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신문(충청OO즈)에 아버님에 대한 기사가 있길래 옮긴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시묘살이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시묘살이는 묘소주위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현재 그것이 가능할 수가 없기에 아버지께서는 사당방(신주를 모시는 곳)에 고연(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간단히 제례할 수 있는 제단)을 모셨다.
그리고, 매일 같이 새벽아침(05시경)에 상식(밥과 국, 다섯가지 반찬)제례를 올리신 후 할머니 묘소를 찾아 촛불을 켜고 술잔을 올려 재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버님의 건강 등이 염려되어 말려본 들 마음속에 할머니에 대한 마지막 효라는 결심이 있기에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그저 하루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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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08일 (월) 심영선 기자 sys5335@freechal.com
아름다운 사모곡
박OO 前 도의원 모친 조의금
노인정·경로당·군장학회 기탁
"꿈엔들 어찌 어머니를 잊을 수 있습니까,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당신 한 몸을 희생하셨죠.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무게를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괴산군 청천면 송면 박OO씨(71·전 충북도의회의원·사진)가 지난달 26일 어머니를 잃은 허망함을 이렇게 표했다.
현재 괴산군 화암서원 원장으로 활동중인 그는 어머니 장례기간 동안 각계에서 보내준 조의금을 관내 노인정과 경로당 등에 각각 30~50만원씩 모두 150여만원을 전달하며 '사모곡'을 전했다. 또 군이 조성중인 장학기금으로 100만원을 기탁했다.
박OO<전 충청북도의원>
"선친 때부터 '임꺽정' 작가 벽초 홍명희씨 집안과 매우 절친했다"는 그는 "가족들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지만 어려서 부터 어머니에게서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배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더구나 11세 때 친어머니를 잃은 박씨는 "지난달 운명하신 어머니 품에서 어린 시절을 성장했고 한학에만 몰두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조차 입학하지 못하고 주경야독으로 한학으로만 공부했던 것도 어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어머니의 품이 그립고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앞으로 3년간 어머니 묘소를 오가며 상복을 벗지 않고 시묘를 하겠다"고 밝혔다.
"오늘날까지 지켜온 (자신의)삶의 현실은 어머니의 애끓는 모성애가 힘이 되어 주어 더욱 간절하다"는 박씨는 "3년 시묘로 어머니에게 다하지 못한 효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현재의 직분을 모두 반납하고 후일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청소년들의 예절과 윤리도덕, 인성 교육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지난 1995년 충북도의회의원에 당선된 후 충북도정과 의회 발전을 위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할머니 영정이 모셔진 사당방의 고연과 아버님의 상식제례모습>
<매일 같이 새벽에 할머니 산소를 오르시는 모습>
<산소에 도착, 촛불을 밝히고 술잔을 올리시는 모습>
<재배하시는 모습>
* 사진발췌 : 괴산책임일꾼 Daum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