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인쇄매체에 오르내릴 때는 반드시 ‘X’라는 용어로 치환되어야 했던 금기(禁忌)의 단어. 그러나 오랜 관습과는 달리 똥은 어린아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주제이자 어른들에겐 건강과 지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최근 각광 받고있다. 무엇이 우리를 똥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먼저 서점을 들여다보자. 똥을 소재로 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특히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은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두 책 건너 하나 씩’ 배설물을 등장인물로 앞세운다. 어른을 위한 책들도 ‘똥’의 신상명세를 역사적으로, 혹은 사회문화적으로 해석해 보여준다.
캐릭터 업계에서도 돈벌이가 쏠쏠한 효자 품목의 소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배변과 관련된 건강정보를 손쉽게 풀어놓은 ‘똥 전시회’(2001년)가 열렸는가 하면 방귀를 형상화한 모델이 등장해 어린이를 이끄는 교육프로그램도 인기가 대단하다. 비데를 선전하는 TV광고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졌을 만큼 노골적이지만 요즘은 익살로 받아들여 진다.
독특한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엽기몰에서는 행운똥, 개똥 모형, 똥 캐릭터 볼펜꽂이, 똥침 지시봉 등의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사이트 운영자인 이정민씨는 “30대가 소비계층의 30%를 차지하는 등 똥 캐릭터 상품은 연령과 상관없이 널리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람들이 독특한 캐릭터에 몰입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름 아닌 웃음이다. 똥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을 사람은 없지않나”고 덧붙였다.
파주 헤이리에 있는 쌈지의 테마파크 ‘딸기가 좋아’는 주말 이면 하루평균 3,500여명이 찾는 주말 나들이 명소다. 가장 인기있는 코너는 똥을 형상화한 캐릭터 ‘똥치미’의 공간. 똥을 부여 안고 황홀해하는 ‘완소똥’(완전 소중한 똥) 캐릭터를 들여다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터진다. 이윤아 쌈지 홍보실장은 “점잖은 대중 앞에 똥 이야기를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들려주는 상징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것 같다”고 인기비결을 말한다.
도서시장에서 ‘똥’의 선전은 좀 더 구체적이다. 교보문고 홍보실 이우일씨는 “제목에 ‘똥’자가 들어가는 도서 83종의 판매량이 2005년 1만3,905권에서 2006년엔 2만2,062권에 달하는 등 독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며 “아동에게는 신체발달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어른에겐 90년대 이후 꾸준히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몸 철학에 대한 지적욕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결과”고 분석했다.
똥에 반응하는 대중의 태도가 이렇게 호의적인 이유는 의외로 분명하다. 어른은 똥을 형상화한 상품이나 서적을 접하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고 아이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이서경 경희의료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프로이트가 말한 ‘항문기’에 해당하는 1~3세 어린이들은 배변 후 똥을 보고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무엇인가를 창조했다는 기분을 갖게 된다”며 “이렇게 변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이 형성되고 자신이 결국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아이가 똥과 관련된 캐릭터나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발달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른은? 이 교수는 “성인이 똥, 엽기코드, 화장실유머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은 이런 어린 시절의 창조적 해방감을 무의식적으로 되살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미 기성사회의 일원인 개인이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는 소재에 더욱 끌리는 반동(反動)현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