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책이 세상은 못 구해도 사람과 예술은 구한다 - <88만원 세대> 판매 및 기타 등등 근황

출간 프라이팬 2007/09/10 16:52 posted by 후라이빵
1.

<88만원 세대>는 팔린 것 모르겠고, 3,000부가 깔렸다고 한다.

만부는 넘을 거라고 전망을 하는데,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조금씩은 꾸준히 나간다고 한다.

만 부 되면 출판사에서 작은 잔치라도 한 번 하기로 했다.

<한미 FTA 폭주는 멈춰라>의 경우는 왜 아직도 팔리는지, 나도, 출판사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는 한데, 이것도 만부는 넘어갈 것 같다. 만 부 넘으면 떡이라도 돌리는 잔치를 할 생각이다.

레디앙에서는 한겨레 신문사에라도 광고를 하고 싶어하는데, 음... 난 신문광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신문광고 할 정도로 잘 팔릴 책은 써본 적이 없어서... 10만부는 넘어가는 책들은 광고를 한다. 난 그런 시장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마이너 시장에 속한, 전형적인 사회과학 시장에 속한 사람이다.

이 말은 천 권 팔기가 버겁고, 2천권이 히말라야처럼 높아보이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물론 장사는... 나는 잰병이다. 이런 책을 쓰고도 이렇게밖에 못 파느냐고 주위에서 어지간히도 쪼아대지만, 지금 책 팔고 있을 여력은 없고, 다음 책 두 권을 연내에 무사히 내느냐 못내느냐, 또 다른 악전고투 중이다.

3권은, 1권만큼 앞부분 잡기가 어렵다.

정말 솔직한 심정은 디워 천만명이라고 하는데, 사회과학 책들이 천권, 2천권을 놓고 죽느니 사느니 한다는 이 상황이 참 안타까운 일일 뿐이다.

다섯 권의 책을 내면서 내가 배운게 한 가지가 있다. 내가 상대하는 한국의 대중들은, 책을 읽지 않을 이유 백 가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고, 사탕발림이 아닌 책을 읽지 않을 이유 열 가지를 즉각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마케팅 용어로 하면, "까다로운 고객"이다. 핸펀과 비교하면, 책에 대해서만큼은 참으로 까다로운 고객이다.

이건 주어진 조건이다.

하여간 <88만원 세대>는 만권이 팔려서 잔치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2.

'공유된 경험'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게 좋은 말이기도 하고, 나쁜 말이기도 하다.

나쁜 짓을 같이 많이 하다보면 전부 도둑놈이 된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좋은 일을 하고는 싶은데,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참 없다. 선행도 훈련이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요즘 유행하는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선행을 권하는 책이 참으로 드물다는 점을 느꼈다.

너, 원래 나쁜 넘이쟎아, 본성대로 살아...

이런 식으로 쓴 책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홉스의 레비아탄이다. 그래도 이 책들은 중세에서 근대를 열었던, 파이오니아 같은 것으로 해석되고, 앞으로도 몇 백년은 살아남을 책들이다.

우리 시대의 공유된 경험, 그것이 두렵기도 하다. 축구 집단응원가 탄핵철폐를 외쳤던 것 외에는 정말로 공유된 경험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가?

3.

통일을 공유된 경험으로 가졌을 때, 이 시스템에는 어떠한 변화가 올 것인가?

반성된 세계화적인 소국 시장의 형태를 가질까, 촌놈들의 제국주의 형태를 가질까? 평소에도 반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린간들이 통일된다고 갑자기 반성할까?

안 그럴 것 같다. 이게 3권의 주제인데, 어떻게 이 얘기를 귀에 거슬리지 않고 담아낼 수 있을지, 도통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쁜 짓 할려고 굳게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 천당을 생각하시오...

꼭 도에 관심있으십니까라고 말머리를 떼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88만원 세대의 저주' - 출간에 대한 주요 사고 정리

출간 프라이팬 2007/08/17 02:32 posted by 후라이빵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 우리가 '88만원 세대의 저주'라고 부르는 출간과 배포 과정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들을 정리해드립니다. 이런 이유로 아직도 소매 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가 없다는...)

88만원 세대는 신문사 서평이 나가고 1주일이 넘은 시점에서도 서점에 깔리지 않은, 아마 기록이라면 기록이라는, 하여간,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 생기고 있다.

아직 제대로 깔리지도 않았는데도, 알라딘 사회과학 순위에서는 5위를 하는, 또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유시민과 김주하를 제꼈는지...)

지금 출판사에서는 토요일날에는 깔리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아직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벌써...

기다리다 지치고 지쳐서, 우리는 그걸 '88만원 세대의 저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사자의 보호를 위해서 아주 민감한 것들은 좀 빼고 주요한 몇 가지만 추려보자.

1. 출판사가 바뀌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본격적으로 에디팅 작업에 들어가려고 하는 시점에, '출간 불가' 판정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길고 긴 악몽의 시작이었다.

2. 출판사를 차리다...

내용을 놓고, 생전 처음 몇 개의 출판사와 네고를 하다, 결국 선배 졸라서 출판사를 차렸다. '레디앙' 같이 왜 초짜 출판사에서 책을 내냐고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그게 아니라 출판사를 차리지 않으면 초고의 큰 줄기를 건드리지 않고 내줄 출판사가 내 주위에는 없었다 (물론 나는 C급 경제학자라서 큰 출판사는 거의 모른다.) 결국 적자 매체로, 한 달은 월급을 못주고, 다음 달에는 겨우 30만원씩 줬던 가난한 좌파 매체에서 출판사를 차리게 된다.

3. 디자인할 돈이 없다...

한 번 공개되었던 표지 디자인에 대해서 사람들이 악평이 대단했던 걸로 아는데, 디자인할 돈이 없었고, 그래서 선물 출자 형태로 디자인을 맡아줄 회사가, 이 책의 미래에 출자하는 걸로 - 사실은 나중에 돈 벌면 주든지, 그걸 이렇게 표현한다 - 정리되는 데까지 엄청 시간을 들였다.

4. 교열자에게 사고가 생기다

전문적인 교열을 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전문 교열자와 계약을 했는데, 여기에서 3주가 지나갔다. 다들 교열 오기 전까지는 할 일이 없어서 손 놓고 멍하니 있었다.

교열자는 첫 주에는 몸이 아팠는지 연락이 안되었다.

그 다음 주에는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와서, 하여간 접대 같은 일을, 자신도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중대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고 들었는데 - 하여간 자세히는 모른다 - 그래서 3주가 지나갔다.

그래서 그 달에는 월급도 못 받았던 이재영이 붙잡혀서 교열을 봐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5. 기타등등, 크고 작은 사고들...

뭐, 그 중간중간에도 감기, 몸살, 기타 등등, 저자들과 에디터들에게 생길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6. 편집국장, 차를 파시다...

돈 없는 매체에서 인쇄할 돈이 없어서, 마이너스 통장, 선배한테 돈 꾸기, 은행 대출, 하여간 가난한 좌파들이 나눠서 사채만 빼고 돈 꿀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눈물나게 400만원 정도를 겨우 마련해서, 인쇄소에 넘어갔다. 그동안 이재영은 통장에 딱 만원 밖에 없는 긴급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그날은 돈이 없어서 자전거로 여의도까지 출근했다고 한다 (딴 날은 재미로...)


결정타는, 배급사에서 처음 내는 출판사라고 보증금을 다시 요구했는데, 이건 마련할 길이 없었다. 결국 편집국장이 결국 분당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할 때 쓰던 차를 팔았다고 나중에 건네 들었다. 눈물 나는 이 출간 스토리의 결정판이다. <88만원 세대>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 중고차 한 대가 팔려나갔다. 그래서 지금도 편집국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나도 한 마디도 못한다. 가장 눈물나는 대목 중의 하나이다... 지금 한국 좌파들은 현장에서 이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7. 연이은 배달사고...

처음 배포되는 날, 파주 인쇄소에서 떠난 책을 실은 차가... 이유는 모른다. 첫 번째 배달사고가 났다. 그리고 중간 배포로 떠난 월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크고 작은 배달 사고가 연이어서... 결국 책방에는 한 권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유는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만 싣고 떠나면 전혀 다른 성격의 사고들이 난다는데야... 오토바이 사고도 한 건 있었다고 얼핏 들었는데, 하여간 서평이 나온 첫 주는 배달사고의 한 주였다.

그 때부터 우리는 이 책이 세상에 깔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 파라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8. 그리고 대형 사고...

배달과 관련된 사고는 앞으로 터질 사고들에 비하면 약과이다. 진짜 대형 사고는 표지 디자인에 디자이너가 새겨넣은 바코드가 현재 출간 중인 어떤 책의 바코드와 일치한다는... 그런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 같다.



바로 상단의 이 바코드가 출간된 바코드와 일치한다는... (무섭다! 666처럼...)


하여간 기계를 거치면 다른 책으로 인식되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책들이 다시 회수되고, 1쇄로 찍었던 천권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 지난 주말에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배포망을 따라서 도로 책이 회수되고 - 그나마 소매에 안 깔린게 유일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는 후문이 - 표지 디자인을 다시 바꾸는 일이 진행되었다.

물론 '88만원 세대의 저주'는 그렇게 만만하게 풀릴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배포망과의 오래된 실랭이 끝에 겨우 회수가 되었는데, 디자인팀이 전원 휴가 중...

하여간 어떻게 어떻게 문제는 해결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인쇄소가 휴가...

이 문제도 어떻게 어떻게 해결을 해서, 1쇄 천권은 폐기되고, 급하게 새로 표지를 찍은 책들이 소매 서점까지 깔리는 것은 빠르면 토요일...

관련된 사람의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거의 처음 본 사건이 이만큼 또 있다.

그 와중에 새로 찍은 책 중 400권은 알라딘에서 먼저 가지고 갔다던데, 배포사와 우연히 같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다는... (하여간 거의 2주 동안 알라딘은 이 책을 독점 배포하는...)


9. 그리고 마지막 사고

편집에도 중대한 사고가 많이 있는데, 단순 오탈자 문제가 아니라 악몽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줄간격, 색깔, 등등... 2쇄 때에는 그런 걸 없애기 위해서 나도 날밤까면서 다시 책을 붙잡고 교정 중인데, 이미 출간된 책이 나가자마자 도로 붙잡혀서 에어콘 없는 방에서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면서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다.

(이 사고가 뭔지 찾는 사람 선착순 1명에게는, 내가 앞으로 낼 모든 책을 한 권씩 증정하는 이벤트를 할까... 생각 중이다. 난 찾았고, 이재영은 못찾았다.)

10. 이것도 기념이다...

저자에게 원래 20권을 주는데, 요즘 내가 정신이 없어서 몇 권 안 돌리고 그냥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니까, 이건 기념으로 둬야겠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나중에 유명한 사람이 되면, 이게 바로 '88만원 세대 저주'의 흔적이다, 내 자식들이 박물관에 비싼 값에 팔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경제학자라서 이런 식으로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간다.)

하여간 여러 권을 출간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태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ps. '88만원 세대의 저주'가 연장된 것인지, 거의 오탈자가 없는 걸로 유명했던 개마고원도 이 책의 2편이자 속편인 해당하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서 오탈자가 나와서, 사장님이 전전긍긍...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저주의 연장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개마고원에서 오타가, 그것도 원저자가 하지 않은 오타가 나오는 것은 정말로 이례적인 일이다. 이 2권도 심각한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었는데, 1권인 <88만원 세대>에 비하면 이 책에 딸린 사고들은 사고 축에도 못낀다.

(이 두권은 1, 2권 관계이며, 쌍둥이 관계이기도 하다. 1권의 질문에 대한 답이 2권인 것으로 두 권이 디자인되어 있다. 물론 서점에서 두 권은 전혀 다른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제 이 정도는 사고로도 안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2권인데, 출판사가 나뉘면서 2권 표시도 못해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편집자레터] 동업자 정신이 아쉬운 때 [중앙일보]





 


관련링크


 
  매에는 장사 없다고들 하지요. 우리 출판계는 이번 초여름 유례없는 불황을 겪었습니다. 크기에 상관없이 신음을 내더니만 드디어 흉흉한 소문이 흘러 다닙니다. 어느 출판사에선 직원의 30%를 감원하고도 앞으로 추가 감원계획이 있다더라, 어느 곳엔 제1 금융권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더한 소문도 있습니다. 어떤 출판사는 지업사에서 종이를 대주지 않기로 했다더라, 이름이 알려진 모 출판사에선 직원 월급을 못 준다더라란 풍문까지 돕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하긴 합니다.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냐”고 항의성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설사 그런 소문들이,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럴만한 상황이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출판계의 시름은 깊어갑니다.

이런 상황에 차마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력이 있는 출판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내세워 유망 저자들을 싹쓸이하려 한다는 겁니다.

 그 조건이 기가 막혔습니다. 모모 신문에 광고를 내주겠다, 초판 판매를 보장하고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2, 3주간 머물게 해주겠다는 내용이랍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출판인은 “이제 소규모 출판사는 설 자리가 없다”며 한숨을 쉬더군요.

전해 들은 이야기라 “설마, 그렇게까지야…”싶었죠. 하지만 며칠 뒤 만난 어느 저자는 지난해 같은 출판사에서 “2만 부 인세는 보장한다”며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더군요.

 출판도 사업이니 있는 집에서 저자들을 싹쓸이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준다는 데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죠. 그런데 입맛이 썼습니다. 인위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다는 그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무리한 마케팅을 하자면 책값도 올려야 하고, 팔리는 책 위주로 내다보면 독서문화를 왜곡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소규모 출판사에서 키워낸 저자들을 그렇게 빼가는 것은 몰염치한 행위입니다. 남의 ‘재산’을 빼돌리는 격이니까요.

 프로 스포츠에서 빈볼이나 과격한 파울을 보면 ‘동업자 정신’이 아쉽다고들 하지요. 출판계에서도 동업자 정신을 기대하면 무리일까요? 책끼리는 어차피 경쟁관계도 아니고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마당에 말입니다.

김성희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트북을열며] 출판가 ‘쩐(錢)의 전쟁’ [중앙일보]





 


관련링크


 
  딱 10년 전 일이다.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사였던 고려원이 부도를 냈다. 1978년 설립 후 철학·문학·과학 등 2500여 종을 발간했던 출판계의 ‘큰형’이 쓰러졌다. 고려원의 ‘밀어내기’ 영업이 경영난을 부채질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루 한 권꼴로 새 책을 내고, 신간 판매 대금을 구간 판매액으로 보충하는 방식이었다.

 1년 뒤 출판계에는 더 큰 회오리가 불어닥쳤다. 최대 서적 도매상이었던 보문당이 무너지며 중소 도매상·출판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지식산업의 고사마저 우려됐다. 정부에선 긴급 자금을 투입하며 출판유통 개선에 나섰다.

 10년이 지난 지금 출판계는 얼마나 건강해졌을까. 가장 눈길을 끄는 현상은 인터넷 서점의 약진이다.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이미지가 서점가에도 재연됐다. 특히 작은 출판사들이 덕을 봤다. 수개월짜리 어음을 지급하는 오프라인 서점과 달리 온라인 서점은 판매대금을 제때제때 출판사에 입금했다. 텍스트(책)만 좋으면 언제라도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길이 뚫린 셈이다.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1인 출판’도 활성화했다. 아이디어·기획만 훌륭하면 큰 부담 없이 책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졌다. 2년 전 대형 출판사를 나와 1인 회사를 차린 A씨도 그중 한 명. 창업 당시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때마침 내놓은 신간의 반응이 좋았고, 판매대금도 바로바로 회수됐다. 전처럼 지방 서점을 순례하며 ‘잔돈’을 모을 필요가 없었다.

 최근 A씨를 다시 만났다. 예전의 화사한 표정이 사라졌다. ‘제2의 삶’을 가져다준 인터넷 서점이 오히려 큰 장벽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이유는 단 하나. 인터넷 서점의 각종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는 작은 출판사들은 신간을 내도 제대로 알리기가 어려워졌다는 푸념이었다.

 바로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 예스24·인터파크·알라딘 같은 대표적 사이트엔 이벤트 광고가 넘쳐났다. 10% 할인 기본에 쿠폰·마일리지 지급이 줄을 이었다. 이제 ‘1+1’(책 한 권을 사면 다른 책 한 권을 덤으로 제공) 정도는 눈길을 끌지 못했다. ‘1+3’도 심심찮게 보였다. 손수건·비치볼부터 해외여행까지 군침 도는 ‘미끼’도 띄었다.

 A씨의 불평. “1년 전만 해도 서점 관계자를 만나면 ‘내용이 좋네요’란 말이 먼저 나왔어요. 요즘은 ‘이벤트는 뭘 할 거죠. 선물은 있나요’부터 챙겨요. 텍스트로 승부를 거는 게 요원해졌죠.”

 독자 입장에서 ‘할인에 할인’은 반갑다. 같은 제품을 싼값에 사니 득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넓게 보면 꼭 그렇지만 않다. 대다수 출판사가 할인폭만큼 책값을 높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다. 이벤트에 맞는 책, 베스트셀러용 책에 집중하다 보니 소위 양서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 6일 한국출판학회가 주최하는 ‘제1차 출판정책 토론회’에 발표할 글을 미리 읽어 보았다. A씨의 푸념이 엄살이 아니었다. 출판계에 요즘처럼 원칙이 무너지고 편법이 난무한 적이 없다는 요지였다. 한 소장은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머니게임을 걱정했다. 신간을 띄우기 위한 사재기, 출판사의 양극화, 인터넷 서점의 할인 마케팅 등등. 하루 평균 200권(교보문고 입고 기준)씩 나오는 신간 가운데 대형 서점 신간 코너를 지키는 책은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 소장은 급선무로 신간 종수의 과감한 축소를 꼽았다. 대형 출판사들의 밀어내기 식 발간이 할인 경쟁을 불러왔다는 판단에서다. 과연 출판계가 그의 말을 경청할지…. 10년 전의 고려원 부도가 생각난다. 욱일승천할 것 같았던 한국영화가 최근 쪼그라든 것도 지난해 과다 제작·마케팅 때문이 아닌가.


박정호 문화스포츠 차장




[jhlogos@joongang.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성공에 지쳐 행복에 기댄다
런던 도서전에 나타난 새 경향…처세보다는 삶의 본질에 무게
트렌드를 찾아서…

책은 세계다. 전 지구적 사건과 역사가 들어 있고 경제와 경영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누가 ‘책의 쇠퇴’를 얘기했던가. 인터넷 시대라지만 책만큼 큰 삶의 의미와 정보를 알려주는 소스는 없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책에 대한 수요는 커진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호부터 매달 마지막 주에 한 달의 ‘책 세계’를 담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자폐아 가정. 도무지 안정될 틈이 없는 심한 자폐증 때문에 부모는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말 등에 올라앉게 된 아이. 그 순간 아이가 정상인처럼 안정을 찾고 집중력을 보이는 것 아닌가. 일시적 현상도 우연도 아니었다.

이 아이는 말과 함께하는 순간에는 항상 정상으로 돌아왔고, 어떤 면에서는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행동을 보였다. 그렇다면, 아이가 말과 어울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몽골로 떠난다. 그들에게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얼마 전 영국에서 열린 ‘런던 도서전’에서 가장 주목받은 책 가운데 하나인 『호스 보이(Horse Boy)』의 도입부다. 이들의 삶은 UCC(사용자 제작 콘텐트)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이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도 한창이다.

도서전에서 주목받은 또 다른 한 권의 책이 있다. 미국 버지니아 도서관의 한 고양이 이야기다. 특별하고 감동적인 사연을 안고 사는 ‘드웨인’이라는 고양이를 통해 인간 삶과 관계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감동적인 책이다.

“인생에서 소중한 게 과연 무엇인가”

국제 출판시장의 주요 행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런던 도서전’. 37번째를 맞은 올해는 전 세계 120여 개국 2만5000여 명의 출판인, 작가, 에이전트가 참여했다. 초기에는 비즈니스 관련 책 중심의 도서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동유럽 국가까지 가세하면서 다양한 출판물이 등장하는 최고의 국제도서전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런데 여기 등장한 수많은 책 가운데 앞의 두 권은 특히 시선을 끌었다.

두 책 모두 독자에게 현재 처한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삶의 궁극적인 행복 발견법을 제시한다. 최신 과학 기술과 강력한 성공 기법을 다룬 책이 많았지만, 좀 더 자연에 다가가는 삶, 좀 더 본질적인 행복에 다가가는 방법을 전해주는 책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2002년까지 국내 출판계에서는 자기계발 분야의 책이 폭발적 성장을 거듭했다.

주제는 대개 처세술, 성공 스토리, 협상과 설득, 경력관리, 창조적사고, 시간관리 등이었다. 급박함 때문이었을까. 이 트렌드는 수 년간 계속되다가 급기야 『아침형 인간』을 밀리언셀러로 만들었고, 『메모의 기술』이나 『정리의 기술』 등 수백 종의 ‘생존’ 기술을 담은 책들이 쏟아지게 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 등장했을 수많은 아침형 인간과 각종 기술들로 무장한 이들은 현재 어떤 성공을 거두고 있을까. 그들의 지갑은 얼마나 두둑해지고 그들의 회사는 얼마나 더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을까.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

2년이 지난 지금, 대다수 사람은 여전히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치열한 경쟁에서 매번 고배를 마시고 있다.

여전히 삶이 고달픈 비즈니스맨들은 이 분야 책들의 색깔을 바꿔 놓고 있다. 『청소부 밥』(위즈덤하우스), 『에너지 버스』(쌤앤파커스), 『행복한 이기주의자』(21세기북스), 『행복』(비즈니스북스) 등의 책이 대표적 예다. 젊은 나이에 CEO가 된 로저. 겉으로 보기엔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 같지만 회사는 경영 위기에 처해 있고, 아내나 아이와 함께할 시간조차 없어 불행하다고 느낀다.

이런 로저 앞에 ‘청소부 밥’이 나타난다. 밥은 로저의 친구가 되어 그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모두를 조화롭게 이끌 수 있도록 돕는다. 『청소부 밥』은 오직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지쳐버린 현대인에게 진정한 행복,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선사한다.

그동안의 자기계발서들이 “지금 당장 당신이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고 위협하는 것과 달리 “성공은 삶의 본질이 아니다”라는 바탕 아래 일상의 작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쳤을 때는 재충전하라,

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 투덜대지 말고 기도하라, 배운 것을 전달하라, 소비하지 말고 투자하라, 삶의 지혜를 후대에 물려주어라, 일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꾸어 버린 삶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이 책은 어느 CEO와 현자의 만남을 통해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이며 돈을 벌어 행복을 누리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평범하고 소중한 진리를 전달한다.

『에너지 버스』는 조지라는 한 팀장의 이야기다. 월요일이 되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한 주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자기 차의 바퀴가 펑크 난 걸 발견하고는 아무 죄도 없는 부인에게 짜증을 내고 결국 애까지 울린다.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물질적 성공은 삶의 본질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버스로 출근하게 된 조지는 버스 운전사 조이와 만나게 되는데, 그 만남은 조지의 운명을 통째로 바꿔주는 에너지 충전소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 저자 존 고든은 인생이라는 버스를 에너지로 가득 채울 10가지 방법을 조지와 운전사 조이의 대화를 통해 전달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항상 일이 꼬이고, 세상 사람들 모두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드는 우리 일상에 긍정의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고 우리와 닮은 모습의 조지 팀장이 펑크 난 자가용 승용차 대신 버스를 타고 출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삶과 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각을 배울 수 있다.

웨인 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는 1976년 미국에서 출간됐던 책으로 30여 년이 지나 한국에서 다시 인기를 끄는 책이 되었다. 이 책은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마라, 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떼라, 자책도 걱정도 하지 마라, 미지의 세계를 즐겨라,

의무에 끌려다니지 마라, 정의라는 덫을 피하라, 결코 뒤로 미루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마라, 화에 휩쓸리지 마라 같은 10가지 자기 사랑법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이를 제대로 실천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스펜서 존슨은 『행복』에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때에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성공은 행복에 뒤이어 찾아오는 것이며, 내가 행복해야만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이 같은 책들이 강력한 성공 테크닉을 자랑하는 각종 자기계발서들 사이에서 더 큰 인기를 얻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온 독자들의 새로운 선택 덕이다. 속도의 시대, 느림을 향한 열망은 더 거세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 마음은 오히려 자연을 향해 달려간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에서 시작된 이런 경향은 『조화로운 삶』(보리)과 『인생 수업』(이레)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고, 각종 DIY(Do It Yourself·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법) 서적이 팔려나가게 했다. 다들 성공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삶의 목표를 좀 더 멀리 두고 살아가려는 욕구가 자리 잡은 듯하다. 눈앞의 ‘성공’에 얽매이기보다 좀 더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이라는 말에 더 끌리게 된 것이다.

성공과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찾고 나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요즘 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속내다.

그들은 고단한 삶을 위로해줄 친구와 같은 책, 따뜻한 힘이 되어주는 조언자와 같은 글을 찾고 있다. 고단한 속도전과 디지털전을 치르고 있는 현대인들. 그들의 성공 강박증을 위로해줄 사업 모델을 기획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비즈니스는 이미 탄탄대로에 들어설 채비를 마친 셈인지도 모른다.

베스트셀러로 읽는 세상
책방도‘재테크’에 미쳤다

임원들은 회의실 안에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할까? 모든 직장인의 심리를 대변하듯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이 꾸준히 베스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꽉 닫힌 회의실 안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은밀한 대화. 모든 부적절하고 혼돈스러운 사내 정치의 비밀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이 책은 각각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안내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단연 돋보이는 도서들은 바로 재테크 관련서들이다. 출간되자마자 지금까지 오랫동안 좋은 판매를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를 비롯해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부자 경제학』, 박원갑의 『부동산 성공 법칙』 등 일반인들의 재테크 관심이 연령·성별을 불문하고 확산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부터 시작돼 계속 이어지고 있는 부자 열풍. 이제 정확한 정보를 누가 먼저 얻느냐, 그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기느냐에 따라 누구든지 부자의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불안한 부동산 시장과 맞물려 부동산 투자 관련서들도 순위에 많이 올라 있다. 20대 초반에 1000만원으로 부동산 투자를 시작해 20년 만에 100억원대의 부자가 된 이진우의 『39세 100억 젊은 부자의 부동산 투자법』과 부동산 전문기자로 활동하다 현재 칼럼니스트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박원갑의 『부동산 성공 법칙』 등이 투자와 관련한 최신 정보와 성공 비법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어지러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상세하게 짚어 주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안한 마음과 궁금증을 친절하게 달래주고 있다.

이 밖에도 자기계발 우화의 인기가 여전하다. 딱딱한 자기계발서들은 가고,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자기계발서들이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기계발 우화 열풍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배려』의 인기도 꾸준하고, 『에너지 버스』 『용기』 등 많은 도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이라면 유명 외국 저자 일색이던 자기계발서 시장에 국내 저자의 입지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력 있는 국내 저자를 발굴하기 위한 출판사들의 노력과 독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읽어내는 기획력의 성과가 아닌가 싶다. 덕분에 독자들은 책을 통해 진정한 성공과 행복이 무엇인지 좀 더 다양한 스토리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경제·경영 베스트셀러 (교보문고 제공 4/16 ~ 5/15)
고세규 북 칼럼니스트·고즈윈 대표 [890호] 2007.05.28 입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