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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의 제목을 '아이큐84'로 인식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출발을 한다. 정확한 제목은 '일큐84'이다. 그렇다면 1Q84는 어떤 의미일까? 책의 중간쯤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1Q84 이다. 1984년이지만 다른 1984년.. 자신도 모르는 세계 .. Question의 Q를 빌려 1Q84년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인 덴고와 아오마메가 1Q84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동안 접했던 통상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만나서 공통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 전개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각자의 삶을 따로 전개하는 듯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 읽어가다보면 결국은 같은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서로 지구의 반대편-예를들면 덴고는 남극, 아오마메는 북극의 정점-에서 주인공끼리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관점에서 주인공끼리 얽혀가는 내용으로 풀어 놓았다. 아닌 듯 하면서 있는 것처럼 있는 듯 하면서 아닌 것처럼 엮다보니 독자가 몰입하게 된다. 그렇다고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복잡함과 난해함은 없다.
아오마메는 증인회 신자인 엄마와 생활했던 과거가 있고, 덴고는 'NHK'수금원인 아빠와의 과거가 있다. 서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의 일방적인 사고와 직업으로 인해 그들의 의지와 무관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던 불행한 과거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로인해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동병상련을 겪으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계기가 서로를 그리워 하며 살아가게 되는 인연이 만들어 진다.
아오마메는 그녀의 불행했던 아픈 과거를 가슴에 묻고 스포츠센터 클리닉담당 트레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변태적 성행위자를 청부살인하는 얄궂은 삶을 산다. 그러다 우연히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통해 1Q84년의 세계로 들어온다.
덴고 또한 아버지와의 애매한 관계와 아기때 다른남자가 벌거벗은 엄마의 가슴을 입으로 애무하는 몽환적인 실상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참으로 민망한 표현이고 엄마가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목격한 어린아기의 심리상태가 온전할 리 없지만 읽으면서 반복되어 나오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다. 따라서 현재의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학원에서 수학강사로 명성을 얻게 되고 글쓰기를 취미삼아 소설가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는 편잡자 고마쓰에 의해 어린 소녀가 쓴 공기 번데기라는 장편소설을 보완해주고 베스트셀러로 만들면서 1Q84세계에 합류하게 된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서로가 깊은 관계가 형성되고 그들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매개체로 엮여지며 전개된다. 그들 또한 순간순간 과거를 회상하면서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서로의 이끌림에 의해 다른 곳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게된다. 서로 지구의 반대편에서 그들의 주변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지만 각자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만 다를 뿐이지 연관되는 것은 같다는 것을 어느순간에 깨닫게 된다. 서로 무관한 듯 하지만 한 묶음으로 이어지는 글의 마무리 과정이 소름 끼치도록 정교하고 한치의 오차를 용납하지 않는다. 프레임에 꿰맞춰져 있어서 톱니바퀴 돌 듯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칫 사고의 획일성에 의해 지루할 것 같은데 정반대로 더욱 흥미진진하고 잠시라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아오마메가 만나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식상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와 연관된 부분에서는 독특한 개성이 나타난다. 오히려 그들의 캐릭터가 주인공을 압도하는 특징도 있다. 우연히 아오마메와 똑같은 방식의 섹스를 추구하는 여자경찰관, 변태적인 성행위로 아내를 학대하고 자살로 이르게 한 남성을 청부살인토록 의뢰하는 정의의 사도와 같은 노부인과 그 주변인물 등등이 그들이다. 덴고와 똑같은 목적지를 향하게 되면서 겪는 사건과 인물들이 모두 다름에도 서로 연관되어지는 부분은 스토리의 치밀하고 정밀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그래서 글에 대한 탄성도 나온다.
덴고는 소설 속에서 '공기번데기'의 작가인 17세 소녀 '후카에리'와의 인연을 통해 소설이 추구하는 목표를 향해 이끌려 간다. 그와 만나 엮여지는 후카에리는 말투, 그녀가 살아온 환경과 공기번데기 속의 리틀 피플이야기 등이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독특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결국 독자는 어느 순간 1Q84라는 소설 자체가 소설 속의 소설인 '공기번데기'를 그대로 이야기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도저히 독자의 상상으로는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작가의 경이롭고 탁월한 표현력에 매료되어 버린다. 그런데 후카에리는 공기번데기속에서 리틀피플에 의해 만들어진 '마더'일까 '도터' 또는 '리시버' 일까 유일하게 풀리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후속편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호기심일 수도 있다.
후카에리에 대한 미스터리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선구에서 탈출하여 문화인류학자인 아빠친구 및 그의 딸과의 생활, 공기번데기를 소설로 쓰면서 등장하는 덴고와의 만남 등은 분명 마더로서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리틀피플에게 쫓기게 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덴고와 맺어지는 육체적인 관계 후에 의문점이 불거져 나왔다. 물론 그 전에 기계적으로 던지는 말투와 모든 상황을 알고 예측하는 듯한 행동에서도 그런 점이 있긴 했다. 17세가 되도록 음모도 없고, 생리가 없어서 섹스에서도 자유롭다는 내용은 선구의 리더가 아오마메에게 말한 도터들에 대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미스테리한 존재다.
서로 정반대에서 출발한 덴고와 아오마메.
소설의 정점에서는 간절히 원하고 서로의 몸을 갖고자 하는 애절함에 몸부림을 치지만 아쉽게도 해후하지 못한다. 아오마메만이 목격한 채 스치고 지나치게 함으로써 독자들의 애간장을 녹이게 하는 아슬아슬한 장면도 있다. 도대체 왜 그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걸까에 대한 의문점, 리더에 의해 그에 따른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정답을 내놓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끝까지 빠져들게 하는 함정이 있다.
결국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살해하고 숨어지내면서 읽게되는 소설 공기번데기와 같다. 후카에리가 쓰고 덴고가 보완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공기번데기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독자들이 1Q84에서 느끼는 내용과 똑같다는 것을 인식시켜준다. 왜 1Q84년의 밤하늘에는 두개의 달이 있는 걸까? 요즘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는 습관이 그로 인해 생겼다.
아오마메가 1Q84속의 소설 공기번데기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한 내용이다. 이 내용이 결국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설 1Q84에 대한 리뷰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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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번데기"는 환상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읽기 쉬운 소설이었다. 그것은 열 살 소녀가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쓰여 있었다. 어려운 단어도 없고 억지스러운 논리도 없고 군더더기 설명도 없고 배배 꼬아놓은 표현도 없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녀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녀의 말은 알아듣기 쉽고 간결하며 대부분의 경우 편안하게 다가왔지만 그러면서도 거의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일이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중간에 멈춰 서서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건 무슨 뜻일까" 하고 고찰하는 일은 없다. 그녀는 천천히, 하지만 적당한 보폭으로 계속 나아간다. 독자는 그 시선을 빌려, 소녀의 걸음에 맞춰 따라가게 된다. 매우 자연스럽게. 그리고 문득 깨닫고 보면 그들은 딴 세계에 들어와 있다. 이곳이 아닌 세계. 리틀 피플이 공기 번데기를 만들고 있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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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장은 얼핏 보기에는 단순하고 무방비 하면서도 세심하게 읽어보면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계산되고 다듬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나치게 쓴 부분은 한 군데도 없으면서 그와 동시에 필요한 것은 빠뜨림 없이 쓰여 있었다. 꾸며주는 말은 최소한만 사용했지만 묘사는 적확하고 색감이 풍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장에서 뛰어난 리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소리내어 읽지 않더라도 독자는 거기에서 깊은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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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모마메가 읽은 공기 번데기에 대한 평과 독자들이 1Q84를 읽고 느낀 점은 같은 것이리라.
"여러분도 읽어 보면 저와 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저음의 목소리가 말했다.
"정말 같은 느낌을 갖게 될까? 전호인이 물었다.
"두고 보면 알게 돼" 바리톤이 말했다.
"독자들이 쓰는 리뷰를 읽어보면 알겠지" 저음이 말했다.
"호우호우" 다른 리틀 피플이 장단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