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잘 모르고, 많이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 있으면 꼭 시가 읽고 싶고, 쓰고 싶었다. 아직 바알간 기가 가시지 않은 채 고물거리는 예진이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시가 소록소록 머리 속에 떠올랐고, 서방님과 연애가 시작되려 할 듯 말 듯 할 때에도, 류시화나 자크 프레베르 시집을 사들였다. 그리고 원태연...원태연은, 93년 겨울, 나와 함께 첫사랑을 치른 시이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방바닥에 이 시집이 널부러져 있다. 연우가 책꽂이를 뒤지며 놀다 던져놓은 모양이다. 옛날 생각이 나서 들고 나왔는데...ㅎㅎ 오랜만에 보니 정말이지...감회가 새롭다. 예전엔 주로, 이런 류의 시에 연필 체크가 되어 있다.
경험담
집 앞까지
바래다 달라 해도 싫다 하고
바래다 준다 해도 싫다 하세요.
매일 매일 바래다 주면
서로가 버릇돼
이별 후
다시 만남을 갖는다 해도
그 만남을 사랑하게 된다 해도
집 앞에서 안녕할 때
문득 떠오를 테니까요.
전에 바래다 주었던
그 행복한 눈이
슬픈 눈으로 기억될 테니까요.
서글픈 밤 그림자로 기억될 테니까요.
헌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이런 종류의 시가 더 재미있네.
그저께 낮 2시 27분쯤
사랑하는 시가 있었으면
사랑하는 노래가 있었으면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식하고
못나고
많이 먹는 여자라도
내가 아니면 아무 일 못하고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굶고 사는 여자
그런 여자가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사랑해 줄텐데
내일도 오늘처럼 따분할 것 같으면
잠 속에서 연애나 해야겠다
못생긴 강아지가 찡얼대고
담배는 꽁초도 없고
한숨만 나온다
사랑하는 라이타가 있으면
사랑하는 시가 있으면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
도대체
얼마나 좋을까
ㅋㅋㅋ '무식하고/못나고/많이 먹는 여자라도'가 내 가슴을 후비고 들었나? ^^;; 그리고 문득, 갈대...소굼...매너 등등 서재의 뭇 싱글 총각들이 떠올랐다.^^
그 자식은
500을 마시면
어깨로 손이 올라와
1000을 마시면
내 입술을 노리고
2000을 마시면,
막
더듬으려 들지.
그리고,
3000을 마시고는....
같이 잤지, 뭐. ?!!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코~ 자는 놈을
깨우다 깨우다 지쳐서,
나도 옆에 털퍼덕 앉아, 그냥
눈 꼭~ 감고 자버렸어.
12월 24일
날은 춥고
엉덩이는 시리고, 그런데 자꾸
헛웃음은 나오고.....
ㅎㅎ 마지막 건...내 거다. 94년 1월, 일기장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혼자 웃었다. 이제 보니 어찌나 민망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