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은행을 바꾼 신한은행 방식
정동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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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금융환경은 1997년 IMF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변했다.
사실 금융환경이야 1991년부터 2003년까지 4단계로 실시된 금리자유화에 의해 진행된 것이 시발점이 될 것이다. 과거 우리가 일본에 의해 주권을 빼앗겼다면 IMF(국제통화기금)체제하에 의해서 경제가 좌지우지 됐던 97년 11월은 경제권을 남의 손에 넘긴 치욕적인 시기이다.
김영삼 정권이 나라를 완전히 거덜나게 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던 지라 힘이 없는 국민으로서는 더욱 가슴 아팠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김대중 정부가 출범이 되었고 우리는 금모으기 등을 통해 IMF체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은 167조원이라는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이 되었지만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정치권의 힘에 의해 여소야대에 따라 그들의 입맛을 맞추다보니 없어져야 할 금융기관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것이다. 엄청난 공적자금은 바로 우리들이 국가에 납세한 세금일 진대 투입된 자금중 회수불능 자금이 69조원이라고 하니 땅을 칠 일이 아닌가?
앞서간다고 하는 국내은행 대부분이 외국인의 손에 완전히 넘어간 상태이고, 현존하는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60~80%를 차지하고 있으니 국내에 있다 해도 우리나라의 은행이 아닌 외국은행이 되어 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신한은행의 영업전략은 금융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신한은행의 외국인 지분 또한 조흥 등과의 합병을 거치면서 60%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일군 오늘의 신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신한은행은 재일교포 기업인들에 의하여 제일종합금융이라는 단기금융회사를 거쳐 1981년부터 불기 시작한 금융 자율화와 국제화 바람으로 설립되었다. 다른 은행들에 비하면 신생은행에 지나지 않던 은행이었지만 최근 몇년 동안 최우수 은행으로 평가받고 국내은행 최초로 세계적으로 우수한 은행 50위안에 들어가는 등 성공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고객 중심의 영업전략과 지칠 줄 모르는 개척정신,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인재는 신한은행을 국내 최고의 은행으로 끌어올린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특히, 신한은행 성공신화의 가장 기본이 되었던 것은 금융기관의 경영에 고객지향 사고를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기존의 은행들이 판매자위주의 사고로 고객관리 및 영업을 해 나가고 있을 때 신한은행은 친절한 서비스와 고객위주의 대출영업, 철저한 고객관리로 일관하였다. 그것이 "창구에 앉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발로 뛰는 새로운 은행"이라는 신한은행의 고객 만족 마인드인 것이다.

1982년 당시 은행 설립의 최저자본금이었던 250억 원으로 출발했던 후발은행 신한은 2004년 자산 83조 8,000억원, 당기순이익 8,441억 원에 이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창업 첫 해를 제외하고 단 한 해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으며, 창업초기 연 30% 이상의 고공 성장을 지속하는 무서운 저력을 과시한 결과였다. 창립당시 270명에 불과했던 임직원수도 2004년말 현재 5,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대폭 늘었으며, 본점 영업부를 중심으로 전국 8개 지점 만으로 출발했던 지점수는 '97년까지 5년 주기로 2배 이상의 확장을 거듭했다. 2004년 말 현재 국내외 382개 지점으로 성장했으며, 2006년 조흥은행과의 통합이 완료됨으로 인해 960여 지점을 둔 국내 2위 은행으로 부상했다. 뿐만 아니라 총 수신고에 있어서도 가히 경이적이라 할 만한 성장률을 보여주어 1997년 국내 은행 중 최단기간 내 수신고 25조원 달성이라는 기록을 수립하였다. 이 처럼 숨가쁜 양적 팽창을 일궈내는 과정에서 신한은행의 구성원들이 몸으로, 가슴으로, 머리로 체험하고 느끼며 확신하게 된 진리는 바로 "앉아서 기다려서는 고객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발로 뛰는 영업,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은 신한은행의 으뜸 전략이자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신한은행의 고객지향 사고를 보여 주는 예는 매우 많지만 노량진 지점에서 있었던 일을 한 예로 들어본다. 이 지점의 관할 구역내에는 국내 최대의 수산물 중계시장인 노량진수산시장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통상 수산물거래가 밤 12시부터 시작하여 새벽4시쯤 끝나게 된다. 문제는 이 시간동안에 많은 현금, 수표 및 어음이 오고 가는데 아침에 은행이 영업을 시작할 때까지 이것을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가 없어 중매인들이 불편하게 여겼다. 이러한 불편을 알아낸 신한은행 노량진지점에서는 그 시간 동안에 이동금고를 운영케 하여 상인들의 현금 및 수표들을 은행영업시간까지 보관해 주는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신한은행의 고객지향 서비스에 감동하여 많은 노량진시장의 상인들이 신한은행 지점으로 거래은행을 바꾸었다. 또한 청량리에서 가장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경동시장에서는 신한은행 지점이 들어서기 전, 오랫동안 터줏 대감 노릇을 하던 J은행이 상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J은행의 벽을 넘기 위해 모색한 것이 동전교환이라는 새로운 고객에게 다가가는 전략이었다. 직원 두 명과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하루도 빠짐없이 동전 교환에 나섰고, 이것이 바로 리테일 카트의 효시가 된 동전교환기에 얽힌 일화이다.

바로 그들은 고객만족경영을 실천했고, 구성원들은 고객지향적 사고에 의한 지식경영을 했었기에 오늘날의 신한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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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6-17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