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이레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법정 스님의 책이 그동안 베스트셀러가 많이 되었지만 나는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못했다. 읽지 않기도 했다. 스님이 쓰셨다 하니 알쏭달쏭한 선문답이 많겠거니 지레 선입견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에세이를 담은 책이라 하고 또 법정 스님의 글을 접해보고 싶은 욕구 또한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수필집을 들었다.

만약 이 책에서 저자를 숨기고, 책 내용 중에서 공양을 했다라든가 예불을 드렸다는 식의 일기식 표현 몇 마디를 빼고서 이 책 저자의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스님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산 중에 은거하는 한 자연주의자일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엮은 류시화씨가 서문에서 법정 스님을 '산 속에 사는 산사람(山之山人)'이라고 표현했는데 글을 읽을수록 이 표현이 너무나도 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2∼3매의 원고지 분량의 짧은 글 형식으로 자연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싣고, 여기에 뒤에 편지글까지 넣어 편집한 책이다. 법정 스님의 글에는 어렵거나 무언가 진리가 있을 법한 선문답이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느낌 가는 대로 읊은 자연에 대한 노래가 있을 뿐이다. 시인들처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무릎을 탁 칠만한 글귀가 많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물 흐르듯이, 산에 계절이 스쳐지나가듯, 구름에 달 가듯 달에 구름 가듯 글이 흐를 뿐이다. 생명이 있는 대상이든, 생명이 없는 대상이든 이러한 대상들을 해부하여 살펴보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묘사할 뿐이다.

선문답도 없고, 무릎을 탁 칠만한 수려하거나 번뜩이는 글귀가 있지도 않고, 대상을 해부하지도 않지만 법정 스님의 글은 가랑비에 옷 젖듯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든다. 이는 자연을 바라보는 법정 스님의 눈에 비밀이 있다. 잔잔하고 따뜻한 시선에 비밀이 있다. 자연으로 귀화한 사람의 눈으로 쓰는 글이라는 점에 비밀이 있다.

무슨 진리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 위해 이 책을 든다면 만족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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