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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신춘 출판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며 한숨을 내쉬는 출판계. 그러나 시장은 커지고 유통 경로도 다양화됐다. 40대 독자의 등장, 인문서의 선전, 온라인 서점의 활황, 매스미디어의 적극적 지원. ‘종이책의 종말’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준비 중인 출판동네 사람들의 희망 찬 육성.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토요일 오후 3시 광화문 교보문고 어린이매장.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진열대 사이사이마다 무릎 붙이고 모여 앉아 동화책, 만화책 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다. 군데군데 엄마들의 모습도 보인다. 아이와 똑같은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발 밀어 넣을 곳을 찾지 못해 다 둘러볼 수 없을 정도다.

인문서매장 쪽은 어떤가. 어린이매장만큼은 못하지만, 이만하면 자손 번성한 집 환갑잔치만큼은 되겠다. 서른다섯 살, 마흔두 살…? 20대 젊은이보다는 퇴근길에 나들이 삼아 들른 30~40대 ‘아저씨’ ‘아줌마’ 들이 더 많아 뵌다. 며칠 전 한 모임에서 얼굴 마주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이는 서른한 살에서 쉰 살. 여자보다 남자가 꼭 세 배 많은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직업이 각양각색이다. 기자, 회사원, 프리랜서, 벤처사업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쇼핑 중독이 화제에 오르자 회사원 A씨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책 ‘사재기’에 재미를 붙였다고. 금요일, 토요일자 신문들을 보면 북 섹션이 따로 마련돼 있다. 그걸 가이드 삼아 인터넷 서점에서 책‘들’을 사는 거다. 전에는 책 좀 읽어야겠다 싶어도 구색 맞춰놓은 서점 찾아나서는 일이 번거로워 주저앉아버리곤 했는데, 요즘은 내복 차림으로 녹차 한 잔 딱 앞에 놓고 앉아 요리조리 손가락 운동만 하면 되니 이 아니 즐거운 일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저마다 책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데, 정보 반, 자랑 반, 게다가 옛날 책은 어떻고, 요즘 책은 어떻고, 하여튼 그 주제로 한참들 입담을 풀어놓았다. 얘기를 종합해보니 대강 이러했다. 봐야 할 책은 많아졌는데 시간이 없다(돈이 없어 못 산다는 사람은 없었다), 갈수록 독서의 필요성이 커짐을 느낀다, 아이들 책값이 어른 책값만큼 든다…. 적게는 한 달에 두세 권, 많게는 열 권 이상씩 책을 산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럼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의 익숙한 아우성은 어떻게 된 건가, 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것이다. 어쨌거나 먹물깨나 들었다는, 또 서른 살 넘어 쉰 살까지의 남녀 8명의 잡담 몇 마디를 기준 삼아 연 2조원 규모(정기간행물·가정학습지 제외)라는 거대 시장의 현실을 넘겨짚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게다. 그렇더라도 그날 모임에서 오간 대화는, 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찾게 되는 대형서점의 이런저런 풍경들은 ‘뭔가 달라지고 있음’에 대한 사례로 활용할 만큼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으며, 그 변화는 우리 출판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연말이 되면 각 신문은 한 해의 출판 동향을 정리하는 기사를 싣는다. 2001년도 어김없이 ‘불황’ ‘고전’ 등의 단어들이 대다수 기사의 전면을 장식했다. 한발 더 나아가 ‘시장 붕괴’라는 섬뜩한 용어를 사용한 곳도 있었다.

그 근거는 이렇다. 먼저 전국 중·소형 서점들이 급감(-11.7%)했다. 한 해 동안 500개나 되는 동네서점이 문을 닫은 것이다. 일부 유통업체가 부도를 맞기도 했다. 책 반품률이 증가했으며, 컴퓨터 학습물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장사’가 된다는 아동서·경영서 쪽으로만 출판사의 관심이 쏠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내놓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동(17.0%)과 어학(7.7%)을 뺀 전 분야의 신간 발행 종수가 줄어들었다. 전통적으로 출판 통계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온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매출성장률이 3.3%에 불과하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1990년대 이후 연평균 10% 수준의 성장을 해온 데 비하면 확실히 저조한 기록이다. 단행본 판매량만 두고보면 2000년보다 아예 4.4%가 줄어들었다.

 

활황인가, 불황인가

2001년 출판계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도서정가제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지금 출판사, 유통사, 인터넷 서점, 오프라인 서점 등은 정가제 실시 여부를 두고 심각한 갈등에 빠져 있다. 정가제가 법적 규제 대상이 되면 신간서적에 대한 인터넷 서점의 10% 이상 할인은 불법이 되고 만다.

아울러 2002년은 해방 후 국가지대사(國家之大事)가 가장 풍성한 해라고들 하지 않나. 지방 선거, 월드컵대회, 아시안게임, 대통령 선거…. 국민들의 눈과 귀를 앗을 일들이 이토록이나 많은데 고리타분한 책 보기에 매달릴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더구나 이 영상(映像)과 e-콘텐츠의 홍수 시대에 말이다.

이게 다일까. 어둡고 부정적이고 한숨부터 새어나오는 이 우울한 진단만이 오로지 현실일까. 많은 출판인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3년 전이었으면 5000권은 팔릴 책이 지금은 1000권도 안 나간다”고 했다. “큰 출판사 몇 곳만 남고 나머지는 다 죽게 생겼다” “정가제가 안되면 덤핑 공세 때문에 유통사도, 서점도 다 망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요즘 10대, 20대들이 얼마나 책을 안 읽는지, 고전·양서들이 어떻게 외면 당하고 있는지를 알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출판인들도 없지 않았다. 어떤 이는 “올해야말로 대한민국 출판 르네상스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나서서 큰소리치지는 않지만 “이제 감이 잡힌다”며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전에 없는 자신감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종이책의 종말’을 운위하며 불안감에 흔들리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이 판단 근거로 삼고 있는 ‘현실’은 비관론자들의 그것과 똑같다. 시각이 다를 뿐이다. 같은 통계자료에서도 다른 ‘사실’을 찾아낸다.

먼저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를 보자. 지난해 신간 발행 종수는 전년대비 1.9%가 줄었지만 발행 부수는 3.7%가 늘었다. 한 권을 만들어도 심혈을 기울이고, 그 결과 판매도 호조를 보였다는 작은 증거일 수 있다. ‘문학이 죽어간다’고 하지만 그 분야 서적의 출간은 0.4%밖에 줄지 않았다. 순수과학 서적 발간이 12.8%나 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출판사 수도 늘었다. 2001년 9월말 현재 1만6801개사로 전년(1만6059개) 대비 4.6% 증가했다.

교보문고의 매출신장률은 전에 없이 저조했지만 온라인 서점들의 성장은 눈부실 정도다. ‘인터넷 교보문고’만 해도 지난해보다 53.5% 성장했다. 그래서 교보문고 계열 온·오프라인 서점 전체의 2001년 매출신장률은 13.5%. 예년보다 오히려 나은 수준이다.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지난해 매출신장률은 343%다. 1999년 12억2000만원이던 것이 2000년 150억원, 2001년에는 515억원으로 급증했다. 월별 매출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 지난해 12월에는 78억원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3억원어치 책을 팔고 있다는 소리다. 업계 2~4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와우북’ ‘알라딘’ ‘인터넷 교보문고’의 1일 매출액도 8000만~1억원에 이른다. ‘예스24’ 강병국 이사는 “지난해 9월 손익분기점을 넘어 흑자로 전환했다. 올해 매출목표액은 약 1000억원이다. 월평균 매출신장률이 10~25%임을 감안하면 초과달성도 가능한 일”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2001년 출판계는 A학점”

그렇다면 출판시장은 성장하고 있는가. 출판시장의 파이(pie)가 커지고 있다는 눈에 띄는 증거는 없다. 대형서점의 매출이 오르고 온라인 서점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수의 동네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업계는 예부터 제대로 된 통계가 없기로 유명하다. 낙후하고 일그러진 유통 시스템 때문이다. 21세기에도 4~5개월짜리 문방구 어음이 자연스레 통용되는 곳. 그럼에도 출판계 안팎의 많은 사람들은 “시장 성장세가 몸으로 느껴진다, 잠재독자의 규모와 개발가능성이 피부에 확실히 와 닿는다”고 했다. 이들을 고무시키고 있는 요소는 어떤 것들인가. “이전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은 또 무엇인가.

중앙일보 조우석 출판팀장은 종합일간지 북 섹션 담당자 중 유일하게 2001년 출판계에 A학점을 준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출판계는 ‘장사’를 잘했다. 매출액이 특별히 신장해서가 아니고 그 내용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출판 르네상스를 예감하는 일부 업계 인사들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현실인식이다. 희망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이른바 386세대, 그러니까 30~40대가 도서시장의 핵심고객으로 떠오르고 있음이다.

단행본 출판사 민음사에는 세 개 자회사가 있다. 아동물을 생산하는 비룡소, 실용서·판타지서적 중심의 황금가지, 과학서 전문출판사인 사이언스북스. 3개 자회사를 합친 민음사의 지난해 매출 총액은 약 200억원이다. 2000년에 비해 평균 20% 이상 성장했다. 이중 문학서와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펴내는 민음사가 10%, 3개 자회사가 30% 가량의 성장세를 보였다. 민음사 박상순 주간은 “우리 매출액의 80%는 30~ 40대 독자가 올려준 것”이라고 했다.

민음사에 이어 단행본 매출 2위를 자랑하는 김영사. 지난해 매출총액은 156억원이다. 1998년에 22억원, 1999년이 55억원, 2000년에 97억원에서 2001년 드디어 150억원 고지를 돌파했다. 매년 30~50%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김영사의 고세규 편집팀장 역시 박상순 주간과 비슷한 말을 했다.

“지난해 김영사가 펴낸 책 중 반응이 특히 좋았던 것으로는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등이 있다. ‘부유한 노예’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에 대한 반응도 좋다. 물론 ‘토익 답이 보인다’ 같은 영어학습서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지만, 역시 대다수 책의 주요 독자는 30대 전후 사람들이다.”

 

인문·사회서의 예상 밖 선전

예스24의 회원 구성은 어떨까. 1위는 20대 후반(23.7%)이지만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각각 30대 전반(22,94%)과 30대 후반(15.5%)이다. 30대 전후반을 합치면 37.99%로 20대 전후반을 합친 수치(36.12%)보다 오히려 1.87% 앞선다. 40대 전반의 비중은 8.56%로 아직 20대 전반(13.05%)보다는 적은 수치이나 성장세가 돋보인다.

3045세대(30~45세)의 급부상은 지난해 인문·사회과학 도서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 부문 책의 예상 밖 선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가장 화제가 된 책은 ‘교양’(들녘)이다. 768페이지에 정가 3만5000원. 들녘출판사 편집진은 이 책을 만들면서 분책(分冊)할 것인가를 두고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독자들이 이렇게 두꺼운 책을 과연 읽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어느 중간을 끊을 수 없어 결국 벽돌 두께의 책이 되고 말았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몇몇 신문이 호평 일색의 소개글을 대문짝만하게 실어주었다. 이어 주문이 밀려들었다. 지난해 말까지 이 책의 판매량은 2만부. 어쩌면 10만부 판매도 가능하리라는 것이 업계의 예측이다. 인터넷에서 ‘교양’을 산 독자들의 60%는 35세 이상이었다.

역시 589쪽, 2만3000원의 두께와 가격을 자랑하는 정치철학서 ‘제국’(이학사). 이 책은 내용마저 난해한데도 매일 100권 이상의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있다. 질 들뢰즈의 대표작 ‘천의 고원’(새물결) 또한 어려운 내용, 4만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서점가 분야별 베스트셀러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깐수’로 더 잘 알려진 이슬람학자 정수일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1, 2’ ‘씰크로드학’(이상 창작과비평사), ‘고대문명교류사’(사계절)도 권당 3만~4만3000원에 이르는 가격에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상의 책들은 모두 반짝 팔리고 말 것들이 아닌, 해가 갈수록 쇄를 거듭하며 출판사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이 분명한 양서들이다. 이학사, 새물결, 동녘, 들녘, 궁리, 돌베게, 삼인, 당대, 이산 등 여러 인문서 출판사들은, 지난해 이렇듯 뚜렷한 색깔을 지닌 양서 생산으로 매출이나 자신감 면에서 적지 않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여기서 예스24의 2001년 분야별 매출 비율을 살펴보자. 1위는 문학(14.46%)이다. 가장 큰 힘을 발휘한 책은 ‘상도’(여백미디어)와 ‘해리포터’시리즈(문학수첩)이다. 2위는 유아/어린이책(13.87%)이 차지했다. 3위는 경제·경영서(10.36%)다. 4위를 차지한 분야는 ‘컴퓨터와 인터넷’(8.22%). 하지만 예스24 강병국 이사는 “사실상의 3위는 인문·사회 분야”라고 말했다. 역사와 문화(2.68%), 종교(2.46%), 사회(2.25%), 인문(2.22%), 예술(1.71), 인물(1.14%), 대중문화(0.09%) 등으로 세분돼 있어 그렇지, 인문·사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볼 수 있는 분야의 매출 비율이 13.36%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사실 오랜 기간 책 소비의 주력부대는 ‘20대 초중반 미혼 직장여성’으로 여겨져왔다. 이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만 ‘대박’이 터진다는 것은 우리 출판계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변화가 일고 있다. 가벼운 문예물 등 베스트셀러로 소문난 책에 무비판적으로 몰려드는 이들 대신, 자신의 욕구와 기호를 분명히 알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으며, 단지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만으로도 기꺼이 독서에 많은 시간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비싼 책 값, 무거운 내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신 독특할 것을, 깊이가 있을 것을, 만듦새가 고급스럽고, 문장이 매끄러우며, 감동을 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들을 두고 한 출판인은 “좋은 책이라면 분야와 상관 없이 언제고 살 준비가 되어 있는 1만 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신문 북 섹션이 상대적으로 인문·사회서 소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30, 40대가 새삼 서점가로 몰리는 이유는 뭘까. 1970~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은 진지한 책읽기에 익숙한 첫 세대다. 운동을 위한 이론 학습 과정을 통해 체계적인 독서 훈련을 쌓았으며, 계간지와 사회과학 서적의 홍수 속에서 ‘삶의 길은 책에 있음’을 몸으로 실감했다. 이들은 학창시절 ‘도서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다 읽어내고 말리라’고 다짐하거나, 바로 그렇게 사는 선배와 친구들을 존경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40대가 중요하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와 더불어 한동안 독서의 방향을 잃고 지적 무기력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어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광풍, 인터넷·디지털·각종 영상매체와 관련한 오락성의 추구는 이들을 독서와 더욱 멀어지게 했다. 생존의 문제는 너무도 절박한 것이어서 이들은 모든 시간과 정력을 생활의 안정을 찾는 데 바쳐야 했다. 그런데 다시 전환기가 왔다. 지식인만이 새 경제체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지식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무엇보다 책을 읽어야 한다. 바야흐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세상이다.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실용 정보만으로는 이 복잡다기한 세상을 나만의 눈으로 해석하고 주도적으로 헤쳐갈 수 있는 역량을 쌓을 수가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자가 앞서간다. 그것이 21세기의 생존법칙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얼마 전 벤처기업인들과 중국 여행을 할 일이 있었는데 무섭다 싶을 만큼 책을 많이 읽더라.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이 인문서만을 읽는 것은 아니다. 자기 계발과 관련한 경영·경제서의 가장 큰 구매층이기도 하다. 또한 생활 수준 향상, 주5일 근무제의 도래와 더불어 ‘삶의 질’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하게 된 첫 세대이며, 그래서 여행서와 예술서, 삶의 지혜를 담은 영혼의 책들에 절박한 욕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퇴직 후에도 20~30년 계속될 이들의 노후에는 모르긴 몰라도 좋은 책과 멋진 영화가 가장 친근하고 믿음직한 벗이 돼줄 것이다.

요즘 출판업계는 이들 3045세대를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가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도서출판 푸른숲 재직 시절 명(名)기획자로 이름을 날린 김학원씨. 지난해 휴머니스트라는 출판사를 차린 그는 창업을 위한 시장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을 격주간 출판전문지 ‘송인소식’ 70호에 실린 대담에서 이렇게 풀어놓고 있다.

“자꾸 40대 얘기를 하는데, 교보문고에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인문서 신간 매대에 와서 신간을 체크하는 사람들이 300명 정도 돼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인문서 신간을 베스트셀러로 움직여주는 사람은 정확히 40대예요. 예를 들어 10명 정도가 서 있으면 그 중에 대학생은 1명이나 될까. 그 사람들 구매 스타일이 (신문) 서평을 다 보고, 괜찮은 것 있으면 오려놓고, 그 중에 60, 70%는 인터넷에 들어가서 정보를 읽어보죠. 그렇기 때문에 책이 어제 나왔는데 서점에는 왜 없느냐고 물어보는 독자도 있어요. 그만큼 마니아적인 정보력을 지닌 층들입니다. 교보에 300명 정도 면 전국에는 1000명 정도가 그렇게 일상적으로 서점에 들른다고 보면 돼요.

이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교수도 일부 있지만 그보다 오히려 일반 직장인이나 기업인, 전문 직업인이 많아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지요. 이 세대는 쉽고 재미있는 코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책을 만들어주면 호평을 합니다. 직장에서는 30대, 가정에서는 다시 주부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화적 생산을 하는 소비자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문서만 만들면 최소한 3000~4000권은 빠진다, 그리고 일정하게 대중성을 가지게 되면 5000~1만부 이상은 팔린다고 봐요.”

그래서 신생 출판사 휴머니스트가 상정한 주 독자층은 40대다. 이들을 주인공 삼아 펴낸 첫 책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는 언론과 시장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아동서적 분야의 호황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도 30, 40대다.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 아동서 시장의 호황이 어느 정도인지는 몇몇 온·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 6위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가나)이다. 8위는 그림책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북뱅크), 11위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사계절), 13위는 ‘두드려 보아요! - 보아요 시리즈1’(사계절), 15위는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 16위는 ‘기차 ㄱ ㄴ ㄷ’(비룡소), 17위는 ‘달님 안녕’(한림)이다. 이중 현재 8권까지 나온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는 신화 바람까지 겹쳐 총 100만권 정도가 팔려나간 지난해 최대 히트상품 중 하나다. 아동물 시장은 이제 “좋은 책은 반드시 팔린다”는 평범한 원칙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가 됐다. 양서 고르는 안목을 지닌 부모 세대의 등장, 어린이도서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20년 가까이 꾸준히 진행돼온 독서운동의 결과다.

방송, 신문 등 매스미디어가 책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책을 홍보하고 싶어도 길이 없었다. 신문 문화면은 지나치게 아카데믹한 성격을 띤데다 지면도 협소했다. 방송이야 언감생심,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모든 종합일간지에는 북 섹션이 따로 있고, KBS·MBC·SBS 할 것 없이 책 소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특히 MBC ‘!느낌표’ 같은 오락프로그램이 독서운동에 주목한 것은 놀라운 변화다.” 황금가지 장은수 편집장의 말이다.

실제로 ‘!느낌표’에 소개된 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창작과비평사)과 ‘봉순언니’(푸른숲)는 신간이 아님에도 온·오프라인 서점들에서 무서운 기세로 팔려나가고 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경우 30만권 가까이 팔렸으며 ‘봉순언니’도 하루 1만~2만부씩 주문이 밀려들어오는 형국이다.

TV와 책의 만남은 유럽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일. 매주 금요일 밤 프랑스2TV는 ‘부이용 드 퀼튀르(Bouillon de culture)’라는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쓴 저자들을 여러 명 초청해 책에 대한 설명을 듣고 토론도 하며 주요 부분을 발췌해 읽어준다. 이 프로그램의 생명은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의 탁월한 진행이다. 그저 말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치밀하고 방대한 독서로서 다져진 지적 안목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피보 같은 일급 에듀테이너, 혹은 BJ(북 자키)가 등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TV가 아무리 책을 말하고 신문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해도 좋은 책이 없다면 사람들은 책을 외면하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독자들은 행복하다. 때깔 곱고 정교하고 아이디어가 살아 숨쉬는 좋은 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작자가 유명인이니까’ ‘워낙 잘 알려진 책이니까’ 혹은 ‘읽지 않으면 저만 손해니까’ 하는 배짱으로 성의 없이 만들어진 책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이라고 수준미달인 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깨나 알려진 출판사 것치고 모양새 때문에 사고 싶은 맘이 없어져버리는 경우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출판대국인 일본 전문가들도 한국 사람들 책 만드는 솜씨며 속도에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알맹이’의 수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글 쓰고 만드는 사람들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민음사 박맹호 사장은 “문화적 소양이 높고 양질의 교육을 받은 우수 인력들이 출판계로 밀려들고 있다. 박사 실업자 수가 1만3000명이나 되는 나라다. 할 말이 넘쳐나고 글 쓸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에게 저술·번역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특히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가는 시점에서 출판시장 또한 영화시장처럼 활성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민음사의 경우 편집진 전체가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갖춘 이들이다.

우수한 품질은 또한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다. 아동서 중 양질의 책이 많은 것도 시장 확대와 더불어 너도나도 어린이책 출판에 뛰어들면서 그만큼 경쟁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이 원리는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산’의 강인황 사장은 한 신문에서 주최한 송년 방담에서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정성들여 만들면 독자들이 알아봐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는 말을 했다. 다른 참석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좋은 책에는 반응이 있게 마련”이라거나 “목숨 걸고 만들면 독자들이 본다” “시대를 읽어내는 책을 만들면 독자들이 선택한다”는 등의 대화가 오갔다. ‘사람들이 책을 외면한다면 그건 독자 탓이 아니라 출판인의 실력 부족 탓’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영상시대에도 좋은 책은 꼭 팔린다’는 믿음의 확산이야말로 어쩌면 지난해 출판계가 거둔 최대의 성과인지도 모른다.

 

온라인 서점 활황이 의미하는 것

출판시장의 변화를 야기한 업계 내부의 최대 이슈는 인터넷 서점의 고속성장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온라인 서점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책값이 오프라인 서점보다 10~30% 싸다. 원하는 곳까지 무료로 배달해준다. 방대하고 유용한 정보를 빠른 시간에 섭렵할 수 있다. 자연히 독서 인구의 상당수가 인터넷 서점으로 옮겨갔고, 이는 4~5년전부터 시작된 동네 서점의 몰락에 가속도를 붙였다.

요즘 한국서점조합연합회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서점들은 인터넷 서점의 최대 강점인 높은 할인율을 ‘다운’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맞선 온라인 서점들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높은 할인율의 포기는 곧바로 급격한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심재권 의원(민주당) 등 여야 국회의원 32명이 ‘발행한 지 1년 이내의 신간은 10%까지만 할인을 허용하고, 이를 어길 경우 최고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을 공동발의해 논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서점연합회 이창연 회장은 “인터넷 서점의 지나친 할인 경쟁으로 수익이 극도로 악화돼 문 닫는 서점이 속출하고 있다. 동네서점의 몰락은 출판 및 출판판매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또 출혈 경쟁이 계속될 경우 출판사들은 할인율을 맞추기 위해 정가를 인상하게 돼,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조유식 사장은 “동네서점 퇴조의 근본 원인은 고객들의 중·대형서점 선호에 있다. 또 동네서점과 인터넷서점은 시장이 별로 겹치지 않는다. 인터넷서점은 어음이 아닌 현금 결제로 출판사 재무상태 개선에 기여했고, 결정적으로 우리 출판산업의 총량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반대 논리를 폈다.

양측 주장에 대한 출판사들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한 중견 출판인은 “겉으로는 ‘공동 생존’ 혹은 ‘오랜 동료(서점상)와의 의리’라는 명분에 따라 정가제 도입을 찬성하는 반면, 속으로는 시장 위축과 가격 자율권 축소, 현금 결제 중단 등을 우려해 반대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만큼 정가제 도입과는 별 이해관계가 없다면서도 “인터넷 서점이 유통 질서 확립에 기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마트, 까르푸 등 대형 할인점의 비중 또한 점차 커지고 있다. 출판계가 살아남으려면 어차피 유통은 과학화, 다각화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가제 도입 유무가 아니다. 유통 현대화다”는 주장을 잊지 않았다.

유통 외에도 출판계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뒤집어보면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과제들이요 ‘발전 가능성’이다.

30, 40대 독자가 늘었다지만 젊은 세대가 책을 멀리한다면 출판 르네상스는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주 논의되는 것이 청소년 시장의 개발이다. 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준비하고 기다리면 3년 후쯤에는 반드시 큰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금 왕성한 독서욕을 보이고 있는 어린이들이 그때쯤에는 중·고등학생으로 자라 있을 것이다. 부모 세대의 책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고, 독서 양이 대학 입학에 끼치는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도깨비 같은 10대의 욕구와 의식구조를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기획력만 뒷받침된다면 승산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출판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편집자의 기획력은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런만큼 상상력과 인문학적 소양, 상업적 감각까지를 두루 갖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출판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 현실화, 노동 조건 개선 등 출판동네로 엘리트를 끌어들이기 위한 투자 및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판이 영화나 음반산업에 못지않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창조적 작업임을 과시할 필요도 있다. 직원 1인당 매출액이 5억원에 달하는 김영사의 고세규 편집팀장은 “언제까지 출판사가 드라마 속 별 볼일 없는 직업의 대명사가 돼야 하느냐”며 “부모가 자녀에게 ‘너 그렇게 공부 안해서 어떻게 출판사 들어갈래’하고 타박하는 그날까지 한번 열심히 해볼 생각”이라는 말을 농 삼아 덧붙이기도 했다.

 

“기획력이 모든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출판 형태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공사는 올해 파트워크북 출판을 시작한다. 시공사 조병철 편집부장은 “이탈리아 디 아고스티니사와 계약을 맺었다. 타이틀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마켓 테스트는 가정용 의료백과사전으로 했다. 시장 반응에 따라 자체 제작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과사전을 주 단위로 쪼개 출판한다 해서 분책백과라고도 불리는 파트워크북의 ‘종주국’은 이탈리아다. 유럽 등지에서는 벌써 10년 전부터 전체 출판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출판 형태다. 일본도 다르지 않아 각 주제 당 창간 부수가 50만~80만권에 이를 정도다. ‘재현 일본사’ ‘주간 세계의 박물관’ ‘일록 20세기’ ‘고우! 피아노’ 등 주제에 따라 CD, 모형, 화집, 연습용 건반 등이 자유자재로 첨가되는 파트워크북은 잡지와 단행본의 중간 형태이자 ‘단일자료 다품종 생산(One Source Multi Product)’의 한 전범이다.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출판계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5대 거대출판사가 시장의 80%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상위 20대 기업까지로 확대하면 점유율은 90%를 넘어선다. 우리라고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중소형 출판사로서는 자기만의 색깔과 전문분야, 장인정신을 지닌 강소형(强小型) 전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다시 문제는 기획력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출판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성장형 산업이라는 점이다. 국내 최대의 저작권 대행사인 에릭 양 에이전시의 양원석 사장은 “출판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소설 시장이 죽었다지만 올해는 다시 회복세를 탈 것으로 보이고, 논픽션, 사진집·여행서·요리책 등 여가형 도서의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행본 출판계의 뉴프런티어’ 김영사 박은주 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21세기는 지식사회다. 그러므로 출판계의 앞날은 ‘정말!’ 밝다. 영상산업이 출판산업의 발전을 억누르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영상은 영상대로, 출판은 출판대로 서서히 제 영역을 확대해갈 것이다. 문제는 잠재 독자층을 구매층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뛰어난 기획·편집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냐다. 필자도 마찬가지여서, 이제 죽은 글을 쓰는 이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책을 낼 때는 유익한가, 차별이 되는가, 특·장점이 분명한가를 철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 책은 반드시 팔리게 되어 있다. 출판 시장이 불황이란 넋두리는 20년 전부터 해온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엄살은 통하지 않는다, 아니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출판사는 시대의 변화, 국민의 의식 및 생활구조 변화에 맞는 책을 펴냄으로써 스스로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출판계에서 경쟁이란 없다. ‘자기가 만든 자기 책이 자기 독자를 만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학습서 시장에서나 통하는 일이다. 좋은 책은 또 다른 책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소비가 소비를 창출할 가능성이 매우 큰 독특한 산업인 것이다. 출판은 또한 유일하게 과소비가 칭찬받는 분야다. 그러므로 출판사는 많을수록 좋다. 몇몇 출판사가 시장을 다 틀어쥐는 것은 옳지 않고 실익도 적다.

나는 정가제 시행을 적극 찬성하지만 작은 서점들도 나름의 장점을 키워나가야 한다. 동네 문화사랑방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규모가 작다 해서 무조건 도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박사장은 독서운동의 중요성과 신문·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회가 좋은 사회고 앞선 사회다. 책을 사자. 그리고 읽자.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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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여파로 출판 시장도 불황의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출판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들이 매출 규모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려가는 반면, 중소형 출판사들은 매출액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소규모·다품종 생산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출판사를 차린 지 8년째 된 한 인문학 전문 출판사 사장은 1일 “지난해에 비해 매출액이 30~40%는 줄었다”며 “출판시장 도매상들이 부도를 내던 아이엠에프 때도 이렇게 어렵진 않았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그의 이런 한탄은 다른 대다수 소형 출판사 사장들에게서 어김없이 들을 수 있다. 철학·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이제이북스의 전응주 사장은 “출판사를 차린 지 3년 만에 5억원을 까먹고 1억5000만원의 빚을 졌다”며 “그래도 우리 출판사는 직원 3명의 월급은 주고 있는데, 주위를 보면 월급을 몇달째 주지 못한 출판사들이 여럿 있다”고 인문학 출판사의 열악한 사정을 전했다.

 

실제로 150여 중소 출판사와 거래하고 있는 한 도매회사는 지난해에 비해 평균 18% 정도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돼 이런 사정을 방증하고 있다. 특히 5명 이하의 소규모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까지 매출액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단행본 출판사로 매출액 순위 1, 2위를 다투는 랜덤하우스 중앙은 올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25%의 신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100억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한 ‘북21’의 경우는 지난해에 견줘 성장률을 무려 70% 정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지난해 가장 많은 매출액을 기록한 실용서 전문 출판사 넥서스도 20%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출판계의 양극화 현상은 통계에서도 그대로 잡히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한기호)가 국내 출판도매업체들의 판매추이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상위 20개사의 매출액은 2000년 전체 매출규모의 61%였던 것이 2002년에는 71%로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올해에는 75% 이상을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상위 5개사의 경우 2000년에는 42%였던 것이 2002년에는 49%로 늘었으며, 올해는 50%를 훌쩍 넘어설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기호 소장은 “출판시장의 양극화 현상 배후에는 유통질서의 문란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도서 정가제가 사실상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각종 할인점과 인터넷 서점, 대형 서점들이 자본력이 있는 출판사들과 손잡고 큰 폭으로 책을 깎아 팔거나 경품을 끼워서 파는 할인·경품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런 요구를 맞출 수 있는 대형 출판사는 유통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독자 수가 많지 않은 책을 펴내는 소형 인문 출판사들은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백원근 선임연구원은 “출판을 이대로 왜곡된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신문시장의 독과점화가 가속화되듯, 소형 출판사들의 소외와 위축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며 “그렇게 될 경우 문화의 정신적 기반인 출판의 다양성이 크게 훼손되고, 돈 되는 책을 좇는 대형 출판사에 독점된 시장에서 작지만 꼭 필요한 책을 내온 출판사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명섭 기자 /한겨레신문 2004.8.1)

 

출판 불황의 땡볕에 내몰린 소규모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물이 말라가는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처럼 힘겹게 숨쉬기를 하는 이 출판사들의 고군분투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진보적 사회과학 서적을 펴내는 책갈피 출판사는 지난해 6월 비슷한 유형의 책을 펴내던 북막스, 책벌레 출판사와 통합했다. 모두 1인 출판이었던 세 출판사는 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더구나 사회과학 이념서에 대한 외면은 찬바람 불듯 냉랭한 상황에서 출판사를 합쳐서라도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벌레 대표 최수연씨가 통합된 책갈피의 대표가 되고 북막스 대표 김희준씨는 영업부장이 됐다.

 

2인 출판사로 다시 출발한 책갈피는 먼저 경비 절감책부터 실행에 옮겼다. 외부에 맡기던 표지 디자인이나 본문 조판을 가능한 한 안에서 처리하는 식으로 제작비를 최소 수준으로까지 절감했다. 100만~200만원이라도 아껴보자는 심산이었다. 두 사람이 된 만큼 발행 종수도 최대한 늘렸다. 새 출발 이후 지금까지 9종을 펴냈는데, 많이 팔리지는 않아도 여러 종을 내면 그만큼 수금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정이 특별히 나아진 것은 아니다.

 

김희준 부장은 “사회과학서적이 워낙 독자군이 적고 게다가 그 독자들마저 경기 침체로 떨어져나가는 상황이어서 출판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다”고 말했다. 책갈피는 초판 1500~2000부를 찍고 그 중 1000~1500부 정도가 팔린다. 김 부장은 “그 정도면 경상비와 재투자비가 빠지고 두 사람에게 최소 생활비가 떨어진다”며 “아직 둘 다 미혼이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좌파 출판의 명맥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는데, 우리마저 손놓아버리면 어쩌겠느냐”며 “벼랑끝에 선 심정으로 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소형 출판사들치고 사정이 어렵지 않은 곳이 없지만, 내놓고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출판사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은행 대출을 받기도 어렵고 어음할인을 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출판사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출판사는 이 난국을 몸으로 때우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역사·문화가 전문인 이 출판사는 사장·편집장·편집자 세 사람이 꾸려가고 있는데, 교정·교열은 말할 것도 없고 본문 조판, 표지 디자인까지 모두 자체에서 해결한다. 그렇게 해서 만든 책이 지금까지 30권을 채웠다. 아는 사람은 모두들 이 출판사가 만드는 책의 충실도·완성도를 높이 산다.

 

그러나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40%나 매출액이 떨어졌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제작비와 경상비, 인건비를 다 건지려면 평균 3000부는 팔려야 하는데, 올해 나온 책 가운데 1000부를 넘긴 책은 한 권밖에 없다. 방법은 책갈피처럼 책의 종수를 늘이는 것뿐이다. 이들은 밤 10시까지 책상에 앉아 교정·편집 일을 보고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책 한 권을 최대한 공들여 만들기로 소문난 이 출판사의 올해 출간 목표는 지난해의 두 배인 8권이다. 노동시간을 늘이는 것말고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편집자들의 모임이 무산되는 일도 나타난다. 저녁 시간에 퇴근을 못하고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니 밖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2002년 출범한 출판사 뿌리와이파리의 정종주 사장은 지금까지 한 푼도 집에 가지고 들어간 돈이 없다. 정 사장은 “담뱃값·커피값·교통비 같은 최소한의 활동비를 받은 것말고 사장 월급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다”며 “친구들을 만나도 아예 돈 없는 사람으로 보고 술값 내란 말도 안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출판사가 지난 6월에 펴낸 <해삼의 눈>은 7~8개 일간지 출판면에서 머리기사로 크게 소개를 했는데도, 지금까지 딱 1000부가 팔렸다. “이럴 땐 정말 울어버리고 싶다.” “한국 사회의 뿌리없음을 반성하고 어떤 공공적 룰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은데, 이렇게 사정이 험악해서야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그는 말했다. 다만 그는 지금까지 직원 3명의 월급을 한번도 미루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이제이북스 전응주 사장의 경우는 심란하기로 치면 뿌리와이파리보다 더하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전 사장은 철학이 좋아 철학 출판을 시작했는데, 출판사 설립 3년 만에 이익을 내기는커녕 빚만 늘었다. 기획에서 번역까지 2년이 넘게 걸리고 그렇게 나온 원고를 원서를 대조해가며 일일이 교정·교열을 보고 가능한 한 튼튼하게 장정을 해 버젓이 내놓지만, 펴낸 책들의 평균 판매량은 600부를 넘지 못하고 그마저 지난해보다 25% 가량 줄었다. 최고로 공을 들여 지난 봄 낸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초판 1300부를 찍었지만 출고된 건 800부,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생태·환경서 전문 출판사를 지향하는 그물코는 사무실 전화가 끊겨 애를 먹기도 했다. 서점에서 수금을 해야 사물실 운영비를 댈 수 있는데, 은행 잔고가 바닥나 버린 것이다. 돈이 없다보니 용지 회사에서 종이를 공급받지 못해 책을 찍지 못한 적도 있다. (고명섭 기자, 한겨레신문 / 200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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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125억달러. 갈수록 커지는 브랜드의 힘이 출판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제 영역을 구축한 저술가는 그 이름만으로 독자의 지갑을 여는 1인 브랜드라 할만하다. 스타 저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 서점가에는 독자에게 신뢰받는 저자가 많지 않다. 하지만 불황의 출판계에서 스타급 저자의 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국민일보 출판팀은 저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현장에서 국내외 저술가의 브랜드 가치를 묻는 설문조사를 마련했다.

 

출판인들이 뽑은 국내 최고의 저술가는 소설가 김훈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일보 출판팀이 단행본 출판사 대표와 주간,출판 평론가 등 현장 출판인 41명을 대상으로 ‘국내 저술가 브랜드 가치 설문조사’를 한 결과,‘장르를 불문하고 현재 출판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내 저술가’를 묻는 질문에 189점을 받은 ‘칼의 노래’의 소설가 김훈이 1위로 꼽혔다. 2위는 이윤기(168점),3위는 법정(117점),4위는 황석영(116점),5위는 정민(107점)으로 나타났다. 평가는 1위 답변에 10점을,10위에 1점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들 저술가의 책을 출판사에서 낼 경우 예상 초판 부수에 대해서는 김훈이 2만5000부,법정 1만7000부,이윤기·황석영 1만6000부,정민 1만4000부로 답했다. 부수는 설문자가 답한 예상 초판 부수에 대한 평균값을 따졌다. 분야별로 브랜드 가치를 구축한 국내 저자를 묻는 질문에는 △문학 김훈(52·이하 괄호 안은 점수) △인문 이윤기(80) △예술 이주헌(58) △정치사회 홍세화(63) △과학 정재승(87) △경제경영 공병호(100) △실용 이보영(49) △어린이 권정생(42) △비소설 법정(68) 등이 1위로 꼽혔다.

 

분야별로 2∼5위 저자는 △문학 황석영(42) 이문열(41) 박완서(28) 조정래(17) △인문 정민(61) 진중권(19) 유홍준(18) 김용옥(14) △예술 유홍준(39) 진중권(37) 오주석(23) 한젬마(14) △정치사회 강준만(47) 박노자(37) 진중권(17) 유시민(9) △과학 최재천(82) 이은희(14) 이인식(9) 홍성욱(7) △경제경영 구본형(45) 장하준(8) 삼성경제연구소(6) 유시민(5) △실용 한비야(34) 이익훈(27) 김대균(22) 문단열(20) △어린이 이원복(34) 황선미(30) 윤구병(14) 정채봉(6) △비소설 류시화(58) 한비야(14) 이해인·이외수(11) 이윤기(10) 등이다.

 

이중 진중권은 인문과 예술·정치사회 세 분야에,유홍준은 인문·예술 두 부문에, 한비야는 실용·비소설에서 순위에 올라 전방위 예술가로 각광받았다. 점수는 1∼5위를 꼽은 뒤 1위에 5점,5위에 5점을 주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여건이 된다면 스카우트 하고 싶은 저자로는 정민,김훈,이윤기,이원복,황석영의 순으로 답변해 브랜드 가치와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국내에 소개된 외국 저술가로는 단연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예상 초판부수 3만부)가 가장 영향력 있는 필자로 꼽혔다. 이어 2위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2만7000부),3위 ‘해변의 카프카’의 무라카미 하루키(1만6000부),4위 ‘넥스트 소사이어티’의 피터 드러커(1만3000부)·‘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1만부),5위 ‘선물’의 스펜서 존슨(19000부) 순이었다. 이어 6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켄 블랜차드,7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스티븐 코비,8위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9위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10위 ‘키친’의 요시모토 바나나 등이 10위권 안에 올랐다. 국내 저자에 비해 초판 부수를 높게 잡은 것이 눈에 띈다.

 

국내 저술가에게 부족한 자질로는 단연 ‘대중적 글쓰기 능력’을 꼽았다. 이어 ‘시의성 있는 기획 능력’ ‘저술 내용의 참신성’ ‘전문 지식’ ‘홍보 마케팅에 대한 이해와 협조’ 등으로 답변했는데 이는 출판사들이 저자에게 가장 아쉬워하는 게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기획과 저술 능력이라는 뜻이다. 저자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를 묻는 질문에는 ‘트렌드를 읽고 저술을 기획해내는 작가의 능력’ ‘독자의 구미에 맞는 대중적 글쓰기 능력’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있는 지식과 학계에서의 권위’ ‘저자의 지명도와 개인적 인기’ ‘출판사의 기획과 마케팅’ 등의 순서로 답변했다.

[국민일보 이영미 기자 200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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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획자의 블로그 활용술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5/07/07

이홍|리더스북 주간 wizard-hong@hanmail.net

뻔할 것 같은 질문 하나, 출판기획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발행된 모 주간지에 ‘베스트셀러를 만든 7가지 노하우’란 제목을 붙인 기사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만든 노하우가 마법의 주술처럼 몇 가지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놀라움에 흥분지수가 극에 달하려는 즈음, 혀를 날름거리며 기어가는 한 문장 때문에 눈앞이 아찔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개에 필요하기에 그대로 인용한다.

“대박을 터뜨린 출판기획자들은 ‘베스트셀러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구나! 베스트셀러란 하늘에 기원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구나. 그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세상은 그들을 ‘스타급 출판기획자’ 또는 ‘대박 기획자’라고 부르는구나. 대박은 고사하고 어떻게든 병살타라도 면해서 한순간에 ‘스리 아웃’으로 ‘게임 오버’ 되는 참사만은 면해야겠다고 발버둥치는 대다수의 이웃들에 비하면 그들은 참으로 부러운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장담하는 대박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잡다하고 구구한 잡설 필요 없이 한 큐에 끝내버리는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정이 그렇다면 제발이지 부탁이니 그 비법을 가르쳐만 주소서. 이 은혜 백골이 진토가 되어 넋이 사라진 다음에라도 잊지 않으리다.

하지만 “대박을 터뜨린 출판기획자들은 ‘베스트셀러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에 이어진 기사의 내용은 무슨 출판강좌나 문화센터 같은 데서 들었던 이야기들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예의 낯간지러운 몇몇 출판사의 성공담을 등장시키고 있었다. 출판동네에 사는 선수들은 다 안다. 책이 성공하면 “독자의 요구에 구체적으로 답을 해주었느니” “방법론을 제시했느니”하면서 그럴듯한 ‘론’을 만들어내지만 좀더 정확한 뒷담화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한 기자의 수고로운 취재를 가볍게 폄하하거나 출판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 아니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그럴 의도는 없다. 다만, ‘베스트셀러’란 단어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출판기획의 본질과 그 과정에 대한 역겨울 정도의 왜곡 현상을 바라보면서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이 무슨 ‘정치’처럼 여겨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만큼은 지울 수 없다.

서론이 길어졌다. 이 시점에서는 ‘출판기획이 무엇이냐’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인 인터넷이 무엇인가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난 출판기획이 ‘무형의 계획을 유형의 숫자로 전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상품인 책에 무슨 숫자냐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너무 결과만을 추종하는 게 아니냐고 질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도식 나열이나 관념적인 미사여구 남발은 출판기획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독자를 자기 손에서 갖고 놀 수 있다는 자만심이나 언론과 친분으로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만성 따위도 마찬가지다.

출판의 과정이 과학이어야 한다면 근거 분명한 ‘숫자’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베스트셀러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사기다. 하지만 크거나 작거나 숫자가 분명한 책을 만들 수는 있다.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진실’이다.

뻔할 것 같은 질문 둘, 인터넷과 출판기획은 어떻게 만날 수 있나
콘텐츠 관리가 기획의 핵심이던 시대를 편의상 제1세대라고 한다면 제2세대에서는 인적 관리가 그 중심을 차지한다. 시기적으로 보면 대략 2000년 전후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종합적인 네트워크 관리의 시대이고 토털 마케팅의 시대다. 여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콘텐츠 관리와 인적 관리가 모두 포함된다.

네트워크의 핵심은 종과 횡이라는 기본을 넘어 입체적인 ‘파워’로 완성되어야 한다. 종적, 즉 수직성이 강한 네트워크는 집중성은 있으나 탄력성이 떨어진다. 다양성 추구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횡적 네트워크는 그 반대다. 그렇다고 둘 중 하나라도 만만한 것은 없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처럼 네트워크라는 게 중요하다보니 “기획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출판계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정은숙 사장은 소문난 마당발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구효서, 인생은 지나간다』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바 있다. 주제는 틈새를 노려라, 뭐 이런 것이었겠지만 결론은 역시 네트워크다. 아무리 틈새를 노려 제안을 했어도 네트워크, 즉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제안인들 가능했으랴. 이런 일부 마당발 출판사 사장은 출판계 후배들에게는 연구대상이다.  

스타들이 수십 년 내공으로 만든 네트워크를 후배들이 단숨에 따라가는 것은 겸손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후배들의 능력이 무조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아날로그’ 방식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네트워크에는 계량화될 수 있는 ‘숫자’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이 그 무엇이 바로 노하우, 즉 실력이다. 이게 어디 배워서 훔쳐지는 것인가?

출판기획에서 인터넷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차원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실로 오랜 꿈이었다. 혼자서 은밀하게 깨알같이 메모해두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수천 배의 정보가 출력된다. 내가 알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사진까지 뽑아서 이력서를 제공해주니 첩보영화가 따로 없다. 아날로그 방식이 제공해주었던 인간적인 정서와 노하우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정보에 대한 접근성에 있어서는 질과 양 모두 풍부해진 것이 사실이다.

앞서 출판기획이란 ‘무형의 계획을 유형의 숫자로 전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출판기획이 인터넷과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하나의 문화상품으로서 존재하는 책에 대한 기획자의 책임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이란 문화가치성과 상품가치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의 소재나 인적 동향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욕구를 통해 시장에서 판매 예측, 그리고 이를 촉진하기 위한 체계적인 홍보전략 등을 총괄하는 것이다.

판매 사이즈를 수립할 수 없는 기획은 무의미하다. 특히 실용적 컨셉트의 책에서는 선택을 넘어 필수의 조건이다. 10만 부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책이 그만한 함량을 가졌다면, 엉성하고 관념적인 ‘베스트셀러 이론’을 들먹이거나 기자들과 술판을 벌이는 것으로 일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5천 부에서 10만 부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수적이며 그 모든 프로세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다차원적인 네트워크를 점검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인터넷이 가진 놀라운 인터페이스가 탐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출판기획에서 인터넷을 활용한다고 하면 지식검색을 통한 아이디어 제공이나 필자 소재 파악 등을 먼저 생각한다. 이는 고성능 계산기로 덧셈이나 뺄셈만 반복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진정한 인터넷의 활용은 이런 1차원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무형의 계획이 숫자로 전환되는 과정은 간단하게 표현할 수 없는 변수의 연속이다. 이런 변수들을 넘어 안정적인 상수를 만들어내는 데 인터넷이란 도구가 유용하게 사용된다. 살과 땀이 교차하는 직접성은 부족하지만 다양한 가상적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디지털 네트워크가 가지는 중요한 자원이다.

본론1_ 출판기획에서 블로그는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인터넷의 활용, 그 가운데서도 블로그는 단연 최고의 기대주로 등장하고 있다. 블로그란 ‘web+log’의 합성어이다. 인터넷 항해일지라고 불리지만 쉽게 말해서 웹상에 올리는 개인일기라고 보면 된다. 1997년 미국의 데이브 와이너가 만든 ‘스크립팅 뉴스’가 최초의 블로그였다는 다수의 지지가 있지만 블로그의 기원에 대해서는 장충동 족발집만큼이나 ‘원조’가 많아 그 소개가 무의미하다.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대략 2002년 상업 블로그 사이트www.blog.co.kr가 열리면서부터라고 하는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이라크 건축가인 사람 팍스가 만든 블로그가 소개되면서부터다.

블로그의 등장은 각 포털의 위상을 뒤흔든 원인이 되었다. 국내에서 부동의 1위를 자랑하던 다음을 밀어낸 것은 네이버이고 네이버 최고의 주력종목은 현재 단연 블로그다. ‘구글의 폭격’이라는 말이 있는데 라이코스, 야후 등의 선발 주자들을 단숨에 KO 시킨 구글의 주 종목 역시 블로그다. 구글은 지금도 야후 등에 비해 블로그에 엄청난 지원을 쏟아 붓고 있다. 구글의 툴바는 공개적인 방식으로 개인이 좋아하거나 자주 들르는 사이트와 콘텐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간단하게 분석되어 타깃마케팅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 되고 있다. 2005년 현재, 각 포털에 널려 있는 블로그를 방문한 네티즌의 숫자는 이미 13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블로그는 ‘개인의 기록’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1인 미디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거대 미디어에 의해 지배받는 개인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인터넷을 통해 이를 다수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블로그가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담고 있는 쓰레기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거칠 것 없이 확산되는 원인은 지배당하는 문화에서 지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된 블로그는 이제 비즈니스 차원에서 그 활용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블로그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은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2004년 <뉴욕타임스>는 “기업 간부들이 블로그 사이트를 기업 홍보와 마케팅 등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고객과 직원들에 대한 비공식 대화 채널로도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기업들에서 블로그 활용은 이미 개인의 차원을 벗어난 것이다.

인터넷 강국답게 한국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있다. 외국계 보험 회사인 푸르덴셜이 한국형 블로그인 미니홈피를 자사 홈페이지에 도입한데 이어 삼성생명도 관련 사이트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 영업에 관심을 보여 온 보험사들이 역시 선도적으로 블로그 도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교육, 온라인게임, 온라인서점 분야의 기업들도 블로그 사이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블로그를 개설할 경우 고객들의 홈페이지 접속 빈도와 체류 시간이 늘어나 손쉽게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판기획에서 블로그는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현재 수준에서도 블로그는 출판기획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개인이 만든 블로그는 전문 사이트의 정보량을 충분히 능가한다. 방대한 콘텐츠를 무한정으로 제공해주는 주유소의 기능이 가능하다. 둘째, 전문성과 콘텐츠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라는 인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 발굴에 있어 이전과 다른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셋째, 요즘의 블로그는 고립된 개인에서 벗어나 관련 블로그끼리 네트워크화 하는 경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한 댓글 기능에서 벗어나 관심사를 공유하고 오프 공간으로 이를 확대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넷째, 역시 개인 블로그와 다수가 모인 카페가 네트워크화 되고 카페는 역시 유사한 카페와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써 현란한 종과 횡의 입체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다섯째, 이런 네트워크 작업을 통해 불확실한 변수를 예측 가능한 상수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을 가능하게 한다.

본론2_ 블로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첫째,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결론에 해당하는데,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염탐하기 전에 ‘나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야 한다. 즉 스스로 ‘블로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신이 아직 미니홈피나 개인 블로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출판기획자라면 ‘상당히 치명적인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블로그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첨단 네트워크에서 소외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인터넷을 훌륭하게 이용하고 있다면 평균의 수준은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블로거가 되지 않겠어”라고 고집하는 게 블로거가 되는 것에 비해 어떤 이로운 점이 있는지 사례를 나열하며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런 무관심이나 고집이 출판기획의 질과 양을 풍성하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블로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거의 모든 해답은 스스로 블로거가 되었을 때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많은 블로그는 글자 그대로 시시콜콜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블로그를 시시콜콜하게 만들지 말자고 계몽한다면 그 사람은 당장 미친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하지만 출판기획자의 블로그가 이처럼 시시콜콜해서는 곤란하다. 지인 관계에 있는 몇몇 편집자의 블로그를 방문하면서 놀랐던 것은 ‘프로 정신’의 과감한 실종이었다. 출판기획자에게 주어진 천형 같은 운명 중 하나는 심지어 자는 중에도 산신령을 만나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출판기획자가 만들었다는 블로그가 개인적 배설에 치중하고 있다면 이미 게임 오버다.

출판기획자 스스로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블로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블로그 세계가 펼치는 본질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눈팅만으로는 곤란하다. 우연히 관심 있는 블로그를 발견하고 방명록에다 만남을 구걸하거나 책을 내자고 조르는 글을 갈기는 수준으로는 입체적인 기획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블로그가 가진 마케팅 기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블로그의 진정한 가치는 콘텐츠의 발견이나 저자 섭외의 용이성보다 마케팅의 확대에 있다.

출간 두 달 만에 12쇄를 출고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은 저자의 블로그에 연재 중이던 글이었다. 증권가와 케이블 방송 등에 ‘시골의사’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의 블로그에는 하루 평균 2000명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하고 있으며 2005년 6월 현재 누적 방문자가 48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시골의사와 이웃 블로그를 맺은 숫자만도 2000명이 넘는다. 저자의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블로그에 올라가자 엄청난 댓글이 붙기 시작했다. 초반의 선전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이 책의 출간과 관련된 각종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옮겨간 블로거가 수백 명에 달했다. 그 블로그에 방문해 기사를 확인한 네티즌까지 합친다면 블로그를 통해 노출된 인원은 간단하게 수십만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오며 그 숫자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다소의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었다지만 출간한 책은 코어 타깃이 다른 에세이집이었다. 예산 문제로 일간지에 광고 한 번 싣지 못했고, 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요 신문사 서평에서도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역시 인기 저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터넷 서점에서의 노출도 ‘특별하지’ 못했다. 쟁쟁한 필자들이 널려 있는 문학 분야에서 유명한 문인도 아닌 의사가 쓴 첫 에세이집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면서 선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라는 조롱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하루에도 수천 명씩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해주는 충성스런 우군이 있었다.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감동적인 내용은 입에서 입으로, 다시 블로그에서 블로그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저자 사인회에서는 연예인이 아님에도 밀려든 독자들로 인해 인원을 제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골의사와 그의 블로그가 계획되지 않은 순수한 1인 미디어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징기스칸이 운영하는 ‘인맥을 만드는 CEO 파티cafe.naver.com/ceoparty.cafe’는 1인 미디어의 범주를 넘어선 기업형 네트워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대의 인맥 만들기’를 꿈꾸는 징기스칸의 블로그에는 430여 개의 이웃 블로그가 유형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비즈니스에 목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고스럽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징기스칸의 블로그에서 진입로를 발견할 수 있다.

징기스칸은 블로그뿐만 아니라 같은 이름의 카페도 운영하고 있는데 역시 유사한 성격의 카페들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 카페 역시 각기 다른 카페들과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한 카페를 통해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수십 개에 달하며 그 인원만 해도 5만 명을 넘어선다. 징기스칸은 블로그와 카페 운영뿐만 아니라 ‘인맥코디네이터’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몇몇 출판사와 협력관계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세미나 개최는 물론 책 홍보 및 이벤트 행사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는데, 초기 코어 타깃에 접근해 집중적인 홍보를 꾀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광범위하게 가지를 뻗고 있는 충성스러운 네트워크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의 성공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것이다.

넷째, 이러한 블로그 역시 진화의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무한대로 늘어날 것만 같았던 이메일은 다양한 기능을 장착한 매신저 때문에 절대 강자의 위치에서 밀려났다. 하이텔이나 천리안 같은 인터넷 통신 이야기가 지금은 옛날이야기처럼 회자된다.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다. 블로그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인기가 높아진 것은 제작과 운영의 편리성 때문이다. HTML 언어를 몰라도 되고 특별한 웹 에디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아도 평균 정도의 페이지 제작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워드프로세스를 다룰 수 있는 정도라면 눈 감고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게 블로그다. 하지만 차별성과 심플한 고기능을 추구하는 욕구의 팽창은 블로그의 운명이 결코 안정적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되 고정적인 도그마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블로그 역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오늘날 블로그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생뚱맞은 태도라면 블로그가 무슨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되는 것처럼 맹신하는 건 오지랖 없는 사고다. 블로그가 무한한 가능성과 절대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활용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는 건 출판기획자 몫이다. 책은 사람이 읽고 편집은 신이 한다고 했던가?

블로그의 진정한 가치를 이용하라
마무리하자. 난 이 글을 쓰면서 ‘기술적 분석’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분석의 함정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다. 들쑥날쑥한 글 솜씨 때문이니 어려운 주제로 날 골탕 먹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탓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대박을 내는 출판기획자가 될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들고 있는 책의 정확한 포지션을 확인하고 가능한 그 높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을 꾸려내는 일이다. 그게 바로 ‘숫자가 분명한 기획’이다. 특히 실용서를 만드는 출판기획자라면 최소한 손익분기점을 찍을 수 있는 사전 판매계획은 필수다. 대박은 그 다음의 일이다.  
      
우리가 블로그에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힘보다는 잠재된 가능성 때문이다. 잠재성이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과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블로그는 스스로가 힘을 가진 이상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의 능력이 도구의 힘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도구가 만든 함정에 빠져 눈이 멀게 될지도 모른다.

혹시 출판기획자의 블로그 활용술이 블로그를 이용한 대박상품 만들기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 글을 쓴 나는 삽질을 한 것이요,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여러분은 삽질을 구경한 어처구니가 된다. 진실은 그게 아니다. 출판기획자에게 필요한 진정한 블로그 활용술의 핵심은 출판기획자 스스로 최고의 블로거가 되라는 것이다. 주변인의 위치에서는 콘텐츠 발굴도, 인적 관계의 형성도, 마케팅도 모두 형식적이고 1회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주변인의 위치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블로거가 된다면 자신이 원하는 많은 것을 획득할 수 있다. 블로그에 관한 한 이게 최고의 답이 될 수밖에 없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24호 특집 - 출판의 온라인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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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아동출판계 결산
[세계일보 2005-12-29 20:45]

올해 어린이 책 시장은 성장세 둔화 속에 실용정보서의 약진으로 평가된다. 유아책과 아동책 분야 모두 지난 4~5년 동안 이어진 성장세를 지속하기는 했으나 올해 들어 그 기세가 약간 추춤해진 상태다. 업계에서는 성장세 둔화의 원인에 대해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어린이 책 시장이 급팽창을 멈추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출판컬럼니스트인 한미화씨는 “한때 20∼30%씩 성장하는 출판사가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기를 이어갔다”며 “어린이 책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이제부터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자음과 모음) ‘한국사 탐험대’(웅진 주니어) ‘살아 있는 세계사 교과서’(휴머니스트) ‘신나는 역사체험 열려라 박물관’(랜덤하우스 중앙)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이론과 실천) ‘마법 천자문’(아울북) 등이 눈에 띄였다.

어린이 책 서평지 ‘열린 어린이’의 도서콘텐츠팀장 김원숙씨는 “논술 확대의 영향으로 학습서 관련 서적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벗어나 체계화·세분화 됐다”고 분석했다.

실용정보서에서 만화책의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나온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마법 천자문’이후 어린이 책 시장에서 만화는 확대 일로에 있다. 한미화씨는 “꼭 만화가 아니더라도 오락적 요소를 가미한 어린이 학습서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용정보서 분야의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김원숙씨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출판시장에서도 다양한 실용정보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미화씨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논술 등에 대비해 어쨌든 유익하지 않겠냐는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린이 책 출판사의 부익부 빈익빈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일부 대형 출판사를 제외한 중소 출판사는 올해를 힘겹게 넘겼다. 이는 어린이 책 수요가 추천서와 필독서 위주라는 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 홈쇼핑을 통한 구매도 대형 출판사의 독주에 일조한 것으로 분석됐다.

어린이 책 시장에도 ‘황우석 쇼크’가 밀어닥쳤다. 황우석 관련 서적은 인물과 전기, 만화책 등 15∼16종에 달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황 박사팀의 논문 조작이 불거진 시기를 전후해 대부분의 황우석 교수 관련 어린이 서적이 자취를 감췄고 안 그래도 어려웠던 업계에 부담을 가중시켰다.

올해 어린이 책(청소년 포함) 시장에서 단연 높은 판매고는 해리포터 시리즈 6권(해리포터와 혼혈 왕자)이 올렸다. 문학수첩 관계자는 “지난 11월 이후 모두 130만부 정도가 나갔다”며 “전체 해리포터 시리즈는 1000만권 매출이 달성됐다”고 밝혔다.

안두원 기자 flyhig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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