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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유통 구조조정 정부 자금지원을"..출판사 비상대책회의
[한국경제 1998-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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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매상들의 부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출판유통업계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출판인포럼(대표 김언호) 회원사 등 출판사 대표 40여명은 4일 서울 사간동 출판회관강당에서 도매상부도 관련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새 대통령과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출판인들은 이 자리에서 "출판유통 안정을 위해 도매상 합병.대형화 등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정부측에 추가부도 방지를 위한 금융지원과 제2금융권의 어음할인 등 긴급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출판계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위해 "출판유통발전위원회"를 구성키로 하고 "출판과 서점계 회생을 위해 5백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했다.

이날 회의는 국내 2위의 도매상 송인서림(대표 송택규)이 63억원의 어음을결제못해 지난 2일 최종부도처리됨에 따라 긴급 소집됐다.

조근태 현암사대표와 박기봉 비봉출판사대표 등은 이자리에서 "현재의 난립된 도매상을 3~4개의 대형기구로 정리해 유통현대화를 이룩해야 한다"면서 "초대형 단일기구보다 경쟁체제가 유지되는 복수기구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도매상 부도는 서울의 청송 한솔서적 지구문고, 천안 동방서적, 창원 경남도서유통, 경주의 새벌서적, 광주 호남서적 등에 이어 송인까지 쓰러지는 사태로 확산됐다.

베스트셀러 출판사들의 경우 대형도매상의 잇단 도산으로 누적 피해액이 9억~10억원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나라 출판유통계는 1만2천여개 출판사가 70여 도매상과 거래하고그 도매상이 다시 5천3백여개의 서점과 거래하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대여점 증가및 참고서시장 축소로 인한 소매상 위축이 유통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도시 소매점들이 대형화되면서 출판사와 직거래, 물류비 부담이 커지고 과도한 경쟁을 벌인 것도 도매상 부도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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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판유통시장 문제점/처방 긴급진단] (상)
[한국경제 1997-04-01 00:00]
 국내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 고려원이 부도를 냈다.

  무리한 사업확장 때문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규모에 비해 유통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한 국내 단행본 출판시장이 낳은 결과라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국내 출판유통 시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상중하 3회에 나눠 싣는다.

                                                                                      < 편집자 > 

======================================================================


  "21세기를 지향하는 머리와 20세기의 몸체, 그 몸체를 지탱하는 19세기 
다리가 엉겨 있다" 

  시장규모에서 세계 7위를 자랑하는 우리 출판산업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독자가 21세기를 바라보는 머리라면, 신간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몸체,
출판유통 구조는 다리다.

  "이렇게 전근대적인 유통구조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대형유통업체 출신의 유통전문가가 출판유통의 현주소를 파악한 뒤 
했다는 말이다.

  현재 도서유통 과정은 출판사-도매상-소매상-독자 및 출판사-소매상-독자 
라인의 둘로 나눠진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통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중복돼 
엄청난 물류비용과 과도한 경
쟁이 초래되고 있다.

  "중간규모 출판사는 보통 20개 도매상과 거래합니다.

  소규모 서점도 최소한 2~3개의 도매상으로부터 책을 공급받습니다.

  실제 수요보다 2배이상 많은 책이 서점에 진열된다는 얘깁니다.

  전근대적인 도매구조때문에 출판사가 처음부터 재고부담을 떠안는 것은 
물론 실제 유통량이 얼마인지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출판사 대표가 지적한 출판유통의 문제다.

  중복거래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비용을 출판사와 독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출판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출판산업은 96년말 현재 1만1천여개의 출판사 (책을 낸 출판사는 
2천5백여개)와 80여개의 도매상, 5천5백여개의 서점으로 이뤄져 있다.

  최악의 경우 1만1천여개 출판사가 80여 도매상과 거래하고, 그 
도매상들이 다시 5천5백여개의 서점과 거래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내에는 아직 전국 규모의 거래선을 확보한 도매상이 없다.

  김정현의 "아버지" 같은 초베스트셀러가 나올 경우 해당 출판사는 거의 
모든 도매상 및 대형서점과 거래해야 전국에 책을 진열할 수 있다.

  도매상이 판매대행기구의 역
할을 떠안고 있는 것도 문제.

  반품이 가능하다는 조건 아래 도매회사가 출판사에서 책을 사들여 
서점에 재판매하는 유통형태로 도매상의 영업력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수요에 상관없이 도매상의 밀어내기에 의해 서점에 배포된 책이 반품될 
경우 도매상과 출판사가 직접적인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3~6개월짜리 어음거래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재정이 부실한 도매상의 
난립은 결국 전체 출판업계의 부실로 이어진다.

  출판유통의 또다른 걸림돌은 서점.

  낙후된 서점구조가 전근대적인 도서유통의 주요요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만큼 소매서점의 문제는 심각하다.

  현재의 소형서점 규모로는 단행본의 기본부수조차 소화하기 힘들다.

  소형서점 중심구조가 전국 규모 도매상이 나타나기 힘든 요인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처럼 복잡하고 기형적인 출판유통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도매 및 
소매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

  해답은 복잡하고 중복된 출판유통 구조를 가급적 단선화.집중화시키는 
것이다.

  독자들이 필요한 책을 쉽고 빠르게, 그리고 싸게 살 수 있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출판산업 
경쟁력 강화의 첩경이다.

  < 박준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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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출판 - 번역출판의 현황
 

 
백원근|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bookclub21@korea.com

출판은 기본적으로 언어권 시장이다. 때문에 해당 언어권의 인구, 경제력, 교육 수준, 유통 및 문화 인프라, 구매력과 연관된 사회제도가 출판시장의 크기를 좌우하는 척도가 된다. 동일한 영어권 국가라 해도 미국과 영국 중심의 출판시장 ‘수렴 현상’과 다국적 출판사들의 독점화로 인해 여타 국가의 출판이 상대적으로 침체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각기 다른 언어권 사이를 이어주는 국제 출판시장의 연결고리이자 삼투막 역할을 하는 것이 번역출판이다. 그렇다면 주요국에 비해 소수 언어권이면서 변변한 해외시장도 없이 내수에만 의탁하는 우리 출판 상황은 어떠한가.

먼저 번역출판과 관련해 우리 출판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두 개의 명장면을 살펴보자. 첫째, 매년 가을에 열리는 지구촌 최대의 출판 견본시見本市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비롯, 어린이 전문 도서전인 볼로냐 도서전, 기타 BEA(미국)·런던·도쿄 등 몇몇 국제도서전에 한국 출판인들이 대거 참관하는 장면이다. 이들 도서전에서 한국 출판인들은 주빈이 된 지 오래다. 대표적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은 ‘2005 주빈국’ 이전에 사실상 오래 전부터 저작권 수입 주빈국이었다. 출판 저작권 교섭 및 해외 출판동향 참관을 위한 행렬이지만, 주요 목적은 저작권 수출보다는 외국 도서의 번역판권 수입에 있다.

둘째, 1999년에 국내 출판시장이 완전 개방되었지만 100% 출자 방식의 외국 출판자본 진출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유력 외국 출판사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 출판사들의 번역출판 경쟁으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로열티 수입이 보장되는데 굳이 운전자금을 투하하며 진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언어장벽은 외부로부터의 보호막임과 동시에 해외 진출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이중성이 있다.

OECD 최고 번역출판 선진국(?)의 좌표
외국 저작권 수입에 의한 번역서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이에 따라 국내도서 총 발행종수 가운데 번역도서의 비중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5%대였으나, 번역출판 점유율이 날로 높아지면서 30%에 육박할 만큼 대폭 늘어났다(표1). 즉 총 발행종수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번역서 발행종수가 5천 종대에서 1만 종대로 두 배나 늘어났고, 그 비중도 자연스럽게 배가된 것이다.(물론 납본체계가 일원화되어 있지 않고 국립중앙도서관의 납본 집계가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연동되지 않아 통계지표에서 출판종수의 전모를 알기 어렵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는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를 중심으로 살핀다.)



다만, 2004년 번역서 비중이 거의 10년 만에 하락한 것은 일본 만화가 전년도에 비해 513종 줄어든 데 기인한다. 만화를 제외하면, 전체 출판종수 중 번역도서의 점유비율은 약 25%로 전년도와 큰 변화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신간도서 세 권 중 한 권은 번역서일 만큼 번역출판의 비중은 막대하다. 한국은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번역서 발행량이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번역서 의존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2004년에 대한출판문화협회를 경유해 납본된 도서의 발행통계를 보면, 총 3만5394종의 신간 가운데 번역서가 1만88종으로 28.5%를 차지한다. 초판 발행부수 비중에서는 32%를 점유한다. 특히 출판분야별 번역서 의존률은 철학·만화·아동이 40% 안팎이며, 종교·문학·총류·순수과학은 30% 전후이다. 교육 강국답게 학습참고서를 제외하고는 자급자족률이 매우 취약함을 한눈에 알 수 있다(표2).



번역서의 원산국별 비중을 보면 일본(42.2%)과 미국(26.6%)이 번역서 전체의 68.8%를 차지해 미·일 양국의 절대적 과점화 상태를 보여준다. 이어서 영국(8.5%), 프랑스(6.5%), 독일(6.2%)의 유럽 3국이 21.2%이다. 이상 주요 5개국의 점유율을 합하면 90%나 된다. 기타 중국(2.6%), 이탈리아(2.2%), 러시아(1%) 등이 이어지지만 전체 비율에서는 매우 미미한 정도이다. 일부 국가에 지나친 편중을 보이고 여타 국가나 언어권에는 배타적인 편식 현상이 뚜렷하다.  

특히 일본도서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일본도서의 번역 종수는 1990년 774종, 1993년 1064종, 1995년 1244종, 1996년 1496종, 1997년 2465종, 1998년 2852종 등으로 급신장했다. 1993년에 1천 종대를 돌파한 이후 4년 뒤인 1997년에 2천 종대를 넘어섰고, 이런 급신장 추세는 2000년부터 5천 종 안팎으로 포화상태에 달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의 비중이 미국보다 더 큰 이유는 문화적 유사성과 지리적 접근성 등의 강점을 바탕으로, 특히 한국의 1987년 국제저작권협약 가입과 국내 상업출판의 발달에 따라 1990년대 중반부터 만화나 실용서 중심의 번역출판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서 봐도 한국은 가장 큰 출판저작권 수출 상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단행본 출판시장에서 일본출판의 지배력은 2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쯤 되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 하더라도, 한국 출판 영토의 상당 부분은 일본에 편입되어 있다는 새삼스런 경각심이 생기게 된다.  

이에 비해 미국은 만화를 제외한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크게 제치고 번역서 최대 원산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총류, 종교, 사회과학, 순수과학, 기술과학 분야에서는 번역서의 절반 정도가 미국산이다. 미국의 영향력이나 우리의 대미 의존도는 출판분야에서도 여실히, 아니 보다 더 종속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아동도서 분야만 미국과 더불어 영국, 독일이 3대 번역서 원산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손쉬운 번역출판 구조
그렇다면 출판사의 입장에서 볼 때 번역출판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 출판산업 실태조사’(한국출판연구소, 2000)에 따르면 국내 출판사 중 외국도서 번역출판 실적이 있는 출판사는 약 59%이며, 주력 출판분야가 아동도서(68%), 일반단행본(64%), 전문·학술도서(58%) 등인 곳에서 주로 발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들 출판사는 평균 38종의 번역서를 발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응답한 출판사 819개사의 평균 총 발행종수가 201종이었으므로,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누적 발행종수에서 평균적으로 거의 1/5은 번역물이 차지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그간 번역출판 경험이 있는 출판사들의 원산국별 이용률(중복응답)을 살펴보면 미국(68.2%), 일본(52.4%), 영국(13.7%), 독일(10.6%), 프랑스(6.7%), 중국(5.2%), 기타 1% 이하 순으로 국가별 선호도가 뚜렷이 대비되며, 납본통계상의 실제 번역출판 비중(종수)과 유사한 분포를 보여준다.

출판사들은 번역출판시 주로 저작권 전문 에이전시를 경유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56%), 출판사가 직접 외국출판사나 저자와 교섭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외국도서를 번역출판하면서 원저작자에게 지급하는 선불금advance은 1000-2000 달러가 40%대로 가장 높았다. 또 번역출판시 원저작자에게 지급하는 저작권료는 정가 대비 6-9%의 비율이 가장 높은데, 분야별로 보면 일반단행본 출판사의 48.6%, 전문·학술도서 43%, 아동도서 53.6%, 학습참고서 33.3%, 만화 53.8%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번역출판시 번역자에게 지급하는 평균적인 번역료는 영문도서 번역의 경우 200자 원고지 1매를 기준으로 2000-3000원이 전체의 37.6%로 가장 높았다. 2000원 아래인 경우가 21.6%로 그 다음을 차지했고, 3000-4000원은 12.5%로 낮은 분포를 보였다. 번역료 지불 방식은 ‘번역이 끝난 후 일시불 지급’이 전체의 48.4%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는 ‘시기별 분할 지급’이 23.1%, ‘번역 전에 일시불로 지급’하는 경우가 15%로 각각 나타났다. 하지만 ‘인세’ 형태로 지급하는 경우는 4.4%에 불과하여 번역출판의 경우 인세보다는 일시불 형태 지불이 일반적인 양상임을 알 수 있다.

즉 번역서를 선호하는 출판풍토 덕분에 발달된 저작권 수입 에이전시 시스템으로부터 신속하게 외국 저작물을 소개받아 저렴한 번역료와 발빠른 제작 방식으로 번역서가 양산되는 구조가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번역출판에 문제는 없는가
출판시장 규모나 발행종수 등 제반 측면에서 ‘세계 10대 출판대국’이라는 우리 출판의 위상은 수입 콘텐츠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이는 핵심 소재 및 부품을 수입, 재가공하여 수출하는 한국 무역의 현주소와 흡사한 ‘원천기술 부족’이라는 맹점을 보여준다.

번역출판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출판 경향과 제살깎기식 저작권료 과당 경쟁은 세계적으로 해외 저작권료가 가장 비싼 나라라는 인식을 낳고 있다. 이로 인해 출판사는 어려워도 저작권 에이전시는 승승장구한다느니, 불투명한 저작권 중개 구조로 힘없는 출판사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느니 하는 출판계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입 콘텐츠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출판계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그러한 자가당착적인 비판에 설득력이 실리기는 어렵다.

저작권 수출입은 출판뿐 아니라 해당국 저작물의 학술적, 문화적 경쟁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식문화의 유통 방식이다. 우리의 뚜렷한 입초入超 현상은 이를 대변하는 지표이다. 이와 같이 국내 출판에서 번역출판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무엇보다 외국 저작물의 비교우위에 기인하는 바 클 것이다. 이 점은 문화란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므로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설명되기도 한다. 선진 문물과 지식문화를 하루 빨리 수입해 소화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발전을 위해 결코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번역서의 범람에는 그 이유가 따로 있는 듯하다. 외국에서 이미 상품성이나 판매량이 검증되어 최소한의 수익률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고, 완성된 원고이므로 신속한 검토와 번역을 거쳐 빠른 시간에 제작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으며, 국내 저자에게 지불하는 인세나 원고료보다 저작권료 부담이 저렴한 경우가 많다는 점 등 다양한 경제원칙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단기 승부수를 던지는 신생 출판사나 자본력 및 기획력이 취약한 중소형 출판사가 많은 열악한 우리의 출판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국내 저자가 쓰기 어려운 내용이라거나 필자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 등 저술인구의 국제 경쟁력 문제도 중요한 원인이다. 결국 사회적 지식·문화 인프라의 수준과 출판사들의 상업적 기동성이 출판 저작권 수입에 그대로 투영되어 계량화된 것이 “세 권 중 한 권은 번역서”이다.

번역물이 넘쳐나는 우리 상황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모든 도서를 번역서 컬렉션으로 일관하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자본력이 있는 곳일수록 판매 가능성 높은 해외 저작물 수렵에 더 적극적인 현실을 마냥 상찬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입학문, 수입출판의 풍조 속에서 ‘책세상 문고’ ‘살림 지식총서’ 등 국내의 젊은 저자들로 채워가는 몇몇 문고본 시리즈가 주목받는 이유는 자생적 콘텐츠 생산력이야말로 ‘축적과 연쇄’의 출판문화를 정립하기 위한 값진 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번역출판의 과제
출판계에서 번역출판에 ‘기획’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계획과 기획이 착종될 정도로 쉽고 빠른 번역서에만 매달리는 세태가 낳은 현상이다. 아마도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위한 학교 추천도서에 우리처럼 해외 도서들이 많이 포진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일간지 출판 담당 기자들은 서평으로 쓸 만한 국내 저작물을 만나면 반갑기조차 하다고 한다. 영아 대상의 독서운동 프로그램인 ‘북스타트’ 도입시 우수한 국내 저작물을 찾기 어려워 고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왕이면 우리 저자와 저작물을 키워 나가자는 이런 시각을 천박한 쇼비니즘으로 몰아붙인다면 할 말은 없지만, 출판계 전체가 팔릴 만한 번역서 열 권에 주목하는 에너지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국내 저자와 기획에 돌린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사족으로 번역출판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 신중한 번역서 선택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로 부족한 영양 보충을 하기 위해, 또는 최신 학술 담론의 소개나 문화적 저변 확대를 위해 꼭 필요한 비타민 같은 메뉴가 우리 식탁(출판)에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고도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흔하디 흔한 재료를 값싸고 구하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수입하는 것은 중국 농산물로 인해 국내 농업 기반이 초토화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번역출판을 포함해 우리 출판의 비전은 출판사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 콘텐츠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특정 범주에 천착하거나 차별화된 테마에 주력해 국내 기획물과 번역서로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는 것은 출판사의 생존은 물론 지식정보 사회에서 출판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전략적 입지이다. 이를테면, 최근 스페인문학 전문 출판사를 표방하며 설립된 ‘북 스페인’이 주목받는 이유다. 상업적 승산만 있으면 분야나 수준, 출판사의 철학이나 컬러까지 고려하지 않는 단발적 번역출판 관행은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 반드시 번역이 필요한 책임에도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되지 못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둘째, 번역에 공을 들이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번역서에 관해 독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번역의 질이다. 한국은 ‘해리포터’ 시리즈나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 또는 미발간된 노벨문학상 수상 도서가 비영어권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게 번역되어 출판되는 나라이다. 속도에 죽고 속도에 사는 나라이니 그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번역의 정확성이다. 아무리 “번역은 반역”이라는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더라도 재빠른 판매와 이윤 회수를 지상 목표로 졸속 번역을 하는 것은, 영화배우 송강호의 외침처럼 저자와 독자에 대한 “배신이자 배반”이다. 분량이 많지도 않은데 번역자 여럿이 분담해 일관성 없는 졸속 번역으로 정확성이 떨어지는 책들도 적지 않다. 일부 양심적인 출판사들은 오역을 바로잡아 리콜 제도를 시행한 사례가 있으나 그야말로 일간지에 실릴 미담 사례에 가깝다. 일본의 ‘해리포터’ 번역판은 한국보다 1년 가까이 늦게 발행되는데, 과민한 일본인들의 특성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셋째, 돈 놓고 돈 먹는 식의 저작권 계약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 로열티를 천정부지로 올리는 과당경쟁은 우리 출판계 전체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지속적인 계약금의 상향 평준화를 불러온다. 출판사는 자체적으로 평균 수익성 기준 입찰 한도액을 정해 지켜야 할 것이며, 저작권 에이전시는 지나친 국부 유출을 억제하고 앞으로의 거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다는 대국적 견지에서 최소한의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시장논리에 비추어 꿈 같은 계몽적 허언虛言에 불과할 것이므로, 출판문화의 성숙이나 합리적 출판경영이 정착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만, 번역출판 계약을 맺은 후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거나, 내용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번역 의사를 표명했다가 돌연 포기하는 등 외국 출판사의 빈축을 사는 일만이라도 시정돼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국내에서 100종 넘게 출판된 『어린 왕자』처럼 세계 최고(?)의 중복출판 불사 경향, 번역가 양성 교육과정 및 정책 미흡, 번역의 질적 수준 및 번역가 대우와 관련한 문제, 번역출판 관련 각종 통계나 언어권별 데이터베이스 구축, 주요국별 양질의 도서정보 및 최적의 번역자 풀 확보, 언어권 및 출판분야별 전문 에이전시 육성, 수입선 다변화를 통한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 확보 등 제목이라도 언급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리 출판은 이제 한국어 기반의 내수시장 한계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글로벌한 기획력과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이는 열악한 개별 출판기업의 자구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 차원에서 한국도서의 외국어 번역을 대대적으로 진흥시키기 위한 특단의 문화정책 지원, 기업체의 출판메세나 확대를 통한 우리 출판의 세계화 촉진, 출판 관련업계의 전방위적 해외시장 정보 파악 및 해외 마케팅 강화 등이 결합되어 시너지효과를 거둘 때 소기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국가 경쟁력과 한국 문화예술 전반의 해외진출 활성화로 귀결될 것이다. 이를 위한 가칭 ‘출판무역진흥원’ 등 전문기구 설립 및 운영은 유력한 대안이다.

근년 들어 인근 동아시아 및 동남아 지역으로 저작권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저작권 수입이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이 타개된 것은 아니지만 매우 희망적인 흐름이다. 한국출판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 국내의 주요 저작권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에 수출된 국내 출판저작권은 고작 세 종에 불과했으나 2004년에는 총 428종(645권)이 넘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특히 최근 2년 사이 수출 대상국이나 출판분야의 범위가 대폭 확대되어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류의 영향이 출판으로 확대되어 나타난 과실로 해석되지만, 콘텐츠의 경쟁력과 효율적인 마케팅이 있으면 외수시장의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려도 좋을 듯하다. 어느 나라보다도 왕성한 번역출판의 경험을 통해 얻은 엄청난 노하우(?)를 출판 수출에 되살려야 한다. 출판사, 업계 단체, 정부의 삼위일체식 인식과 노력이 소망스럽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18호> 특집 - 번역출판의 오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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