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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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수는 없다』는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기독교에 대한 전면 부정을 담은 책이 아니다. 기독교, 또는 예수님의 종교에 대한 신앙(faith)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신앙은 다양한 믿음체계(beliefs) 위에 서 있을 터인데, 특정한 하나의 믿음 방식만을 고집하고 그 외의 주장이나 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으로 대응하는 근본주의자들의 협소한 믿음체계에 대한 방대하고 포괄적인 반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론은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여러 비유를 통해서,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지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며 설파한다. 저자의 가장 큰 주장은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 종교라는 배타주의를 버리고 모든 종교들이 진리와 구원의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라는 다원주의를 포용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저변에는 성경을 문자주의(literalism)로 보고 그 내용에 얽매이거나 무오설(無誤說)에 의해 억지로 짜맞추지 말고 성격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 온 하나의 역사적 산물로 보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예수님에 관해서도 예수님 자체에 관한 종교화 대신 예수님의 신앙, 삶에 대해 배우고 현 시대에 맞는 예수님의 상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가 그리고 있는 기독교관은 다원주의와 지구적 책임에 대한 강조이자, 내면의 다스림과 외연의 실천 간의 중용이다. 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고착화되어 있는 상(像)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끊임없이 발전해 가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 해명하고, 앞 뒤 논리적 모순을 메꿔야하느라 허덕일 수 밖에 없는 성경을 해방시키는 것이자, '예수님에 관한 종교'가 되면서 허공에 떠버리게 된 예수님 자신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것이자, 고착화된 상에 따라 그동안 억눌릴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독립적 사고력과 생명력 자체를 해방시켜는 것이다.

이 책은 많은 논란과 많은 해석을 줄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으로부터는 터무니없는 엉터리 주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터이고, 또 어떤 기독교인에게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추해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며, 비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이런 논란이 문제일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얄팍한 상업적 논란 외에 제대로 된 논란이 부족한 것이 문제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오강남 교수가 던진 파문이 다른 파문을 연쇄적으로 일으킬지언정 그 파문은 의미 있고 곰씹어 볼만한 파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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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창세기 - 새천년을 과학으로 읽는다, 이인식 과학칼럼
이인식 지음 / 김영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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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창세기>를 들게 된 것은 순전히 <아주 특별한 과학 에세이> 탓이다. 이 모두 저자가 이인식씨이다. 올해 출간된 <아주 특별한 과학 에세이>를 읽고 이 책의 내용에 감화받은 나머지 이인식씨의 근작 중에서 고른 책이 <제2의 창세기>다.

<제2의 창세기>에도 이인식씨의 고집인 원고지 35매의 과학칼럼이 33편이나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중 7편은 <아주 특별한 과학 에세이>에도 담겨져 있는 것이다. 35매의 글에 겉핥기식의 글이 아닌 정제된 논지를 담는 그의 과학칼럼은 <제2의 창세기>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2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읽기에도 흥미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정보기술, 인간의 본질, 초심리학, 현대과학의 흥미로운 쟁점들, 21세기의 과학 기술 등을 6개의 단락으로 묶어 얘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 방대한 분야를 넘나들면서도 정제되고 깊이있는 과학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과학 대중화는 과학을 쉽게 전달하는 것만은 능사가 아닐 것이다. 과학의 정수는 그 논리적 적합성과 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명쾌함일 것이다. 이러한 정수를 느끼고 싶은 분께 이인식씨의 과학칼럼집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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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산엔 노랑꽃 - 장돈식의 산방일기 학고재 산문선 13
장돈식 지음 / 학고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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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봄을 알리는 꽃이 유난히 노란색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왜 노란색인지는 몰랐다. 참 궁금했다. 그러다가 <빈산엔 노랑꽃>이라는 책을 보니 책 발문에 그 이유가 써 있었다. '아직 신록이 피어나기 전, 메마른 배경일 때 멀리 있는 벌과 나비들의 눈에 띄기 쉬운 색이 노란색임을 식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의 시작과 끝에는 노랑꽃이 핀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자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잔잔하면서도 강할 것이라 짐작이 되어 선뜻 책을 들었다.

책에는 '장돈식의 산방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 장돈식씨는 1920년생이니 올해 여든이 넘었다. 1988년 원주 치악산 자락에 있는 백운산에 들어가 백운산방을 짓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오고 있었다. 이 책은 이렇게 자연의 일부로 살아오면서 10여간 욹어낸 글이다.

장돈식씨의 글의 가장 큰 매력은 물 흐르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얘기에 젖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강력한 주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물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글에 금방 빠져들고 만다.

우선 그의 시선은 멀리 가 있지 않다. 주변의 나무 하나, 새, 토끼 등의 산짐승, 개, 고양이 등 집에서 기르는 짐승, 달빛, 이끼, 바위 등에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선은 예사로운 시선이 아니다.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는 것을 몇 시간에 걸쳐 관찰하는 것은 거미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나무와 바위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교감을 갖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산까치와 까치와의 한바탕 세력싸움을 몇 날을 거쳐 관찰하며 쓰는 글은 자연에 대한 애정은 물론 깊은 사색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글이다.

그의 글에서 묻어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그가 사랑한 그의 인생과 주변 사람에 대한 애정 또한 은근하게 묻어나온다. 1950년 가나안 농원을 설립한 뒤 30여년 동안 선진 농업기술 보급과 농민들의 자립터전 마련에 힘을 쓴 그의 인생역전이 말해주듯이 주변 사람에 던지는 시선 또한 부드럽고, 그가 말하는 그의 인생에 애정이 가기까지 하고, 그의 삶의 철학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이 자연이나 인간에 대한 가벼운 글은 절대 아니다. 그의 글에서 문자향(文字香)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우리수필문학회 회장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다. 그의 글이 물 흐르듯이 느껴지면서도 흩어지지 않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것은 글 곳곳에서 묻어나는 문자향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향기가 글을 읽는 맛을 준다.

글은 인생의 무게로 욹어내어 써야하고 그렇기에 오십이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윤기씨. 그리고 육십이 훨씬 넘어 문단에 등장하여 여든이 넘어서 수필집을 낸 장돈식씨. 그들의 글에는 강한 울림이 있다. 유려하면서도 깊이가 흐르는 그러한 울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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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박원순 지음 / 한겨레신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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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곧 이데올로기 대립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이데올로기 대립의 총화는 전쟁이나 혁명으로 외화되기 마련이지만, 일상적인 이데올로기 경연의 대립장은 아마 재판정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재판정은 항상 舊와 新이 대립한다. 법률이 미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해석하는 것이기에 법은 곧 舊를 대변하기도 하고, 권력을 대변하기도 하고, 현재의 보편성 동의(同議)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 경연장은 대체로 현 법 질서 수호의 기치를 내걸었으나, 그래도 이 경연장에서 新은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겹게 굴려오기도 했다.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는 박원순 변호사가 세기의 재판이야기를 모아 쓴 책이다. 소크라테스, 예수, 잔 다르크, 토머스 모어, 마녀재판, 갈릴레이, 드레퓌스, 페탱, 로젠버그 부부, 채털리 부인의 사랑 등 10개의 주제, 10개의 재판을 다루고 있다. 모두 세인의 흥미를 자극할만한 주제이나, 그 흥미 자극 외에 이 10개의 재판에는 역사성의 대립이 거칠게 숨쉬고 있다. 그리고 박원순 변호사는 한 시민단체의 수장답게 흥미 속에서 이 역사성의 대립을 진주알 만들어가듯 건져내고 있다.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재판을 통해서는 일반적으로 오도된 상식을 파헤치기도 하며, 잔 다르크 재판을 통해서는 신화와 전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한 인물을 재조명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중세의 마녀재판이나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 재판, 원자폭탄 비밀을 소련으로 빼돌린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로젠버그 부부의 재판, 프랑스 비시정권의 수반인 필리페 페탱의 재판 등을 통해서는 우리의 암울했던 가까운 현대사를 강하게 기억하도록 해준다. 또 갈릴레이의 재판이나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과학혁명과 성혁명의 한 역사 현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모든 재판에 각 계급, 계층 세력이 힘 겨루기를 한다. 10편의 재판으로 세계사를 조명할 수 없지만, 인류 역사는 이러한 힘겨운 힘 겨루기를 통해서 이 지점까지 왔다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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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이레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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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책이 그동안 베스트셀러가 많이 되었지만 나는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못했다. 읽지 않기도 했다. 스님이 쓰셨다 하니 알쏭달쏭한 선문답이 많겠거니 지레 선입견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에세이를 담은 책이라 하고 또 법정 스님의 글을 접해보고 싶은 욕구 또한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수필집을 들었다.

만약 이 책에서 저자를 숨기고, 책 내용 중에서 공양을 했다라든가 예불을 드렸다는 식의 일기식 표현 몇 마디를 빼고서 이 책 저자의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스님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산 중에 은거하는 한 자연주의자일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엮은 류시화씨가 서문에서 법정 스님을 '산 속에 사는 산사람(山之山人)'이라고 표현했는데 글을 읽을수록 이 표현이 너무나도 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2∼3매의 원고지 분량의 짧은 글 형식으로 자연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싣고, 여기에 뒤에 편지글까지 넣어 편집한 책이다. 법정 스님의 글에는 어렵거나 무언가 진리가 있을 법한 선문답이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느낌 가는 대로 읊은 자연에 대한 노래가 있을 뿐이다. 시인들처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무릎을 탁 칠만한 글귀가 많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물 흐르듯이, 산에 계절이 스쳐지나가듯, 구름에 달 가듯 달에 구름 가듯 글이 흐를 뿐이다. 생명이 있는 대상이든, 생명이 없는 대상이든 이러한 대상들을 해부하여 살펴보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묘사할 뿐이다.

선문답도 없고, 무릎을 탁 칠만한 수려하거나 번뜩이는 글귀가 있지도 않고, 대상을 해부하지도 않지만 법정 스님의 글은 가랑비에 옷 젖듯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든다. 이는 자연을 바라보는 법정 스님의 눈에 비밀이 있다. 잔잔하고 따뜻한 시선에 비밀이 있다. 자연으로 귀화한 사람의 눈으로 쓰는 글이라는 점에 비밀이 있다.

무슨 진리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 위해 이 책을 든다면 만족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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