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을 본부(서울)에서 근무를 했었는 데 3년만에 다시 복귀한 현시점에서 모든 것이 왜이리 낯설기만 한지 모르겠다.
본부회관에는 많은 부서들이 있고, 순수하게 우리 직원들만 500명은 족히 넘는다. 여기에 아웃소싱으로 들어와 있는 외주업체 직원들까지 하면 7~800명은 될 듯 싶다.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3년전보다 약간 줄어든 숫자이지만 그때는 11년을 보아온 친구들이다보니 다들 일면식이라도 있었는 데 3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사람들도 참 많이 바뀌어 있었다. 당장 나와 같은 팀에 있는 후배직원 세명 조차도 처음보는 친구들이니 말하면 무엇하랴.
사람들만 바뀐 것이 아니다. 사무실 환경 또한 많이 바뀌었고, 직원들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 보인다. 젊은 직원들이 많이 입사하다보니 헤어스타일이며 옷차림까지도 새롭기만 하다. 가장 달라진 점은 사무환경이라 할 것이다. 천안 연수원으로 내려갈 즈음에 그룹웨어가 추진되고 있었고, 실용화되는 시점이었다. 사업개발담당이었을 때에는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위치에서 수많은 연구와 기획이 필수였던 지라 기안으로 밤을 새고 날을 밝혔었지만 연수원에서야 기안은 전혀 손도 대지 않고 강의만 하였기에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물론 현재 다시복귀한 시점에서 팀장으로서 결재만 하면 되니까 기안할 일은 없다. 다만 모든 결재시스템이 전자문서화되어 있어서 결재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갑자기 컴맹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마저 든다.
아무리 세월이 아침다르고 저녁다르다고 하지만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룹웨어를 핸들링할 줄 모르면 퇴출당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안할 때는 결재만 하는 것들이 말만 많다고 생각했는 데 이것도 장난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닫게 되면서 과거에 했던 행동들이 생각나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전자문서 시스템이야 조금만 하면 금방 익숙해 지겠지만 문제는 결재할 때의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지는 점이다.
팀원들중에 선배도 있고 동기들도 있다보니 가끔 기안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문의를 할라치면 서로 질의응답이 있어야 하는 지라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내가 이러하니 상대방이야 오죽할까. 어제까지 깍듯하게 선배대우를 받거나 동기모임에서 스스럼없이 지냈던 사람들인 데 후배 또는 동기가 팀장이 되어 나타나 보고를 받고 있으니 머쓱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아 내가 당당하게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것니까 말이다.
나는 말단직원에서 과장에 있을 때까지 내 밑에 직원을 두어 본 적이 없다. 상품개발팀에서는 내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어 만들어지곤 했었기에 늘 혼자 기획,연구하고 개발했다.
또한 연수원 교수로서의 역할도 늘 혼자였기에 팀원들을 거느린다(?)는 것이 낯설기만 하다.
따뜻하게 때로는 강하게 동료직원들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이끌어간다면 좋은 상급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만은 있다. 그렇게 나만의 자화상을 만들어 가련다.
과거의 선배들이 후배들의 자양분에 의존을 한 세대였다면 지금은 후배들이 선배인 나의 자양분을 발판삼아 조직의 동량으로 우뚝 서 주길 기대해본다. 각 개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역량이 존재한다. 이러한 역량은 환경이 조성될 때 밖으로 표출되어질 것이다. 후배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