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산엔 노랑꽃 - 장돈식의 산방일기 학고재 산문선 13
장돈식 지음 / 학고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봄을 알리는 꽃이 유난히 노란색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왜 노란색인지는 몰랐다. 참 궁금했다. 그러다가 <빈산엔 노랑꽃>이라는 책을 보니 책 발문에 그 이유가 써 있었다. '아직 신록이 피어나기 전, 메마른 배경일 때 멀리 있는 벌과 나비들의 눈에 띄기 쉬운 색이 노란색임을 식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의 시작과 끝에는 노랑꽃이 핀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자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잔잔하면서도 강할 것이라 짐작이 되어 선뜻 책을 들었다.

책에는 '장돈식의 산방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 장돈식씨는 1920년생이니 올해 여든이 넘었다. 1988년 원주 치악산 자락에 있는 백운산에 들어가 백운산방을 짓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오고 있었다. 이 책은 이렇게 자연의 일부로 살아오면서 10여간 욹어낸 글이다.

장돈식씨의 글의 가장 큰 매력은 물 흐르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얘기에 젖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강력한 주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물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글에 금방 빠져들고 만다.

우선 그의 시선은 멀리 가 있지 않다. 주변의 나무 하나, 새, 토끼 등의 산짐승, 개, 고양이 등 집에서 기르는 짐승, 달빛, 이끼, 바위 등에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선은 예사로운 시선이 아니다.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는 것을 몇 시간에 걸쳐 관찰하는 것은 거미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나무와 바위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교감을 갖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산까치와 까치와의 한바탕 세력싸움을 몇 날을 거쳐 관찰하며 쓰는 글은 자연에 대한 애정은 물론 깊은 사색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글이다.

그의 글에서 묻어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그가 사랑한 그의 인생과 주변 사람에 대한 애정 또한 은근하게 묻어나온다. 1950년 가나안 농원을 설립한 뒤 30여년 동안 선진 농업기술 보급과 농민들의 자립터전 마련에 힘을 쓴 그의 인생역전이 말해주듯이 주변 사람에 던지는 시선 또한 부드럽고, 그가 말하는 그의 인생에 애정이 가기까지 하고, 그의 삶의 철학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이 자연이나 인간에 대한 가벼운 글은 절대 아니다. 그의 글에서 문자향(文字香)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우리수필문학회 회장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다. 그의 글이 물 흐르듯이 느껴지면서도 흩어지지 않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것은 글 곳곳에서 묻어나는 문자향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향기가 글을 읽는 맛을 준다.

글은 인생의 무게로 욹어내어 써야하고 그렇기에 오십이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윤기씨. 그리고 육십이 훨씬 넘어 문단에 등장하여 여든이 넘어서 수필집을 낸 장돈식씨. 그들의 글에는 강한 울림이 있다. 유려하면서도 깊이가 흐르는 그러한 울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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