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박원순 지음 / 한겨레신문사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역사는 곧 이데올로기 대립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이데올로기 대립의 총화는 전쟁이나 혁명으로 외화되기 마련이지만, 일상적인 이데올로기 경연의 대립장은 아마 재판정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재판정은 항상 舊와 新이 대립한다. 법률이 미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해석하는 것이기에 법은 곧 舊를 대변하기도 하고, 권력을 대변하기도 하고, 현재의 보편성 동의(同議)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 경연장은 대체로 현 법 질서 수호의 기치를 내걸었으나, 그래도 이 경연장에서 新은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겹게 굴려오기도 했다.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는 박원순 변호사가 세기의 재판이야기를 모아 쓴 책이다. 소크라테스, 예수, 잔 다르크, 토머스 모어, 마녀재판, 갈릴레이, 드레퓌스, 페탱, 로젠버그 부부, 채털리 부인의 사랑 등 10개의 주제, 10개의 재판을 다루고 있다. 모두 세인의 흥미를 자극할만한 주제이나, 그 흥미 자극 외에 이 10개의 재판에는 역사성의 대립이 거칠게 숨쉬고 있다. 그리고 박원순 변호사는 한 시민단체의 수장답게 흥미 속에서 이 역사성의 대립을 진주알 만들어가듯 건져내고 있다.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재판을 통해서는 일반적으로 오도된 상식을 파헤치기도 하며, 잔 다르크 재판을 통해서는 신화와 전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한 인물을 재조명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중세의 마녀재판이나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 재판, 원자폭탄 비밀을 소련으로 빼돌린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로젠버그 부부의 재판, 프랑스 비시정권의 수반인 필리페 페탱의 재판 등을 통해서는 우리의 암울했던 가까운 현대사를 강하게 기억하도록 해준다. 또 갈릴레이의 재판이나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과학혁명과 성혁명의 한 역사 현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모든 재판에 각 계급, 계층 세력이 힘 겨루기를 한다. 10편의 재판으로 세계사를 조명할 수 없지만, 인류 역사는 이러한 힘겨운 힘 겨루기를 통해서 이 지점까지 왔다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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