 교장과 교장이 이루어낸 터전에 대한 얘기는 1945년 도모에학원이 불타 없어지면서 끝을 맺고 있다. 불탄 학교를 바라다보면서 고바야시 선생님은 '얘야, 이번에는 무슨 학교를 만들까?'라고 말한다. 그의 교육에의 열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릴적 기억은 항상 아련함과 그리움, 포근함으로 남기 마련인가. 이 책에 쓰여진 얘기들이 하나같이 잔잔하고 따뜻한 것은 아마 이러한 어릴적 기억에 대한 느낌 때문일 수도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