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3월말에 왔습니다. 신랑은 작년 여름에 먼저 왔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미국 오기를
싫어했던 저는 밍기적 거리다가 올 봄에 왔습니다. 이즈음에서 하기 싫은 고백을 해야겠군요.
제 신랑은 원래 물리학도였습니다. 근데 저랑 사귀면서 제가 경영학도로 바꿔놓았지요. 철없던 그
때, 제게 물리학도는 장래가 좀 안좋아보이는 그런 존재여서 장래가 촉망되는(?) 경영학도로 바꾸
어 놓은 것이었죠. 여기서 제 업보가 시작됩니다.
경영학도가 되어 회계법인에 취직한 신랑은 살인적인 업무량과 하는 일의 비호감이 겹쳐져서- 주
말에도 나가서 일했고 감사기간에는 새벽 2~3시가 기본귀가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할까봐 후배가 해 놓은 것도 다시 보고 하는 꼼꼼한 성격때문에 일이 더 늘었고요.
언젠가 한탄조로 제게 말하더군요. 회계사가 뭐 하는 직업인지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거라고.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던 물리학도 하나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이지요- 결국은
작년에 그만두고 미국에 공부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몇년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
이지요.
여기 와서 저는 너무 우울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더
구나 영어도 못하고!!! -영어는 제가 너무 싫어하던 과목이었지요- 겨우 신랑 친구 부인 하나 사귀
었는데 그녀는 지난달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고, 또하나 알게된 신랑 선배 부인은 자기가 대학원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그녀가 매주 금요일 다른 한국인 5명과 함께 애들의 플레이 데이트를 한다
는 것을 알고 저는 유치원도 마감이라 못가고 심심해하는 우리 애들을 위해 그 그룹에 끼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미 엄마 6명에 애들 9명이라 너무 인원이 많다며 난감해하는 그녀를 공략하고, 그룹
내 다른 엄마를 개인적으로 소개받아 하나 둘 씩 알아가다가 결국 지난달 그 그룹에 공식적으로(?)
끼게 되었지요. 한명이 여기서 자기 공부를 시작해 다음달에 박사과정하러 이사를 가서 공석이 생
기게 되어 끼게 된 것이지요. -제가 거주하는 곳은 학교 근처라 여기 있는 한국 사람은 다 유학생
가족입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수다 떨 상대가 생겼고, 애들도 놀 친구가 생겼으니까요. 이 집, 저 집을 돌
아다니다가 이번주 드디어 저희집 차례가 되었습니다. 전날부터 고구마 완자전과 잡채, 감자 샐러
드를 준비하고 미숫가루 타놓고 애들 과자와 매일 바이오 야쿠르트까지 사놓고 준비를 했죠. 애들
에게 장난감도 나눠쓰라고 당부하고요.
근데 언제 친구들 오냐며 매일 기대하던 딸이 점차 딴지를 걸며 걸핏하면 울고 친구들에게 자기 물
건도 못 만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한 남자 아이는 저희집에 오기 싫다고, 제 딸이 물
건을 못 만지게 하니 나중에 자기 집에 오면 자기 물건도 못 만지게 하겠다며 불평을 해댔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간 후 너무 화가 난 제가 거의 광분상태로 딸을 몰아붙였습니다. 히스테리컬하게 소
리지르고, 왜그랬냐며 나무래고 거의 발악을 했습니다. 너무 너무 화가 나 신랑에게 전화해 집을
정리하게 하고 저녁도 안 차리고 울다 지쳐 잠든 아이들을 팽개치고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잠시 잠이 깨 설거지를 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애들 보기가 싫어 아침도 안
줬습니다. 그냥 책을 봤습니다 .나중에 신랑을 통해 알게된 딸의 행동에 대한 이유는 애들이 영어
말만 해서 자기가 같이 놀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 친구 만들어주려고 그 모임에 끼려고 노력했는데 그 애들도 한국애들임에도 불구하고 여
기서 산 지 벌써 짧게는 3년에서 5년씩 되어가니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더 편안하고, 그러니 한국애
들 만나서 노는 모임에서도 영어로 말하며 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딸에게는 미국 애들과 차
이가 없겠지요. 영어를 못하고 못 알아들으니 자기만 왕따되는 기분이었겠지요.
안그래도 share 하지 않는다고 비난 들은 겨우 6살의 딸에게 한 제 행동이 옳았나에 대해 자기환
멸이 들던터에 들은 그 얘기는 저를 너무 슬프게 했습니다. 물론 여태까지 다른 집에서 놀 때도 그
애들은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 쓰긴 했습니다. 근데 그 모임에서 특별히 궁짝이 잘 맞는 두 여자애
가 있는데 여태까지는 둘 중 하나가 무슨 이유엔가로 번갈아 빠졌었는데 이번주에는 모처럼 만나
자기들끼리 더욱 영어만 쓰면서 신나게 놀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아끼는 공주 스티커도 주
고 다 나눠준 우리 딸 입장에서 점차 화가 나서 다 못 만지게 하게 된 것입니다.
딸의 입장도 이해하고, 그래도 친구 없이 혼자 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눠쓰는 법도 배우고 해
야하니 모임에도 가야할 것 같고, 잘 다독이지 못하고 광분한 제 자신도 너무 싫고, 무슨 영화를 보
자고 여기 와서 이렇게 살아야하나 싶기도 하고 -다 소싯적 제 판단 착오로 인한 업보이니 제가 무
슨 말을 하겠습니까!- 너무 우울한 하루입니다.
부모노릇은 너무 힘듭니다. 특히 성격 급하고 더러운 저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더!!!
여기 올 때 애들 영어 배워오겠다고 부러워한 사람들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한국서 영어 배우는게
미국서 애들이 국어, 수학배우는 것 보다 쉽다고.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이 6살 애에
게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면서 배우게 할만큼 중요한 것인가요? 물론 저희는
애 영어 배우게 하려고 온 게 아니니 때려치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 가야하고, 한
국 학교 보내야하니까 저는 나중에 애들 국어 수학도 가르쳐야 합니다. 안그래도 지금 유치원에 겨
우 주 3일 하루 3시간 가는 것도 매일 울면서 가는 제 딸이, 한국서 한국 유치원 다니고싶다는 제
딸이 언제 한국 친구들과 영어로 말하며 노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까요?
저는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오늘은 한국이 더욱 그리워지네요. 신랑도 좋아서 온 게 아닌, 먹고 살
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고 온 이 곳, 모두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이 곳, 다른 사람들은 어
떻게 저와 달리 이 곳에 잘(?) 적응하고 살아갈까요?
저는 여러분이 있는 그 곳이 너무 그립습니다.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