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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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다 읽고도, 내려놓기가 싫었다. 손끝으로도 미세한 감동의 전류가 계속 전해오는 것만 같아, 한참동안 멍하니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윽....시작부터 또 오버다. 어찌된 일인지 요즘 쓰는 리뷰는 계속 뭔가가 끓어 넘친다. 하지만 어쩌랴. 밤의 힘을 빌어 리뷰를 쓰는 탓도 조금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책, 나를 화악 끌어 당기는 책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게 다, 최근 읽고 있는 책들을 골라 보내주신 폭스바겐님과 판다님 덕분이다. 멋진 책과 행복한 시간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 판다님의 책 꾸러미에서 <십자군 이야기>를 집어 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것이 만화인줄도 몰랐다.(제발, 어디 가서 책 좀 읽는다 소리는 입도 뻥긋 말자.-.-) 21세기에 <십자군>이라니, 생뚱맞다고만 싶었다.(부제인 '충격과 공포'를, 리뷰 쓰던 지금에야 발견했다. 나....바보냐???) 그렇긴 해도 만화니까 쉽게, 후딱 읽히겠거니...하며 시작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결코 쉽지도 빨리 읽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어렵거나 지루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페이지마다 내 머리 속에 그대로 떠 옮기고 싶은 지식과 금언들이 가득했다. 한 번이라도 되살피면 내 저주받을 기억력이 조금은 소생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멋진 기록의 일부라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꼬옥꼭 씹어 삼키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으아, 나는, 한결 똑똑해져(?) 버렸다! 이제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도대체 무엇인지 사전적인 의미 이외에 feel로도 느껴버렸다! 하긴, 책을 한 권 읽었다면(그 책이 무엇이든) 누구나 어느 정도는 똑똑해지는 것이 정상일게다. 하지만 <십자군 이야기>를 읽은 지금, 나는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똑똑해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미안할 지경이다. <양서>란, 이런 것이 아닐까?

소장해야 할 책이다. 2권이 나오면 1권과 함께 냉큼 구입하자고 벼른다. 게다가, 이 큼직하고 고급스러운 책이 8,800원이라니, 너무 싸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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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8-2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안되죠. 저랑 같이 안똑똑한 반열에 남읍시다!

진/우맘 2004-08-2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마태님이 아무리 그래도, 사실은 무진장 똑똑하다는 거, 이제 다 눈치 챘네요, 뭘~~

마냐 2004-08-26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두 한때는 책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고 생각했는데요, 쩝...예외가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잖아욧.-,.-

털짱 2004-08-2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분들의 말씀이 저한테는 독화살처럼 아픕니다. ㅜ_ㅜ
그냥 똑똑하다고 하셔도 되는데.. 왜들 이러세요...흑!

진/우맘 2004-08-27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땅님> 앗, 앗, 앗!!! 마태님 벤지 꼬리가 살랑이더니...털땅님 둘리에게서도 터, 털이!!!
마냐님> 흥~~~그 말을 믿을 수 있게 증거를 대세욧!

진/우맘 2004-08-2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헐~~ 투쟁!!

진/우맘 2005-05-2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장해야 할 책이다...저주받을 기억력....팍스 아메리카나가 무엇인지, 지금은 잊어버렸다....ㅠㅠ
 
세계 민담 전집 07 - 터키 편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7
이난아 엮음 / 황금가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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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의 이야기. 민간에 전승되는 이야기를 뜻한다.
신화나 전설과 구분할 수 있는 민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화나 전설은 과거의 특정시대에 일어났던 일회적 사전을 그리는 반면, 민담은
과거 언제 어디서나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는 전형적 사건을 그린다.
둘째
신화나 전설이 현존 증거물에 대하여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과 경험을 설명하려는 객관성을 띠는 데 반해, 민담은 경험하는 사람 즉
작중인물의 계기(繼起)하는 다양한 운명을 주관적으로 서술한다.
셋째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는 피안(彼岸) 관념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존재하지만, 민담에서는 주인공을 돕거나 해를 가하기 위한 힘이 되고,
주인공을 예정하였던 목표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신화·전설·민담 사이에 이와 같은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며, 모티프로 본다면 이 셋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
(엠파스 백과사전 중)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민담이라는 정의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구나. 신화나 전설과는 조금 차별화 된, 말 그대로 이야기.

우리의 옛 이야기에는 권선징악의 틀이 제법 뚜렷하다. 착한 사람은 잘 살게 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사실, 터키의 민담들도 대략 그 틀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역시, 문화적인 이질감 때문인가? 아내가 강아지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믿고 몇 년이고 허리까지 땅에 묻어 놓는 남편이나, 자신을 소금처럼 밖에 안 좋아한다고 막내 아들을 죽이라 명한 등장 인물들의 생뚱맞음은, ㅎㅎ, 따라잡기가 힘들다.
하긴, 민담이라는 것을 현재의 논리로 이해하려 들면 안 될것이다. 모티브 하나 하나를 고증하여 해석하려는 것도(능력도 안 되지만.^^) 안 될 일이고. 그렇다면 이 책, 어떻게 즐겨야 할까? 그냥 읽어내려 가야지. 귀담아 들으며 흥, 흥 웃는 기분으로.
그렇게 한 권을 설렁설렁 읽고 나니, 어라,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던 <터키>라는 나라의 끝자락을 언뜻, 잡아본 것 같기도 하다.

원체 어느 나라 민담이나 다 유형이 비슷비슷 하지만, 터키는 동양과 서양에 걸쳐 있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인가, 유독 데자뷰가 잦았다. 라푼첼도 생각 나고, 푸른 수염도 생각 났다가, 혹부리 영감이랑 구렁덩덩 새선비도 떠올랐다가...그렇게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다보니 책 한 권이 다 갔다.

아쉽다. 터키의 민속 복식이나 문화에 대해 약간만 더 알았더래도 책 읽는 재미는 배가 되었을텐데. 머리 속에 떠올린 궁전, 왕, 나그네, 요정 모두 국적 불명의 어리벙벙한 이미지였기에, 환상의 세계로 몰입하는 것이 쉽질 않았다. 그래서, 삽화가 많이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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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시 로망스 그린게이블즈 앤스북스 9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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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공간은, 통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이다. 장대비가 내리면... 방음판넬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을 그 자연의 집은, 온 몸으로 빗소리를 전한다. 바깥은 으슬으슬 춥고 습하지만, 벽난로가 있기에 실내는 전혀 눅눅하지 않고 보송보송하다. 아, 그런 오두막에서 눈을 떠 볼 수 있다면!

두고두고, 숨겨 둔 과자를 꺼내 먹듯이 상상해 온 그 환상의 공간이, 여기 한 권의 책에서 재현되었다. 밸런시 로망스!  빨간머리 앤의 바로 그 저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로맨스 소설이다.
주인공 밸런시의 푸른 성, 미스타위스의 오두막집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벅차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의 은밀한 꿈 속을 이리도 완벽하게 재현해 낸 것인지! 나만의 것이라 여기던 그 환상은 어쩌면 모든 소녀들이 한 번씩은 꿈꾸는 그것인가보다. 그리고, 그 공통분모를 모으고 걸러서 이렇게 결 곱게 펼쳐주는 것...그것이야말로 작가 몽고메리의 진정한 역량 아니겠는가?
여하간에 그 행복한 오두막에는 사랑하는 남자 - 완벽하게 통나무집과 어울리는 강한 매력의....부르르 - 까지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오...맙소사.

밸런시가 미스타위스에서 보낸 행복한 시간들의 기록은 독자가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꿈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행복한 순간을 유독 탐하는 나같은 사람도 배불리 즐길 수 있는 그 충만한 기쁨들은, 모든 희망이 거세된 삶....말 그대로 죽음만큼 아득한 삶을 탁월하게 묘사해 낸 도입부를 딛고 한결 아름답게 빛난다.
그 행복의 기록이 너무도 압도적인 매력을 발산하기에, 후반부의 약간 성급한 듯한 전개나 상투적인 결말도 다 덮어 용서할 수 있었다.
잠깐, 상투적이라니? 원전(原典)에게는 상투적이라 말할 수 없는 노릇. 그 숱한 <상투적인> 로맨스 소설들은 모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책들에서 뻗은 가지가 아니던가?

밸런시 로망스를 만난 시간은 너무, 너무, 너무 달콤했다. 이제껏 읽었던 로맨스는 모두 잊겠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게 있어 로맨스는 <밸런시 로망스> 하나다!

ps. 권말에는 <예기치 못한 결혼식>, <미시의 방>, <속죄>, <신부의 장미> 등 네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예상하지 못한 덤이라 당혹스러웠지만, 짧은 가운데에도 작가의 재치가 순간 순간 엿보이고,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를 넘어다 볼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괜찮은 읽을거리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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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2004-08-2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하다!!
정말 이런글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달콤한 리뷰네요^^

sooninara 2004-08-25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도 더 전에 앤시리즈가 전집으로 나온적이 있는데..내가 아는 언니 집에 그 전집이 있어서 한권씩 빌려다 보는데..얼마나 잼나던지..기억도 잘 안나지만 20대 초반이었던듯...하얀 양장본이었던것 같은 앤 전집...
난 시공사 3권 샀는데..이것도 읽고 싶어지네..왜 시공사는 뒷편이 안나오는거야..ㅠ.ㅠ..

진/우맘 2004-08-2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성> 나두요. 시공사 2편까지 사 놨던가?? 이 앤 시리즈도 시공사 앤 시리즈 같은 건지 알았다니까요.^^
얄님> 너무 달아서 좀 물리지 않습니까? 요즘 새삼 느끼는데, 저는 리뷰 쓸 때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요.^^;;

마냐 2004-08-2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달콤하잖아요. 물리치기엔, 아흑. 유혹이어라.

진/우맘 2004-08-25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읽게 되면 꼭 밤에 읽으세요.^^

호밀밭 2004-08-2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로맨스는 앤과 길버트의 로맨스였는데 둘의 로맨스는 달콤하지는 않았어요. 달콤한 로맨스 기대되어요. 님의 리뷰가 더 달콤해서 두고두고 읽고 싶네요.

진/우맘 2004-08-2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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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치면, 잔치국수다. 시장 좌판에서 허기를 느끼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배를 몇 푼으로도 채워 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재료, 그나마 몇 가지 안 들어가지만 오로지 경륜과 손맛만으로도 시원한 맛이 나는, 잔치국수.

이명랑은 그 연배 전후로는 보기 드물게 '경험의 언어'를 소유하고 있는 작가다. 경험의 빈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작가들과 견주면 그녀는 분명 행복한 쪽에 속한다. -해설 '시장 언어의 유쾌한 카니발' 중-

글쎄다, 화장실 없이 수채구멍에 오줌을 눠야 하는 처지 때문에 교우관계에 치명타를 입었다고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하는 작가, 저런 소리를 들으면 발끈할지는 모르겠다만...내 보기에도 그렇다.
시장 언어라 이름 붙였던가? 욕지거리와 일본어 잔재들이 뒤섞인 그 언어들은, <경험>이라는 첨가물과 함께 곰삭지 못했다면 분명히 신경줄을 거스르는 문장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누군가, 시장과 상관 없이 자란 어떤 작가가, 그 언어들을 빌어 글을 썼더라면...그 문장들은 <하류 인생>을 대표하는 어거지에 지나지 않았겠지.
그런데 <삼오식당 > 속의 문장들은 다르다. 책을 열고 몇 페이지 지나지도 않아 나는 그 문장들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품격이 없다고도, 거칠다고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나 역시 자라면서 숱하게 들어온 듯한 기시감에 휘말리며...어쩌면, 이 시장 언어들이야말로 우리네 사는 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상한 수식어도 쳐 내고, 모호한 은유도 벗겨 낸, 탱글한 알몸의 언어. 이명랑은, 그런 근사한 언어를 구사해낸다.

어쩌면 특별하달 것도 없는 에피소드 들이다. 그냥 나같은 사람이라면, 바로 곁에서는 아니라도 한 두 다리 건너 즈음에서는 매일같이 일어날 법한 일상들. 특별히 숨막히는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물 찡한 결말이나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삼오식당의 7개 이야기들은 눈 돌릴 수 없이 재미있다. 참 오랜만이다. 외출하면서 두고 나온 것이 사무치게 아까운, 그런 재미를 가진 책은.

이 작가가 아직 젊다는 사실이 반갑다. 그리고 당분간은 시장의 삶, 그 화두에 붙들려 있을 것 같다는 고백이 즐겁다. 먹을 때는 좋은데 금방 배가 꺼지는 잔치국수. 이명랑의 잔치국수를 나는 아직 몇 그릇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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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8-2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랑의 "행복한 과일가게"를 읽고, 글쎄, 좋지만 이렇게 긍정에 주저앉아 버려도 좋을까, 했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그이의 소설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진/우맘 2004-08-2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자님> 언어를 통해 이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한계성이라....흠, 조금은 섬뜩하네요.
숨은아이님> 긍정에 주저앉는거, 그거 제가 되게 잘 하는 거거든요. 히히... 같은 부류를 알아본 기쁨에 그렇게 좋아했던 것일까요? ^^;; 행복한 과일가게는, 언론의 찬사를 들은 기억은 있는데...막상 제가 읽었는지 아닌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구해봐야 겠어요.^^

로드무비 2004-08-23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그릇 더 먹을 수 있어요. ^^

진/우맘 2004-08-23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추가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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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를 알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니, 글이 어찌 작가를 그대로 대변하랴. 김영하의 글을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고 정정하자.

담배같은 소설이 쓰고 싶었단다. 읽는 이의 기도와 폐와 뇌에 들러붙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후....주위에 피혜를 끼치는, 하하, 피혜를 끼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단다. 언뜻 뒷표지의 글귀를 읽었던가? 그래서인가? 이 소설집은 내게 <호흡>이라는 총체로 다가왔다.

밍숭맹숭, 일란성 쌍둥이들인냥 서로 구분되지 않는 단편 몇 개가 모인 소설집을 매우 싫어한다. 내 저주받을 기억력이 일조하여, 대부분의 단편소설집은 그렇게 보이기에 '단편은 싫다'던 나이다. 
그런데, 이 소설집 속의 작품들은 모두 다른 배를 빌어 나온 새끼들처럼 가지각색이다. 그 눈매 어디선가....어렴풋이 한 아비의 흔적이 발견되긴 하지만, 소재도, 그 소재를 풀어내는 리듬도 모두 사뭇 다르다. 아, 그 리듬 때문이었을까? 하나의 작품이 끝날 때마다 내 호흡도 느려졌다 가빠졌다 했던 것이.

마침, 지금 이 곳에는 태풍이 불어 천둥 번개가 엄청나다. 그런 배경과 더불어 <피뢰침>은 매우 인상깊었다. 하긴, 그 독특한 소재 - 전격(벼락을 맞기 위한) 여행이라니 - 덕분에라도 쉽게 잊혀지지 않았을 테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몰입했던 작품은 <비상구>였다. 이상하게도 감정 이입이 잘 되었다. 나와 별 연결고리가 없는 듯한 그 젊은(혹은 어린) 남자, 치기와 열망과 흥분과 혼란으로 버무려진 삶을 사는 그 남자의 가쁜 심정이 여과없이 내게 투입되는 듯 했다. 여과 없이? 투입? 그것들이 어설픈 착각이라 할지라도, 짧은 순간 함께 뛴 듯한 그 속도감은 제법 흡족했다.

권말의 해설은 읽지 않았다. 대충 훑어보니 아주 흰소리들은 아니었지만, 논리적이고 따북따북 침착한 그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 책 한 권 읽는 동안 불규칙했던 내 호흡....그 기억이 흐려질 것만 같았다. 자연스레 잊고 나면, 그 때 차분히 읽어보도록 하자.
지금은 그냥, 작가 후기로도 족하다. 피해를 끼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독해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그의 이야기에 빙긋이 웃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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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8-18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냉장고 이야기가 무쟈게 인상적이었다지요.

메시지 2004-08-1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관 살인사건도 여기에 나오던가요? 가물가물하네요. 김영하 소설도 참 재미있어요. '오빠가 돌아왔다'도 읽어야하는데...

반딧불,, 2004-08-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진관 살인사건..경아 던가요??

진/우맘 2004-08-1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시지님, 네, 그 작품이 제일 첫번째예요.
반딧불님, 냉장고라면...(기억 안 나서 뒤져봄. 으으...기억력TT) 그, 사라지는 남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냉장고인가요?

진/우맘 2004-08-1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관 살인사건, 처음에 읽고 "참 좋다..."하며 시작했는데, 왠걸, 이후의 작품들은 점점 더 좋더라구요.^^

반딧불,, 2004-08-1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관 살인사건은 단막극으로도 참 멋졌어요.

아마..김서라였던가...참 연기가 좋았던 기억이 있답니다.

진/우맘 2004-08-1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김서라...그 얼굴 생각나네요. 연기를 참 성실하게 잘 하던 배우였는데, 요즘은 뭘 하는지...

책읽는나무 2005-01-2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었어요..^^
진우맘님!

저도 단편집을 좀 꺼려하는 이유가 책을 덮고 며칠이 지나면 내용이 뒤죽박죽~~
한두달이 지나면 머리가 하얘지는 병 때문에 그닥 달가워하질 않거든요!
(그에 비하면 반딧불님은 주인공 이름까지 기억하시네요..쩝~)
헌데...이책은 그럭 저럭 12시간밖에 안지났는데도 제목이랑 내용들이 기억나네요..ㅋㅋㅋ
몇몇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그랬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